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8화] 강한수 (1)
“뭐라고?”
에단이 얼굴을 구겼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이 녀석은 망가졌다.
현대에서도 적지 않게 겪었다. 이렇게 제정신이 아닌 녀석이랑은 엮이지 않는 게 좋았다.
“하아…… 이래서 친구 없는 놈이랑은 말을 섞으면 안 되는 건데.”
“…….”
강한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에단이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삐딱한 자세로 강한수를 바라봤다.
“야.”
“……왜?”
“너는 네 스스로 친구가 없는 이유를 알고 있냐?”
“…….”
강한수가 입을 꾹 다물자 에단이 멋대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 모르겠지. 사실 나도 누구를 훈계할 입장은 아니거든? 나도 예전에는 너랑 비슷했으니까.”
격투가 류태신은 너무 독보적이었고, 압도적이었지만, 그렇기에 고독했다.
그에게 접근하는 자들은 모두 목적이 있어서였다. 그리고 류태신은 그런 자들은 모두 경멸했다.
그렇다고 그게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필요에 의해서 서로를 이용하는 건 당연한 이치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서로의 목적이 같아서 모인 자들도 있었지만, 이 자리까지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단을 위해서 목숨을 건 자들이었다.
에단은 자신을 위해서 목숨을 건 자들을 모른 채 하고 싶지 않았다.
“할 거면 확실하게 해. 되도 않는 알량한 협박은 하지 말고. 대체 이유가 뭔데? 왜 뿔이 났어?”
“…….”
강한수가 에단을 바라봤다.
에단은 강했다.
단순히 무력만 강한 게 아니었다.
에단의 마음은 단단했다. 그 어떤 풍파가 몰아쳐도 에단은 흔들리거나 깨지지 않았다.
물끄러미 에단을 바라보던 강한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떻게 그렇게 강하지?”
“뭐?”
“어떻게 그렇게 강하냐고.”
진지한 물음. 예상치 못한 질문에 에단이 뺨을 긁적였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민망하지만, 지금껏 살면서 너무 많이 듣던 질문이거든?”
선수 시절부터 질리도록 들어온 질문이다.
에단은 그만큼 남들이 이해 못할 정도의 압도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때마다 내 대답은 같았어. 그냥…… 원래 나는 존나 쌨어. 멘탈이 나간 적도 딱히 없었고.”
겸손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건방진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에단의 진심이었다. 스스로를 포장할 생각도, 남을 무시하거나 깎아내릴 생각도 없었다.
에단은 언제나 결과로 자신을 입증했다. 그 오만함과 건방짐은 어느새 에단의 캐릭터가 되었다.
“…….”
“존나 불합리하지? 그런데 어쩌겠어. 불합리한 게 바로 인생인데. 따지려면 나 말고 다른 놈들한테 따져.”
에단은 뻔뻔한 태도로 말했다.
공허한 눈으로 에단을 응시하던 강한수가 물었다.
“……누구한테 따지면 되지?”
“그걸 또 왜 나한테 물어? 나보다는 네가 더 잘 알 텐데.”
“…….”
강한수가 침묵했다. 에단은 강한수를 보자마자 직감했다.
페온이 쫓던 이상향이 바로 여기 있었다.
에단은 처음 아모드라나 카무잔과 같은 대군주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마치 높이 치솟은 산을 보는 것 같은 존재감에 압도당했다.
억겁의 시간동안 쌓아 올린 경지는, 감히 그 높이를 가늠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대군주는 가히 초월적이다.
어째서 지하가 두려움을 사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강한수를 본 순간 에단의 세계는 다시 한번 깨지고 말았다.
이건…… 뭐라고 할까…….
‘말로 설명이 안 되는군.’
말로 형용하기가 힘들었다. 광활한 우주를 보는 것 같은, 그런 원초적인 공포와 이질감이 들었다.
