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385화 (385/398)

◈ [385화] 죽은 나무 (3)

아모드라와 카무잔은 아리오나가 없어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빠르게 판단했다.

“잠깐.”

카무잔이 한발 먼저 움직이려고 하던 아모드라를 불러 세웠다. 아모드라가 인상을 쓰며 되물었다.

“왜 부르지? 지금 한가하게 이러고 있을 시간이…….”

“뛰어서 어느 세월에 가게?”

“그게 뭔…….”

뜬구름 잡는 소리에 아모드라가 짜증을 내려고 했다. 하지만 아모드라는 얼마 안 가 카무잔이 한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이런 미친…….”

카무잔의 눈에서 짙은 안광이 흘러나왔다. 송곳니가 날카로워지고 기세가 매우 흉흉해졌다.

우우우웅―!

카무잔의 주먹에 기운이 밀집되기 시작했다. 여태껏 겪어 본 적 없는 매우 거대한 기운이었다.

“자, 잠깐……!”

아모드라가 말리려 했지만 카무잔의 행동이 더욱 빨랐다. 카무잔의 주먹이 지면을 향했다.

죽은 나무의 성은 수많은 고위 마법이 보호하는 장소였다.

대군주가 모이는 장소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고위 마법 따위는 종이 쪼가리나 다름없었다.

카무잔이 입꼬리를 들자 송곳니가 보였다. 누린내가 진동하는 사나운 미소였다.

“자, 얼마나 단단한지 한번 볼까?”

콰아아아아앙―!

우레와도 같은 굉음과 함께 지면이 갈라졌다.

죽은 나무로 통하는 문은 회담지로부터 한참을 내려가야 도착할 수 있었다.

성은 매우 크고 거대했기에 아무리 빠르게 이동해도 적잖은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카무잔은 단 일격으로 지름길을 만들어 냈다.

“……정신 나간 새끼.”

이제는 경악할 기운도 잃은 아모드라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피로 몸을 보호했다.

쐐애애액!

카무잔과 아모드라가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문이 둘을 반겼다.

“오, 얘는 좀 튼튼해 보이는데?”

“……엄한 곳에 승부욕을 느끼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카무잔의 저런 행동은 도통 적응이 되지 않았다. 짙은 피로감을 느낀 아모드라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아모드라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디 한번 하고 싶은 만큼 날뛰어 봐.”

“말 안 해도…… 그럴 생각이었어!”

카무잔이 주먹을 내질렀다. 죽은 나무를 지키던 거대한 문이 그대로 산산이 부서졌다.

* * *

“하아, 하아…….”

한쪽 팔을 부여잡은 크리스토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크리스토와 일행은 지금 완전히 궁지에 몰린 상태였다.

상대가 되지 않는다.

페온은 더 이상 상대를 얕잡아 보지 않았다. 노련한 사냥꾼이 되어 서서히 조여 오기 시작했다.

애초에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격의 차이는 확연했다.

처음 페온의 목을 자른 것도 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방심과 우연의 결과가 그것이었다.

‘빌어먹을……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크리스토가 속으로 욕설을 지껄였다. 정말이지 희망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크리스토가 힐긋 주위를 둘러봤다.

그나마 그의 상태가 제일 나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법사들의 보호.

로이마르티와 오르번이 죽으면 희망은 완전히 사라진다. 크리스토와 빈센트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다.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인간이 물속에서 숨 쉴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나마 그들의 마법 덕에 이렇게 숨을 쉬고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지키는 것도 이제는 한계였다.

크리스토가 자신의 곁을 바라봤다. 크게 들썩이는 넓은 어깨.

빈센트의 상태는 그야말로 만신창이었다. 대륙 최강자라는 칭호에 걸맞던 거산 같은 사내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상처 입은 사자였다. 그것도 매우 큰 상처를 입은.

뚝뚝.

빈센트의 검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의 칼끝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더 이상 검을 드는 것도 힘들었다. 사실 검을 쥐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적과 같았다.

