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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394화 (394/398)

◈ [394화] 타이탄 (2)

에단은 거대한 게이트를 만들었다. 죽은 나무가 뿌리내린 구역으로 향하는 게이트였다.

“자, 다들 바쁘게 움직이자고!”

에단이 마을 사람들을 닦달했다. 마을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이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유목민과 같은 특성상 이주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준비는 순식간에 끝났다.

“온 지 얼마나 됐다고…….”

개중에는 불평을 터트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다른 이들의 따가운 눈총을 이기지 못하고 묵묵히 일을 해 나갔다.

유론다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결국 결정을 내리는 자는 유론다였다.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심장이 뛰었다. 비록 노회하고 녹슨 몸임에도 제대로 반응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염원이었다.

아주 오래되어 이제는 흐릿하기만 한 기억이었지만, 과거의 찬란함은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하는 냉혹했다.

보물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을 지킬 힘 또한 필요했다.

유론다의 부족은 안일했고, 그렇기에 보물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것에 대해서 불만을 토해 낼 생각은 없었다. 그것이 당연한 이치이자 순리였으니.

강자 독식.

죄가 있다면 그것은 약한 것.

약하면 잡아먹힐 뿐이었다.

그렇게 과거를 잊은 채 방랑하며 살아가던 그녀에게 다시 기회가 돌아왔다.

감회가 새로웠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지만, 가슴이 벅차올랐다.

“자, 준비가 끝났으면 가자고.”

에단의 말에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크게 갈라진 허공을 건넌다는 것은 꽤나 두려운 행위였다. 마을 사람들이 주저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앞으로 나간 것은 네빌라였다. 그녀는 말의 고삐를 쥐고 당당히 게이트 앞에 섰다.

“뭘 그렇게 쫄아 있어? 다른 자들은 그렇다고 쳐도…… 설마 전사들까지 겁을 집어먹은 건 아니겠지?”

네빌라가 쌍심지를 치켜세웠다.

그녀의 위세에 눌린 전사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난 먼저 간다.”

네빌라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에단은 감탄 섞인 휘파람을 불었다.

네빌라의 다음 차례는 유론다였다.

그녀는 물끄러미 게이트를 응시하다가 에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고맙네.”

그녀의 감사를 들은 에단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런 인사는 나중에 해.”

유론다와 수호 전사가 게이트를 통과했다.

전사장과 부족장이 가장 먼저 나섰는데 주저할 자들은 없었다. 전사들이 먼저 게이트를 통과했고, 아녀자와 노인이 그 뒤를 따랐다.

모두가 이동하자 마을이 횅했다. 아무도 없는 마을을 둘러본 에단이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마을의 흔적이 사라졌다. 에단이 게이트로 향했다.

황폐한 땅과 넓은 지평선을 본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여기서 어떻게 살아가라는 거야…….”

“아무것도 없어…….”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에단에게로 향했다. 그들의 눈은 해명을 바라고 있었다.

유론다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녀의 눈빛에는 깊은 실망감이 서려 있었다.

“조급하게 굴지 좀 마.”

마을 사람들이 당황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지금 이 황야에서는 그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았으니.

“이제부터 너희들이 가꿔 나갈 거야.”

에단이 아슬란을 뽑았다. 매끈한 검신에 오묘한 빛무리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부탁 좀 할게.”

― 귀찮게 굴기는.

키아나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하지만 그녀는 에단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멍하니 에단의 바라보고 있었다. 에단에게서 흘러나오는 분위기와 빛은 정말이지 신비로웠다.

에단의 검이 움직이고 빛이 지면을 적신다.

빛이 스며들자 메마른 땅이 촉촉하게 젖어 들기 시작했다. 마치 생명이 잉태한 듯, 생기가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푸른 기운이 퍼져 나간다. 더없이 포근한 기운이었다.

마을 사람들과 유론다는 그 압도적인 장관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샤르.”

에단이 샤르를 불렀다. 샤르는 갑작스레 등장했다.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

샤르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 당신은…….”

생명이 태동하는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던 유론다가 고개를 돌려 샤르를 바라봤다.

유론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한 채 샤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론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완전히 말라비틀어진 줄 알았던 눈물샘에서 눈물이 차올랐다.

그녀가 비틀거리며 샤르에게 다가갔다. 샤르는 눈을 깜빡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응?”

“……저를 기억하지 못하시나요?”

유론다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샤르는 가만히 유론다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기억해. 예전에 나랑 종종 놀았잖아.”

“……네. 그 아이가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 추레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 눈에는 예전이랑 달라진 게 없는데.”

“……그런가요?”

유론다가 웃었다.

주름진 눈매가 지난 세월을 보여 줬지만, 그녀가 웃는 모습은 아이처럼 천진했다.

“그럼…… 대충 할 일도 끝냈으니까, 조만간 다시 올게.”

“……고맙네.”

유론다가 에단을 향해 깊게 고개를 숙였다. 몸을 돌린 에단이 팔을 휘저었다.

*   *   *

“……진짜 어처구나가 없군.”

아모드라가 황당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들은 에단에 의해 죽은 나무의 영역에서 추방당했다.

그것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지금 그들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지하는 광활했다. 수많은 군주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사투를 벌이는 곳이다.

뭐,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아무 군주한테나 찾아가 정보를 캐물으면 어떻게든 영지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매우 귀찮고도 번거로운 짓이었다. 아모드라는 지금 매우 피곤했다.

