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6화] 요구 (2)
카무잔은 에단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특히 휴고와 렉사르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더욱 관심을 보였다.
“호오. 수인이라고?”
“지상에도 웨어울프라고 불리는 애들이 있어. 수인이라는 호칭이 더 통상적이기는 하지만.”
“들은 적은 있다. 수준이 보잘것없다고 해 별 관심은 없었지만, 네 얘기를 들으니 흥미가 생기는군.”
“틀린 말은 아니네. 평균적으로 별 볼 일 없는 실력이기는 해. 물론 내가 기르는 녀석은 다르지.”
에단은 술집의 호사가가 된 것처럼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술도 넉넉하겠다.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었다.
“처음 휴고를 데리고 동굴을 들어갔을 때 독특한 녀석을 만나게 됐지. 누구인 것 같나?”
“흐음? 글쎄. 몬스터라도 봤나?”
“아니, 너도 좀 흥미를 가질 만한 녀석이야.”
“흠…… 딱히 짚이는 구석은 없군.”
“뱀파이어.”
에단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카무잔이 눈을 끔뻑였다.
“오, 뱀파이어를 만났다고?”
“그래. 정말 돌발적인 상황이었지. 너랑 아모드라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것처럼, 둘도 딱히 사이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어.”
에단이 손으로 여러 제스처들을 취하며 말을 늘어놨다. 탁월한 완급 조절로 이야기는 지루해질 틈이 없었다.
“동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니……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더군.”
에단의 페온과의 조우를 설명했다. 페온이 어떻게 에단을 설득했고, 죽은 나무라는 힘을 얻게 된 경위들.
“호오.”
카무잔이 술잔을 매만지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대군주였다.
대군주는 죽은 나무를 수호하는 의무를 지녔다.
죽은 나무에 관한 사건의 대해서는 카무잔 또한 알고 있었다.
관심을 가졌던 사건을 외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에단에게 들으니 꽤나 신선했다.
“그래서 나는 죽은 나무를 얻게 되었어.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지. 이미 뒤처진 내가 느긋하게 가문의 마나 수련법을 수련할 여유는 없었으니까.”
“납득이 되는 이유군.”
“뭐, 그 뒤로는 죽은 나무를 이용해서 손쉽게 성장을 해 나갔지. 마치 날개가 달린 것처럼.”
“하하하.”
에단이 으스대는 모습을 본 카무잔이 소리 내어 웃었다.
피식 웃은 에단이 이야기를 빠르게 진행해 나갔다. 아카데미라는 곳을 간 계기와 그 후에 마주하게 된 지하의 군주.
“쓸데없이 지상에 관심을 가지는 녀석들이 있다고는 하더군.”
“그렇게 위협적인 녀석은 아니었어. 근육 하나 없는 뼈다귀 녀석이 뭐가 무섭다고.”
에단이 어깨를 으쓱이자, 카무잔이 큭큭거리며 웃었다.
“큭큭. 그래, 맞는 말이지. 그래서 베오드라드라는 녀석은 죽였나?”
“척추 뼈를 비틀어 주니까 좋아 죽던데?”
“그것 참 즐거운 경험이었겠군.”
에단은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 나가며 카무잔의 반응을 살폈다. 카무잔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역시 특별한 연관성은 없나.’
에단은 의심을 거뒀다.
의심의 정황은 보이지 않았다. 의심스러운 행동들이 보인다 한들 크게 바뀔 것은 없었다.
에단은 그 이후의 일들을 간략히 축약해서 설명했다.
드래곤 사냥, 페온의 배신, 가문의 습격, 신성 왕국의 수작질, 그리고 지하로 떨어지게 된 경위.
줄인다고 줄였음에도 상당한 양의 내용이었다.
카무잔은 적절히 반응하며 에단의 이야기를 들었다.
곁에서 덩달아 듣게 된 네빌라도 연신 눈을 빛내고 있었다.
“내가 말할 건 여기까지야.”
갈증을 느낀 에단이 술을 들이켰다.
화끈한 열기가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에단이 미간을 찌푸리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카무잔은 에단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재밌는 이야기였어. 어디부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네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군.”
카무잔이 에단을 향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너는 네가 봤다던 그 괴물의 정체를 뭐라고 생각하나?”
에단이 눈매를 좁히며 생각에 잠겼다.
녀석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괴물이었다.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한 것인지도 알 수 없는 불길한 존재.
‘그 말도 안 되는 내구성.’
오러를 통한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에단이 막대한 마나를 퍼부어도 녀석은 생체기 하나 입지 않았다.
힘들게 피해를 입혀도 녀석은 상처를 금세 회복한다.
‘추정할 수 있는 건.’
에단이 자신의 왼손을 바라봤다.
원작에서조차 온전히 밝혀지지 않은 설정인 타이탄.
에단이 왼손을 꽈악 움켜쥐며 카무잔을 바라봤다.
“그 괴물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나도 몰라. 내가 추측할 수 있는 건…… 타이탄과 연관된 것 같다는 것 정도지.”
“타이탄이라…… 그 왼손도 타이탄과 연관이 있나?”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에단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가진 패는 모두 드러냈다. 에단은 카무잔에 대해 알지 못한다. 단순한 변심으로 자신을 죽이려고 들어도 에단은 저항하지 못한다.
그만큼 카무잔과의 무력 차이는 압도적이다. 에단이 지닌 알량한 힘과 블란테라는 뒷배경은 더 이상 편리한 무기가 되어 주지 않았다.
이 자리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카무잔이다. 그것이 강자의 권리였다.
에단은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썩 나쁜 기분도 아니었다.
‘마냥 즐거운 게 아니거든.’
에단은 카무잔의 눈에 깃든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짙은 권태감.
카무잔은 자극을 찾고 있었다.