에단은 스스로를 관조했다. 자신의 몸 안에 얼마나 방대한 힘이 있는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이건 한 존재의 힘이 아닌, 그보다 훨씬 광범위했다.
무어라 규정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마치 한 단계 높은 차원을 보는 것 같은 느낌.
그렇기에 이렇게 눈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것 자체가 매우 이질적이었다.
“네가 날 여기로 불렀구나?”
“…….”
강한수가 침묵했다. 한숨을 푹 내쉰 에단이 짝다리를 짚으며 삐딱하게 섰다.
“너,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이미 모든 걸 가졌잖아? 왜 엄한 사람을 끌어들이고 지랄이야?”
에단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도저히 좋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모든 걸 가졌다고?”
강한수가 실소를 터트렸다. 바싹 메마른 미소였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
“모든 걸 가진 건 너도 마찬가지였잖아? 인류 최강의 존재, 무적의 격투가, 황제,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붙고, 감히 너한테 범접할 수 있는 존재도 없었지. 영원토록 군림할 것 같은 챔피언, 부와 명예 모든 걸 짊어진 남자. 대체 뭐가 부족하지?”
“갑자기 얼굴에 금칠을 하네? 너 나 좋아하냐?”
“아니, 난 너를 싫어해. 이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
강한수는 공허한 눈으로 에단을 응시했다.
“류태신, 아니, 에단 블란테. 묻지. 너는 행복했나?”
“…….”
그 질문에 에단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격투가로서의 류태신은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뤘다.
평생토록 펑펑 써도 소진할 수 없는 부를 지녔고, 무적의 챔피언이라는 명예도 얻었다.
치고 올라오는 재능 있는 경쟁자도 류태신을 상대로는 1라운드조차 버티지 못했다.
무적의 황제.
하지만 그런 그에게 행복했냐고 묻는다면.
“…….”
에단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에단이 침묵했다. 그러자 강한수가 조소 지었다.
“그래, 그럴 거 같았어. 팬이냐고? 아니, 반대야. 나는 너를 증오했어.”
“왜 엄한 사람을 증오하냐?”
에단의 물음에 강한수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증오했냐고? 네가 말한 대로야. 네가 너무 잘났으니까. 너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걸 가졌으니까. 외모, 언변, 재능…… 부족한 게 하나도 없었지. 정말 만화 주인공보다도 더 주인공 같은 게 너 아닌가?”
“진짜 주인공이 그렇게 말하니까 기분이 묘한데.”
“그런데……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 나는 모든 걸 가졌지만…… 모든 걸 잃었기도 해. 이 힘?”
강한수가 손을 들었다. 여러 색이 뒤섞인 힘이 손 위에 얹어졌다.
에단은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봤다.
강한수의 손에 얹어진 저것은 작은 빛의 무리 같았지만, 내포하고 있는 힘은 한 국가를 능히 소멸시킬 정도의 힘이었다.
“이게 뭐 어쨌다는 거지?”
강한수가 물었다. 공허한 그의 눈은 대답을 원하고 있었다.
“네 말은 틀렸어. 이깟 힘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 나는 책임을 져야 하니까.”
에단에게는 하나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었다. 에단이 입을 다문 채로 있자 강한수가 말을 이어 나갔다.
“‘인과’란 그런 것이야. 이 빌어먹을 힘도 나에게는 적용할 수 없지. 적임자가 필요하거든.”
강한수가 에단을 응시했다.
“어때, 가지고 싶나? 원한다면 가져도 돼.”
“내가 미쳤냐?”
에단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에단이었지만, 저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다. 대충 강한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그래 좋아. 복잡한 소리 집어치우고, 우리 깔끔하게 가자. 원래 애들끼리는 싸우고 친해지는 거 아니겠어?”
“…….”
“아까 만들었던 옥타곤 다시 한번 만들어 봐. 우리 시원하게 한판 붙어 보자고.”
