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9화] 협조 (2)
어느 지하실.
절그럭.
검은 쇠사슬이 어떠한 존재를 억압하고 있었다. 사슬에 묶인 존재는 쎄액 거리는 숨소리를 흘리며 형형한 안광을 흘리는 중이었다.
키에에에에에엑―!
사슬에 묶인 존재가 강렬한 굉음을 토해 냈다.
분노와 증오가 가득한 포효였다.
하지만 쩌렁쩌렁한 포효는 어둠 속에 삼켜지고 말았다. 지하실을 가득 채운 마법진이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다.
저벅저벅.
페온이 지하실로 들어섰다.
그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발걸음으로 사슬에 묶인 존재에게 다가갔다.
“잘 지냈나?”
크르르르르.
페온이 웃음기를 머금은 채 묻자, 키메라가 강렬한 적의를 표출했다.
키메라는 지능이 떨어질 뿐, 지능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키메라는 페온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크르르.
키메라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페온은 피식 웃으며 키메라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콰직!
키메라의 톱날 같은 이빨이 페온의 손을 노렸다.
페온은 키메라의 손을 가볍게 피해 내며 키메라의 턱을 붙잡았다.
꽈드드득.
강한 악력이 키메라의 턱 근육을 압박했다.
쇠약해진 키메라는 페온의 악력을 이기지 못하고 천천히 입을 벌렸다.
부르르.
키메라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키메라는 아이와 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보다 강자라고 판단하는 순간 꼬리를 내린다.
‘그게 자연의 순리겠지.’
피식 웃은 페온이 키메라의 입안을 들여다봤다.
키메라의 상태는 양호했다. 격렬하던 저항도 많이 약해진 상태.
‘흠.’
이 키메라는 미완성품이었다. 여러 단점이 눈에 보인다.
녀석은 짐승과도 같았다.
페온이 원하는 ‘진짜’는 저런 겉모습에 구애받지 않는다.
단순한 내구성이 아니었다.
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것이었다.
완벽.
그리고 무결.
그것들은 허상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좇는 것만큼 멍청하고 미련한 짓은 없었다.
하지만 페온은 두 눈으로 그것을 목도하고 말았다.
그것은 실존한다.
허상 따위가 아니었다.
누구는 미련한 짓이라고 지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어쨌단 말인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는 게 무엇이 잘못된 것이지?
가진 것에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영위하는 삶에서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페온은 타인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
그것뿐이었다.
페온은 가능성을 봤다.
무지한 머저리들은 불가능하다고 외치겠지만, 페온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아쉬워.’
페온이 입술을 핥았다.
녀석은 너무 영리했다.
무모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판단은 언제나 이성적이었다.
하늘이 내린 재능과 대담함.
페온은 재능과 천재라는 단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에단을 보고 있자면 그 단어를 부정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최고의 재료였지만, 에단은 자아가 너무 강했다. 짧지만 에단과 줄곧 함께해 왔기에 알 수 있었다.
에단은 주변 유혹에 흔들릴 자가 아니었다.
페온은 아쉬움을 접었다. 가능성을 본 것으로 충분했다.
‘어째서 가능했던 것일까.’
블란테의 혈통이 특별한 것이라면 자신도 성공을 했어야만 한다.
하지만 페온은 실패했고, 에단은 성공했다.
페온이 차게 식은 눈으로 눈앞에 인공적인 존재를 응시했다.
녀석은 실험체였다.
수많은 피를 흘리고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탄성한 완벽에 가까운 실패작.
완벽이란 한 점의 결점도 존재해서는 안 됐다. 페온은 이미 무결이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차근차근 밟아 나가면 그만이지.”
그러기 위해서는 이 키메라를 완전히 복종시켜야만 했다.
페온이 키메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녀석의 유리알 같은 동공이 가늘게 흔들렸다. 녀석은 지금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페온의 방법은 매우 단순했지만, 효과적이었다.
고통.
가장 원초적인 방법.
페온은 눈앞에 키메라를 고통으로 굴복시키고 있었다. 뇌리에 각인될 때까지.
구원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식사도 주어지지 않는다.
키메라의 마음이 완전히 꺾이고 무너질 때까지 이곳에서 탈출할 수 없다.
지하실 내외부는 수많은 술식들이 가득했다. 모두 키메라를 압박하고 제압하기 위한 조치였다.
키메라가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키메라의 사지를 제압하고 있는 사슬은 견고했다.
사슬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페온은 작업을 이어 나갔다.
그가 원하는 것은 꼭두각시가 아니었다.
완벽한 굴종.
그래야만 추후 계획에 지장이 생기지 않는다.
자아가 생겨나서는 안 된다. 주체성은 방해될 뿐이었다.
뿌득. 뿌드득.
키에에에에에엑―!
페온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묵묵하게 작업을 이어 나갔다.
* * *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페온은 손수건으로 손에 묻은 진액과 같은 오염물을 닦아 냈다.
키메라의 몸은 추욱 늘어져 있었다. 미약하게 들썩이는 어깨를 통해 살아 있음을 알 정도였다.
‘형편없군.’
실패작이라는 게 실감이 들었다.
키메라에게 고통을 주기란 쉬운 게 아니었다.
수많은 마법적 조치를 취한 이곳을 마련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녀석은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타격을 줄 수 없었다.
상당한 노력이 요해지는 번거롭고 귀찮은 작업이었다.
녀석이 진정으로 그것을 추구하여 만들어진 존재라면, 페온이 어떤 방법을 시도하더라도 타격을 입어서는 안 됐다.
