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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359화 (359/398)

◈ [359화] 조우 (2)

오르번은 보고를 위해 곧장 빈센트의 집무실로 향했다. 복도를 걷는 오르번의 발걸음이 경쾌했다.

“오르번 님?”

“용건이 있어서 왔다.”

집무실 앞에 서 있던 네이드가 오르번을 지그시 바라봤다. 가만히 오르번을 응시하던 네이드의 가는 눈이 점점 커졌다.

“설마…….”

“욕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명줄도 더럽게 길더군.”

오르번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네이드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들어가시죠.”

“보고보다 먼저 말인가?”

“한번 혼나고 말겠습니다.”

네이드가 빙그레 웃으며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네이드 나름의 감사 표현이었다.

피식 웃은 오르번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빈센트가 고개를 들어 오르번을 응시했다. 오르번은 서론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멀쩡히 살아 있더군. 그놈.”

“……!”

빈센트의 눈이 커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쥐고 있던 펜을 으스러트리고 말았다.

“후우…….”

빈센트가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감정을 진정시켰다.

살아 있었다.

사실 체념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수많은 것을 잃어 왔다.

아내를 잃었고, 형제를 잃었고, 장남을 잃었다.

모두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었다.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가주는 과분한 자리다.

나는 그저 한낱 칼잡이일 뿐이다.

가주라는 자리는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 모든 가신들과 기사들은 가주만을 바라보고 있다.

묵직한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숨이 막힌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 명의 칼잡이로 돌아가고 싶었다.

누구를 책임지지도, 누구를 따르지도 않는 그런 한낱 전사.

하지만 그는 블란테의 주인이었다.

자기 손으로 아들을 죽이고, 또다시 아들을 잃을 뻔했다.

그랬음에도 빈센트는 복수를 하지 못했다. 높은 산처럼 크고 강인하던 빈센트는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웃기는군.’

실망만 안겨 주던 망나니 한 명의 생존 신고가 빈센트를 구원시켰다.

실소를 흘린 빈센트가 오르번을 응시했다.

“녀석은 뭐라고 했지?”

“오랜만이라더군.”

“큭큭큭.”

빈센트는 기가 막힌다는 듯 이마에 손을 얹고 웃었다.

“건방진 놈.”

“동감이야.”

오르번과 빈센트는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후우…… 고맙군. 반드시 보답은 하지.”

“필요 없어. 감사 인사를 받고자 한 일도 아니고……. 나도 꽤나 흥미로웠으니까.”

오르번은 속세와의 연을 끊고 잠적해 있던 흑마법사였다. 모든 것이 시들했고, 무던해졌다.

그러던 도중 어떤 망아지 같은 놈의 호출을 받았다.

흥미로웠다.

처음 에단을 봤을 때는 인간이 아닌 줄 알았다. 온갖 것들이 뒤섞여 있는, 오르번도 처음 보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 이후로는 꽤나 즐거웠다.

드래곤의 시체를 다루고, 간만에 수인들을 만났다.

간만에 탐구심과 의욕이라는 것을 느꼈다. 지하의 문을 열기 위해 연구할 때는 식어 있던 열정에 불이 붙는 것 같았다.

‘다 늙은 주제에 말이야.’

오르번이 피식 웃었다.

잠시 동안 마주했던 대군주를 떠올리니 다시금 황당해졌다.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긴 했지만 대군주를 친구 대하듯 하다니.

닳고 닳은 오르번도 얼어붙을 정도의 존재감이었지만, 에단은 그런 자를 아무렇지 않게 대했다.

피식 웃은 오르번이 몸을 돌렸다.

“그럼 보고도 끝냈으니 이만 돌아가지.”

“다시 연구실로 가는 건가?”

빈센트가 묻자, 오르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간만에 좀 쉬어 보려고.”

술이라도 좀 마시면서.

* * *

“휴고∼!”

