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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391화 (391/398)

◈ [391화] 빛의 나무 (1)

서로 다른 힘.

삶과 죽음, 그것은 하나의 굴레.

생명의 잉태.

삶의 끝.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도 결국은 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곧 순리.

머릿속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에단은 세상의 비밀을 엿보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하던 것들.

그것들은 진실이었다.

훨씬 장대한 굴레. 그 위대한 법칙 앞에서 인간은 먼지와도 같았다.

우주를 유영하는 것 같았다. 생명과 죽음은 본디 하나였다. 그리고 그것을 이어 주는 열쇠가 바로 아슬란이었다.

신성력의 기원은 그런 것이다.

숭고함과 신성함은 결국 주적인 것이다. 신의 은혜가 아닌, 그저 존재할 뿐이다.

불공평과 불합리함 따위가 아닌, 그저 존재하던 힘.

‘빌어 처먹을.’

에단의 몸속에서 거대한 흐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큰 소용돌이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만큼 거대한 소용돌이.

이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잠깐이라도 이성의 끈을 놓으면 에단이라는 존재는 저 굴레 앞에서 사라지고 만다.

‘좆 까라고 그래.’

이것이 타이탄의 힘.

페온의 이상이자, 초월자의 힘.

에단은 단 한 번도 그딴 힘을 원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날 옭아매려고 하지 마.’

에단이 으르렁거렸다.

구속되는 건 질색이다.

언제나 판단은 내가 한다. 굴레며 운명이며,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게 무엇이 되었건 휘둘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키아나!’

― …….

키아나는 침묵했다. 키아나도 방대한 정보의 해일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말한 것이 아니다. 키아나도 그저 하나의 부품일 뿐이다.

‘정신 안 차려?’

그렇기에 에단은 역정을 냈다.

운명? 굴레? 섭리?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에단은 스스로가 원해서 여기까지 왔다.

단지 그뿐.

그 이후에 대해서?

그건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한다. 지금 에단이 원하는 것은.

‘그 새끼 얼굴 한 번 후려치는 거야.’

까득.

이를 갈았다.

고통이 흐려진다. 에단의 자아와 존재감이 점점 옅어져 간다.

거대한 굴레 앞에서 인간은 무력할 뿐이다.

하지만 에단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끝까지 발악했다.

― ……미친 새끼.

키아나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왔다. 에단의 눈이 또렷해졌다.

“뭐 하다가 이제 오냐?”

― 넌 참을 성도 없냐? 하여간 이래서…….

“닥치고, 어떻게든 해 보지 그래?”

― 재촉 좀 하지 마. 확 그냥 여기 두고 가 버릴까 보다.

“하.”

― 기다려. 일단 여기서 나가게 해 줄 테니.

짙은 심연 속에서 빛이 한 줄기 새겨진다. 에단은 그 빛을 붙잡아 앞으로 나아갔다.

포근한 기운.

에단의 정신이 또렷해진다. 천천히 빛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에단이 눈을 떴다.

거세게 치솟던 안광이 갈무리되었다. 에단이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주위는 온통 암흑뿐. 에단이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전과 달라지지 않은 손이었다.

― 뭘 멍 때리고 있어?

키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검 한 자루가 쓰러져 있었다. 투박한 검이었다.

“재촉 좀 그만하지?”

― ……진짜 짜증 나네.

피식 웃은 에단이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손에 착 감기는 감각이 나쁘지 않았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뭔가 감이 잡히는 기분이다.

‘이런 건가.’

혼란스럽던 흐름이 안정되었다.

에단이 자신의 내면을 관조했다.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슬슬 결판을 내볼까?”

― 그래야지.

에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일들을 모두 수습하기는 꽤나 촉박했다.

*   *   *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다. 빈센트와 크리스토, 그리고 오르번과 두 명의 군주는 멍하니 그 모습을 관망하고 있었다.

가히 압도적이다.

천지가 요동친다.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갈라진다. 우레와 같은 폭음과 굉음이 쉬지 않고 터져 나온다.

신화 속의 싸움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안전하게 그 광경을 지켜볼 수 있는 이유는 샤르의 보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두 군주는 넋을 잃고 있었고, 빈센트와 크리스토도 완전히 압도되었다.

‘이게 대군주의 싸움.’

빈센트는 피로와 고통조차 잃은 채 전투를 눈에 담고 있었다.

한순간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숨을 쉬는 것조차 잊었다.

벽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역사를 뒤져 보더라도 자신보다 높은 경지에 이른 인간은 없었다.

허탈했고, 허무했다. 그렇기에 빈센트는 자신의 힘을 숨겼다.

압도적이라는 것은 고독하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목표가 사라지자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자, 오만함이었다.

빈센트의 눈이 빛났다. 그는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지었을 뿐이다.

하늘 위에는 더 높은 하늘이 있었다.

쾅!

강렬한 빛이 폭발했다. 카무잔과 페온의 주먹이 맞부딪친 순간이었다.

쩌엉―!

카무잔과 페온이 동시에 밀려났다. 카무잔은 환희에 차 있었다. 드디어 제대로 된 적수를 만났다.

목숨을 건 혈투.

심장이 격동했다. 카무잔은 살아 있음을 실감했다.

씰룩씰룩.

카무잔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키메라의 몸을 얻은 페온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꿈틀.

페온의 꼬리가 자아를 가진 것처럼 움직였다. 기괴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카무잔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외향 따위는 그에게 있어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카무잔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은 단 하나였다.

순전한 강함.

투쟁과 싸움을 좇는 카무잔의 집착은 광기와도 같았다.

“크하하하하!”

