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357화 (357/398)

◈ [357화] 군주 로이마르티 (4)

에단과 카무잔, 그리고 로이마르티는 아모드라의 성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로이마르티는 아모드라의 저택에 들어서는 순간 사색이 되었다.

‘진짜였어.’

로이마르티는 자신의 영토를 지닌 군주였다. 하지만 지하의 지배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힘이었다.

강자에게 굴복하는 것은 당연한 순리이다. 그리고 그 순리는 군주라고 해도 거스를 수 없었다.

군주는 대군주에게 복속된다. 주종 관계는 아니었지만, 봉신 관계 정도로는 볼 수 있었다.

통례상 깊은 간섭을 하지 않을 뿐, 군주들은 대군주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로이마르티 같은 중하위권에 속한 군주들은 더했다.

그런 그가 벌써 두 명의 대군주를 만나게 되었다. 심장이 방망이질을 하는 것 같았다.

‘토, 토할 것 같아…….’

규모가 너무 커졌다. 본래 카무잔과 아모드라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과도 같았다.

워낙 잃을 것이 많고, 대군주로서의 협약과 의무가 있기에 전쟁이나 전면전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카무잔과 아모드라는 앙숙이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손을 잡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이, 이건 내가 관여할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어.’

대군주의 동맹이다.

최근 지하의 정세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느꼈지만, 이렇게 대놓고 협력을 시작했을 줄이야.

전운이 보이기 시작했다.

과거부터 내려온 협약이 흔들리고 있었다. 완전히 부서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제, 제기랄. 조금 더 조급하게 했어야 하는데.’

너무 늦장을 부렸다. 되도 않는 여유를 부리다가 덜미를 잡혔다.

‘내가 끌려온 이유가 뭐지?’

어차피 대군주에게 있어서 로이마르티는 있으나마나한 존재였다. 자존심이 상할 것도 없었다.

카무잔만 보더라도 느낄 수 있었다.

감히 범접할 생각조차 못 할 만큼 강렬한 존재감이었다. 그의 앞에 있자면 마치 한 마리의 벌레가 된 기분이었다.

좌절이나 절망도 가능성이 보일 때나 할 수 있는 법이다.

카무잔과 같은 자는 애초에 넘을 수가 없는 자였다.

‘진짜 얘는 누구야?’

그래서 더 이해가 안 된다. 카무잔과 함께 온 에단을 보니 꽤나 평범했다.

군주인가 싶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군주급의 힘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카무잔과 비교할 만한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에단은 마치 친구를 대하듯 카무잔을 대하고 있었다. 사실상 막말이나 다름없었다.

목숨이 여러 개라도 되는 것인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지?

아모드라를 향한 언행을 볼 때는 기함을 토했다.

“네가 로이…… 뭐였지?”

아모드라의 눈매가 좁혀졌다. 로이마르트니는 불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대군주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더욱 부담스러웠다.

“로이마르티입니다.”

로이마르티가 쭈글거리며 대답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만 굴리고 있는 것이 썩 비굴해 보였다.

“꽤나 당황스러웠겠군.”

“아, 아닙니다.”

“양해해 주면 좋겠어.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 말이야.”

“괘, 괜찮습니다.”

“고생이랑 귀찮은 건 우리가 했는데 왜 네가 생색을 내고 지랄이냐?”

어김없이 치고 들어오는 카무잔의 시비. 아모드라는 이제 내성이 생겼는지 카무잔의 시비를 가볍게 무시했다.

“지상에 관심이 있다고 들었다.”

“……네.”

로이마르티의 고개가 더욱 숙여졌다. 너무 부끄럽고도 민망해서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지상을 기웃거린다는 것은 그만큼 군주에게 있어서 수치스러운 행위였다.

군주는 투쟁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군주의 기준으로 봤을 때 지상은 나약한 자들 투성이었다.

정상적인 군주라면 지상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아, 너무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군. 그 지식이 필요해서 너를 부른 것이니 말이야.”

“지, 지상에 관심이 있단 말입니까?”

로이마르티의 눈이 동그래졌다. 설마 대군주나 되는 이가 지상에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왜, 의외인가?”

아모드라가 묻자 곁에 있던 카무잔이 인상을 구겼다.

“왜 자꾸 말을 빙빙 돌리고 지랄이야? 시간 없다며.”

“……너는 좀 닥치고 있기가 그렇게 힘든가? 지루하면 평소처럼 지하실로 꺼지지 그래.”

이제 아모드라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랐는지 노기를 표출했다.

두 명의 대군주가 서로 으르렁거렸다. 강대한 기세가 서로를 집어삼킬 듯 격돌했다.

로이마르티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그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

에단이 로이마르티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아…… 네…….”

로이마르티가 묘한 눈빛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정말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뭐야, 포션은 그세 준비를 끝낸 거냐?”

“그래. 그러니까 방해 말고 꺼져라.”

“그런데 지금은 널 살살 약 올리는 게 더 재밌어서.”

히죽.

카무잔이 특유의 호쾌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를 노려보고 있던 아모드라가 눈을 질끈 감았다.

후우.

참아야 한다.

아모드라는 자신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었다.

그는 간신히 평정심을 되찾고는 로이마르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화를 억누르기는 하였지만 불쾌한 감정을 모두 지우지는 못했다.

서늘한 빛을 머금은 아모드라의 눈을 마주치자 로이마르티의 몸이 흠칫 떨렸다.

“확실히 시간을 낭비할 이유는 없지. 지금 바로 준비를 해 줬으면 하는데 가능하겠나? 필요한 게 있다면 바로 준비해 주지.”

“네, 넵. 가능합니다.”

