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356화 (356/398)

◈ [356화] 군주 로이마르티 (3)

“무슨 용무로 찾아오셨습니까?”

검문을 맡은 경비병이 의심 어린 눈초리로 도미닉을 바라봤다. 도미닉의 행색과 분위기에서는 수상한 냄새가 풀풀 풍겼다.

하지만 그러한 외형과 다르게 도미닉은 거만한 말투 대신 최대한 예의 바른 어조로 말했다.

“……에단이란 자가 보내서 찾아왔습니다. 오르번 님을 뵙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경비병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제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을까요.”

도미닉에게서 묘한 위압감이 풍겨왔다. 경비병이 흠칫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경비병이 다급하게 어디론가 향했다. 도미닉은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고, 금세 돌아온 경비병이 입장을 허락했다.

도미닉이 아카데미에 들어서는 순간, 까마귀 한 마리가 그의 앞으로 날아들었다.

까마귀의 검은 동공이 도미닉을 응시했다.

까마귀에게서 흑마법의 기운이 느껴졌다. 도미닉은 가만히 까마귀를 바라보고 있었다.

― 흑마법사군.

뇌리의 꽂히는 음성. 도미닉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따라와라.

도미닉은 까마귀를 따라 이동했다.

거대한 규모의 공방.

그곳은 온갖 마법진과 마법 재료들로 가득하다.

느껴지는 마법적 기운도 강렬했다. 도미닉은 작은 감탄을 머금고 깊숙이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강렬한 안광들이 빛난다. 형형한 눈초리들.

도미닉은 그들의 시선을 느끼며 흠칫 몸을 떨었다.

그곳에는 오르번을 포함한, 에르미온, 데아티르, 그리고 헨리가 가만히 도미닉을 바라보고 있었다.

“묻지.”

오르번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서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누구의 명으로 왔다고?”

고압적인 어조에 도미닉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쪽이 오르번인가? 상당히 무례하군. 내가 섬기는 자는…….”

스스스스스.

오르번의 주위에서 검은 기운이 흘러넘쳤다. 그뿐이 아니었다.

에르미온과 데아티르, 그리고 헨리 또한 고요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흠칫.

도미닉이 가늘게 몸을 떨었다.

한 명, 한 명의 기운이 심상치가 않았다.

“같잖은 수작 부릴 생각하지 마라. 지금 네놈이 마주하고 있는 게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지?”

사특한 기운이 공간을 잠식한다.

도미닉이 마주하고 있는 자는 가장 오래된 흑마법사라고 불리는 오르번이었다.

오르번은 흑마법사라는 족속을 잘 알고 있었다. 간악하고 교활한 혀로 타인을 현혹하는 자.

“맹세해라. 너의 모든 것을 걸고.”

오르번의 동공이 검게 물들었다. 무저갱처럼 깊디깊은 어둠이 오르번의 눈에 잠들어 있었다.

도미닉은 침을 삼키며 오르번을 바라봤다.

* * *

도미닉은 최대한 협조적으로 나왔다. 어쩔 수 없었다.

도미닉의 역량은 낮지 않았지만, 이 장소에 있는 이들 모두가 한 계파의 정점에 오른 이들이었다.

이곳은 적진이었다.

억울하고 분했지만 지금은 감정을 억누를 때였다.

“……이러한 상황이다.”

도미닉은 자신이 겪은 일들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설명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이들이 생각에 잠겼다.

“……살아 있었어.”

에르미온이 중얼거렸다.

물론 도미닉의 말을 전부 신용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에르미온은 도미닉이 거짓말을 한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에단 특유의 건방지고 재수 없는 말투는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오르번이 도미닉을 응시했다.

“지금도 군주와 연락할 수 있나?”

“내가 모시는 이는 군주가 아닌, 대군주…….”

“헛소리. 대군주가 뭐가 아쉬워서 너 따위의 저열한 흑마법사와 거래를 하지?”

“…….”

도미닉이 살벌한 표정으로 오르번을 노려봤다. 명백한 조롱과 비웃음이었다.

“애당초 지하를 연구하는 이유도 스스로의 역량이 낮다는 것을 인지한 것 아닌가?”

“……닥쳐라. 지금껏 숨어 지낸 네가 무슨 명분으로 내게 그따위 말을 지껄이는 거지?”

“발끈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정곡을 찔린 모양이군.”

피식 웃은 오르번이 다른 일행에게 시선을 돌렸다.

“시기는 좋군. 마침 준비가 끝나가던 차였어. 도미닉, 우리에게 협조해라. 네 주인의 명이라면 거절할 이유도 없겠지.”

“…….”

도미닉이 입을 다물었다.

오르번의 말대로였다. 그의 주인이 그렇게 말한 이상 도미닉은 그 명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지체할 것 없이 바로 시작하지.”

쿵.

오르번이 지팡이를 들었다.

그러자 방 안에 가득한 마법진과 마법 재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도미닉의 눈매가 좁혀졌다. 그는 천천히 마법진의 구성을 훑었다.

“나름의 구실은 갖췄지만…… 빈곳이 보이는군.”

“호오…… 빈 곳이라고?”

“그래.”

도미닉은 주위를 둘러보며 부족한 부분을 하나씩 지적해 나갔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오르번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점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군.”

도미닉을 향한 오르번의 평가는 냉혹했지만, 거짓 없는 진심이었다.

도미닉의 수준은 오르번의 성에 차지 않았다.

하지만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도미닉의 눈썰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군.’

오르번이 피식 웃었다.

도미닉이 없었다면 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을 것이다.

오르번은 즉각적으로 피드백을 수용했다. 오르번은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하의 관한 것은 그에게조차 낯선 분야였다.