빈센트는 왼손으로 검을 쥐고 있었다. 오른팔이 있던 장소는 공허했다.

빈센트는 한쪽 팔로 두 명의 대군주와 맞서고 있었다. 그의 눈은 아직 죽지 않았지만 크리스토는 예감했다.

‘여기서 죽겠군.’

이미 가진 역량 이상의 힘을 사용했다. 크리스토도 경지에 오른 검사이기에 알 수 있었다.

빈센트는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지고 말았다.

“후우.”

크리스토가 고개를 들었다.

정말이지 숨이 찼지만 뭐…… 어떻게 적응이 되었다.

손이 축축하다. 아마 땀이 아닌 피일 것이다.

스윽.

크리스토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거울이 없어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얼굴은 피범벅일 게 분명했다.

씨익.

어째서인지 웃음이 나왔다.

실패라면 실패였다.

여기서 또 다른 기회를 부여받을지, 아니면 이걸로 끝일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아니지. 신이 있다면 알려나?’

자신에게 끝나지 않는 삶을 준 존재라면 알지도 몰랐다.

“큭큭큭.”

크리스토의 어깨가 들썩였다.

이전에는 숨이 차서 어깨가 들썩였다면, 지금은 웃음소리 때문에 어깨가 들썩였다.

크리스토의 목에서 피 가래가 들끓었다.

“카악, 퉤!”

상당한 양의 피를 내뱉은 크리스토가 페온과 아리오나를 바라봤다. 희번덕이는 눈은 광기로 번들거렸다.

씨익.

크리스토가 입꼬리를 올렸다. 비린내가 진동하는 미소였다.

“슬슬 이 정도면 오래 버텼잖아? 뭐라도 보여 주라고.”

크리스토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 속이었지만, 어째선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홀가분했다. 뭐라고 할까…… 이 상황이 조금 재밌었다.

페온의 눈매가 좁혀졌다. 저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슬슬 끝내야겠군.”

더 이상 조심할 필요성도 없어졌다.

이미 승부는 결착이 맺어졌다.

승자는 페온이었다. 상대는 끝까지 발악했지만, 이미 벌어진 격차는 뒤집을 수 없었다.

“뭘 좆도 아닌 허세를 부리고 있어? 너도 조급해서 그런 거잖아.”

“…….”

크리스토의 도발에 페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굳이 받아 줄 필요가 없는 저질스러운 도발이었다. 이미 싸움은 끝났다. 저건 패자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쯧.”

페온이 혀를 차며 끝내려고 하자, 크리스토의 웃음이 진해졌다.

“왜 정곡을 찔리니까 짜증 나? 본질은 좆밥인 새끼가. 허세 그만 부리고 빨리 끝내는 게 좋을걸? 그렇게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닐 텐데.”

“……그게 무슨 소리지?”

“와…… 큭큭. 너 진짜 병신이구나? 아직도 사태 파악을 못 했어? 네가 아까 물어봤잖아. ‘에단’도 여기 와 있냐고.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보고도 아직 몰라?”

페온의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그래, 에단이 있을 것은 짐작했다. 하지만 시야에 보이지 않았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전투가 벌어진 시간은 적지 않았다.

자신이 아는 에단이라면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관망하고 있을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렇다는 것은…….’

페온의 눈이 커졌다.

크리스토는 재밌는 구경을 했다는 듯 크게 비웃었다.

“……죽어라.”

그렇다면 시간이 없었다.

페온이 손을 뻗자, 아리오나도 한 발짝 앞으로 나갔다. 검은 촉수와 페온의 마나가 적의 생명을 앗아 가려는 그때.

스스슥―!

무언가가 빠르게 다가와 둘의 손을 움켜쥐었다. 페온과 아리오나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너, 뭐 해?”

앳된 목소리, 그리고 천진한 표정.

