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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382화 (382/398)

◈ [382화] 회담 (7)

끼기기긱―!

불똥이 거칠게 튀기며 대치가 이어졌다. 빈센트의 검은 푸른빛의 오러를 두르고 있었다.

“…….”

페온의 눈매가 좁혀졌다. 그는 빈센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여기 있다는 것은…… 그 녀석도 왔다는 건가?”

“그게 왜 궁금한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닌 것 같군.”

우웅.

빈센트의 검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맴돌던 푸른빛이 짙어지는 그때, 페온이 거리를 벌렸다.

파밧!

대처는 빨랐지만 그 대처가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스스스.

지천에 깔린 것이 죽은 마나였다.

재료는 충분하다. 오히려 너무 농밀한 죽은 마나라 다루는 게 버거웠다.

오르번이 입술을 달싹였다. 다양한 흑마법이 오르번의 손에서 전개되었다.

불길한 사슬이 페온을 향해 다가간다.

두 군주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로이마르티는 무투보다는 마법에 특화되어 있었다.

그는 군주답게 손가락질 하나로 마법을 발현시켰다.

칠흑의 말뚝이 다수 형성되었다.

페온은 사슬을 떨쳐 내기 위해서 재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사슬은 마치 자아라도 있는 것처럼 끈질기게 페온을 쫓았다.

“아주 벌레처럼 도망 다니는군.”

뚜둑.

록사자가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갔다.

그는 무투에 자신이 있는 군주였다.

군주인만큼 마법의 조예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싸울 때만큼은 맨몸으로 부딪치는 것을 선호한다.

오직 맨몸 하나로 높은 위치에까지 올라간 군주는 카무잔이 유일했다.

팟!

록사자가 페온을 향해 쏘아졌다. 맹렬한 기세였다.

페온의 안광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대충 적응이 되는군.”

그들이 한 가지 방심한 것이 있다면, 바로 페온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페온의 격은 대군주의 것이었다.

비록 카무잔에게는 속절없이 밀리기는 했으나, 카무잔의 진심을 끌어냈던 남자였다.

많은 대가를 치르면서 올라간 자리였지만, 그런 것들은 사소한 것에 불과했다.

과정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오롯이 결과.

그리고 힘뿐이었다.

쿵.

페온이 죽은 마나를 방출시켰다. 지금까지는 적응기였다.

새로운 몸을 적응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 몸은 미완성품이기는 하나, 페온이 좇던 것의 모조품이었으니 더욱 더 그랬다.

페온의 눈빛이 다가오는 록사자에게 고정되었다.

빠르게 쇄도하던 록사자의 주먹에는 짙은 죽은 마나가 둘러져 있었다.

흠칫.

시리도록 싸늘한 눈초리였다. 심령을 압도하는 눈빛.

록사자는 불길함을 느꼈지만, 여기서 행동을 무를 수는 없었다. 록사자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록사자가 튕겨 나갔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바닥에 처박힌 록사자.

페온은 유유히 바닥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검은 사슬과 말뚝이 페온을 집어삼키려고 들었지만, 페온의 몸에 닿기도 전에 허공에 흩어졌다.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페온은 우두커니 서서 천천히 목을 돌렸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보고, 손을 쥐었다 폈다도 하며, 꼬리도 몇 번 움직여 봤다.

“꼬리는…… 좀 별로군. 그리고 피부도…… 마음에 들지는 않고.”

비늘로 뒤덮인 피부와 긴 꼬리.

인간과는 동떨어진 외향이었다. 페온은 굳이 인간의 외향을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모습은 썩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얼굴을 매만지던 페온이 인상을 찌푸렸다.

“크르륵.”

인간의 것 같지 않은 기괴한 목소리. 성대가 바뀌었으니 당연히 목소리도 이전 같지가 않았다.

파충류 같은 노란 동공이 주위를 훑었다.

