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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369화 (369/398)

◈ [369화] 작전 준비 (1)

“……하하.”

소식을 전해 들은 메이가 헛웃음을 흘렸다.

에단이 살아 있다.

처음 에단의 실종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사실상 그것은 사망 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지하.

대륙의 온갖 정보를 다루는 정보 길드조차 지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한 가지.

지하의 환경은 인간이 살아갈 수 없다.

지하의 대기는 극독과 같았고, 그곳에 도사리는 마수와 마족, 그리고 재앙과 같은 힘을 지닌 군주들은 감히 인간이 대적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한 조직의 수장으로서 그녀는 냉정함을 유지해야 했다.

머리가 흔들리면 모든 게 흔들린다. 그녀는 언제나 위엄을 보여야 했다. 조직원들이 불안함을 느끼는 순간, 조직의 수명은 끝이었다.

한니발은 발 빠르게 반응해 여러 안전장치를 확보했다. 역시 그의 사업적 수완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녀 또한 포지션을 바꾸었다.

전쟁이 끝나고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을 때 중립적인 움직임을 보여야 했다.

한쪽에 치우쳐진다는 것은 확실한 적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적은 가볍게 여길 상대가 아니었다.

자그마치 제국.

지금은 비록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고는 하지만 제국은 제국이었다.

대륙을 주름잡는 거대 세력.

그런 제국과 척을 지는 것은 좋지 않았다.

아무리 정보 길드를 비호하는 세력이 블란테라고 하지만, 정보 길드 입장에서는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활동 반경의 제한은 그만큼 정보의 입수가 힘들어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했으니.

‘우리가 협력하는 대상은 블란테이기도 했지만…… 중심은 에단이었어.’

그런 에단의 사망 소식.

그 소식에 메이는 큰 충격을 받았다.

에단은 그간 많은 일을 벌였다.

아카데미를 접수하고, 신성 왕국을 무너트렸다. 더불어 수인들을 규합했다.

이제 수인들은 더 이상 숨어지낼 필요가 없었다.

묘족인 메이에게는 상당히 큰 사건이었다.

‘걱정을 시키기는.’

그 모든 게 무너질 위기였지만, 에단이 살아 있다는 게 확실해졌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 * *

에단은 얘기를 끝내고 위로 올라갔다. 위에는 움츠린 채 눈치를 살피는 로이마르티가 있었다.

“볼일은 끝나셨습니까? 하하…….”

비굴하게 웃는 로이마르티.

에단은 그 모습을 보며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에 휩싸였다.

뭔가…… 묘한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도 엄연히 지하의 군주가 아니던가?

한 국가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자가 저렇게 바뀌다니…….

‘뭐 내 알바는 아니지.’

에단은 순식간에 죄책감을 지워 냈다. 어차피 내 잘못도 아니지 않은가?

“어. 다시 내려가 봐. 내가 중간에 마법을 끊었거든.”

“끄, 끊으셨다고요?”

“어. 뭐 문제 있어?”

“그, 그것이 나름 치밀한 구조로 되어 있어서 강제로 마법을 중단시키면 복구하기가…….”

충격받은 얼굴로 횡설수설하는 로이마르티.

에단은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다시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네?”

“그러니까. 다시 하면 되잖아.”

“아…….”

로이마르티가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에단은 추욱 늘어진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고생하고. 아, 그리고 조만간 동료 하나가 올 거야.”

“도, 동료 말입니까?”

“어. 록사자라고, 군주라고 하던데 아는 거 있나?”

“이름은 들어 봤는데…… 혹시 무슨 이유 때문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녀석도 지상에 관심이 있는 것 같더라고. 이왕 하는 거 한 명보다는 두 명이 낫잖아? 오면 잘 대해 주고.”

“아…….”

로이마르티는 일면식 한 번 없는 록사자에 대해 묘한 연민을 느꼈다.

그래도 명색이 군주 중 하나일 텐데…….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도도 느꼈다. 아직 만나지도 않았지만, 동료가 생긴 기분이었다.

혼자서만 이런 처지에 놓이다니…… 그건 너무 억울한 일이 아닌가.

로이마르티는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의 입꼬리가 씰룩씰룩 거렸다.

“그렇게 좋냐? 그럼 고생하고.”

에단이 팔을 휘저으며 멀어졌다. 입꼬리를 씰룩이던 로이마르티가 다시 고개를 돌려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을 바라봤다.

“…….”

암울함과 우울함이 다시 로이마르티를 덮쳤다.

* * *

에단이 저택의 복도를 걸었다.

카무잔이 향했을 장소가 대충 유추되었다. 에단이 응접실로 향하자 카무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단이 응접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있는 카무잔과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아모드라가 보였다.

아모드라는 에단을 보자마자 입을 열었다.

“……이 녀석 좀 빨리 치워 줬으면 좋겠는데.”

“치우기는 뭘 치워?”

카무잔이 코웃음을 치며 찻잔을 들었다.

‘상황이 대충 예상이 가는군.’

보지는 않았지만 유추는 가능했다. 에단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쯧쯧, 너는 그래서 안 되는 거다. 기껏 대군주라는 놈이 허세만 가득해서는…… 진정한 전사는 너 같은 녀석이 아니야. 오히려 이 친구가 훨씬 낫다고 할 수 있지. 하루 종일 화려한 의자에만 처 앉아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앉아 있는 건가? 좀도 안 쑤셔? 그럴 거면 차라리 밖으로 나가서 마수나 때려잡는 게…….”

“……더는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라, 카무잔.”

