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343화 (343/398)

◈ [343화] 대군주 카무잔 (3)

“실망을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카무잔은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그는 순수한 전사였다. 누구보다 싸움을 좋아하는 전사.

강함을 추구하는 전사였지만, 대군주의 자리에 오른 이후부터 투쟁은 멀어졌다.

카무잔은 너무 강해졌다.

그의 수하들도 카무잔과 싸우는 것을 두려워했고, 적과 마물들은 너무 약해 시시했다.

아모드라를 향해 도발을 멈추지 않는 이유 또한 그러한 갈증 때문인지도 몰랐다.

“무기는 없나?”

에단이 물었다. 카무잔이 허연 이를 드러내며 대답했다.

“그런 게 필요한가?”

“그렇지. 너라면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어.”

에단도 카무잔이 마음에 들었다.

에단은 허리춤에 메달려 있는 검집을 바닥에 툭 떨궜다.

무기를 버리는 모습에 카무잔의 눈이 동그래졌다.

“너까지 무기를 포기할 필요는 없는데.”

“걸리적거려. 장식품이거든.”

“하하. 그런가?”

에단이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근육이 깨어난다. 머리는 차갑게 식고, 몸은 달아오른다.

두근두근.

심장 소리가 고막을 때린다.

삐이― 거리는 이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에단은 지금 느끼는 감각과 기분이 썩 즐거웠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다.

이건 목숨을 건 혈투가 아니었다. 그저 단순하고도 야만적인 싸움일 뿐이다.

에단은 야만적인 스포츠에서 황제로 군림해 왔다.

왼발은 앞으로, 오른발은 뒤로.

전형적인 오소독스의 스텐스.

카무잔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오, 정말 무기를 쓰지 않나 보군.”

카무잔은 에단이 내뱉은 말이 반쯤 허세라고 여겼다.

카무잔은 무기를 쓰지 않았지만, 무기가 가진 이점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카무잔이 흥미로운 모습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에단의 자세는 체계가 갖춰져 있었다.

“뭐, 내가 이것저건 잴 상황은 아니겠지?”

쓰게 웃은 에단이 ‘룬어’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사이하고 사특한, 순리를 벗어난 언어가 에단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좌절]

에단이 내뱉은 룬어가 검은 뱀이 되어 카무잔에게 접근했다.

“오.”

카무잔이 턱을 매만지며 다가오는 룬어를 흥미롭게 바라봤다. 카무잔은 저항하거나 피하지 않았다.

스르륵.

[좌절]이 카무잔의 몸을 둘러싼다.

그리고 그 순간.

파스스.

룬어가 가루로 변하며 허무하게 흩어졌다.

‘허.’

에단이 그 모습을 보며 실소를 터트렸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에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실 에단도 별로 내키지 않았다.

‘오히려 잘됐네.’

에단은 룬어를 사용할 생각을 접었다. 내뱉은 룬어는 카무잔의 격을 넘어서지 못했다.

“슬슬 시작해 볼까?”

“기대하지.”

카무잔이 씨익 웃었고, 그게 신호탄이 되었다.

파밧.

에단이 지면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에단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쓸데없는 속임수나 기교 따위는 부리지 않았다.

이 정도로 격차가 심하다면 어중간한 페이크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파바박!

에단이 주먹을 뻗었다. 에단의 전신에서 검은 오러가 타오르듯 피어났다.

수십이 넘는 주먹이 쏟아졌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공격이었다.

카무잔의 황금색 동공이 에단의 주먹을 쫓았다.

카무잔이 여유롭게 움직인다. 빠르고 민첩한 공격들이었지만,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카무잔이 공격을 피하는 순간 에단이 공격에 변주를 주기 시작했다. 킥과 엘보우, 그리고 니킥을 섞었다.

이건 복싱 시합이 아니다.

상체의 움직임만으로 모든 공격을 피하려는 것은 욕심이었다.

상체를 젖히면 무릎을 노리는 킥이.

상체를 숙이면 에단의 무릎이 카무잔의 턱을 살벌하게 노린다.

“하하.”

카무잔이 소리 내어 웃었다. 단순히 빠르고 위협적인 공격이 아닌, 퇴로를 막는 교활하고도 영리한 공격들이었다.

카무잔이 거리를 벌리려고 하자, 에단이 카무잔의 손목을 붙잡았다.

“어딜!”

에단이 손목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그러나 카무잔을 저지하지는 못했다.

쩌엉―!

에단의 손이 튕겨졌다. 어깨와 손아귀가 저릿했다.

단순한 근력의 차이만으로도 압도적이었다.

에단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지 않았는가.

“공격이 체계적이고 위협적이군. 나도 배우고 싶을 정도야.”

카무잔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에단이 멋쩍게 웃으며 뺨을 긁적였다.

“칭찬 고마워.”

“그럼…… 이제 나도 보여 줘야 할 시간이군.”

카무잔이 엷게 웃었다. 에단의 눈매가 좁혀졌다. 가슴이 서늘해졌다.

“……!”

그 순간, 에단의 눈이 부릅떠졌다.

카무잔의 모습이 사라졌다. 작정하고 의식하고 있었지만 카무잔의 모습을 좇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에단의 눈앞에 웃고 있는 카무잔이 나타났다.

