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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372화 (372/398)

◈ [372화] 작전 준비 (4)

록사자는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주위를 둘러봤다.

꽤나 널찍한 지하실에는 기하학적인 마법진과 마법 재료들이 가득했다. 모두 상당히 고등한 기술들이었다.

‘이건…….’

흐릿하던 록사자의 눈에 초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익숙한 형식이다.

방식은 달라도 추구하는 바는 같은 마법이다. 이 마법진들의 목적은 지하와 지상과의 연결이다.

‘이 무슨…….’

록사자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 또한 군주였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것들을 보고도 대력적인 상황을 유추하지 못한다면 군주의 자리까지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두 대군주가 손을 잡은 이유가 위를 노린 건가?’

꿀꺽.

소름이 끼쳤다. 이제야 자신이 잡혀 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지상에 관심을 가지는 군주는 얼마 없다고 여겼다. 록사자가 지상을 기웃거린 이유도 경쟁자를 피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흠……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지?”

로이마르티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록사가 흠칫 놀라며 떨리는 눈으로 로이마르티를 바라봤다.

로이마르티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록사자는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아…… 많이 놀랐나 보군. 내가 배려가 부족했어.”

록사자가 로이마르티를 응시했다.

‘군주급의 무력.’

무력은 나보다 아래.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비춰 보건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것 같았다.

‘얕잡아 보여서는 안 된다.’

대군주의 무력은 불가항력이었다.

그건 재앙과도 같았고, 감히 록사자가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억이었지만, 그 또한 군주 아니겠는가.

무수한 시체를 밟고 올라선 자리였다. 록사자의 몸에 흐르는 피는 잔혹한 살육자이자 군주의 피였다.

“크흠…….”

록사자가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로이마르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 있나?”

“……내 이름은 록사자.”

록사자가 몸을 일으켰다. 움츠린 허리가 꼿꼿해지며 군주의 기세가 흘러나왔다.

심연처럼 깊고 어두운 록사자의 눈이 로이마르티를 응시했다.

‘…….’

로이마르티는 눈을 끔뻑이며 록사자를 바라봤다. 그가 눈매를 좁혔다.

‘이것 봐라?’

대부분의 마족은 비열하고 교활하다. 철저한 약육강식.

얕잡혀 보이면 끝장이었다.

대충 보니까 자신보다 서열은 높은 것 같았다. 이전에 만났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머리를 조아렸을 것이다.

약자가 강자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당연한 행위였다.

그것이 바로 지하의 암묵적인 규칙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통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이곳은 대군주의 저택이었다.

그리고 로이마르티는 록사자보다 한참 먼저 자리를 잡아 두고 있었다.

에단의 보증까지 있었다.

에단은 분명 ‘후임’이라고 칭했다. 로이마르티는 그 단어에 집중했다.

‘후임.’

로이마르트의 눈초리가 사나워졌다.

‘기껏 잘해 주니까 벌써 기어올라?’

이래서 군주 물 좀 먹은 놈들은 안 된다.

‘마족 새끼들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로이마르티는 통감했다.

록사자의 기세는 꽤나 살벌했지만, 그 또한 군주였다. 겁을 집어먹을 수준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같잖게 느껴졌다.

록사자가 나보다 강한 건 맞아.

근데 뭐 어쩌라고?

피식.

로이마르티가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쟤가 대군주보다 쎄?

딱 봐도 뭣도 아닌 게 설치다가 뒤지게 처맞고 온 것 같은데, 잘해 주니까 금세 어깨를 펴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 괘씸했다.

로이마르티가 인상을 쓰며 입을 열었다.

“록사자.”

“……뭐?”

록사자가 당황하며 되물었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자신의 힘은 저 녀석보다 강할 텐데…….

“뭐? 말이 짧다?”

로이마르티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예상 못 한 반응에 당황한 록사자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뒤늦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감히…….”

“감히 뭐.”

“가, 감히…….”

록사자가 동요하며 말을 더듬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여기서 이 건방진 놈을 혼쭐내고…….

“너 정신 못 차리냐?”

“거, 건방진 놈! 나보다 서열도 낮은 녀석이…….”

록사자의 말을 들은 로이마르티는 기가 막혀서 실소를 터트렸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 새끼가 아직도 밖인 줄 아네. 이래서 잘해 주면 안 된다니까?”

“뭐, 뭐?! 크아아아―!”

록사자가 기세를 더욱 일으키자, 로이마르티도 지지 않겠다는 듯 기세를 끌어올렸다.

“너 자신 있냐?”

“하하! 이제야 주제 파악을 하는 건가? 후회한들 이미 늦었다!”

“뭐가 늦어. 주제 파악은 네가 못 하는 거 같은데?”

“뭐, 뭐라고?!”

“왜? 한 대 치려고? 쳐 봐. 바로 위에서 내려오겠네.”

“어, 어……?”

록사자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렸다.

영혼에 각인된 공포가 치밀어 올랐다. 그가 뿜어내던 포악한 기세가 눈 녹듯 사라졌다.

비틀.

록사자가 크게 휘청거렸다.

로이마르티는 한심한 눈으로 록사자를 바라봤다.

“쯧쯧, 왜 막상 하려니까 못 하겠어? 쳐 보라니까?”

로이마르티의 저열한 도발에도 록사자는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여기서 실수라도 저질렀다가는 정말 카무잔이 내려올 수도 있었다.

― 지금 뭐 하냐? 하극상이야?

머릿속에 떠오르는 무차별적인 폭행.

어지간한 고문이나 고통에는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록사자였지만…… 그건 얘기가 달랐다.

또다시 그걸 겪을 바에는 소멸하는 게 나았다.

록사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심장이 방망이질을 한다.

“뭐 해? 치라니까?”

