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4화] 군주 로이마르티 (1)
로이마르티는 발코니에서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이 시간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터라 영지가 한눈에 보이는 자리였는데, 보고 있자면 자부심과 고양감이 차올랐다.
이것이 권력이었다.
이 마을은 자신의 것이었다.
그 누구도 감히 자신을 거스르거나 대적할 수 없었다.
씰룩씰룩.
만족감이 차올랐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지하는 넓었고, 수백에 달하는 군주들이 자신의 영토를 지니고 있었다.
군주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 권위가 보장된다.
하지만 그것은 서열이 높은 군주들이거나, 괴물 같은 대군주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로이마르티는 욕심이 있었지만, 자신의 주제를 아는 이였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대군주는커녕 자신보다 윗줄의 군주들도 당해 낼 자신이 없었다.
그의 자리도 위태로웠다.
그가 느끼기에 지하는 정신 나간 자들로 가득한 소굴이었다.
이곳은 힘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세계.
힘이 곧 법칙이었다.
힘이 있어야 권력을 쥘 수 있었고, 약자는 늘 고개를 조아려야 한다.
그 외의 것들은 사소한 것에 불과했다.
지도력, 수완, 현명함 같은 지도자의 덕목은 지하에서는 해당되지 않는다.
약자는 도태된다. 부하들의 충정은 군주의 힘에서 비롯된다.
‘무식한 새끼들.’
로이마르트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자신보다 강자가 나타나 군주의 차리를 찬탈당한다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충성이었다.
충성의 대상은 로이마르티가 아닌 군주의 자리와 그 힘이었다.
그렇기에 로이마르티는 초조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답답했다.
그는 지금의 자리를 잃고 싶지 않았다. 한번 맛본 권력의 맛은 마약과도 같았다.
너무나도 달콤했고, 너무나도 중독적이었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죽고 싶지도 않았다
로이마르티는 지하가 혐오스러웠다. 힘만을 추구하는 머저리들을 보고 있자면 경멸까지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바뀔 수 없는 규칙이다.
신과 같은 권세를 지닌 대군주들도 그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을 증명하는 게 최근의 사건이었다.
대군주가 교체되었다.
찬탈자가 등장한 것이다.
그 사건으로 최근 지하가 떠들썩했다. 로이마르티는 대군주가 얼마나 괴물 같은 존재인지 알고 있었다.
군주로서의 자존심과 자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군주는 감히 범접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이들이다.
자신과 엇비슷한 수준의 군주가 아무리 힘을 모아봤자 대군주 앞에서는 벌레와도 같았다.
대군주의 손짓 한 번에 사라질 목숨이었다.
그것도 아주 처참하게. 벌레와도 같이.
그렇기에 로이마르티는 두려웠고, 공포스러웠다.
‘어떻게 힘을 얻었는데.’
영겁의 시간 동안 발악하면서 차지한 자리였다.
하지만 그 자리는 언제든지 빼앗길 수 있는 자리였다.
‘그래. 여기에 목을 메고 있을 필요가 없어.’
로이마르티는 시선을 돌렸다.
구태여 무식하고 무지한 놈들 사이에서 발버둥 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고개를 살짝 들면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
그곳은 로이마르티가 느끼기에 아주 매력적인 장소였다.
지하에 비해서 훨씬 합리적이고 아름다운 체계.
괴물들이 넘쳐 나는 지하에 비해서 한없이 나약하고 불쌍한 생명들이 존재하는 곳.
얼마나 좋은가.
그곳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고작 마법을 부리는 도마뱀 따위를 경배한다.
우습기 그지없었다.
그깟 도마뱀 수십 마리가 몰려온다고 한들 전혀 무섭지 않았다.
로이마르티가 두려워하는 것은 지하에 도사리는 괴물들이지, 지상에서 살아가는 나약한 생명체가 아니었다.
‘머저리 같은 놈들.’
로이마르티는 함부로 지하에 올라갔다가 당한 군주들을 알고 있었다.