강한 자를 찾기 위해 대군주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호적수를 만나지 못했다.
같은 대군주와 싸울 수도 없었다.
대군주의 자리에 오른 이상, 협약을 지켜야만 했다.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법칙이었다.
에단은 어중간하게 카무잔을 이용하려 들지 않았다.
본능적인 직감 때문이었다.
같잖은 수작질을 벌이며 카무잔을 이용하려는 순간, 에단을 향한 호의가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에단은 순순히 가진 패를 모두 드러냈다.
‘실패하면 어쩔 수 없고.’
그때부터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에단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지하를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카무잔은 묘한 눈빛으로 에단을 응시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 검, 한번 볼 수 있나?”
카무잔의 시선이 에단의 허리춤으로 향했다. 에단은 피식 웃으며 칼집을 꺼내들었다.
“이걸 말하는 건가?”
“그래. 조금 호기심이 생기는군. 아, 꺼려진다면 보여 주지 않아도 상관없어.”
“상관없어. 어차피 지금은 짐 덩이에 불과하거든.”
에단은 아슬란을 순순히 카무잔에게 넘겼다.
아슬란을 받아 든 카무잔이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스릉.
에단은 아슬란을 험하게 다뤄왔다.
기름칠을 한다거나 하는 관리조차 해 오지 않았다. 태생이 검을 다루는 검사가 아니어서인지 무기에 큰 애착을 가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관리하지 않았음에도 아슬란은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투박한 외향의 검이었지만 서늘한 예기는 여전했다.
날은 조금도 무뎌지지 않았고, 이빨이 빠진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매끈한 검신은 어슴푸레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꾸준히 기름을 먹이며 관리한 것만 같은 훌륭한 검이었다.
“아…….”
네빌라가 아슬란을 보며 작은 탄성을 흘렸다.
그녀는 무기의 중요성을 아는 전사로서 아슬란이 지닌 가치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좋은 검이군.”
카무잔이 아슬란을 유심히 훑어보며 말했다.
“흠, 그래?”
에단은 그 말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 것인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에단이 보기에 아슬란은 내구성이 보장된 조금 튼튼한 검이었다.
편리한 구석도 있었지만 키아나의 괄괄한 성격을 상대하고 있으면 정신적으로 상당히 피로해졌다.
“좀 건드려 봐도 되나?”
“그러다 부러지면?”
“배상하지.”
“그렇다면야.”
에단이 대수롭지 않아 하며 허락했다. 오히려 에단보다 당황한 것은 네빌라였다.
그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저, 저 검이 부러져도 상관없다고?”
자고로 무기는 전사에게 있어서 반려자나 다름없는 존재다.
뛰어난 대장장이는 뛰어난 전사 이상의 존경을 받는다.
그만큼 전사에게 있어서 무기는 중요했다.
그렇기에 네빌라는 에단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저런 엄청난 보물이 부러져도 상관없다니.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태도를 보일 수가 있단 말인가.
“뭐, 보상해 준다잖아. 대군주나 되는 사람이 입을 싹 닦지는 않겠지.”
“아니…….”
네빌라는 에단의 태도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녀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아슬란을 바라봤다.
“큭큭. 그래 만약 부러지기라도 하면 제대로 보상해 주지. 그 성격은 참 마음에 드는군.”
카무잔이 아슬란을 들었다.
물끄러미 검신을 바라보는 모습이 꽤나 섬뜩했다.
“음…… 여기서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잠깐 자리 좀 옮기지.”
카무잔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에단도 고개를 끄덕이며 뒤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 대체 뭘 할 생각이길래 자리까지 옮기는 거지?’
몸을 일으킨 네빌라는 겁을 집어먹은 표정으로 에단과 카무잔을 번갈아 바라봤다.
카무잔은 저택의 뒤편에 마련된 공터로 자리를 옮겼다.
“이 정도면 별 상관없겠지.”
카무잔이 아슬란을 들었다.
에단의 말에 따르면 이 검은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었다.
카무잔은 왼손으로 아슬란을 들고 오른손으로 자세를 취했다.
후우웅.
바람이 휘몰아친다.
카무잔의 오른손에 검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압도적이고 포악한 기운이었다.
에단은 미간을 찌푸리며 카무잔을 지켜보고 있었고, 네빌라는 가늘게 몸을 떨며 두려워하는 기색으로 바라봤다.
콰앙―!
카무잔의 주먹이 아슬란을 가격했다. 강렬한 굉음과 함께 바람이 사납게 휘몰아쳤다.
에단이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에단은 카무잔의 모습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바람이 잦아들며 먼지가 걷혔다.
카무잔은 여전히 아슬란을 들고 있었고, 아슬란의 검신은 흠집조차 나지 않은, 처음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하하.”
카무잔이 아슬란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는 검집에 아슬란을 넣으며 에단에게 다가갔다.
“확실히 예사로운 물건은 아닌 것 같군.”
“성격이 조금 괴팍하긴 해.”
“협력이 필요하다고 했지? 좋아. 원한다면 해 주지. 아모드라 그 녀석이 조금 재수 없긴 하지만,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보다는 재밌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좋은 선택이야.”
에단과 카무잔이 서로를 마주보며 손을 맞잡았다.
네빌라는 그 이해 못 할 광경을 바라보며 멍하니 눈을 끔뻑거렸다.
‘내가 이상한 건가?’
오죽하면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녀가 자괴감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바로 출발해 볼까?”
“따로 준비할 건 없나?”
“난 귀찮은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야.”
“그럼 뭐…… 나야 좋지.”
에단이 씨익 웃었다.
결정을 마친 카무잔은 호탕한 모습을 보였다.
짐이 많지 않은 것은 에단과 네빌라도 마찬가지였다.
둘과 카무잔은 말만 챙긴 채 도시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