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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397화 (397/398)

◈ [397화] 정리 (3)

“……어?”

도적은 멍하니 자신의 팔을 바라봤다. 정확히 말하면 팔이 있던 장소를 바라봤다.

지금 벌어진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고통은 한발 늦게 찾아왔다.

인지부조화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도적이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아아아!”

다른 도적들이 비명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무슨…….”

하지만 그들도 여유롭게 동료를 살필 시간은 없었다.

거칠게 내달리던 말들의 목이 툭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우당탕탕!

말들의 목이 일제히 바닥에 떨어지자 낙마자들이 속출했다. 낙마는 우습게 볼만 한 일이 아니었다.

어지간히 숙련된 기사가 아니라면 낙마 시에 큰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도적들은 말을 잘 다뤘지만, 예기치 못한 낙마에 대처할 수준은 아니었다.

도적들이 사정없이 바닥에 곤두박질쳐졌다.

“끄아아아악!”

부상자와 사상자가 속출했다.

낙마에 제대로 대처한 도적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이게 무슨…….’

도적들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두목은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지금 벌어진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제대로 된 판단이 되지 않았다.

“오,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데?”

“성격이 고약하군.”

“네네, 그러시겠죠.”

두목이 흠칫 놀라 하며 고개를 돌렸다. 도적들이 비웃었던 두 명이 이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위험하다.’

두목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직감했다. 저놈들은 위험하다.

‘어떡하지? 나라도 도망쳐야 하나?’

두목이 쓰러진 도적들을 힐긋 바라봤다. 낙마한 도적들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머리가 잘린 말의 시체들. 절단면은 깔끔하다.

‘그 거리에서 모조리 말의 목을 베어 냈다고?’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희망이 사라졌다. 도적들을 방패 삼아 도망친다고 해도 살아 나갈 자신이 없었다.

두목이 쉴 새 없이 눈을 굴렸다.

어떻게든 활로를 찾으려고 했지만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 다들 일어나라!”

두목이 도적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

어떻게든 살길을 찾으려면 이들을 일으켜 세워야 했다. 이미 이성적인 판단은 마비된 지 오래였다.

두목의 호통을 들은 도적들이 하나둘씩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끄응…… 이게 무슨…….”

“으윽…….”

도적들이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두목과 달리 아직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오, 꽤나 쓸 만한 것 같은데?”

크리스토가 어깨에 칼을 얹으며 말했다. 건들거리는 자세와 가벼운 언행.

도적 두목을 힐긋거리면서 크리스토를 가늠하고 있었다.

‘대체 누구지?’

짚이는 구석이 없었다. 금발 벽안의 미남자.

나이는 20대로 보인다. 저 정도 외모의 실력자라면 이미 알려져도 진즉에 알려졌을 것이다.

꿀꺽.

두목이 침을 삼켰다.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하건, 아니면 죽을 각오를 하고 싸우건.

‘그것도 아니라면 애들을 버리고 도망치든지.’

두목은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두목이 선택의 기로 앞에서 고민하고 있자 크리스토가 입을 열었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야, 쓸데없는 생각 말고 그냥 덤벼. 어차피 너희들 살려 둘 생각 없으니까.”

크리스토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모처럼 산뜻했던 기분이 잡쳐졌다. 뭐가 됐든 화풀이를 할 생각이었다.

“……뭐라고? 저 개자식이 감히!”

서걱.

역정을 내려던 도적의 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도적은 멍하니 바닥에 떨어진 팔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비명을 토해 냈다.

“끄아아…….”

“시끄러.”

크리스토가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비명을 지르던 도적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

충격적인 광경을 목도한 도적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실력 차이를 인지한 것이다.

크리스토는 도적들에게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싸늘한 침묵이 내리깔렸다.

“……쯧.”

상황을 관망하고 있던 빈센트가 입을 열었다.

빈센트도 도적을 살려 둘 생각은 하지 않았다. 빈센트는 자비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재미 하나만을 위해 생명을 유린하는 것은 빈센트의 성미와 맞지 않았다.

두목은 어떻게 해서든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려고 했지만 빈센트의 행동이 먼저였다.

스윽.

빈센트가 검을 휘두르자 그 자리에 있던 도적들의 몸이 한꺼번에 반으로 갈라졌다.

촤아아악―!

선혈이 솟구쳤다.

갈색의 갈대밭이 붉게 물들어 갔다.

“뭐 하는 짓이야?”

“화풀이는 거기까지 하지.”

크리스토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고는 검집에 검을 밀어 넣었다.

“이건 또 뭔 상황이야?”

크리스토와 빈센트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인기척도 없이 등장한 에단은 도적들의 시체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그새를 못 참고 또 사고를 쳤냐?”

“걔네 도적들인데? 그리고 나는 한 놈도 안 죽였어. 죽인 건…….”

크리스토가 빈센트를 힐긋 바라봤다. 빈센트가 크리스토의 시선을 외면하며 헛기침을 했다.

“크흠.”

“흠, 그래? 그럼 잘 죽였네.”

에단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적들이 죽든지 말든지 에단은 큰 관심이 없었다.

“시간도 없으니 빨리 가기나 하자고.”

에단이 허공에 게이트를 열고는 크리스토를 바라봤다.

“너는 알아서 갈 수 있지?”

“……흐음.”

크리스토는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에단에게 말했다.

“나도 잠깐 들려야겠어.”

“또 왜.”

에단이 인상을 쓰자, 크리스토가 태연하게 말했다.

