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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381화 (381/398)

◈ [381화] 회담 (6)

“케륵?”

키메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참 동안 크리스토를 바라보던 키메라의 입꼬리가 길게 찢어졌다.

톱날 같은 이빨이 드러나고, 눈매가 가늘어졌다.

“어쭈, 웃어?”

크리스토가 기막히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 키메라에게는 명백한 비웃음이 느껴졌다.

끈적한 시선. 마치 먹잇감이나 장난감을 보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조금, 기분이 나쁘네?”

크리스토의 눈이 한기를 머금었다.

그가 검을 휘둘렀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일격이었지만, 특별할 건 없었다.

목덜미를 노리고 그어지는 크리스토의 검. 키메라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더니 손가락으로 칼날을 붙잡았다.

“킥킥.”

키메라가 웃었다. 그리고 크리스토도 웃었다. 서로가 서로를 보며 웃는 그때.

“오랜만에 보는군.”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지껏 기척을 감추고 있던 오르번의 목소리였다.

“더러운 상판도 여전하고.”

키메라가 홱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오르번이 마법을 전개했다. 불길하며 사특한 힘이 키메라의 발목을 붙잡는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로이마르티와 록사자가 나섰다.

둘은 엄연한 군주였다.

자존심과 권위는 짓밟혔지만, 그 기량은 여전했다.

죽은 마나를 다루는 힘은 오르번을 아득히 상회했다.

어둠이 통제된다. 키메라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키에에엑!”

위험하다.

키메라의 본능이 경종을 치고 있었다. 키메라가 재빠르게 몸을 돌려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들었지만, 그의 길을 막아서는 자가 있었다.

스르릉.

빈센트의 검이 어슴푸레한 빛을 머금는다. 빈센트는 오연한 표정으로 키메라를 바라봤다.

“어딜 가려고 하는 거지?”

비정한 말 한마디와 함께 빈센트가 검을 휘둘렀다.

빈센트의 검격은 키메라의 가슴팍을 갈랐다.

* * *

아침부터 아카데미에는 작은 소란이 있었다.

아카데미의 학장이자, 블란테의 가주인 빈센트가 사라졌다.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챈 자는 가장 밀접한 측근인 네이드였다.

‘가주님이 없어졌다.’

네이드가 눈을 질끈 감았다. 찾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빈센트가 위험에 처할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

네이드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과거, 빈센트의 암살을 시도했던 자가 네이드였으니.

설사 드래곤이 급습하더라도 빈센트는 위험에 처하지 않을 것이다. 그 괴물을 누가 상대한단 말인가?

‘……가주님.’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눈가의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빈센트가 어디로 향했는지 예상이 되었다.

슥.

사특한 어쌔신의 보법. 네이드의 신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오르번의 공방에 도착했다. 인기척은 느껴졌으나, 빈센트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혹시 모른다는 간절함을 담아 슬며시 문을 열었다.

끼이익.

불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공방은 어두웠다. 어둠 속에서 형형하게 빛나는 안광이 보였다.

“……무슨 일이지?”

도미닉이 네이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도미닉을 응시하고 있던 네이드가 역으로 질문했다.

“혹시 가주님이 어디로 가셨는지 알고 계십니까?”

“…….”

도미닉은 가만히 네이드를 바라보고 있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모르나 보군.”

“무슨…….”

“지하로 떠났다. 나도 가기 직전에 통보를 받았고.”

진실을 전해들은 네이드의 볼이 꿈틀거렸다. 불길한 예측이 들어맞았다.

‘어째서…….’

그 이유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운함과 원망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아.”

네이드가 끈적한 한숨을 내쉬었다.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가 천천히 얼굴을 쓸어내렸다. 네이드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번들거리는 안광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도미닉은 네이드의 섬뜩한 기세를 보고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자도 보통이 아니군.’

산골짜기 동굴에서만 지내던 도미닉의 세상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혹시 저 외에 다른 자들도 이 소식을 접했습니까?”