하지만 그것의 존재를 본 페온과 아리오나는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어린아이의 동공은 무저갱처럼 깊고 어두웠다. 그리고 동시에 소름 끼쳤다.

“…….”

아리오나가 촉수의 다발을 일으켰다.

다행히 재료는 넘치다 못해 충분했다. 지천에 깔린 죽은 마나를 양분 삼아 촉수가 번식하고 분열했다.

“뭐 해?”

악의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하지만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섬뜩했다.

촤르륵.

검은 그림자가 수백의 달하는 아리오나의 촉수를 모두 절단시켰다.

아리오나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이게 무슨 일이지?

짧은 순간에 벌어진 사건. 그녀는 지금의 상황이 실감 나지 않았다.

설령 대군주라고 하더라도 자신을 이렇게 무력화시키지 못한다. 마치 어린아이의 손목을 꺾듯이 촉수를 찢어발기다니.

“늦어서 죄송합니다.”

헨리가 방긋 웃으며 일행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일행의 상태가 하나같이 심각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표정을 굳혔다.

“…….”

“너…… 도대체 뭘 데리고 온 거야?”

크리스토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두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대륙 최강의 전력이 그렇게 고전하던 상대를 저렇게 가볍게 제압하다니.

“샤르예요.”

“……샤르? 내가 묻는 건 그런 게…….”

크리스토가 황당한 표정으로 반박하려고 하던 그때, 페온이 인상을 찌푸렸다.

“가디언인가?”

“……가디언? 저 꼬마애가 가디언이라고요?”

아리오나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그녀가 생각하던 가디언의 모습과 샤르는 너무나도 거리감이 느껴졌다.

쐐액!

페온의 꼬리가 샤르의 그림자를 후려쳤다. 순간적으로 그림자가 끊어졌다.

샤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또다시 그림자를 쏘아 내자 페온이 눈을 번뜩였다.

“나는 법칙을 수행하러 왔다.”

“…….”

샤르의 그림자가 페온 앞에서 멈춰 섰다.

“고대로부터 이어진 법칙을 어길 셈인가? 죽은 나무의 피조물 따위가.”

페온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샤르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페온을 가만히 응시했다.

“■■■■.”

페온이 정체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이 자리에서 그 단어를 알아들은 자는 크리스토와 샤르밖에 없었다.

“……타이탄의 맹약?”

크리스토가 중얼거렸다.

해석은 할 수 있었지만, 의미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한참 동안 페온을 응시하던 샤르가 헨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샤르는 매우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 나는 도와줄 수 없어.”

“……어?”

헨리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건 정말 예상치도 못한 상황이었다. 그녀가 당당하게 여기까지 찾아올 수 있던 이유는 모두 샤르 하나 때문이었다.

헨리와 두 대군주 사이의 실력 차이는 명확하다 못해 압도적이다.

굳이 싸워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 둘에게 있어서 헨리는 벌레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샤르는 달랐다.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힘이 샤르에게 느껴졌다. 살면서 처음 겪는, 초월적인 존재가 바로 샤르였다.

그런데 샤르가 도와줄 수 없다고 한다.

이건 정말…….

‘큰일 났는데?’

헨리의 등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간다. 페온의 파충류 같은 눈이 헨리에게 고정된다.

따갑다 못해 고통스러운 시선이 느껴졌다. 당장에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너부터 죽여 주마.”

페온이 거칠게 으르렁거렸다.

헨리가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아서인지 여기가 어두워서인지, 정말 눈앞이 컴컴했다.

“누가 누굴 죽여?”

그때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존재감이 난입했다. 헨리가 감았던 눈을 뜨자, 익숙한 얼굴이 다가왔다.

다가오는 이는 두 명의 미남자.

한 명은 검고 긴 흑발을 한 남자였고, 다른 하나는 비슷한 기장의 은발을 한 남자였다.

“쫓아오느라고 고생 좀 했다.”

은발의 남자, 카무잔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사납게 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