헨리가 허공을 둥실 떠다니면서 휴고에게 다가갔다. 훈련 중이던 휴고는 눈을 끔뻑이며 헨리를 바라봤다.

“헨리 님?”

“속보! 속보!”

헨리가 호들갑을 떨어 대며 말하자 휴고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매일 마셔 대더니 이제 정말 머리가 이상해진 건가?’

걱정과 함께 측은지심이 들었다.

휴고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헨리를 바라보자 헨리는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끔뻑였다.

“……왜 그렇게 봐?”

“아닙니다.”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휴고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헨리가 방방 뛰며 소리쳤다.

“에단 님이 살아 있다고!”

“……네?”

휴고의 눈이 커지며 호흡이 가빠졌다.

“그, 그게 정말인가요?”

“응! 진짜 술도 못 마시고, 잠도 못 자면서 개처럼 구른 보람이 있어!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타닷!

휴고가 몸을 돌려 어디론가 달려갔다. 한창 말하던 헨리가 멍한 표정으로 멀어지는 휴고를 응시했다.

“휴고…….”

헨리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 들어갔다.

* * *

“가토!”

휴고가 연무장의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가토는 학생들의 검술 수업을 지도하고 있었다.

“휴고? 지금은 수업 중이니…….”

가토가 눈매를 좁히며 말하자 휴고가 감정이 북받치는 얼굴로 가토를 향해 손짓했다.

“…….”

휴고의 표정을 보고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가토가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무슨 일이야?”

“에단 도련님이…… 살아 있대!”

“……뭐?”

가토의 눈이 커졌다.

그는 놀란 표정으로 말을 더듬으며 재차 물었다.

“그, 그게 정말이야?”

“응, 방금 헨리 님이 말씀해 주셨어. 지하와 연락하는 데 성공한 모양이야!”

“하하…….”

가토가 넋 나간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에단이 살아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 있는 불안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과연 정말 살아 있는 게 맞을까?

벌써 여론은 에단이 죽은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기사들과 가문의 사람들도 마지막 혈족인 카론에게 노골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혐오스러웠다.

모두 자신의 선배들이었지만, 그러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저게 과연 진짜 기사된 자의 모습이란 말인가?

내가 꿈꿔 오던 기사의 모습이 저런 역겨운 형태인가?

묵묵히 검을 수련하며 치열하게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기사의 모습이 아닌, 주군에게 충성하며 자신의 검과 충정을 바치는 것이 아닌.

그저 권력을 좇는 박쥐 같은 모습.

가토와 휴고는 에단에게 충성했다. 기사 서임을 받으며 다짐했다.

내 검은 오직 에단만을 위해 휘두르겠다고.

그게 가토의 기사도였고, 명예였다.

휴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낱 하인이라 여기며 무시당하던 과거가 있었지만, 지금은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친우이자 동료였다.

그렇기에 두려웠다.

만일 에단이 죽었다면 가토의 검은 어디를 향해야 한단 말인가?

홀로 가문을 떠나 제국과 싸워야 한단 말인가?

아니면 사람을 모아 전쟁을 준비해야 한단 말인가?

복수만을 위한 복수귀가 되어.

그게 에단이 바라는 바인가?

정말로?

가토는 점점 자신의 감정에 잡아먹히고 있었다. 심마와 방황이 깊어질수록 검의 끝도 흔들렸다.

그리고 그때 에단의 소식을 들었다. 가토는 감정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꽈악.

‘다시는…….’

다시는 주군 뒤에 숨지 않을 생각이다.

가토와 휴고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 * *

“엣취!”

킁.

에단이 재채기를 하며 코를 비볐다.

‘뭔 재채기를.’

에단은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은 신체 능력을 지녔다. 재채기라는 행위 자체가 기막힌 일이었다.

‘누가 내 뒷담이라도 까나 본대.’

피식 웃은 에단이 눈앞에 있는 카무잔을 바라봤다.

