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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389화 (389/398)

◈ [389화] 강한수 (2)

카무잔과의 대련이 떠올랐다.

마치 벽을 상대하는 기분.

그것도 평범한 벽이 아닌, 높고도 견고한 성벽과 싸우는 기분이 들고는 했다.

에단은 자신의 반사 신경과 기교, 센스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었다.

순간적인 판단력과 변수 창출 능력은 전황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무기가 되었으니.

하지만 카무잔에게는 그 어떤 것도 통하지 않았다.

아무리 기술과 기교, 속임수 따위를 동원한다고 한들 근본적인 기량의 차이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갓난아이가 아무리 기술이 뛰어난다고 한들 장성한 남자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카무잔과 에단의 간극은 아이와 어른보다도 컸다.

하지만 에단은 가파르게 성장했다.

차이는 극명했지만 넘지 못할 거란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강한수는 달랐다.

뭐라고 표현하는 게 좋을까.

그는 이미 생명체라는 범주를 뛰어넘었다. 훨씬 더 고차원적인 존재.

허초와 속임수를 난발하고, 화려한 검극을 쏟아 내 봤자 강한수에게 통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가 곧 이 세계의 주인이자, 법칙을 관장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저 공허한 눈으로 어디까지 볼 수 있는지는 감히 예상할 수 없었다. 에단이 유추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승산이 없다는 것 정도?’

강한수는 적당히 에단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도저히 이길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마 옅은 생채기조차 내지 못할 것이다.

강한수는 능히 미래를 꿰뚫어 보고, 과거를 뒤바꿀 힘을 지니고 있었으니.

그런 초월적인 존재를 상대로 승산을 점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그래도 뭐…… 어떻게 방법이 없나?’

저 무덤덤한 표정에 금이 가는 모습을 반드시 보고 싶었다.

에단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고는 칼끝을 겨눴다.

‘이제 슬슬 나올 때도 됐잖아?’

에단이 검에 마력을 주입했다.

힘을 제약하던 봉인은 이미 풀린 지 오래였다.

회색의 마나가 불길처럼 치솟는다. 강한수는 무미건조한 눈으로 에단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

에단이 뭘 하든지 상관없다는 저 건방진 태도가 아주 엿 같았다.

에단의 뺨이 씰룩였다.

“후우.”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원래 약자는 할 말이 없는 법이다.

‘아무리 짱구를 굴려 봐도 답이 없단 말이야.’

소년 만화의 주인공이라면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상황을 역전시킬 수도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에단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였다.

‘결국은 뭐…… 계속 부딪쳐 봐야지.’

에단이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끝까지 부딪치는 것.

그게 전부였다.

‘뒈지기밖에 더 하겠어?’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마나의 기류가 더욱 강해졌다. 불길이 거세게 치솟는다.

‘그만 자고 이제 좀 일어나라고!’

에단이 키아나에게 소리쳤다.

희박한 승산을 뒤엎으려면 키아나의 도움이 절실했다.

우우웅.

에단의 외침을 들은 것인지 아슬란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지금의 아슬란은 단순히 튼튼한 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아슬란의 본질은 곧 신성력.

그 신성력은 지금까지 봉인되어 있었다. 키아나와 함께.

키아나가 눈을 떠야지만 아슬란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이곳은 지하의 심층부. 죽은 나무가 뿌리내린 곳이었다.

‘내 가정이 맞다면.’

아슬란이 마지막 열쇠였다.

공명이 짙어진다.

에단의 준비 시간이 길어짐에도 강한수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 그게 당연했다.

에단이 아무리 발악해 봤자 결코 좁힐 수 없는 격차가 존재했으니.

키아나가 정신을 차리고, 아슬란이 신성력을 뿜어내도 그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에단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에단은 애초에 저 괴물을 이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에단이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한 방만 먹인다.’

강한수의 저 태도가 심히 아니꼬웠다. 에단이 바라는 것은 저 낯짝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는 것이다.

콰가가가가―!

에단이 토해 내는 마나가 더욱 거세졌다. 거리낄 것은 없었다. 마나의 양은 충분하다 못해 넘쳐났고, 후일은 애초부터 걱정한 적이 없었다.

‘나중에 내가 알아서 해.’

지금 에단이 생각하는 것은 한 가지였다.

‘그러니까, 빨리 눈 떠!’

에단이 재차 되뇌었다.

공명이 강해진다. 아슬란이 사시나무처럼 거칠게 떨리기 시작했다.

쿵.

아슬란이 크게 진동했다.

그리고 봇물이 터지듯 신성력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아아아―!

찬란하고 고결한 빛. 에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이 새끼가, 귀찮게 하고 지랄이야!

키아나의 역정이 반갑게 느껴졌다.

“네가 너무 늦어서 그렇잖아.”

― 이 빌어 처먹을 새끼가…….

키아나가 기막힌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인지했다.

― ……저건 뭐야?

“있어.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녀석이.”

에단의 신랄한 비난은 강한수를 앞에 두고도 빛을 발했다.

― ……그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키아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만큼 강한수의 존재감은 일반적인 범주를 넘어서 있었다.

“그래서 뭐, 다시 자려고?”

― 이 새끼가 말을 해도 꼭…… 하아.

키아나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간단해. 우리 목표는 하나야. 쟤 자존심을 부서트리는 거.”

― 많이 양호해졌네?

“타협했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기는 건 좀 무리일 것 같더라고.”

에단이 큭큭 거리며 웃었다. 현실적으로 여기서 강한수를 쓰러트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강한수는 이미 신 혹은 초월자로 보였으니까.

단지 저 목석같은 얼굴에 금이 그어지면 그걸로 충분하다.

“한번 해보자고.”

― 그래.

갑작스러운 상황의 연속이었지만, 키아나는 에단의 요구에 순순히 응했다.