페온은 이미 존재감 하나만으로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압도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대군주의 존재감은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

빈센트는 물끄러미 페온을 바라봤다. 처음 겪는 감각이었다.

무수히 많은 송곳들이 피부를 난도질하는 것 같았다. 얼어붙은 심장이 산산조각 난 기분이다.

가뜩이나 지하의 환경도 고통스러웠는데, 페온의 기세가 더해지자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마나의 운용이 가능한 시간은.’

아주 길게 잡아야 10분.

기술을 남발한다면 그보다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

‘여기서 죽게 될 수도 있겠군.’

그렇게 만족스러운 삶은 아니었다.

매번 실패했고, 후회와 회환만이 가득하던 삶이었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썩 나쁘지 않은 삶이었지.”

그의 본질은 무인이자 검사였다.

져서는 안 되는 싸움이었지만, 강자와의 싸움에 패배해서 죽는다면 만족스러운 죽음이었다.

빈센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페온의 시선은 빈센트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아직 올라갈 곳이 많은데, 어째서 지금 목숨을 버리려는 거지?”

페온의 물음을 들은 빈센트가 조소 지었다.

“우스운 질문을 하는군. 그쪽이 먼저 우리를 건드렸으니까. 선조이면서도 블란테의 가훈을 알지 못하나?”

“……쯧.”

페온이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는 한때 인간이었으나, 지금은 지하의 대군주였고, 바뀐 몸은 인간도, 마족도 아니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혼돈이며, 이질적이었다.

‘몸이 바뀌었기 때문인가?’

페온은 역겨움을 느꼈다.

자신의 감정을 정의 내릴 수 없었다. 스스로 한계를 규정짓고 도망쳤기 때문인가?

저런 순수한 검사를 보고 있으니…….

살심이 들끓었다.

페온의 눈에서 귀화가 피어올랐다.

슥.

신영이 사라진다.

빈센트와 크리스토가 안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로이마르티와 오르번이 마법을 시전했다.

콰가가가강!

죽은 마나를 통한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다. 그렇다면 간접적으로 페온을 방해하면 그만이다.

지면이 갈라지고, 대지가 치솟는다. 페온의 경로에 폭격이 쏟아진다.

자연재해 같은 현상을 앞에 두고도 페온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유유히 공격을 피해 내며 손짓하자, 검은 기운이 눈앞의 모든 것을 소멸시켰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

그 믿을 수 없는 격차에 오르번과 로이마르티가 눈을 크게 떴다.

“쯧.”

크리스토의 눈에 짜증이 어렸다.

상황이 이런 식으로 전개될 것은 예상치 못했다.

‘어쩔 수 없나.’

지하의 환경을 견디기 버거운 것은 크리스토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이곳은 죽은 나무가 뿌리내린 땅의 근처였다.

죽은 마나의 농도가 훨씬 짙었다.

그나마 죽은 마나의 대한 조예가 있는 크리스토이기에 이렇게 버틸 수가 있는 것이다.

‘전투 인력은 총 셋. 마법사는 최우선으로 지켜야 한다.’

찰나의 순간, 크리스토는 판단을 마쳤다. 그와 빈센트가 그나마 이 정도로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마법적 조치 때문이다.

마법사가 죽으면 당연히 유지되던 마법도 해지된다. 크리스토는 어떻게든 대처할 수 있겠지만, 빈센트는 이 환경을 견뎌 낼 수 없다.

‘사용 가능한 마나도 제한적일 테니.’

전투는 최대한 속전속결로 끝내야만 했다.

절망스러운 상황. 하지만 크리스토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가오를 부렸는데 이대로 뒈질 수는 없지.’

크리스토가 사납게 웃었다. 그의 눈빛은 아직 죽지 않았다.

‘여기서 모든 패를 꺼낸다.’

상대를 가늠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녀석은 이곳에서 막는다.

‘빨리 끝내라고.’

크리스토는 에단을 향해 말했다.