“꼬우면 붙자니까? 난 지금 당장 여기서 해도 괜찮은데.”

까딱까딱.

검지를 까딱이며 도발하는 카무잔. 에단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대군주의 대화라기에는 너무 유치했기 때문이다.

‘이거야 원…… 휴고랑 가토의 대화보다도 심하군.’

카무잔의 속셈이 빤히 보였다. 아모드라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그만. 거기까지 하고…… 할 말이 있는데.”

카무잔과 아모드라의 시선이 에단에게로 향했다.

두 대군주의 시선이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군주를 한 명 더 찾아야 될 거 같은데.”

“군주? 이유가 있나?”

에단은 대략 지상의 상황과 지상에 관심을 가지는 군주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름은 록사자라고 하던데 아는 바 있어?”

“아니.”

“전혀 모르겠군.”

아모드라와 카무잔의 반응에 에단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나름 군주라는 자 아닌가?

‘뭐 그러니까 지상에 관심을 가지겠지.’

고개를 끄덕인 에단이 말했다.

“그럼 내가 알아봐서 다녀오려고 하는데…… 같이 갈 생각 있어?”

에단이 카무잔을 바라보며 묻자, 카무잔은 고민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밌겠군. 여기에만 있으려니 꽤나 좀이 쑤셔서 말이야.”

“좋아. 이번에는 좀 조용히 다녀오자고.”

“노력해 보지.”

에단과 카무잔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 * *

그 다짐은 무의미했다.

정보를 입수한 에단과 카무잔이 떠났다. 곧 회담이 있었기에 빠르게 끝낼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았기에 록사자의 도시에는 금방 도착했는데, 록사자의 도시는 로이마르티의 도시보다도 꽤나 폐쇄적인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아무래도 군주의 성향 탓으로 보였는데, 카무잔의 성격상 경비대의 도발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기껏 조용히 처리하려고 존재감까지 지웠건만…….

“내가 말했지. 너 같이 뭣도 없는 새끼가 여기서 까불면…….”

“까불면 뭐. 어떻게 되는데.”

카무잔이 존재감을 개방했다. 대군주의 위압감이 일대를 휩쓸었다. 마치 포악한 폭풍이 휘몰아친 것 같았다.

으르렁거리던 경비병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카무잔은 콧방귀를 끼더니 그대로 팔을 휘저었다.

콰아아앙―!

강렬한 굉음과 함께 성벽이 그대로 증발했고, 경비병들은 시체조차 남기지 못했다.

군대로 보이는 이들이 소란을 감지하고 달려들었다. 발 빠르게 움직인 그들은 충격적인 광경에 입을 벌렸다.

성벽이 사라졌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 광경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웅장함과 견고함을 자랑하던 성벽이 순식간에 소명했다. 그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병사들과 전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긴 은발의 남자.

막대한 존재감.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떨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감히 대항하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카무잔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주인 데려와.”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평소라면 들을 것도 없이 무기를 뽑았겠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병사들은 얼어붙은 채 겁에 질린 눈으로 카무잔을 바라보고 있었다.

“병신들.”

어깨를 으쓱거린 카무잔이 손가락을 튕겼다. 가벼운 손가락질에 병사들이 깔끔하게 증발했다.

에단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잔혹하다면 잔혹한 모습이다. 카무잔은 누군가를 죽이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오히려 카무잔 본인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면 벌레보다도 낮게 여긴다.

혐오나 경멸의 감정도 아니다.

저런 이들이 얼마나 죽건 카무잔에게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흐음…… 다시 찾아볼까?”

카무잔이 뺨을 긁적이며 에단을 바라보자 에단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간인은 죽이지 말자고.”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나를 아모드라처럼 여기지 말라고.”

“그거 실수했군.”

에단과 카무잔은 아모드라의 뒷담을 나누며 도시에 진입했다.

* * *

콰아아아앙―!

강렬한 굉음.

록사자는 화들짝 놀라며 반응했다.

‘습격인가?’

지하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세계. 군주의 자리는 누가 탐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루도 안심할 수 없는 자리였다.

군주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 부와 명예, 그리고 도시를 거머쥘 수 있었지만, 그것은 바람 앞에 촛불과도 같았다.

수하들의 충성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들이 충성하는 것은 록사자가 아닌, 군주의 직위와 힘이었다. 더한 강자가 나오면 곧바로 고개를 돌릴 것이다.

록사자는 그것에 환멸을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록사자는 엄연한 군주였다. 그것도 중위권 군주.

‘일대에 나를 노릴 만한 마족은 없던 걸로 기억하는데.’

록사자는 경계심이 강한 군주였다.

위험의 싹은 미리 제거해 뒀다. 이제 근방에 자신을 위협할 만한 세력과 마족은 없었다.

‘감히 나를 노리다니.’

이번 일은 오히려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록사자는 자신의 건재함을 증명하고, 다른 이들에게 경고할 생각이다.

이건 본보기였다.

“감히 어떤 버러지 같은 놈들이……!”

록사자가 맹렬한 분노를 토해 낸 그때.

뚝.

그의 분노가 멎었다. 불을 토해 내던 그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길을 잃은 것처럼 흔들리는 동공.

뭔가가 이상했다. 아니, 아주 잘못되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고작해야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마족 따위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낮은 서열의 군주 정도로 여겼다.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록사자는 자신의 힘에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건.

머리카락이 쭈뼛거렸다.

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가신들이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록사자를 바라봤다.

록사자는 조심스럽게 로브를 벗었다.

‘도망친다.’

결정은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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