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4화] 진실 (3)
“……계시, 아니, 연락이 왔다.”
도미닉이 말했다. 퀭한 얼굴을 한 고위 마법사들이 일제히 도미닉을 응시했다.
로이마르티의 대한 도미닉의 평가는 상당히 낮아졌다. 도미닉도 수준에 오른 흑마법사였다.
그 상황을 보고도 뭔가 이상한 걸 느끼지 않는다는 게 더 이상했다.
‘……설마 날 속일 줄이야.’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도미닉이 그간 보여 준 복종과 충성심, 그리고 가져다가 받친 공물만 하더라도 얼마인가.
그런데 감히 나를 우롱해?
떠올릴 때마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특히 오르번을 마주칠 때마다 수치스러움과 민망함 때문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제기랄…….’
얼마나 우습고 같잖겠는가.
대군주는 지랄…… 그 새끼만 떠올리면 아주 짜증이…….
물론 군주도 충분히 엄청난 것은 맞았다. 군주에게 있어서 인간은 벌레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자신이 속았다는 것이었고, 그날 보니 에단이라고 불리우는 인간은 대군주를 마치 친구처럼 대하지 않았는가?
도미닉은 그때 받은 충격을 잊을 수가 없었다. 뇌리에 꽂힐 정도로 강렬한 충격이었다.
‘어떻게 대군주랑…….’
대군주의 위압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차원문을 통한 대면이었다. 본래의 지닌 존재감의 절반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도미닉은 순간 혼절할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마치 찍어 누르는 듯한.
감히 마주하는 것조차 허락을 구해야 할 것 같은 압도적인 기세.
그 모습을 상기한 순간 심장이 방망이질을 시작했다.
도미닉은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러고는 침착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바로 준비하지.”
처음에는 군주의 명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한 명의 흑마법사로서의 호기심과 탐구심으로 움직였다.
지상과 달리 지하는 대량의 죽은 마나가 대기 중에 퍼져 있다.
죽은 마나는 사기(四氣)이기도 하고, 흑마법에 사용되는 연료이기도 했다.
죽음에서 비롯된 기운.
흑마법사는 그것에 매료된 자들이다. 순리에서 어긋나는 힘.
신실한 사제라면 불경하다며 눈을 까뒤집겠지만 뭐 어쩌란 말인가.
세간의 눈초리를 신경 썼다면 애당초 흑마법이란 길에 발을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각 분야에 있어 정점에 오른 마법사들이었다.
도미닉은 흑마법사이기는 했지만, 편협한 사고에 휩싸이지는 않았다.
한 명의 마법사로서 이들을 인정했다.
‘즐겁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음습한 공간에서 홀로 고독하게 연구를 해 나갔다.
양지는 위험했다. 그라고 어째서 동굴에만 있고 싶겠는가.
흑마법사는 사실상 멸족한 상태였다. 사특한 흑마법사가 지상에 출현하는 순간 순식간에 성기사들이 들이닥칠 터다.
‘그런데 설마 신성 왕국이 멸망했을 줄이야.’
뭔가 허탈한 느낌도 들었다.
뭐가 어찌되었든 지금의 시간은 도미닉으로서는 꽤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 정도 준비면 소환에도 지장이 없는 것 아닌가?”
오르번이 물어왔다.
오래된 흑마법사라는 명성만 들었을 뿐, 실제로 오르번을 보는 것은 도미닉에게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실제로 본 오르번은 도미닉의 생각보다도 더 뛰어난 흑마법사였다.
고명한 지식과 식견을 들으면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연구와 작업의 속도가 홀로 연구할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필요한 재료를 구하기 위해 외출할 필요도 없었다.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그 즉시 상태 최상인 재료가 도착한다.
입수 난이도 따위는 상관없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거지?
그 이유를 들었을 때의 충격은 잊을 수가 없었다.
용병계, 정보 길드, 대륙 최대의 거상, 심지어 블란테라는 막강한 무력까지.
‘어처구니가 없군.’
목적을 위해 즉시 움직이는 세력들이었다.
이만한 세력들이 움직이는데 얻지 못할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당장 이들이 작정하고 움직인다면 작은 왕국쯤은 하루 만에 증발시킬 수 있을 것이다.
도미닉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잡념을 털어 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쪽에서 의지만 있다면 소환도 문제는 없을 거다.”
도미닉도 마족이나 마수, 마물들만 소환했을 뿐. 군주나 인간을 소환한 적은 없었다.
‘정말 지하에서 인간이 살아 있다니.’
하나같이 충격적인 일들뿐이었다. 직접 보지 못하고, 듣기만 했다면 결코 믿지 못했을 일들.
오르번이 마법진의 중심에 들어서고, 헨리와 에르미온, 데아티르가 보조했다.
헨리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했다. 헨리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마나의 흐름을 짚어 내는 수준은 다른 대마법사를 아득히 뛰어넘었다.
‘과연 저게 인간인가?’
대마법사조차도 어렴풋이 감지해 내는 수준이었다.
시전하는 마법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설계도 복잡해진다.
거미줄보다 복잡한 흐름에서 이상이 있는 부위를 즉시 발견해 내고 보수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나같이 괴물들.’
도미닉은 허탈함을 느끼며 마법을 발동했다.
우웅.
공방을 가득 채운 마법진이 요사스러운 빛을 뿜어낸다.
“마법으로 얘기는 전했어. 누가 찾아와도 놀라지 마.”
에르미온이 말했다. 다들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매우 높은 난이도의 마법이었다. 자칫 실수하면 이 장소가 그대로 증발할 수도 있었다.
그만큼 투입되는 마나의 양이 많았다. 중심은 오르번이다.