어서 빨리 자신의 성으로 돌아가 안락한 휴식을 취하고 싶었지, 또다시 번거로운 일들을 도맡고 싶지는 않았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짜증이 밀려왔다. 후끈거리고 건조한 공기를 들이마시니까 목이 칼칼한 기분이다.

아모드라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카무잔은 팔짱을 낀 채 심드렁한 표정으로 서 있었고, 록사자와 로이마르티는 힐긋거리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

“…….”

두 명의 군주가 서로를 바라봤다. 알 턱이 없었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큰 화를 입을 것만 같았다.

“하아…….”

아모드라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두통이 치밀었다.

‘하필 보내도…….’

에단을 떠올리자 이가 절로 갈렸다.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많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매우 귀찮다는 것이다.

“……방법을 찾아라.”

아모드라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두 군주를 노려봤다. 두 명의 군주가 화들짝 놀라며 아모드라를 바라봤다.

‘……도대체 어떻게?’

록사자와 로이마르티가 억울한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아모드라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아모드라는 방법을 찾으라고 말했지, 묻지 않았다.

무언의 압박.

대군주의 기세는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감히 불만을 토로하거나 변명을 할 수조차 없었다.

까딱 잘못하면 그대로 목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록사자와 로이마르티의 어깨가 추욱 늘어졌다.

펼쳐진 것은 황폐한 땅뿐. 인기척은커녕 마수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서 뭘 어떻게……?

절망만이 밀려왔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에단이 나타났다.

번쩍하고 나타난 에단이 아모드라에게 손을 들며 인사했다. 아모드라는 뚱한 표정으로 에단을 노려봤다.

“오래 기다렸냐?”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뚝 떨구고 한다는 소리가 고작 저거란 말인가?

아모드라는 기가 막혀서 순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해 좀 하라고. 나도 할 게 좀 있었어서 말이야…….”

말끝은 흐린 에단이 카무잔을 바라봤다. 카무잔은 에단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눈빛에서 뜨거운 열의가 느껴졌다.

콧김이 보이는 것 같았다. 카무잔의 입매가 주욱 찢어졌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나며 진한 야성과 폭력성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이제…… 그만 참아도 괜찮나?”

“……어쩔 수 없지.”

에단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저렇게까지 애타 하는데 계속 뒤로 미룰 수는 없었다.

“뭐…… 급하면 먼저 보내 줄까?”

“……아니. 이건 보고 가겠다.”

“마음대로 해라.”

아모드라는 매우 피곤했지만 피곤함보다도 궁금증이 앞섰다.

에단은 대체 어떤 존재로 거듭난 것일까? 에단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압도적인 위세라기보다는 이질감에 가까웠다.

존재감이 짙으면서도 옅었다. 그 기묘하면서도 이질적인 느낌.

‘정말 한 공간에 있는 것이 맞단 말인가?’

도저히 가늠할 수도, 측정할 수도 없었다.

에단은 여유롭게 웃으며 카무잔을 바라봤다.

얼마 전과는 입장이 정반대가 되었다.

카무잔은 언제나 절대적인 강자의 위치에 서 있었다.

대군주로서의 무력도 그랬지만, 전사로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량을 지닌 자가 바로 카무잔이었다.

아모드라는 단언할 수 있었다.

카무잔은 순수한 전사의 화신과도 같았다. 카무잔이 살아 있는 한, 그를 뛰어넘을 전사는 나타날 수 없었다.

카무잔은 계속 강해지고 있었으니까.

투쟁을 향한 카무잔의 집착은 광기와도 같았다. 카무잔은 승리나 권력보다도 순수한 싸움을 추구했다.

하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았다.

문제에 봉착하고만 것이다.

카무잔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전사였고, 매 순간마다 성장한다.

목숨을 건 혈투만이 그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러지 못했다.

카무잔에 비해 다른 이들은 너무나도 나약했다. 카무잔이 성장할 때, 다른 군주들은 정체되었다.

약자를 상대로는 투쟁심이 들지 않는다. 싸우지 못하는 전사는 정체될 뿐이다.

카무잔에게 있어 에단은 재밌는 상대였지만 딱 그 수준이었다. 에단과의 전투는 승부욕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만큼 둘 사이의 실력 차는 명확했으니.

카무잔이 조금이라도 진심을 보이면 에단은 일합도 견뎌 내지 못하고 폭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입장이 전혀 달라졌다.

움찔움찔.

카무잔의 예민한 본능이 반응했다.

피해야 한다.

도저히 승산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런 감각은 처음이었다.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감각이다.

식은땀이 흘렀다. 등줄기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군주를 넘어, 대군주가 된 이후로 처음 마주한 강자였다.

아니, 저것을 ‘강자’라는 범주 안에 넣어도 되는 것인가?

저건 그 이상의 무언가였다.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무언가.

카무잔은 패배를 직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기고 지는 것 따위는 카무잔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부딪치느냐 마느냐였다. 설령 그 앞이 낭떠러지라고 할지라도 카무잔은 앞으로 발을 내디딘 것이다.

크르르.

카무잔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매서운 살기가 사나운 폭풍이 되어 휘몰아쳤다.

에단은 사나운 폭풍을 눈앞에 두고도 여유를 잃지 않은 채 카무잔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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