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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353화 (353/398)

◈ [353화] 실체 (4)

“뭐, 가끔 밖으로 나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카무잔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에게는 투쟁이 곧 삶이었다.

에단으로 인해서 간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같은 장소에서의 반복적인 싸움은 결국 언젠가는 질리기 마련이다.

에단이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밖으로 나왔다. 지하의 흐릿한 날씨가 에단을 반겼다.

‘진짜 적응 안 되네.’

날씨라도 화창했으면 좀 괜찮았을 텐데 칙칙한 날씨 탓에 기분도 영 좋지 않았다.

네빌라는 저택에 잔류해 있는 걸로 결정되었다. 그녀는 본인 스스로에게 적잖은 실망을 한 것 같았다.

원래는 같은 전사인 카무잔에게 직접 수련을 받고자 하였지만, 카무잔의 무식하고 파괴적인 수련 방식을 본 이후 그녀는 빠르게 포기했다.

다행히도 로이드가 그녀의 수련을 도와주기로 결정했다.

에단이 수련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자 로이드도 흥미가 생긴 것이다.

비록 군주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었지만, 로이드의 무력은 군주에게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네빌라에게는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녀는 지금 힘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어 이번 여정은 에단과 카무잔 둘밖에 없었다. 길의 안내는 이전과 같이 박쥐 한 마리가 맡았다.

“오랜만에 보니까 좋다?”

파닥파닥.

에단이 파닥이는 박쥐를 보며 피식 웃었다. 계속 보다 보니까 묘한 정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은근히 귀여워.’

귀여운 구석도 있는 것 같고.

카무잔이 있는 이상 말을 타고 움직이기는 힘들었다. 에단과 카무잔은 도보로 움직였다.

에단과 카무잔은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주고받으며 황무지를 건넜다. 카무잔은 의도적으로 존재감을 지우고 다녔다.

마수의 습격을 유도한 것이다.

여정은 지루하다.

거리를 따지자면 그렇게까지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삭막한 풍경을 보면서 하릴없이 걷는 행위는 썩 유쾌하지 않았다.

마수의 습격은 종종 이루어졌다. 별 의미는 없었다.

카무잔의 손짓 한 번에 마수는 즉사했다. 카무잔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죽은 마수의 사체를 해체했다.

식량을 가져오긴 했지만 쿰쿰한 보존식보다는 신선한 고기가 더 입맛에 맞았다.

질겅질겅.

에단과 카무잔이 고기를 씹으며 걸었다. 어느새 목적지에 꽤나 가까워졌다.

아모드라가 의도적으로 그리 멀지 않은 장소로 보낸 것이다.

거리가 너무 멀다면 만일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에단과 카무잔이 합류하는 것이 늦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에단과 카무잔이 팔장을 끼며 눈앞의 마을을 바라봤다.

‘대군주랑 그렇게 큰 차이는 없는데?’

생각보다 마을의 규모가 적지 않았다. 두 명의 대군주와 함께 지내다 보니 에단의 머릿속에서는 군주의 지위가 많이 낮아진 상태였다.

에단과 카무잔은 마을로 들어섰다.

가장 손쉽고 간단한 방법은 대군주의 권위를 이용해 찍어 누르는 것이었지만 아모드라가 권하지 않았다.

― 네 정체는 최대한 새어 나가지 않는 게 좋겠지.

에단도 아모드라의 말에 수긍하는 바였다. 지금은 정체를 감출 때였다.

지하는 넓었지만, 대놓고 지상에 관심을 보여 정체가 새어 나가는 건 좋지 않았다.

일이야 조금 번거로워지겠지만, 카무잔도 그 방식에 동의했다. 이유는 매우 단순했다.

― 재밌겠는데?

카무잔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은 재미였다.

에단과 카무잔이 마을로 향해 다가갔다.

경비병들의 검문이 있었지만, 딱히 특별히 책잡힐 구석은 없던 터라 별 탈 없이 검사를 통과할 수 있었다.

“옛다.”

너무나도 노골적인 경비병의 시선에 에단이 들고 있던 금화를 툭하고 던졌다.