페온을 오래 붙잡아 두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부정]

크리스토의 입술이 들썩였다.

삿된 힘을 끄집어낸다. 크리스토는 룬어의 힘을 모두 끌어냈다.

[부정]의 룬어는 법칙을 비트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부정하는 힘.

산 자를 죽은 자로, 죽은 자를 산 자로.

강자를 약자로, 흐르는 것을 멈춘 것으로. 혹은, 역류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부정하는 두려운 힘이었다.

매우 강한 능력이었지만, 만능은 아니었다.

지정하는 대상의 격이 높으면 높을수록 룬어의 힘은 대폭 약화되고 제한된다.

‘저 수준의 녀석이라면…….’

크리스토가 인상을 찌푸렸다.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것과 싸우는 게 그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크리스토가 룬어를 완성시켰다.

완성된 룬어는 페온의 목덜미를 향해 나아갔고, 페온은 코웃음을 치며 룬어를 떨쳐 내려고 들었다.

“막아!”

크리스토가 소리쳤다. 그러자 빈센트가 페온을 향해 돌진했다.

바닥에 곤두박질친 록사자도 뛰쳐나갔다. 그의 눈빛은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시퍼런 오러를 두른 빈센트의 검이 페온에게로 향했다. 페온은 한 손으로 공격을 가볍게 막아 내고, 반대 손으로 빈센트를 공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록사자가 먼저 당도했다.

“쯧.”

빈센트를 튕겨 낸 페온의 몸이 회전하며 다가오는 록사자를 걷어찼다.

“커헉!”

록사자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는 비명을 토해 내며 다시 공중을 날았다.

간신히 벌어들인 시간. 다행히 크리스토의 룬어는 무사히 페온에게 도달했다.

목걸이처럼 페온의 목을 휘감는 검은 기운.

“큭.”

페온이 같잖다는 듯 조소 지었다. 고작 이 정도 수준의 룬어를 푸는 것은 문제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그때.

우우우웅.

빈센트의 검이 묘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빈센트의 서늘한 안광이 페온을 직시한다.

무리한 마나 운용.

그리고 익숙지 않은 환경.

모든 것이 최악인 상황이었다.

더 이상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빈센트는 그 사실을 직감했다.

막대한 마나는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이곳에서는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마나가 소진된다.

이번이 마지막 일격.

빈센트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실패해서는 안 되는 공격이다.

역천.

빈센트가 마스터의 벽을 부쉈을 당시 얻었던 깨달음.

인간은 하늘에 닿지 못한다. 그것이 숙명이다.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새는 불타 죽기 마련이다.

모든 이들이 인간에게 주어진 한계가 마스터라고 말했다.

마스터에서 경지를 갈고닦기만 하여도 모두가 찬사를 보내고 경외를 보낸다.

하지만 빈센트는 만족할 수 없었다. 주어진 순리를 따르는 것은 가축의 삶이었다.

그는 중독되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위로 올라가는 것에.

하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불경한 것이고, 순리와 순명을 어기는 것이라면.

하늘의 뜻을 어기겠다.

역천(逆天).

빈센트의 검끝이 아래에서 위로 그어졌다.

모든 규칙과 법칙도 그 순간만큼은 부서지고 만다.

빈센트의 검은 페온에게 닿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의지는 페온에게 도달했다.

“……커헉!”

[부정]이 둘러진 페온의 목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괴물같은 내구도를 자랑하던 페온의 목이 점점 갈라지기 시작했다.

쩌걱, 쩌거거걱!

페온은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저항하려고 했다.

크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크리스토가 의지를 집중했다.

‘어딜 감히.’

크리스토의 의지가 집중되었다.

질긴 살가죽과 금속보다 단단한 목뼈가 약해진다.

비록 찰나에 불과한 순간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쩌거걱!

빈센트의 칼끝이 흔들리고, 페온의 목이 그대로 공중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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