“동생한테 안부 인사는 전해야 하지 않겠어?”

“…….”

에단이 미묘한 표정으로 크리스토를 바라봤다.

“뭐…… 그러든가.”

에단의 허락이 떨어지자 크리스토가 피식 웃었다.

‘역시 여유를 즐기는 건 나랑 안 맞나 보군.’

*   *   *

에단을 포함한 일행들이 복귀했다. 일행들은 최대한 소란을 자제시켰다.

미리 네이드와 첸이 조치를 취해 뒀기에 귀찮은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에단은 아카데미의 교정을 천천히 둘러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오랜만이네.”

묘하게 감회가 새로웠다. 딱히 이렇다 할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제야 돌아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도련님.”

네이드가 에단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뭐야? 제발 부탁이니까 울지는 말아 줬으면 좋겠는데. 나 그런 거 진짜 질색이야.”

“……하하, 너무하십니다.”

“……으.”

에단이 소름 돋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몸을 떨었다.

“……한 번만 안아 봐도 되겠습니까?”

“되겠냐?”

에단이 질색하는 표정을 짓자 네이드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정말 섭섭합니다.”

“간지러운 말은 거기까지면 충분하고. 애들은 어딨어?”

“애들이라 함은…… 휴고와 가토를 말하시는 겁니까?”

“어, 걔네들은 잘 지내?”

“하하, 그 두 분은…….”

*   *   *

“후우.”

휴고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며 숨을 토했다.

지금은 체력 단련 시간이었다. 수인들은 아카데미에 완전히 동화되었다.

처음에는 껄끄럽게 여기던 학생들이었지만, 이제 수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다름을 받아들이고 인정한 것이다.

인간을 경계하던 수인들도 이제는 학생들과 곧잘 어울렸다.

수인들의 기본적인 천성은 매우 순수했다. 문명과 동떨어진 설산에서 숨어 살던 수인들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니고 있었다.

수인들은 아카데미의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며 문명에 적응해 가기 시작했다.

렉사르는 수인들을 지도하는 교수가 되었다. 수인들은 기본적으로 전투 센스가 매우 훌륭한 편에 속했다.

습득력이 좋고, 반사 신경이 빨랐다.

레인저에 최적화된 습성을 지니고 있었다.

렉사르는 엄격했지만 수인들을 잘 지도했고, 수인들도 이제는 렉사르를 완전히 인정했다.

휴고도 종종 수인들의 훈련에 동참했다. 수인들은 앞서 나가는 휴고를 바라보며 많은 동기부여를 얻는 것 같았다.

‘……조금 답답하네.’

훈련을 끝낸 휴고가 쓴웃음을 지었다. 훈련은 나쁘지 않았다.

정신없이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다 보면 잡생각을 떨쳐 낼 수 있었다.

휴고는 지금까지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사실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기사 서임을 받은 지 이제 고작 2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휴고의 경지는 마스터에 근접했다. 아직 벽을 뚫지 못했을 뿐, 사소한 계기가 생기면 마스터의 벽을 무너트릴 것이다.

하지만 휴고는 현 상황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초조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제대로 잠을 잘 수조차 없었다.

‘나는 약해.’

휴고에게 에단은 은인과도 같았다.

한낱 마구간지기에서 어엿한 기사로 거듭날 수 있던 이유는 에단을 만나서였다.

보답을 하고 싶었다.

에단의 기사로서, 그의 주군이 자신을 의지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멀었어.’

하지만 에단은 너무 앞서 나가고 있었다. 휴고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지만 에단은 차원이 달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휴고는 에단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지하로 향하는 원정에 휴고는 배제되었다.

까득.

휴고가 이를 갈았다. 답답했다.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불만을 토로할 수는 없었다. 그 정도 주제 파악은 할 수 있었다.

원정에 참여하지 못한 것. 그건 자신이 약하기 때문이다.

실종자는 총 셋.

빈센트. 오르번. 헨리.

그들은 원정에 참여했을 것이다. 모두 휴고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자들이었다.

‘난 이걸로 충분한가?’

잘 모르겠다.

휴고는 지금 정체되어 있었다.

정체되어 있는 느낌은 휴고에게 익숙지 않았다.

휴고는 멍하니 훈련하는 수인들을 바라봤다. 수인들은 열심히 산과 절벽을 오르고 있었다.

렉사르의 지도는 매우 가혹했다. 그러나 수인들은 불평하지 않고 충실하게 훈련에 임했다.

그들은 매일같이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휴고는 아니었다.

이런 단순한 훈련은 휴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저 뭐라도 했다는 안도감으로 위안을 삼을 뿐이었다.

“뭘 그렇게 궁상을 떨고 있어?”

휴고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휴고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그곳에는 에단이 씨익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 잘 지냈냐?”

“에, 에단 도련님……?”

휴고의 목소리가 떨렸다. 휴고는 지금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휴고가 자신의 얼굴을 꼬집었다.

“어라……? 아프지가 않아…….”

휴고가 자신의 뺨을 꼬집으며 넋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에단이 기막힌 표정을 지었다.

“뭔 개소리야?”

“저, 정말 도련님이 맞습니까? 이거 꿈인 건…….”

“왜, 확인시켜 줄까?”

에단이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다가오자 휴고가 화들짝 놀랐다.

“괘, 괜찮습니다! 현실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 씁…… 좀 아쉬운데.”

에단이 입맛을 다셨다.

조금이라도 대답이 늦었다면 무슨 꼴을 당했을지.

휴고가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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