로이마르티를 데리고 오고, 다시 시간이 비게 되었다.

잠깐 네빌라를 만났지만,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에단과의 대화를 거부했다.

― 나는 더 강해질 거다.

― ……누가 뭐래?

― 아니, 그냥 알아 두라고 하는 소리야.

네빌라의 진지한 표정을 본 에단은 평소와 같은 농담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그녀는 로이드와 함께 치열하게 훈련하고 있다고 들었다.

‘보기 나쁘지는 않네.’

계기가 어떻든 그녀는 강한 자극을 받았고, 실천하고 있었다.

에단은 그 모습이 썩 마음에 들었다.

‘그럼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에단이 천천히 몸을 풀었다.

사실 지금의 에단에게 몸을 푸는 건 의미가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싸울 수 있는 몸 상태였다.

그럼에도 몸을 푸는 것은 단순한 습관 때문이었다.

‘키도 꽤나 컸나.’

에단이 자신의 골격과 리치를 보며 생각했다.

지금의 몸은 류태신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거울을 볼 때도 키가 훌쩍 커진 것을 느꼈다.

후우.

에단이 지하실을 훑어봤다.

금이 간 부분을 보수한 게 보였다.

벽과 바닥, 천장에 가득한 마법진을 보아하니 상당히 철두철미하기 대비한 모양이다.

그리고 지하실 한편에는 포션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저 포션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아모드라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들었다.

듣기로는 상당히 귀찮고 번거로운 작업이라고.

‘살다가 대군주를 다 부려먹어 보네.’

큭큭.

상황이 묘하게 우스웠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곧 전쟁이 벌어지겠지.’

그런 예감이 들었다. 아직 페온과 아리오나 측에서는 반응이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에단과 카무잔이 로이마르티의 영지에서 적지 않은 소란을 일으킨 만큼 그 소식은 둘의 귀에 들어갔을 확률이 높았다.

‘대규모 전쟁이 되지는 않겠지.’

카무잔을 상대하며 느꼈다.

대군주는 규격 외의 존재였다.

에단은 전과 비교해서 엄청난 성장을 했지만, 아직 카무잔에게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명확한 격의 차이가 느껴졌다. 카무잔은 자연재해와도 같았다.

넘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련이 형성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카무잔이 에단의 수준을 맞춰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뭐, 갓 체육관 등록한 관원이 된 기분이네.’

하지만 기분이 불쾌하거나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거웠다.

성장한다는 건 즐거웠다.

강자와 싸울 수 있는 건 늘 가슴이 벅차오른다.

부상 걱정 없이 마음껏 모든 역량을 부딪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지킬 것이다.

에단은 욕심이 많았다. 자신의 것을 놓을 줄 모른다.

키아나와도 약속하지 않았는가.

반드시 페온의 얼굴에 한 방 먹여 주기로.

그러기 위해서는 하릴없이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에단이 정면에 서 있는 카무잔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여기 보여?”

“음? 뭘 말하는 거지?”

“마법진들. 이거 우리가 건물 좀 그만 괴롭히라고 해 둔 것 같은데 말이야.”

“호오. 그렇단 말이지?”

카무잔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의도가 다분히 느껴지는 사악한 미소였다.

에단도 얼굴에 미소를 걸쳤다. 카무잔의 것과 똑 닮은 미소였다.

“어떻게 생각해?”

“뭘 당연할 걸 묻나.”

카무잔이 허연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당연히 다 부숴 버릴 생각이지.”

“하하, 역시 나랑 같은 생각을 했네.”

“나 혼자라면 이딴 조잡한 것들 부수는 건 아무것도 아니지만…… 가능하겠나?”

“가능해야지. 여벌 목숨이 저렇게나 되잖아?”

아무리 저 포션이 압도적인 성능을 지녔다고 한들, 즉사한다면 돌이킬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까짓것.’

즉사만 안 하면 되는 거잖아.

에단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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