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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367화 (367/398)

◈ [367화] 진실 (6)

크리스토는 편법을 원했다. 세상의 비밀과 신비를 탐구하여 룬어를 얻었다.

룬어.

기원을 알 수 없는 고대의 힘.

오직 선택받은 자나 드래곤만 다룰 수 있다고 알려진 이 룬어는 이제 그 누구도 다룰 수 없는 사특한 것이 되었다.

룬어는 원인을 알지 못하는 이유로 타락했다.

애당초 기원조차 모호한 힘이었다. 크리스토는 제국 전역을 뒤져 간신히 룬어 하나를 손에 넣었다.

룬어는 크리스토의 비수였다.

20대 중반의 나이.

그 시간 동안 기껏해야 이룩할 수 있는 경지는 고작 마스터가 한계였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성취라고 할 수 있다.

마스터의 존재 유무에 따라 소왕국은 위신이 달라진다.

국력이 약한 왕국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마스터를 영입하기 위해 기를 쓴다.

돈와 명예, 작위, 공주.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마스터를 데려오려고 한다.

마스터는 기사들이 목표로 하는 꿈이자 염원이었다.

평생을 정진했음에도 마스터의 문조차 바라보지 못하는 자들이 수두룩했다.

크리스토는 고작 20대의 나이에 마스터에 올랐음에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부질없는 힘이었기 때문이다.

크리스토는 삶을 거듭하면서 무력감을 통감했다.

개인의 힘은 아무짝에 쓸모없다. 알량한 재능을 뽐낼 수 있는 것은 결국 범인(凡人)들 사이에서뿐이다.

마스터?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크리스토가 상대할 것은 인간들로 이루어진 군대가 아니었다.

인간보다 훨씬 강하고 잔혹한 괴물들을 상대하려면, 마스터 하나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크리스토는 방법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얻은 게 바로 이 룬어였다.

룬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었다. 그 근원조차 알 수 없는, 조사하는 것이 의미 없는 힘.

회차를 반복하면서 크리스토는 룬어에 대해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이 룬어를 사용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라는 것.

인과의 밖에 서 있는 자만이 룬어를 사용할 자격을 얻는다.

그렇기에 크리스토는 에단이 회귀자라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에단이 크리스토의 손끝을 바라본다. 검게 일렁이는 부정한 기운.

이전에 상대한 경험이 있던 룬어였다.

에단 또한 크리스토가 룬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만일 에단이 사전에 룬어를 습득하지 못했거나, 룬어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에단은 크리스토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회귀자만 다룰 수 있다고?’

크리스토가 내뱉는 모든 말을 신용할 수는 없었다. 일단 당장 내뱉은 저 말만 하더라도 진실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강한수와 에단 모두 룬어를 다루지 못했을 테니까.

‘나를 떠보는 말이거나,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건데.’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게 맞을까.

크리스토는 자신의 패를 내보였다. 이제는 에단이 보여 줘야 할 차례였다.

짧은 시간 동안 에단은 득실의 계산을 끝냈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미안하게 됐는데, 나는 회귀자가 아니다.”

― ……그런가?

크리스토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여전히 의중을 알 수 없는 눈빛이었다.

“네가 룬어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를 말해. 어쭙잖게 떠보지 말고.”

― 이거 참 날강도가 따로 없군. 맨입으로 그걸 다 불란 말인가?

크리스토의 태도가 다시 전처럼 능청스러워졌다. 에단은 이제 저 모습에 대해 조금 알 것 같았다.

저건 가면이었다. 본심을 숨기기 위한 가면.

“싫으면 말든가. 아쉬운 건 그쪽 아닌가?”

― 하하하, 정곡을 찔렸군. 나도 룬어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해. 간신히 알아낸 것도 이거 하나가 전부지. 룬어를 다룸에 있어 최소한의 자격은…… ‘인과’를 비트는 거야. 내가 짊어진 게 저주인지 축복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처럼 삶을 반복하는 자와 같이.

이건 몰랐던 정보였다. 그렇다면 모든 게 납득이 된다.

― 이제 슬슬 너도 말을 해 주지 않겠나? 나는 가진 패를 전부 깠는데 너는 계속 입을 다물고 있다면 이건 꽤나 불공평하지 않나?

“그래. 나도 받은 게 있으니 그만큼 돌려주도록 하지. 나는 회귀자가 아니야. 하지만 그 비틀린 ‘인과’에는 어느 정도 해당되는 것 같군.”

― 호오…… 좀 자세히 말해 줬으면 싶은데.

기왕 결정을 내린 거, 에단은 가감 없이 말을 내뱉었다.

“난 이 세계 사람이 아니거든.”

― …….

“원래 내 이름은 류태신. 어차피 자세히 말해 봤자 모르잖아?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뜨니 웬 돼지 같은 몸에 들어와 있더군.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는 살도 좀 빼고, 살기 위해서 아등바등하니 지금 이렇게 됐네.”

― ……그 말 사실인가?

“내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나? 정 못 믿겠으면 내 원래 모습에 대해서도 말해 줄 수 있는데.”

― …….

크리스토의 얼굴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이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다른 세계라니.

이미 그가 겪는 회귀자의 삶 또한 전례를 찾아볼 수 없었다.

축복인지 저주인지조차 알 수 없는 이 삶도 황당무계한데, 하물며 다른 세계라니.

생각의 정리가 필요했다.

에단이 크리스토의 말을 전부 신용하지 못하듯, 크리스토도 마찬가지로 에단의 말을 모두 믿을 수 없었다.

― ……그렇다면 그 모든 선택들이 모두 즉흥적으로 판단해서 행동했다는 것인가?