주지 않아도 문제 될 건 없어 보였지만, 에단은 스스럼없이 금화를 건넸다. 어차피 이 금화는 에단의 것도 아니었다.

여정에 오르기 전 아모드라에게서 갈취한 금화였다. 그리고 아직 에단에게는 금화가 넉넉하게 남아 있었다.

히죽.

마족 경비병이 누런 이를 보이며 웃었다. 욕망에 충실한, 전형적이고 일반적인 경비병에 모습이었다.

‘인간이랑 다를 바가 없네.’

지하라고 지레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보였다. 종족이 다를 뿐, 여기도 결국은 누군가 살아가는 곳이었다.

피식 웃은 에단과 카무잔이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아모드라의 도시와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이 마을도 꽤나 정갈하고 번화한 마을이었다.

에단이 곁에서 따라 걷는 카무잔을 힐긋 바라봤다. 카무잔의 표정은 시큰둥했다. 마을이 번잡하든 어떻든,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였다.

‘이런 쪽에는 정말 관심이 없군.’

하기야. 그러니까 자기가 지내는 도시도 그런 상태였겠지.

카무잔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자였다.

무력 하나는 압도적이었지만, 그 외에 것들에게는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않는.

권력을 남용하거나 폭정을 휘두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좋은 지도자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카무잔은 뼛속까지 전사였다.

그저 싸움과 투쟁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그런 순수한 전사.

에단은 천천히 마을을 둘러봤다.

외형만 조금 개성이 있을 뿐,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자들이었다.

‘마을의 크기와 규모는…… 특별할 건 없어 보이고.’

적당한 크기의 마을이었다.

상당히 번화된 수준이었지만, 군주가 지닌 영토의 전부라기에는 부족해 보이는 수준.

‘지상에 욕심을 가질 만하군.’

지하는 넓었지만 사용 가능한 땅 자체는 매우 좁은 편이었다. 대부분의 대지는 척박했다.

에단과 카무잔은 천천히 마을을 둘러봤다. 마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저택이 군주의 거처일 확률이 높았다.

대뜸 찾아가도 괜찮겠지만, 그래도 역시 배는 채우고 가는 게 낫지 않겠는가.

에단과 카무잔은 적당한 식당에 찾아들어 갔다.

식당 안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여러 외향의 사람들이 어울리고 있는 식당은 에단에게는 사뭇 독특하게 느껴졌다.

“두 분이십니까?”

종업원이 다가와 에단과 카무잔의 행색을 훑었다. 에단이 고개를 끄덕이자 종업원이 자리에 안내했다.

에단과 카무잔이 테이블에 앉자, 종업원이 메뉴판을 건넸다.

‘하나도 모르겠군.’

에단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대화를 듣고 말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글자는 영 알아보는 게 힘들었다.

에단이 카무잔을 바라보며 물었다.

“대충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시키지?”

“귀찮은데.”

카무잔이 귀찮음 가득한 표정으로 에단을 응시했다.

한참 동안 시선을 교환하던 에단이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 밥 한 끼 먹는 데 심력을 소모하고 싶지는 않았다.

에단이 종업원을 부르자 종업원이 다가왔다.

“여기서 제일 잘 나가는 메뉴로. 양은 넉넉하게.”

“…….”

종업원은 대답 대신 다시 한번 에단의 행색을 훑었다.

‘이것 봐라?’

의도가 느껴지는 시선이었다.

에단과 카무잔의 행색은 특별할 없는 여행자의 복장이었다.

‘괜히 일 키우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에단은 조용히 식사를 끝내고 싶은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위아래로 에단을 훑은 종업원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사라졌다.

에단은 슬쩍 카무잔의 눈치를 살폈다.

카무잔의 표정은 전과 다를 바 없었다. 지루하고 귀찮음 가득한 표정.

에단은 피식 웃으며 음식을 기다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종업원이 음식을 가져왔다.

음식의 비주얼과 맛은 그저 그런 편이었다. 에단과 카무잔은 음식을 크게 가리지 않았기에 불평없이 금세 식사를 끝냈다.