에단이 사납게 웃으며 하던 말을 이어 나갔다.
“지는 쪽이 소원을 들어주는 걸로.”
* * *
강한수는 의외로 에단의 제안을 승낙했다. 무모한 싸움이었다.
강한수가 본심을 발휘한다면 가능성 따위는 없었다.
이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이상으로 승산이 희박했다.
인간과 신.
강한수는 사실상 신의 자리에 올라서 있었고, 에단은 한낱 인간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쫄 것까지야 있나.’
에단은 천천히 몸을 풀었다.
강한수가 조금이라도 본신의 힘을 드러낸다면 에단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강한수가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녀석이 갈구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옥타곤이 만들어졌다.
이번에는 관중들의 함성도 들리지 않았다.
저벅.
에단이 먼저 옥타곤 위에 올라섰고, 맞은편에서 강한수가 올라왔다.
강한수가 천천히 옥타곤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단이 말했다.
“신기하냐?”
“……조금, 평생 여기서 싸워 왔나?”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여기서만 싸워온 것도 아니지만.”
에단이 피식 웃었다. 자랑스럽게 말할 일들은 아니었다.
“자, 어떻게 할까. 맨손으로? 아니면 무기를 들고?”
“……상관없는데.”
“네가 정해.”
가만히 에단을 바라보던 강한수가 행동했다.
스르륵.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검 한 자루가 생성되었다. 만들어진 검은 아슬란과 완전히 동일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그렇단 말이지.”
피식 웃은 에단이 아슬란을 뽑아냈다. 키아나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뭐, 이것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에단의 칼끝이 강한수에게로 향했다.
강한수는 물끄러미 에단을 바라보다가 에단과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뭐, 양심껏 싸우자고. 알지?”
“…….”
피식.
강한수의 입에 걸린 작은 미소.
처음 보는 제대로 된 미소였다. 에단이 씨익 웃었다.
“선공은 양보해 주라고.”
파밧!
에단이 먼저 뛰쳐나갔다. 오러는 사용하지 않았다.
어차피 강한수를 상대로는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쾅!
똑같이 생긴 검이 맞부딪쳤다. 불똥이 튀겼다. 힘겨루기가 팽팽하다. 이런 상태가 성립할 수 있는 이유는 강한수가 사정을 봐 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에단은 거리낌 없이 검을 휘둘렀다. 가진 역량을 모두 끌어냈다.
아직은 검보다 맨주먹이 편했지만, 그렇다고 검을 등한시하지는 않았다.
에단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행위 자체를 즐겼다.
격투와 검은 달랐다. 그리고 에단은 검에 있어서도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에단의 칼끝이 유려한 궤적을 그렸다. 호쾌하고, 아름다웠으며, 사나웠다.
에단은 자유자재로 검술을 구사했다. 이미 에단의 검술 실력은 궤도에 올라서 있었다.
챙! 챙챙챙챙챙!
하지만 화려하고 사나운 검격들도 강한수를 뚫지는 못했다. 강한수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에단의 검을 모조리 막아 냈다.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강한수는 반격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에단의 검을 받아 내고만 있었다.
“아오!”
에단이 성질을 내며 공격 방식을 바꿨다. 에단의 발이 강한수의 무릎을 노렸다.
고정되어 있던 강한수의 발이 그제야 움직였다. 강한수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더니 처음으로 검을 휘둘렀다.
평범한 직선의 궤적.
에단은 강한수의 공격을 막아 내기 위해 검을 들었다. 강한수의 검과 에단의 검이 부딪쳤다.
콰앙!
우레 같은 굉음과 함께 에단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공중에 떠오른 에단이 기막힌 표정을 지었다. 손목과 어깨가 시큰거렸다.
휘릭!
공중에서 중심을 잡은 에단이 지면에 사뿐히 착지했다.
“스읍.”
에단이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강한수를 바라봤다.
쟤를 어떡하지?
꽤나 난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