“아니.”

도미닉이 고개를 젓자, 네이드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쓰게 웃은 네이드의 신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네이드가 사라진 장소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도미닉이 실소를 터트렸다.

네이드는 급하게 움직였다. 사라진 인원들을 구체적으로 파악했다.

파악한 인원은 총 셋.

빈센트와 오르번, 그리고 헨리였다.

허탈감이 들었다. 그리고 씁쓸했다.

자신을 포함한 다른 이들은 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그래도…… 상황은 정리해야겠지.’

네이드가 쓰게 웃으며 사람을 모았다.

첸과 에밀라, 에르미온과 데아티르, 거기에 휴고와 가토까지 모였다.

네이드는 최대한 담백하게 사실들을 전했고, 그 소식을 듣고 가장 격분한 것은 에르미온이었다.

매서운 마력이 휘몰아쳤다.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에르미온이 긴 머리카락을 나풀거렸다.

“……지금 장난해?”

그녀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가득했다. 에르미온은 마탑의 수장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처우라고?

자존심의 상처를 입은 수준이 아니었다. 그녀의 자존심은 완전히 짓밟혔다.

다른 이들의 표정도 마냥 좋지는 않았다. 딱딱하게 굳어 있는 표정.

“……조금만 조용히 해 주면 좋겠군.”

첸이 에밀라를 흘겨보며 말했다. 에밀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 지금 뭐라고 했지?”

가뜩이나 다혈질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에르미온이었다.

마탑에서는 그 누구도 에르미온이 분노하고 있을 때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다.

피 보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분노하고 있는 것은 비단 에르미온만이 아니었다.

첸도 차갑게 분노하고 있었다.

서늘한 한기를 머금은 첸의 눈과 에르미온의 이글거리는 눈이 허공에 부딪쳤다. 불똥이 튀는 것 같았다.

네이드는 표정을 굳히며 그들 사이를 막아섰다.

“진정하시죠.”

뒷짐을 지고 서 있는 네이드가 작게 경고했다.

“첸 경, 잊으셨습니까? 가문의 주인이 누구이신지.”

“…….”

첸이 입을 다물었다.

블란테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규칙을 따르고 있었다. 당연히 가주인 빈센트가 가장 강했고, 그렇기에 결정권을 지니고 있었다.

첸은 빈센트의 측근이자, 기사단의 단장으로서 조언은 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월권이었다.

그것이 가주의 권한이자 힘이었다.

첸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첸을 바라보던 네이드가 시선을 돌려 에르미온을 바라봤다.

“에르미온 님도 진정하시지요.”

“…….”

에르미온은 아직도 분이 가라앉지 않는 듯, 눈을 치켜뜬 상태로 첸을 노려봤다.

“제가 마법에 관해서는 식견이 짧으니,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에르미온 님, 지하에서도 마나를 운용할 수 있으십니까?”

“그건…….”

에르미온이 당황하며 말을 흐리자, 네이드의 시선이 데탈리온 쪽으로 향했다.

“객관적인 사실을 듣고 싶습니다. 어떻죠?”

“제한적으로는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제약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본래 지닌 힘의 절반도…… 아니, 그 이상도 다루기 힘들 거야.”

네이드는 수긍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전력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씁쓸하였으나, 그게 객관적인 판단이었다.

“저희들은……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을 준비하시죠.”

그것이 남겨진 자들이 해야 할 것들이었다.

* * *

쩌억―!

키메라의 가슴팍이 갈라지며 피가 솟구쳤다. 짙은 어둠 탓에 치솟는 피의 색은 구분되지 되지 않았다.

뻐엉―!

빈센트가 걷어차자, 키메라가 빠른 속도로 허공을 날았다.

쑤욱.

그때 바닥에서 등장한 검고 거대한 손이 키메라를 낚아채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콰앙!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검고 거대한 말뚝이 키메라의 몸 곳곳에 틀어박히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쾅!

“키에에에에에엑!”