식사를 마친 에단과 카무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종업원이 다가왔다.

“나가십니까?”

다시 한번 에단을 훑는 시선. 에단이 실소를 흘렸다.

“그래, 얼마지?”

종업원이 대답 대신 손가락 개수로 말했다. 종업원이 보인 손가락 개수는 다섯 개였다.

보면 볼수록 기가 막히는 접객이었지만, 에단은 군말 없이 품에서 금화를 하나 던졌다.

툭.

종업원을 향해 날아가는 금화 한닢.

그는 금화를 휙 낚아채더니 천천히 금화를 훑었다.

금화를 이리저리 훑은 종업원이 히죽 웃었다. 의도가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이 새끼 봐라?’

에단이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카무잔은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는지 에단을 바라보며 눈을 끔뻑였다.

아니나 다를까 종업원이 표정을 관리하고는 에단에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돈이 부족해.”

“아, 그래? 생각보다 음식이 많이 비싸네.”

에단은 고민했다.

여기서 깔끔하게 넘어가면 금화를 더 지불할 의향이 있었다. 어차피 처벌이야 군주를 만난 이후에 해도 충분했다.

하지만 저들은 그럴 생각이 없는 듯했다.

드르륵.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끄럽게 떠들던 손님들이 하나둘씩 에단과 카무잔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카무잔이 에단을 바라봤다. 순진무구한 시선이었다.

어떻게 대답하는 게 좋을까.

에단이 뺨을 긁적이며 고민하던 찰나, 종업원이 대신 대답했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안 돼?”

씨익.

종업원의 입꼬리가 주욱 찢어졌다. 흉흉한 미소였다.

“너희들 좆된 거야.”

킥킥킥.

에단과 카무잔을 둘러싼 이들이 천박한 웃음을 흘렸다. 서슬 퍼런 무기들을 보자 눈을 끔뻑이던 카무잔이 웃었다.

“뭐야. 그런 거였어?”

하하.

“……하아.”

카무잔이 소리내어 웃자, 에단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물은 엎질러졌고, 주워 담기는 늦었다.

‘적당히 끝냈으면 좋겠는데.’

물론 그럴 확률은 매우 낮아 보였다.

에단이 카무잔을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지루함이 가득 느껴지는 표정이었지만, 지금은 아주 즐거워 보였다.

“뭐야, 실성했나?”

놈들이 카무잔을 비웃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에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실성? 하하. 비슷하긴 하지.”

카무잔이 웃으며 손을 휘둘렀다.

마치 벌레를 내쫓는 듯한 손짓이었다. 하지만 그 위력과 여파는 작지 않았다.

콰아아앙―!

카무잔을 향해 다가오던 녀석들 절반 이상이 쓸려 나가고, 그대로 식당이 무너져 내렸다.

포악한 바람이 일대를 휩쓸었다.

카무잔이 손을 털며 웃었다. 카무잔을 비웃던 녀석을 포함한 대부분의 녀석들은 곤죽이 되어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큰 소란이 일어났다.

소란을 들은 사람들이 무너져 내린 식당 주위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종업원과 살아남은 이들이 벙 찐 표정으로 눈을 끔뻑였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믿기지가 않았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이 현실적이지 않은 광경이다.

“지, 지금 네가 무슨 짓을…….”

당황한 종업원이 말을 더듬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는 되는 대로 말을 토해 내면서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카무잔이 종업원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무슨 짓을 했지?”

말리는 입꼬리.

카무잔의 기세가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물러서던 종업원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죽음의 공포가 드리운다.

고양이 앞에 선 쥐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일 수가 없었다. 종업원은 그제야 상황이 잘못되어 간다는 걸 느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시간을 벌면 경비병이 올 것이다.

하지만 경비병이 과연 이 괴물을 상대로 자신을 지켜 줄 수 있을까?

그런 의구심이 치밀던 찰나, 경비병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지금 여기서 무슨 짓을…….”

콰아앙―!

카무잔이 손가락을 튕기자 수십에 달하는 경비병들이 그대로 증발했다.

털썩.

종업원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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