그간 에단이 보인 행보는 매우 과격하고 급진적이면서도, 동시에 날카롭고 치명적이었다.

어느새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에단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고, 크리스토가 지금껏 쌓아 왔던 모든 계획과 세력들이 무너져 내렸다.

“왜. 그러면 안 돼?”

― 그렇진 않지. 단지 꽤나 놀라워서 말이야.

“시작은 네가 먼저 했잖아. 내가 원래부터 당하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말이야.”

― 하하. 이것 참 난처하게 됐군. 앞으로가 걱정이야. 또 자네 같은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니. 전체적으로 계획을 손봐야 할 필요가 있겠어.

“그게 무슨 소리야?”

에단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포기하려고? 미안하지만 난 포기할 생각이 없어.”

― 아, 이거 실언했군.

“한 가지만 더 묻자, 너랑 신성 왕국이 준비하던 그거는 타이탄인가?”

― 미안하지만 나도 모르는 일이네.

“뭐?”

― 과연 그게 타이탄인지, 아니면 타이탄을 흉내 낸 실패작인지 모른다는 소리야.

“더 자세히 설명해 봐.”

― 몰랐는데 자네는 사람 귀찮게 하는 재주가 있어.

어깨를 으쓱인 크리스토가 말을 이어 나갔다.

처음 회귀자라는 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크리스토는 선택을 달리했다.

지하의 침공.

그것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성 왕국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전 군주들과의 전쟁에서 신성 왕국은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신성력은 마족들을 잠시 저지시켰지만, 정말 잠시일 뿐이었다.

마족들은 다시 진격을 해 나갔다. 교황과 추기경을 포함한 온 대륙민들이 한마음으로 기도했다.

부디 당신의 가녀린 아이들을 구원해 달라고.

하지만 그들이 믿는 신은 그 말에 응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점차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다룰 수 있는 신성력이 약해지고 있었다.

믿음의 뿌리가 흔들리자, 신성 왕국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성 왕국은 가장 먼저 멸망하게 되었다.

두 번째 삶에서 크리스토는 꽤나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되었다.

교황을 포함한 신성 왕국의 주축들은 신을 믿지 않았다.

그것뿐만이 아닌, 점차 그들이 다룰 수 있는 신성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다.

신성력의 원천은 믿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재능의 영역이었고,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었다.

제아무리 독실하고 신실하다 하더라도 재능이 없다면 신성력을 다루지 못한다.

교리를 따르고 선을 베풀어도, 태생적 한계는 넘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신성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이 얼마나 불합리한 구조란 말인가?

과연 그들이 믿고 의지하는 신은 실재하는가?

신자로서 해서는 안 될 불경한 생각이었지만, 그 생각은 급격하게 번져 나갔다.

교황과 추기경들은 그 사실을 두려워했다.

신이 없다는 것을 두려워하는 게 아닌, 자신의 권력인 신성 왕국의 영향력이 약해질까 두려워했다.

그렇기에 그러한 사실들을 철저히 은폐했다. 그러고는 방법을 강구해 나갔다.

조급함과 초조함을 느낀 그들은 결국에 금기에까지 손을 대고 말았다.

그 누구보다 흑마법사를 규탄하던 신성 왕국이 흑마법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찾아낸 대책은 대답 없는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닌, 대체할 수 있는 힘을 찾는 것이었다.

― 타이탄. 녀석들은 그걸 원하더군.

과연 정말로 실존했는지조차 의문인 고대의 종족.

지상 최대의 생명체라는 드래곤조차 범접할 수 없다고 알려진 그야말로 모든 생명체의 정점.

신성 왕국은 신을 향해 손을 뻗다가 파멸했다고 알려진 타이탄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대륙 전역에 뻗친 막강한 영향력을 이용하여.

결국 신성 왕국은 타이탄이 정말 실존했다는 것을 확인한다.

― 눈으로 확인했으니 이제 뭘 하겠나? 당연히 욕심을 냈지.

그들은 타이탄의 힘을 손에 넣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당연히 쉬운 일은 아니었다. 윤리의 어긋나는 끔찍한 행위를 거듭하면서도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시행착오를 겪을수록 연구는 진전되었다. 하지만 진전되는 그 속도가 매우 더뎠다.

신성 왕국의 추악한 민낯을 알게 된 크리스토는 역겨움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가능성을 엿봤다.

아무리 신을 부르짖어 봤자, 신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는다.

살기 위해서는 각자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 방법이 비록 불경하더라도.

크리스토는 시행착오를 줄일 편법을 지니고 있었다.

신성 왕국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 제국의 힘을 이용해 신성 왕국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동맹이나 다름없는 관계였다.

막강한 힘과 재화를 지닌 제국이 지원하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연구는 진전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결말은 바뀌지 않은 채 제국은 멸망했다.

크리스토는 또다시 과거로 돌아가 삶을 반복했다.

그는 조금씩 망가지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모두 지하의 대한 증오였다.

― 여기까지가 대략적인 내용이다. 이번 실험체가 가장 가능성이 있었지. 결국 빼앗기고 말았지만.

“빼앗은 놈에 관해서는 알고 있나?”

― 지금 나와 대화하고 있는 자…… 아닌가?

역시.

이 녀석은 페온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머릿속에 돌아다니던 퍼즐이 하나씩 맞춰진다.

페온, 블란테, 죽은 나무, 세계수, 성검, 키아나, 군주, 룬어, 타이탄, 수인, 갑작스러운 빈센트의 변화.

마지막에 보였던 페온의 모습.

‘이 새끼.’

페온의 목적과 의도가 예상이 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던 안개가 걷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퍼즐이 맞아떨어지고.

‘이제야 알겠어.’

모든 비밀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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