카무잔이 다시 달려들었다.

그의 몸에는 자잘한 상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카무잔은 더 빨라지고 강해졌다.

카무잔이 거칠게 몰아붙였다.

뻗는 공격 하나하나가 능히 산 하나를 소멸시킬 정도의 힘을 내포하고 있었다.

상처를 입기 시작한 것은 페온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페온의 상처는 금세 수복되었다.

페온의 몸은 압도적인 내구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카무잔의 공격을 견뎌 낼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상관은 없었다. 이 몸은 내구력을 제외하고도 미친 회복력을 지니고 있었으니.

설령 목이 날아간다 하더라도 죽지 않는다. 상황은 페온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쾅! 쾅! 쾅! 쾅! 쾅!

페온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팽팽하던 흐름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어째서?’

페온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압도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기량의 차이는 엇비슷했고, 신체를 탈바꿈하면서 카무잔보다도 우위에 섰다고 생각했다.

비록 키메라는 실패작이었지만, 그럼에도 압도적인 성능을 지니고 있었다.

죽은 마나에는 여유가 있었다. 카무잔의 공격을 좇을 수 있었다.

힘과 속도, 그리고 기술.

페온은 무엇 하나 뒤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내가 밀리고 있는 거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크하하하하!”

카무잔의 광소가 다시 터져 나왔다.

피 칠갑을 한 그의 얼굴은 섬뜩했다. 붉게 칠해진 얼굴. 카무잔의 샛노란 안광이 형형하게 빛났다.

까득.

페온이 이를 악물었다.

흐름은 빼앗겼지만,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다. 페온이 힐긋 뒤를 돌아봤다.

아리오나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많은 대미지를 입은 상태였다. 순수한 기량에 있어서도 아모드라에 미치지 못했다.

선혈의 격류가 아리오나를 거칠게 몰아붙였다. 아리오나는 마치 사냥감이 된 것 같았다.

피로 이루어진 말뚝과 창이 그녀를 난도질하고 있었다.

“어디서 한눈을 팔아?”

카무잔의 목소리에 노기가 서렸다. 카무잔의 공세가 더욱 거세졌다.

“크윽!”

페온이 신음을 흘렸다.

“네 상대는 나야!”

카무잔이 거세게 포효했다. 그 울부짖음에 페온의 영혼이 흔들렸다.

기세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승산이 점점 희박해진다.

‘제기랄.’

페온이 욕설을 내뱉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고지가 코앞이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계획이 틀어져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이 없어.’

페온은 에단을 알고 있었다.

에단은 위험하고 예측 못 할 녀석이었다. 확률은 희박하겠지만 그 녀석이라면.

‘거기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건 나의 것이다. 내가 가져야 하는 힘이다.

페온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크르르륵.

그의 입에서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카무잔은 그런 변화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더욱 거세게 페온을 궁지에 몰아넣을 뿐이었다.

페온이 눈을 굴렸다. 조급함이 밀려왔다.

‘이대로는 안 된다.’

판단을 내릴 거라면 빠르게 내려야 했다. 페온의 고개가 획 하고 돌아갔다.

“내가 한눈팔지 말라고 했지!”

카무잔이 사납게 소리치며 달라붙었다. 하지만 페온의 움직임이 먼저였다.

쐐액!

페온이 질주했다.

카무잔이 곧장 페온의 뒤를 쫓았지만, 페온의 움직임이 한발 빨랐다.

아모드라가 눈매를 좁혔다.

그는 아리오나를 향한 공격을 멈추고 피를 이용해 방벽을 세웠다.

촤르륵!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피의 쇠창살이 페온을 가두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페온이 야성을 터트렸다.

아모드라가 만든 우리가 순식간에 찢겼다. 예상 못 한 힘을 본 아모드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페온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아리오나가 페온을 보고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콰직.

하지만 그 미소가 그녀의 끝이었다.

아리오나의 목이 그대로 뽑혀 나갔다. 페온이 입을 크게 벌려 그대로 아리오나의 머리를 집어삼켰다.

으적으적.

톱날 같은 이빨이 아리오나를 잘근잘근 씹었다.

페온을 쫓던 카무잔이 멈춰선 채 그 모습을 바라봤다.

아모드라도 충격적인 광경 앞에서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뭐 하는 짓이지?”

페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흉흉한 야성을 빛내며 아리오나를 포식할 뿐이었다.

촤르륵.

페온의 꼬리가 길게 늘어나며 아리오나의 몸을 끌어왔다.

머리를 집어삼킨 것으로는 부족했는지 그녀의 몸까지 통째로 꿀꺽했다.

카무잔이 인상을 쓰며 그것을 바라봤다. 저 기행은 그가 보기에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페온의 안광이 짙어졌다.

“크흐흐…….”

끈적하게 토해지는 숨. 페온의 몸이 비틀거렸다.

몸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 몸은 타이탄의 모조품이다.

초월자를 따라 만든 몸이기에 아직 한계에 도달하지는 않았다.

초조했다. 시간이 없었다.

여기에 발목을 붙잡히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건 집착이다.

평생을 추구해 오던 게 눈앞에 있었다. 그것만을 위해서 페온은 모든 것을 포기했다.

‘나의 것이다.’

페온의 눈이 광기를 머금었다. 페온의 기세가 더욱 짙어졌다.

“……늦었어.”

일행을 보호하던 샤르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연민이 담겨 있었다.

“거기서 뭐 해?”

난데없이 들려온 음성에 페온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어둠이 걷힌다. 페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곳에서는 에단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어둠을 몰아내며 사나운 미소를 입에 걸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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