우습기 그지없었다.
지하의 존재들이 지상에 올라가는 순간 많은 제약이 따른다.
그걸 모르는 이는 없었다. 듣기로는 지닌 힘의 절반조차 끌어낼 수 없다고 한다.
치명적인 수준이었지만, 충분히 계획적으로 다가가면 문제되지 않는다.
절반밖에 쓸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생각을 달리하면 절반이나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긴 하겠지만, 그것은 열등한 하수인들이 미리서 준비할 것들이다.
로이마르티는 그 정도 번거로움은 충분히 감수할 자신이 있었다. 세상에 쉬운 길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가 느끼기에 지하에서 조마조마하게 가슴 졸이면서 살다가 목이 따이느니 조금 고생하더라도 지상에 현신해서 떵떵거리면서 사는 게 훨씬 나았다.
처음에는 만족스럽게 느껴졌던 영지가 한없이 비좁아 보였다.
지하는 넓다. 하지만 척박하고 피폐했다.
이곳에서 둥지를 틀 수 있는 장소는 지극히 한정적이다.
로이마르티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반쪽짜리 권력.
그의 위에는 수많은 군주들이 있고, 군주들 위에는 막강한 대군주가 도사리고 있다.
꽈악.
로이마르티가 들고 있던 찻잔이 부들부들 떨렸다.
화가 치밀었다. 불합리했다. 너무나 불합리했다.
로이마르티가 감정을 진정시켰다.
‘그래, 조만간이다.’
계획에 진전이 있었다.
인간의 욕심은 추악했다. 그들의 욕망에 파고드는 건 손쉬웠다. 조금 번거롭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가 가능했다.
그러한 생각들을 하던 차.
콰아앙―!
갑자기 터져 나온 굉음.
로이마르티의 고개가 획 하고 돌아갔다.
‘무슨 소리지?’
자신의 영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로이마르티가 고개를 들어보니, 영지의 중심가 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소란이 벌어졌다.
로이마르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누가 감히……!”
자신의 땅에서 소란을 벌인단 말인가. 감히 군주의 영지에서!
노기가 치밀어 올랐다.
로이마르티가 고개를 돌리자, 가신 중 하나가 로이마르티를 향해 고개를 깊게 숙였다.
“수하를 보낼까요?”
“아니, 직접 내려가겠다. 내 눈으로 직접 놈을 보고 처벌을 내리겠어.”
“명을 받들겠습니다.”
가신이 로브를 준비했다. 군주의 문양이 새겨진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로브였다. 로브를 두른 로이마르티가 마을로 내려갔다.
순식간에 도달할 만큼 짧은 거리였다. 로이마르티가 안개처럼 등장했다.
“구, 군주다.”
마족 중 하나가 로이마르티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군주는 그 자체만으로도 두려움과 경외를 한 몸에 받는 존재였다.
영지에 벌어진 소란으로 인해 군주가 직접 행차했다. 지하는 힘이 곧 율법이었다.
괜히 군주의 눈에 거슬리는 행위를 보이는 순간 그대로 즉사였다.
후웅.
로이마르티가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휘저었다. 그 순간 강한 바람이 휘몰아치며 연기가 걷혔다.
연기가 걷히자, 무너져 내린 건물과 함께 에단과 카무잔이 로이마르티를 바라봤다.
‘오.’
에단은 로이마르티를 보는 순간 그가 군주임을 직감했다. 행색이랑 거만한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조용히 만나는 건 글렀군.’
사건의 규모가 커져 버렸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이었고, 엎질러진 물이었다.
카무잔이 팔짱을 끼고 로이마르티를 위아래로 훑었다.
“흐음.”
조금 애매한데.
카무잔이 평가하기에 로이마르티는 수준 미달이었다. 팔짱을 낀 카무잔을 본 순간 로이마르티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감히……!”
로이마르티가 주위를 둘러봤다.