― 나도 저 새끼가 좀 마음에 안 들었거든.

“이번에는 좀 마음이 통했네.”

― 별로 기분 좋은 소리는 아닌데.

“나도 기분 좋으라고 한 소리는…… 아니야!”

에단이 뛰쳐나갔다. 아슬란이 선명한 광채를 뿜어냈다.

에단도 마나를 아끼지 않았다.

애초부터 아낄 생각도 없었다. 지지부진 시간을 끌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에단은 가진 전력을 모두 끌어냈다. 막대한 양의 마나와 신성력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그러나 강한수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무심한 시선.

강한수가 칼을 들었다. 아슬란과 똑같이 생긴 검이었다.

용사의 성검이라 불린 물건이었다.

하지만 강한수의 성검은 신성력을 뿜어내지 않았다.

신성력보다도 훨씬 원초적인 힘이 강한수의 검에 깃들었다.

스윽.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검격.

콰아앙―!

에단이 튕겨져 나갔다. 몸이 으스러지는 것 같은 통증에 휩싸였지만, 신성력의 힘이 에단의 몸을 단기간의 수복시켰다.

에단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내장이 진탕된 것 같았다. 현기증이 일며 머리가 핑 돌았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에단이 혓바닥을 아그작 깨물었다. 짜릿한 통증과 비릿한 맛이 입안에 맴돌았다. 현기증이 조금 가셨다.

“후우.”

에단의 입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흐릿하던 시야가 또렷해졌다. 에단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눈앞에는 여전히 강한수가 에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무심한 얼굴을 한 채 말이다.

“……진짜 존나 재수 없네.”

카악, 퉤!

에단이 입안에 고인 피를 바닥에 내뱉었다. 몸은 회복되었지만 정신적인 충격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 ……이거 희망이 없는데?

“나도 아니까 좀 닥쳐.”

정말 희망이 없었다.

뭐 키아나라도 눈을 뜨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턱도 없었다.

‘옘병 진짜.’

에단이 욕설을 뇌까렸다.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에단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린 채 강한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체 뭘 위해서 그렇게 발악하는 거지?”

“또 뭔 개소리야?”

“말 그대로다. 대체 무얼 위해서 그렇게까지 발악하는 거냐고. 이 힘을 원하는 건가?”

방금 전 본 빛 무리가 강한수의 손아귀 위에 피어났다. 저것은 초월자의 증거.

에단이 사용하는 반쪽짜리와는 차원이 다른 힘이었다.

“새끼가…… 힘 좀 얻었다고 유세 떠는 거 봐라.”

에단이 입가를 닦아 내며 웃었다.

“……이걸 원하는 게 아니었나?”

“원하냐고? 전혀. 내가 그딴 게 왜 필요해? 당장 너만 보더라도 조금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데. 그딴 거 필요 없으니까 너나 가져.”

“…….”

“뭔가 착각하는 게 있나 본데…… 나는 지는 걸 존나게 싫어하지만, 그것보다 더 싫은 게 바로 지루한 거야. 얼마나 권태가 심했으면 그딴 불쏘시개를 읽으며 시시덕거렸겠냐?”

후우.

에단이 숨을 토해 냈다. 깔끔하게 승복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야, 나도 하나만 묻자.”

“……뭐가 궁금하지?”

“너는 대체 뭘 하고 싶은 건데?”

“…….”

강한수의 공허한 동공이 처음으로 가늘게 떨렸다.

“너 스스로도 알고 있잖아. 힘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냥 다 포기하고 싶은 거 아니야?”

“…….”

마치 정곡을 찔린 것처럼 강한수는 침묵했다.

“내가 네 똥을 치워 주고 있잖아. 씨발 새끼가 빙의를 시켜 줄 거면 좀 정상적인 놈에다가 시켜 주지, 되도 않는 망나니 돼지 새끼한테 빙의를 시켜서는…… 아…… 갑자기 열받네?”

에단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너, 내가 살 빼느라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알아? 생각하기만 해도 치가 떨려. 아, 생각하니까 또 열받네.”

후우.

숨을 토해 낸 에단이 강한수를 노려봤다.

“솔직하게 묻자. 이유가 뭐야? 왜 하필 그딴 돼지 새끼 몸에 박아 넣는 건데? 뭐, 한 번 좆돼 보라는 심보였냐?”

“…….”

강한수는 정곡이 찔린 것인지 입을 꾹 다물었다.

‘이 새끼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곳에서의 강자는 강한수였고, 약자는 에단이었다.

분통이 터져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소리다.

“난 딱히 너를 방해하고 싶은 생각이 없거든? 무슨 사정이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그냥…… 내 뒤통수 후려친 그 새끼. 그 새끼 얼굴만 한 번 후려치면 되니까 좀 비켜 주면 안 되냐?”

“……이유가 뭐지?”

“……뭐?”

“이유가 뭐냐고. 어차피 너에게 있어 그들은 진짜 인연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들 아닌가? 너에게는 고작해 봐야 소설 속 인물일 텐데……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지?”

“하…… 이래서 사회성 결여된 새끼는…….”

짜증 가득한 표정을 지은 에단이 강한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소설 속이고 나발이고, 그딴 게 뭐가 중요해? 그냥 내 꼴리는 대로 하는 거지. 그렇게 하나하나 재고 있으면…… 친구나 만날 수 있겠냐?”

“…….”

강한수의 동공이 길을 잃은 것처럼 흔들렸다.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비켜. 하던 일 끝나고 나서 마저 어울려 줄 테니까.”

“너는……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건가?”

“그건 또 뭐 하러 물어? 실패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럼 그냥 가만히 주저앉아 있으라고?”

에단이 사납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알아들었으면 빨리 좀 비키지? 바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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