로이마르티의 즉답에 아모드라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런 대답이 정상이었다.

“그럼 자리를 옮기지.”

* * *

도미닉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생각보다 일찍 계시가 떨어졌다. 도미닉의 입꼬리가 길게 찢어졌다. 강렬한 고양감과 환희가 차오른다.

도미닉의 시선이 오르번에게로 향했다. 오르번을 응시하는 눈빛 사이로 우월감이 엿보였다.

‘허.’

도미닉의 눈빛을 읽은 오르번은 기가 막혔지만, 구태여 내색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지금은 서로 협력을 맺은 관계였다.

‘다행이군.’

시기가 좋았다. 준비가 끝냈을 때, 때마침 군주의 연락이 오다니.

“불멸의 삶을 살아가는 위대한 존재시여. 당신의 충복이자 보잘것없는 필멸자가 인사를 드립니다.”

도미닉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경건하게 대답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오르번과 에르미온 데아티르, 그리고 헨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래서 흑마법사란 족속들은.’

흑마법사는 대개 음침하고 찌질했다. 자존심은 드샌 주제에 열등감과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친 놈들이 다수였다.

하는 행동을 보고 있자면 불쾌함을 느끼지 않기가 힘들었다.

‘하아.’

하지만 지금은 흑마법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지식은 귀하다.

오르번이 있다고는 하지만 오르번조차 깊게 탐구하지 않은 분야였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술식을 완성시키려 했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소요됐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네 명의 시선이 도미닉을 응시했다. 도미닉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위대하신 대군주시여, 부디 당신의 노예에게 명을 하달하여 충정을 보일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 ……크흠, 가녀리고 불쌍한 나의 아이여. 너의 충성심은 알고 있으나 지금은 그런 수식어는 중요하지 않느니라.

로이마르티의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에 도미닉에게 부리던 허세 어린 허풍이 자신의 목을 조이고 있었다.

로이마르티가 슬며시 눈치를 살폈다.

아모드라와 카무잔, 그리고 에단이 지그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적의는 없었으나 황당함이 묻어 나오는 눈빛이었다.

‘아…….’

수치심이 밀려왔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불타는 것만 같았다.

허풍을 떨던 과거의 자신이 눈앞에 있다면 그대로 얼굴을 후려치고 싶었다.

하아.

로이마르티가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여기서 수치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더 쪽팔린 짓이었다.

“……너의 충성심은 나에게 닿았다. 호칭은 사소한 것에 불과하니 지금은…….”

― 허나 위대하신 대군주 님에게 제가 어찌…….

이 옘병할 새끼가.

너는 눈치란 게 없냐?

로이마르티는 가슴을 두드릴 뻔했다. 분통이 터졌다.

대군주의 시선이 몸을 난도질하는 것 같았다.

“하지 말라면 하지 말라고.”

― 아…… 죄송합니다.

로이마르티는 부글거리는 감정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내가 말한 장소에는 무사히 도착했겠지?”

― 그렇습니다. 대군주 님의 충실한 종복으로서…….

“야. 적당히 안 해?”

결국 로이마르티는 폭발하고 말았다.

“한번 말했으면 알아들어야지. 대체 몇 번을 말하게 만드는 거야?”

― 아…… 제, 제가 혹시 무슨 실수라도…….

“그걸 씨발 지금 말이라고…….”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단 것을 느낀 로이마르티가 조심스레 눈치를 살폈다.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로이마르티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게 더 두려웠다. 무언의 압박감이 로이마르티를 짓눌렀다.

“……그러니까, 지금 도착했다는 거지?”

― 주, 준비도 끝냈습니다.

“그래…… 그럼 바로 진행부터 해.”

― 허락을 하시는 겁니까?

“야, 내가 하라고 말했지.”

― 죄, 죄송합니다. 바로 대업을 위한 술식을 지금…….

“늦으면…… 각오하고.”

뚝.

로이마르티가 통신을 끊었다. 그는 눈알을 굴려 아모드라와 카무잔의 눈치를 살폈다.

“이야, 대군주가 여기도 있었네. 이거 반가운걸?”

하하하.

카무잔이 호탕하게 웃으며 로이마르티에게 다가갔다. 로이마르티의 고개가 점점 깊이 숙여졌다.

툭.

로이마르티의 어깨에 카무잔의 손이 올라갔다.

카무잔은 웃음기 어린 눈으로 로이마르티를 응시했다.

샛노란 금빛 안광.

로이마르티는 정신이 아득해지고 있었다.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

수치심과 자괴감으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허세를 부려도 하필 왜 되도 않는 허세를 부렸단 말인가.

“흐음…….”

카무잔과 달리 아모드라는 별말이 없었다. 솔직히 같잖고 괘씸하기는 했지만, 잘못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애매했다.

에단은 큭큭거리며 웃음을 참고 있었고, 카무잔은 로이마르티를 놀리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허어.’

지금의 분위기가 적응되지 않았다.

아모드라가 피로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였다.

“여, 연락이 왔습니다.”

로이마르티가 사전에 그려 둔 마법진들이 요사스런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벌써?”

카무잔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멀어졌다. 마법진들에서 흘러나온 검은 기운들이 한데 뭉치기 시작했다.

뭉친 검은 연기는 마치 작은 통로 같은 모양을 만들었다.

통로 너머에서는 어떠한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

에단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로이마르티를 밀어냈다. 로이마리티는 힘없이 밀려나며 에단에게 자리를 내줬다.

작은 통로 너머에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오르번, 에르미온, 데아티르, 그리고 헨리까지.

“이야, 오랜만이다?”

에단이 실소를 터트리며 그들을 바라봤다. 간만에 보는 익숙한 얼굴들이 반갑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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