에르미온과 데아티르, 헨리도 적극적으로 돕기 시작했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에단은 살아 있었다.

이제 그를 다시 부르기만 하면 되었다.

* * *

에단과 카무잔은 로이마르티를 이끌고 도시로 돌아갔다. 로이마르티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 같은 표정으로 둘을 따라갔다.

카무잔은 빠른 복귀를 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대군주의 압도적인 기세에 로이마르티가 경기를 일으켰다.

“히, 히익―!”

농담이 아닌, 진짜 대군주 카무잔이었다.

로이마르티가 눈을 까뒤집으려 들자, 에단이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빠악―!

통렬한 타격음과 함께 로이마르티의 눈이 번쩍 떠졌다.

“정신 차려라.”

에단이 로이마르티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로이마르티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뒤통수가 얼얼했다. 다시 서러움이 북받치기 시작했다.

로이마르티는 울컥하는 감정을 억누른 채 터덜터덜 에단과 카무잔을 뒤따라갔다.

‘내, 내가…… 어쩌다가 이런 꼴이…….’

서럽고 억울했다. 하지만 도망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로이마르티가 힐긋 카무잔을 바라봤다. 카무잔은 로이마르티에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진짜 대군주였다.

폭력적이고 압도적인 존재감.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 왔다. 이런 괴물을 상대로 도망친다고?

하하.

불현듯 실소가 터져 나왔다. 로이마르티는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터덜터덜.

음울한 발걸음을 가만히 바라보던 에단이 로이마르티의 뒤통수를 다시 한번 후려쳤다.

빠악―!

로이마르티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보자 에단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우울하게 왜 그래? 기분 좋게 가자고.”

“……네.”

“그래. 웃으니까 얼마나 좋아.”

로이마르티가 입가에 어색한 미소를 걸치자 에단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 새끼는 뭐 하는 녀석이지?’

로이마르티는 에단을 바라보며 눈을 끔뻑였다.

* * *

오르번의 작업실에는 온갖 마법적 재료들이 넘쳐 났다. 준비 기간은 짧았다.

이미 술식은 사실상 거의 완성된 상태였다.

부족한 부분들은 도미닉이 채웠다.

마법사란 족속은 지식을 나누는 것에 인색하다. 지식은 곧 자신의 무기였기 때문이다.

마법사들의 성격이 괴팍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것을 부정하는 이는 없었다.

집요하고, 고지식하고, 괴팍한 정신 이상자 같은 이들이 마법사였다.

흑마법사는 특히 일반적인 마법사들보다 더했다.

많은 억압과 규탄. 그리고 안 좋은 시선까지 받으니 활동하기가 더욱 힘들었던 것이다.

도미닉이 지하에 관한 연구에 매진한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다른 마법사들처럼 높은 경지에 도달한다고 명예와 칭송을 받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강한 힘을 얻은 흑마법사는 더 많은 두려움과 경계를 산다.

삿되고 사특한 힘을 부리는 흑마법사의 숙명이었다.

아무리 도미닉이 자신의 경지와 역량을 강화한다고 한들, 기존의 강대한 세력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군주라면 다르다.

자신은 지하의 마물들을 부리는 여타 흑마법사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자신은 그냥 군주도 아닌, 지하의 대군주를 주인으로 모신다.

도미닉은 그 사실에 깊은 자부심을 느꼈다.

명성으로는 감히 따라갈 수 없는 오르번 앞에서도 고개를 치켜들고 자존심을 부릴 수 있는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내 뒤에는 대군주가 있다.

거기에서 비롯된 자신감.

시간과 노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지하의 관한 도미닉의 지식은 진짜였다.

하지만 오르번은 도미닉의 말을 모두 신용하지 않았다.

‘과장이 심하군.’

지하의 대군주는 신과 같은 힘을 지닌 존재였다. 그들은 강한 만큼 오만한 존재들이었다.

지상에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었고, 한낱 흑마법사를 수하로 둘 만큼 한가롭지도 않았다.

‘고작해야 지하의 군주 중 한 명인가.’

그것도 서열이 낮은 군주일 것이다. 그런 자들이어야만 지상에 관심을 가질 테니까.

뭐, 협력하는 입장에서 괜히 도미닉을 깎아내리거나 자극할 필요는 없었기에 오르번과 다른 이들은 묵묵히 준비를 이어 나갔다.

“이 정도면 충분한가?”

“……그래.”

도미닉이 탄성을 흘렸다.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아 모든 준비를 끝냈다.

확실히 각자의 분야에서 정점에 이른 자들이었다. 그들이 진심을 보이자 작업은 순식간에 진척됐다.

재료도 충분했다.

도미닉조차 이 정도로 완벽하게 준비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이 정도로 철저한 대비라면 대군주가 직접 현신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알고 계셨군요.’

이제야 그의 주인이 자신을 여기로 인도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도미닉의 충성심이 깊어졌다. 대군주에 대한 의심이 눈 녹듯 사라졌다.

“이제…… 진행을 해 보지.”

지체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도미닉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안 돼. 아직 주인님의 명이 하달되지 않았다. 이쪽에서 먼저 시도해서는 분노를 사게 될 것이야.”

도미닉의 말을 들은 오르번과 다른 이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와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가져야 한다니.

하지만 도미닉이 협력하지 않으면 더욱 많은 시간이 지체될 것이다.

언제 성공할지 모르는 시도를 계속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행동이었다.

“후우.”

오르번이 한숨을 내쉬는 순간.

스스스.

도미닉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주인의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다른 이들의 고개가 획 하고 돌아갔다.

그들이 동그래진 눈으로 도미닉을 바라봤고, 도미닉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말했다.

“계시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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