하지만 키메라는 너무 손쉽게 굴복했다.
페온이 경멸 어린 눈으로 키메라를 응시하다가 지하실을 나섰다.
지하실을 나서자 마법진이 음산한 빛을 토해 내며 가동되기 시작한다.
페온은 곁눈질로 마법진을 흘겨보고 위로 올라갔다.
지하실의 위는 크고 화려한 성의 내부였다.
성의 주인은 검은 마녀라는 이명을 지닌 아리오나.
지하의 대군주 중 한 명이었다.
페온이 지하실 위로 올라가자, 아리오나가 페온에게 다가갔다.
또각또각.
우아하면서도 고혹적인 발걸음이었다. 아리오나가 페온에게 다가오며 싱긋 미소 지었다.
아리오나의 새까만 동공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빨려들어 갈 것 같았다.
“진척은 있으셨습니까?”
가늘고 부드러운 미성이 흘러나왔다. 아르미온은 외모부터 행동, 목소리까지 모든 게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페온은 아르미온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더러워진 손수건을 허공에 던졌다.
화르륵.
페온이 던진 손수건이 검은 불길에 휩싸였다.
재 하나 남기지 않고 불탄 손수건을 바라보던 페온이 아리오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진행 상황은?”
아리오나는 대답 대신에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남자의 감정을 흔드는 미소였다.
페온이 눈살을 찌푸렸다.
“대답은?”
“너무 조급하신 것 아닌가요?”
“최근 아모드라 측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들었는데.”
“저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걸요? 그 두 명은 워낙 자존심이 강해서 말이죠.”
아리오나가 콧소리를 흘리며 말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죠. 저는 꽤나 놀랐답니다. 당신이 예상보다 일찍 돌아와서요.”
“웃기는군. 애당초 기대도 안 하고 있던 것 아닌가?”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아리오나를 응시하는 페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페온의 눈에는 경멸이 깃들었다.
“깊게 관여하려 들지 마. 최대한 빨리 준비도 끝내고.”
“그러도록 하죠. 하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모드라는 가볍게 여길 상대가 아닌데 말이죠.”
“그건 내가 신경 쓸 일이야.”
페온이 까칠하게 몸을 돌리며 사라졌다.
‘조급하기는.’
아리오나가 미소 지으며 멀어지는 페온을 바라봤다.
페온은 지금 조급해하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재밌네.’
지켜보는 것뿐이지만, 상당히 즐거웠다. 아리오나가 웃으며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 * *
크리스토는 황제의 옥좌의 앉아 있었다. 드넓고 화려한 알현실은 어두웠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신하들은 크리스토를 두려워한다.
지금 제국은 역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황제에게 권력이 집중된 상태였다.
강한 권세를 지닌 대영주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크리스토의 단순한 변심으로 공작과 후작의 머리도 바닥에 떨어진다.
그 누구도 함부로 황제를 대하지 못한다.
블란테에 견줄 무력 집단이라는 카이제르조차 황제가 집어삼키고 말았다.
전쟁이 끝나며 민심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있었다.
안정화를 거치면 황제의 권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신하들은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존재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실감되고 있었다.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인형.
자부심 따위는 이미 바닥에 처박힌 지 오래였다.
크리스토는 신하들의 그런 감정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가 신경 쓰고 있는 건 다른 거였다.
크리스토가 삐딱한 자세로 옥좌에 앉아 수첩을 꺼냈다.
이어 깃펜을 꺼내 수첩의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흠…… 어디부터 잘못됐을까.”
크리스토가 거친 필체로 노트에 내용들을 정리해 나갔다.
노트의 첫 번째 페이지에는 8회 차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번 회차는 나름 무난했던 것 같은데.”
크리스토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계획은 순항 중이었다. 변수라고 한다면 역시.
“그 녀석인가.”
킥킥.
크리스토가 웃음을 흘렸다. 에단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것도 인과가 비틀린 영향인가?”
블란테가 발목을 잡은 적은 있어도,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망나니가 이런 행보를 보인 적은 이번 회차가 처음이었다.
“재미는 있었지.”
독특한 녀석이었다.
크리스토는 누군가를 보며 동질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에단을 보고 있으면 동질감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썩 신선한 느낌이었다.
“다시 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계획을 엉망으로 만든 원흉이었지만, 원망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달가웠다.
에단의 존재라도 없었으면 너무 지루하기만 했을 것이다.
“룬어를 쓸 수 있는 걸 보면 회귀자인 것도 같은데 말이야…….”
하지만 두 명의 회귀자가 한 차원에 동시에 있는 건 불가능했다.
“흐음…… 다시 만나면 알게 되겠지.”
에단이 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는 건 크리스토도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다음 회차로 넘어가긴 아쉽고…… 뒤늦게라도 친해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쿡쿡.
크리스토가 아이 같은 웃음을 흘리며 노트를 정리했다.
노트에는 X표식이 여럿 새겨져 있었다.
어그러진 계획들이었다.
블란테, 아카데미, 신성 왕국, 레벨린.
“역시 그걸 뺏긴 건 좀 뼈가 아프네.”
회수를 하려면 진작 회수를 했어야 했다. 문제없이 다룰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흐음…… 지금 상황에서 최선은 역시 블란테와 협력하는 건데.”
빈센트의 냉막한 눈빛을 떠올린 크리스토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 괴물 같은 노인네랑 사이를 회복할 자신이 없단 말이야.”
끄응.
크리스토가 천천히 기지개를 켰다. 찌뿌둥한 몸이 풀리며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든 해 봐야지.”
이제 와 포기하기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