“내, 내가 실수한 것 같다…….”

“실수? 시이이일수우우? 하하, 이 새끼 봐라?”

뚜벅뚜벅.

로이마르티가 록사자를 향해 다가갔다. 얼굴이 맞닿기 직전의 거리였다.

록사자의 동공이 흔들렸다. 방금까지 보였던 강한 영혼의 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록사자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야.”

“…….”

“대답 안 해?”

“그게 아니라…….”

“하하……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로이마르티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의 눈빛이 사납게 번뜩였다.

빠악―!

강렬한 쪼인트. 검은 오러가 서린 발끝이 록사자의 정강이를 후려쳤다.

“꺼헉!”

록사자가 신음을 흘리며 몸을 굽혔다.

“어쭈, 똑바로 서.”

“…….”

록사자가 쩔뚝거리며 몸을 세웠다.

“나도 이러기는 싫었거든? 근데 왜 나를 나쁜 놈으로 만드냐…….”

“그, 그게 아니라…….”

“그럼 여기가 안이지 밖이야?”

빠악―!

“억!”

다시 정강이를 부여잡는 록사자였다.

* * *

에단은 페온의 목적에 대해 설명했다. 어디까지나 에단 개인의 분석이자 견해였지만, 신빙성은 상당히 높았다.

“타이탄이라…….”

아모드라가 턱을 매만지며 말끝을 흐렸다. 대군주의 목적은 타이탄이 되는 것.

무한에 가까운 삶을 영위하는 대군주조차 낯설게 느껴지는 이름이다.

그만큼 타이탄이라는 이름이 세상에서 잊혀진 시간이 길다는 소리였다.

“타이탄…… 한번 싸워 보고 싶은데…….”

아모드라와 에단은 카무잔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저딴 말에 맞장구를 칠 필요는 없었다.

에단은 구체적인 계획을 설명해 나갔다. 아모드라가 듣기에는 상당히 무모하고 가능성이 낮은 작전이었다.

“너무 허무맹랑하군.”

“그래도 해야 하지 않겠어? 어차피 페온 그 녀석의 목적도 똑같을 거야.”

“흐음……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뭐지?”

“단순해. 두 대군주의 발목만 붙잡아 두면 돼. 어차피 회담의 목적은 서로가 똑같잖아?”

이미 전쟁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회담은 명분일 뿐이다.

“부차적인 건 내가 책임질 테니 걱정 말라고. 이미 경험도 있고.”

에단이 씨익 웃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지만, 해야 한다면 망설일 생각은 없었다.

‘까짓것.’

죽기밖에 더 하겠나?

아모드라는 에단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좋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네 계획을 따르겠어. 나도 흥미가 좀 생겼거든. 네놈이 과연 어디까지 올라갈지.”

아모드라가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역시 재밌는 인간이었다.

만일 이자가 지하에서 마족으로 태어났다면 대군주의 자리에까지 올라섰을 것이라고 아모드라는 확신했다.

아모드라가 타인이게 이런 고평가를 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럴 정도로 에단은 신기하면서도 특별한 존재였다.

“아직 할 말이 남았나?”

“어. 네빌라 쪽 부족을 만나고 싶은데…… 이미 손을 써 뒀더라고?”

“그래. 만나려는 이유는?”

에단이 목걸이랑 허리춤에 매달아 둔 검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흐음, 어려울 건 없지. 이번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건 네놈이니.”

아모드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 카무잔은 혼자 심각한 표정으로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타이탄…… 타이탄이라…… 어이, 에단.”

“……왜?”

“타이탄은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지? 싸워 보고 싶은데.”

“……나도 몰라.”

“어째서?!”

“모르니까?”

“그렇군…….”

한껏 풀이 죽은 카무잔.

에단과 아모드라가 서로를 마주 보더니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 * *

에단은 유론다의 부족을 찾아갔다. 그들은 아모드라의 영지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들은 유목민과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이주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몇몇 전사는 불만을 가지기도 했지만, 감히 대군주의 명령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대군주의 말은 율법이나 다름없으니.

식량과 생필품은 아모드라가 안배를 해 주었다. 유론다는 쓴웃음을 지으며 지원을 받았다.

부족의 전사들은 침울해했다.

아모드라가 당분간 사냥을 나가는 것을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사냥을 나가지 못하는 전사는 할 일이 없었다. 누구보다 근면성실하던 그들은 처음으로 권태로움을 겪고 있었다.

에단은 아모르라에게 통행권 역할을 하는 각인을 받았다. 결계 안으로 들어서자 환경이 바뀌었다.

‘역시 대군주긴 하군.’

이 정도 수준의 결계라니.

에단은 작게 감탄하며 천막이 늘어선 마을로 향했다.

장소만 달라졌을 뿐이지, 마을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천막들과 조잡한 울타리가 보였다.

“어…… 자네는?!”

마을에 가까워지자 전사 한 명이 에단을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에단은 씨익 웃으며 마을 전사와 악수했다.

“이거 오랜만이군.”

“하하! 뭐가 오랜만이라고. 너는 잘 지냈나? 네빌라는 요즘 어떻게 지내지?”

“나야 뭐, 잘 지냈지. 네빌라는 요즘 수련하느라고 바쁘더군.”

“수련이라고? 허허…… 욕심도 참 많군.”

에단과 전사는 시시콜콜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어?”

마을에 들어서자 알아보는 자들이 많았다. 에단은 희미한 미소를 걸치며 그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짧은 인연이었고, 이 마을에서 그리 오래 지낸 것도 아니었지만, 묘한 아늑함과 유대감이 느껴졌다.

에단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썩 나쁘지 않았다.

“잠깐 유론다를 만나고 싶은데.”

마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던 에단이 본론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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