키메라가 괴성을 토해 내며 바둥거렸다.

하지만 고통스러워하는 키메라의 상처는 빠른 속도로 재생되고 있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긴장한 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 무기를 모두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저벅저벅.

빈센트가 키메라에게 다가갔다.

“시시하군.”

빈센트는 경멸과 혐오를 담아 그렇게 말했다. 그 순간, 오르번과 크리스토가 얼굴을 구겼다.

“지금 그 말을 하면…….”

꿈틀.

키메라의 몸이 크게 꿈틀거렸다. 상처 부위에서 흐르는 피가 거세진다.

아니, 흐른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키메라는 자신의 피에 집어삼켜지고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크리스토와 모두는 본능적으로 판단했다.

저 녀석을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된다.

크리스토가 룬어를 영창하려는 그때.

깊게 틀어박힌 말뚝과 손이 찢겨 나갔다.

키메라가 몸을 일으켰다. 비척거리던 키메라가 섬뜩한 안광을 빛냈다.

마치 파충류의 눈처럼 가느다란 동공이 적을 인식했다.

크르르.

누린내가 느껴지는 짐승의 울음소리. 키메라는 톱니 같은 이빨을 딱딱거리더니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익숙한…… 얼굴들이…… 많군…….”

기괴하고 이질적인 목소리였다. 깊게 잠긴 듯하면서도 거친 음성.

빈센트는 인상을 찌푸리며 키메라를 바라봤다.

“너는 누구지?”

저 녀석은 지금껏 싸워 오던 놈과는 다른 놈이다.

빈센트는 단번에 그것을 눈치챘다.

그 질문을 한참 동안 곱씹던 키메라. 아니, 페온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나도 그게 궁금해.”

그 광기 어린 표정에 다들 인상을 찌푸렸다.

분위기가 달라졌다.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감이 느껴졌다.

“아…… 그러게 이상한 소리 하지 말랬더니.”

못마땅하다는 듯이 혀를 찬 크리스토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수습하기는 늦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일은 벌어졌는데.

크리스토가 검을 휘적거리더니 다시 칼끝을 겨눴다.

“근데…… 너 나 아냐?”

“……그래. 너는 날 모르겠지. 광오한 황제야.”

씨익.

키메라가 된 페온의 입이 주욱 찢어졌다. 아까 전 보였던 미소와 다를 바 없는 표정이었지만, 느껴지는 분위기는 아예 달랐다.

크리스토의 눈매가 좁혀졌다.

불쾌하다. 간지러움이 느껴졌다.

긁을 수 없는 곳에 느껴지는 간지러움이다.

이 불쾌함의 원인이 뭐지?

의문이 들었지만, 해소는 되지 않았다. 그저 찝찝한 짜증만이 느껴지고 있을 뿐이었다.

크리스토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떠오를 것 같으면서도 떠오르지 않았다. 엿 같은 눈빛과 저 말투.

구역질이 치밀 정도로 혐오스러웠다.

그래. 마치…….

“아.”

크리스토가 탄성을 흘렸다. 무언가가 머릿속에 번뜩였다.

“너구나.”

그동안 내 제국을 엉망으로 만든 개새끼가.

크리스토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살기가 진동하는 흉흉한 미소였다.

“다들 조금 진지해지자고. 수를 아끼지 말고 모두 퍼부어.”

크리스토가 진지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저 새끼. 아직 제대로 적응 못 했거든? 이때 죽여 버리자고.”

[부정]

크리스토가 룬어를 읊조렸다. 불길하면서도 사이한 기운이 크리스토의 입을 기점으로 퍼져 나갔다.

꿈틀.

“크하아아…….”

페온이 숨을 토해 냈다.

크리스토의 룬어가 페온에게 닿기 직전, 그의 신형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쾅!

그때 크리스토 앞에 불똥이 튀겼다.

빈센트의 검과 페온의 주먹이 부딪쳤다.

“나를 우습게 여기지 말아 줬으면 좋겠는데.”

빈센트가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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