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8화] 회담 (3)
에단이 몸을 낮췄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두 군주들에게 신호했다.
조용히.
기척을 감춘다.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주변과 동화된다.
스읍.
호흡이 가늘어지고, 동공이 좁혀진다. 에단은 키메라를 가만히 응시했다.
‘저걸 데리고 온 이유는?’
에단이 상황을 추측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저게 여기에 있지?’
갓 태어난 키메라만 하더라도 상당한 전력이다. 타이탄을 목표로 만들어진 존재인 만큼, 신체 능력과 내구력은 압도적이었다.
비록 미완성품이었지만 그 당시 수준만으로도 매우 위협적인 존재였다.
‘지금의 나라면.’
에단이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전투를 치뤘다.
녀석은 강하고, 빠르며, 교활했다.
하지만 미숙했다.
그 미숙함은 경험의 부족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기에 에단과 키메라는 호각을 이루었다.
전투의 흐름과 기세는 에단이 우위를 점했지만, 완전한 승기를 잡기는 힘들었다.
키메라의 신체 능력과 회복력 때문이다.
녀석은 습득력이 빨랐다.
하지만 에단은 과거와 비교해서 엄청난 성취를 얻었다.
에단은 편법을 통해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섰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불완전한 성취이자 경지였다.
그동안 에단은 자신의 힘을 모두 활용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에단은 이미 마스터의 끝자락에 올라서 있었다. 네이드와 첸도 더 이상 에단의 적수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예외로 두고.’
키메라의 수준이 전과 동일하다는 가정하에 에단은 승리를 확신한다. 제압하기도 크게 어렵지 않을 터다.
‘그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고.’
에단이 눈매를 좁혔다.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한다. 기다리거나, 제압하거나.
고민하던 에단은 결정을 내렸다.
‘기다린다.’
키메라가 이곳에 온 이유가 있을 것이다.
페온의 목적은 타이탄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는 분명 자신만의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의미 없는 행동을 했을 리가 없다.
저 키메라를 이용해 무언가를 시도한다.
‘나에게는 정보가 부족해.’
에단은 정보의 부족을 인정했다. 지금껏 해 온 추측도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했다. 확증은 없었다.
에단이 슬며시 뒤를 돌아봤다.
로이마르티와 록사자가 긴장한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확실히 이 둘 또한 군주는 군주. 기척을 거의 완벽하게 감췄다.
키에엑.
죽은 나무가 반응한다. 에단은 숨을 죽이고 키메라 쪽을 응시했다.
키메라는 우두커니 서서 거대한 문을 바라보다가 손을 스윽 뻗었다.
파지직―!
강렬한 전류가 튀며 키메라를 뒤로 밀어냈다.
“키에엑!”
키메라가 비명을 토해 냈다. 그 행위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녀석은 멈추지 않고 손을 뻗었다.
파직! 파직! 파직! 파직!
문은 키메라를 거부했다. 키메라는 고통스러워했지만 끝없이 반복했다.
‘이유 없이 저럴 리는 없고.’
에단은 확신했다. 키메라는 문 너머로 들어서려고 한다.
‘이유는 죽은 나무와 접촉하려는 건가?’
죽은 나무를 노리는 것은 에단뿐이 아니었다.
이번 회담에서 음흉한 생각을 지니고 있는 것은 페온도 마찬가지였다.
‘재밌네.’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저 행동이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페온은 에단 이상의 정보와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가능성이 없는 행위였다면 저렇게 미련하게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 무언가의 확신이 있을 터.
에단은 가만히 그 행동을 응시하고 있었다.
파직! 파직! 파직!
저항이 약해진다.
처음에는 살이 타는 듯한 매캐한 냄새가 진동하고, 키메라도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지만, 점점 그 반응이 약해지고 있었다.
키메라를 강렬하게 밀어내던 전류가 점점 약해지더니 이윽고 키메라의 손이 문에 닿는다.
파지지지직!
살이 익는 소리. 하지만 키메라는 지지 않고 밀어낸다.
쿵. 쿠구구구궁.
문이 밀리기 시작했다. 에단은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봤다.
녀석이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간다. 에단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쿵.
문이 닫혔다. 그 순간 에단이 몸을 세우며 록사자와 로이마르티를 바라보며 말했다.
“바로 가능해?”
로이마르티와 록사자가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또한 요행으로 군주의 자리까지 올라선 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진즉에 인지했다.
당연하게도 가장 중요한 것은 목숨이었지만, 지금 여기서 성과를 얻으면 한층 더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로이마르티와 록사자가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장한 각오가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중얼중얼.
둘이 술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전에 준비했던 재료들이 허공에 떠오르며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죽은 마나는 차고 넘쳤다.
숨 쉬는 게 어려울 정도의 짙은 농도의 마나가 지척에 깔려 있었다.
사특한 언어가 두 군주의 입을 통해 구현된다.
우우웅!
강한 진동과 함께 마법이 완성되었다. 허공에 생겨난 통로 너머로 크리스토와 헨리, 그리고 빈센트와 오르번이 보였다.
에단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다들 각오는 했습니까?”
에단의 말을 들은 넷은 대답 대신 웃었다. 이미 그런 건 중요치 않았기 때문이다.
“록사자, 로이마르티. 준비 좀 부탁하지.”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떤 마법을 추가로 전개했다.
검은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헨리와 오르번이 가장 먼저 발을 디뎠다.
헨리와 오르번은 건너오자마자 얼굴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죽은 마나의 농도가 너무 짙고 강렬했기 때문이다.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마치 극독에 빠진 것만 같았다.