흑마법의 조예에 대해서는 오르번이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오르번의 보조였다.
오르번이 마법을 시전하자 모두 집중하기 시작했다.
검은 안개가 뿜어져 나온다. 공방에 죽음의 기운이 짙게 깔린다.
죽은 마나가 어째서 죽은 마나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서늘하고 꺼림칙한 죽음의 기운이었다.
중얼중얼.
오르번이 차게 식은 표정으로 쉬지 않고 주문을 되뇌었다.
뿜어져 나오는 빛이 강해진다. 검은 안개가 형체를 갖추더니 커다란 통로처럼 바뀌었다.
마법의 발현은 성공이다. 서서히 통로 너머의 공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에단이 씨익 웃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금방 다시 봤네?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라.”
오르번이 피식 웃으며 무심하게 반응했다. 그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공방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도, 도련님!”
가토와 휴고, 그리고 네이드까지 한 걸음에 달려왔다.
“저, 정말 도련님이야!”
휴고가 폴짝거리며 에단을 바라봤다. 어느새 휴고의 눈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 오, 휴고. 못 본 사이에 좀 큰 것 같다?
에단이 기특한 표정으로 휴고를 바라봤다. 휴고는 눈물을 쏟기 직전의 표정으로 얼굴로 훌쩍거리고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도련님은 별일 없으셨나요? 저, 저는 도련님이 어떻게 된 줄 알고…….”
울먹이면서 횡설수설하는 휴고의 모습에 그 자리에 있던 이들 모두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 똑바로 말해. 당최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야, 가토. 나 없다고 훈련 소홀히 하거나 그러진 않았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짜식이 머리 좀 컸다고 말투 봐라?
“……하하.”
휴고에 비해서 덜하다는 것뿐이지 가토의 눈시울도 붉어져 있었다. 에단은 묘한 표정으로 그 둘을 바라보다가 네이드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 얼마나 지났다고 더 폭삭 늙은 것 같네. 이제는 좀 은퇴하고 쉬어야 하는 것 아니야?
“누구 덕분에 마음고생을 좀 해서 이렇게 됐습니다.”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네이드. 달라진 것 없는 모습에 에단이 피식 웃었다.
― 아버지는.
“바로 오신다고 합니다.”
― 나머지 애들은 별일 없지?
“네. 이미 도련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소문이 퍼져서 많은 반향이 일고 있습니다.”
― 그전까지는 뒈졌다고 다들 좋아라 했나 봐?
“……그런 자들도 있었죠.”
순간 네이드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한기가 느껴지는 분위기에 휴고와 가토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렇게 에단과 네이드가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거칠게 열린 문안으로 빈센트가 들어섰다.
뚜벅뚜벅.
등장만으로도 모두를 압도하는 존재감.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빈센트는 천천히 에단 앞으로 다가갔다.
“…….”
― 잘 지내셨습니까?
에단은 특유의 능청스러운 말투로 빈센트에게 인사했다. 빈센트는 물끄러미 에단을 바라보다가 입술을 떼었다.
“멀쩡해…… 보이는군.”
바싹 마른 목소리.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위엄과 권위가 느껴지는 목소리였지만, 늘 곁에서 보좌하던 네이드는 알 수 있었다.
빈센트는 지금 매우 안도하고 있었다. 네이드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부자의 상봉을 지켜보고 있었다.
― 오, 저자가 네가 말한 그 녀석인가?
그때, 호기심을 드러내는 목소리가 있었다.
에단 곁에 있던 카무잔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순간, 빈센트와 카무잔의 시선이 마주쳤다.
“……!”
작게 미소 짓고 있던 빈센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눈을 부릅뜬 채 통로 너머의 카무잔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콰르릉!
강렬한 충격이 머릿속을 휩쓸었다.
손이 축축하게 젖어 들고 소름이 빗발친다. 빈센트의 세상이 부서진다.
쿵쿵쿵.
심장이 격렬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호승심이 일었다.
빈센트는 당장이라도 검을 뽑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 호오.
카무잔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는 정말 재밌고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턱을 매만졌다.
― 저자가 네 아비라고?
― 그래.
― 이것 참 놀라운데.
― 뭐가?
― 인간이 저 경지까지 올라갈 수 있을 줄이야. 생각을 달리해야겠어.
― 그 정도인가? 전에는 지금 나라면 넘었을 거라며.
―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까 아직은 힘들어.
― 제기랄.
에단이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예절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대화였지만 에단을 아는 이들에게는 놀랍지 않은 일이었다.
빈센트는 충격받은 표정 그대로 입을 열었다.
“자네는 누구지……?”
― 카무잔.
카무잔은 짧고 담백하게 대답했다. 이름 석 자. 그거면 충분했다.
“……그렇군.”
빈센트는 말을 곱씹듯이 중얼거렸다. 어지간한 일 앞에서도 동요하지 않는 빈센트가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한 반응을 보인 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휴고, 가토, 네이드 모두가 눈을 부릅뜬 채로 카무잔을 바라봤다.
도대체 이자는 뭐란 말인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파멸적인 존재감이었다.
이건 일개 개인이 가져서는 안 되는 힘이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재앙에 가까웠다.
손이 축축하게 젖어들어 갔다. 싸워서는 안 된다. 시간을 버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기세를 표출하거나, 살기를 쏘아 낸 것도 아닌, 순수한 존재감만으로도 마스터를 가볍게 압도한다.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네이드는 떨리는 동공으로 빈센트를 바라봤다.
씨익.
빈센트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표정이 말해 주고 있었다. 그는 긴장한 와중에도 환희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목표를 드디어 발견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