사상자가 발생했다. 모두 자신의 수하라는 걸 깨달은 순간 강렬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감히 자신의 영지에서 자신의 수하를 죽이고도 저따위 태도를 보이다니.
그때까지 로이마르티는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평소라면 쌔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그는 분노로 인해 이성이 흐려진 상태였다.
“살려 달라고 애원하게 해 주마.”
쿠구구구구―
강렬한 기운이 휘몰아쳤다.
로이마르티는 지하의 군주였다. 패도적이고 막강한 살기가 주위를 집어삼키려고 들었다.
화르륵!
로이마르티의 등 뒤에 검붉은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모든 것을 불사르고 집어삼킬 지옥의 불길이었다.
“나는! 지하의 지배자 중 하나이자, 무자비한 처형인!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사나운 불길, 로이마르티다! 감히 내 앞에서 건방을 떨어?!”
로이마르트의 분노가 격렬하게 타올랐다. 카무잔은 대답 없이 웃고 있었다.
로이마르티에 강렬한 기세 앞에서도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채.
‘……뭐지?’
가슴 한구석이 서늘했다.
마음속에서 불길함이 싹트고 있었다.
지금 군주인 것을 밝혔음에도 저렇게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인가?
대체 뭘 믿고?
단순한 객기?
하지만 돌이키기는 늦었다. 이미 상황은 벌어졌다.
‘죽을 걸 직감하고, 자존심을 부리는군!’
로이마르티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공공연하게 선포를 내린 순간,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의 위에는 끔찍하고 포악한 불길이 매섭게 타오르고 있었다.
로이마르티는 불안함을 지우기 위해 불길에 마나를 더 주입했다.
화르르르륵―!
불길이 더욱 거세졌다.
근처에 있던 마족들이 비명과 신음을 토해 냈다.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공포스러운 불길이었다.
카무잔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곁에 있던 에단은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뭐지, 시발?’
등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저렇게 건방을 떨고 있는 건가?
초조함이 엄습한다.
로이마르티는 눈을 질끈 감았다. 돌이키기는 이미 늦었다.
자신이 느끼는 불길함이 단순한 기우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업화의 불길을 쏘아 보냈다.
화르르륵!
검은 불꽃이 카무잔을 향해 쇄도한다. 카무잔은 그대로 불길에 집어삼켜졌다.
‘역시!’
로이마르티가 안도하며 동시에 쾌재를 불렀다. 역시 뭣도 없는 녀석의 객기였다.
불꽃은 순식간에 저 건방진 놈을 불살라 버릴 것이다. 대상자가 죽기 전까지는 절대 꺼지지 않고, 영혼까지 불사르는 업화의…….
“따뜻하지도 않네.”
후우.
작은 바람 소리.
카무잔이 입으로 바람을 토해 내자, 로이마르티의 불이 순식간에 꺼지고 말았다.
“…….”
로이마르티가 멍하니 카무잔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나체가 된 카무잔이 얼굴을 구긴 채 로이마르티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무잔이 한쪽 손으로 귀를 후비며 로이마르티를 바라봤다. 그의 표정에서는 짜증이 흘러넘쳤다.
“야.”
“……네?”
로이마르티는 저도 모르게 존대로 대답하고 말았다. 머릿속에서 사정없이 경종을 쳐 대고 있었다.
지금 이건 뭔가 잘못됐다.
방금의 불길이 로이마르티의 전력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저 불꽃을 저렇게 손쉽게 꺼 버린 상대다.
전력을 다해 부딪친다고 승산이나 있을까?
‘내, 내 삶은 여기까진가?’
죽음의 공포가 엄습한다.
“야.”
카무잔이 불쾌함 가득한 표정으로 로이마르티를 노려봤다.
그제야 분노가 걷히고 카무잔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카무잔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막대한 존재감과 강렬한 야성이 느껴진다.
소름이 빗발친다.
로이마르티가 눈을 질끈 감았다.
털썩.
로이마르티가 무릎을 꿇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로이마르티는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