죽은 마나를 다루는 흑마법사인 오르번도 견디기 힘들었다. 그는 재빠르게 마법을 전개했다.
“후우.”
그의 표정이 조금 편해졌다. 헨리도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중얼거리자 밝은 기운이 그녀를 보호했다.
“……이거 예상보다 강렬하군.”
“저 녀석들을 통해서 준비를 하긴 했는데…… 장소가 장소인 만큼 어쩔 수 없지.”
이곳은 죽은 마나의 원천지다. 일반적인 지하보다 훨씬 농도 높은 죽은 마나가 깔려 있었다.
에단이야 별문제가 없었지만, 헨리와 오르번에게는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헨리는 묘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를 훑어보던 헨리의 시선이 어디론가 고정되었는데, 그곳은 바로 죽은 나무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문이었다.
“시간이 없어. 빠르게 준비하자고.”
에단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린 헨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헨리를 기점으로 따뜻한 온기가 퍼져 나갔다.
터벅.
이내 빈센트와 크리스토가 넘어왔다. 둘이 넘어오는 것을 확인한 로이마르티와 록사자는 마법을 해지했다.
“…….”
록사자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크리스토를 응시했다.
이제 구태여 예의를 갖출 필요가 없어진 크리스토는 어깨를 으쓱이며 관심도 주지 않았다.
“이렇게 직접 맞이한 건 오랜만인데?”
크리스토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에단을 응시했다.
“한결같이 좆 같은 상판이네.”
“하하, 그것참 상처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군. 그래도 내 외모는 썩 쓸 만한 것 같은데.”
“지랄 그만하고. 바뻐.”
에단이 문을 바라봤다. 이제부터는 진짜로 목숨을 걸어야 했다.
“헨리.”
에단이 헨리를 응시했다. 또다시 넋이 나가 있던 헨리는 화들짝 놀라며 에단을 바라봤다.
물끄머리 헨리를 바라보던 에단이 헨리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그녀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두 개의 펜던트였다.
하나는 세계수의 목걸이, 또 하나는 유론다에게 받은 빛바랜 목걸이였다.
“이건…….”
헨리가 말끝을 흐리며 에단을 바라보자 에단이 물었다.
“이건 나보다는 너한테 필요한 것 아닌가?”
“…….”
펜던트와 에단을 번갈아 바라보던 헨리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건 제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누구인지 잊으셨나요?”
“누구긴 주정뱅이지.”
“……크흠, 애주가라고 표현해 주세요.”
싱긋 웃은 헨리가 저벅저벅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의 손에 펜던트는 들려 있지 않았다.
당당하게 걸어 나간 그녀는 웅장한 문을 가만히 바라봤다.
우우우웅.
문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헨리가 손을 뻗었다.
반응은 없었다.
키메라를 밀어내던 강렬한 전극이 헨리에게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헨리는 눈을 감고 천천히 문을 쓸어내렸다.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작게 웃은 헨리가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러자 문이 열렸다.
“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따라오세요.”
헨리의 눈에서는 묘한 힘과 위압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터벅터벅.
헨리는 문 안으로 들어섰고, 에단을 포함한 일행들은 천천히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문의 안쪽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리깔려 있었다.
헨리는 눈을 감았다. 형형한 안광은 닫힌 눈꺼풀을 넘지 못했다.
서늘한 빛이 없어진다.
그녀는 시각에 의지하지 않았다. 오롯이 감각에 집중했다.
지천에 죽은 마나가 가득했다.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솜털이 곤두서고 소름이 빗발친다.
감정이 들끓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째서?
헨리는 의문이 들었다.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왜 거부감을 가져야 하지?
그녀는 오르번과 함께 공방에서 연구하며 지식과 소양을 쌓았다.
죽은 마나는 세간의 인식처럼 악한 기운이 아니었다.
흑마법사는 모두 끔찍하고 악랄한 범죄자가 아니었고 말이다.
그저 똑같은 사람, 똑같은 기운일 뿐이다.
한데 어째서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그것은 일종의 보호 본능이었다. 그녀의 지식은 한정적이다.
본질은 세계수의 가디언이었지만, 반쪽짜리에 불과했다. 모든 지식은 세계수의 자아에 있었으니까.
그러나 세계수의 힘은 그녀가 품고 있었다.
‘그건 열쇠야.’
목걸이를 본 순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목걸이는 그것과 만나기 위한 열쇠였다.
하지만 헨리에게는 필요치 않았다. 그녀는…… 이미 세계수 그 자체가 되어 가고 있었으니까.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혼란스럽던 기운이 안정되어 간다. 현기를 품은 헨리의 눈이 누군가를 응시한다.
― …….
그것은 헨리와 비슷한 존재였다. 헨리는 미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
“반가워.”
― …….
저것의 존재를 무어라 칭해야 할까.
헨리도 알지 못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것이 강렬한 적의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 …….
그것의 눈에서 검은 안광이 피어난다.
“여기서 그러지 말고, 자리를 옮기자고.”
헨리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 존재와 헨리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에단과 크리스토는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우웅.
빛바랜 목걸이가 빛을 흘리기 시작했다. 목걸이가 가리키는 방향과 죽은 나무가 반응하는 방향이 같았다.
주위는 온통 암흑뿐이었다. 어둠을 관통하는 에단의 눈도 어째서인지 이 어둠은 뚫지 못했다.
‘헤매고 있군.’
키메라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어떻게 느끼고 있는 거지?’
알 수는 없었다.
정답을 말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에단은 그저 앞으로 나아갔다.
이 어둠 너머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는 에단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