에단이 상체를 젖혔다. 날카로운 풍압이 에단의 머리카락을 조금 잘랐다.

카무잔이 공격을 시작했다.

즉흥적인 투로.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

하지만 모든 공격이 위협적이었다. 휴고와 닮았지만,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서웠다.

에단의 눈이 바쁘게 카무잔의 공격들을 좇았다.

공격이 점점 빨라진다.

이미 눈으로 좇고 반응할 수 있는 속도를 넘어섰다.

카무잔은 몰아치는 폭풍과도 같았다. 도망치기만 해서는 당해 낼 수 없었다. 카무잔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카무잔의 눈은 웃고 있었다. 에단이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흐름을 끊어 볼까.’

통할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거리를 벌리는 건 불가능하다. 속도로는 카무잔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과 함께 온몸이 저릿했다.

이건 목숨을 내건 도박이었다. 짜릿한 고양감이 몸을 휩쓸었다.

에단의 움직임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카무잔의 경로에 하나둘씩 함정이 생겨난다.

발을 걸고, 발을 밟는다.

순간적인 클린치로 흐름을 끊고, 카무잔이 힘을 쓰는 순간 곧바로 다시 거리를 벌린다.

카무잔이 다시 달려들면 백스핀 엘보우나, 오블리 킥, 카프 킥 따위로 속도를 늦추려고 들었다.

‘이런 정신 나간 새끼.’

“하하하하!”

카무잔은 웃으며 에단의 함정들을 부숴 나가기 시작했다.

속도나 힘으로 찍어 누르는 방식은 아니었다. 카무잔은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카무잔의 몸이 반응한다.

그는 순수한 오감과 반응속도로 에단의 함정을 모조리 파훼했다.

궤도를 트는 것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일반적인 수준을 초월한 카무잔의 신체는 어지간한 것으로는 부하조차 입지 않았다.

카무잔이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에단은 달려드는 카무잔의 복부를 향해 프론트 킥을 날렸다.

씨익.

카무잔이 웃으며 에단의 발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에단의 발이 뱀처럼 카무잔을 휘감았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트라이앵글 초크.

‘염병할.’

에단의 본능이 다급하게 경종을 친다. 에단이 기껏 완성시킨 그립을 순식간에 풀며 거리를 벌렸다.

“방금 것도 신기했어.”

카무잔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에단을 바라봤다.

“그거 영광이군.”

에단이 쓰게 웃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힘의 격차를 확인하니 기분이 더러웠다.

에단이 전력을 다해 발악해도 카무잔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오러와 체력의 소진도 극심했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한다.

마나량과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목숨을 건 줄타기 속에서는 금세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에단을 바라보는 카무잔의 표정이 아쉬움에 물들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즐거웠다.”

“아니, 아직 아니야.”

에단은 아직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카무잔이 에단의 눈을 응시했다. 에단의 눈은 이채를 머금고 있었다.

마음이 꺾인 자의 눈빛이 아니었다.

‘대단하군.’

힘의 차이가 이리도 확연할진대 아직도 포기하지 않다니.

카무잔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즐거웠다. 그렇기에 아쉬웠다.

‘여기서 조금만 더 성장하면.’

더 즐거운 싸움을 겪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접 키우고 싶을 정도군.’

카무잔은 제자를 기르지 않는다.

그가 좋아하는 건 강자와의 싸움이었지, 약자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에단을 보고 나서 그 생각이 달라졌다.

‘이 녀석이라면.’

키울 맛이 있을 것도 같았다. 카무잔이 아쉬움을 억누른 채 말했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더해 봤자 의미는 없을 것 같은데.”

“하하. 지금 꼴로 말하는 것도 우습기는 하지만 아직 보여 주지 못한 게 남아서.”

“오, 정말인가?”

카무잔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그 천진한 표정에 에단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미워할 수가 없군.’

스읍― 후우―.

에단이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거친 호흡이 순식간에 진정되었다. 에단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카무잔을 바라봤다.

“자, 마지막으로 한번 해보자고.”

“그럼…… 기대하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은 카무잔이 달려들었다.

‘눈이 적응한 건가?’

방금까지만 해도 육안으로 전혀 따라가지 못한 카무잔의 움직임이 흐릿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에단이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이제 체력은 바닥이었다. 앞으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다.

그렇다고 어설프게 체력의 안배 따위를 신경 썼다가는 순식간에 뒈질 판이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실망시킬 수는 없지.’

에단의 가슴 속에서 승부욕이 타올랐다.

쾅!

에단과 카무잔이 격돌했다.

에단이 종이 한 장 차이로 카무잔의 공격을 피해 내기 시작했다.

카무잔의 공격은 대단히 빠르고 위협적이었지만, 궤도 자체는 단순했다.

에단이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피해 내자 카무잔이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후웅!

파공음이 섬뜩했다. 카무잔의 공격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궤적이 달라진다. 에단의 눈이 커졌다.

‘기가 막히군.’

카무잔은 에단이 했던 공격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킥과 니킥, 엘보우를 섞기 시작했다.

공격의 옵션이 다양해진다.

특유의 화려함이 옅어지고, 궤적이 훨씬 교묘하고 치밀해진다.

“하하하.”

에단은 침착하게 공격을 읽어 나가고 있었다. 어설프게 흐름을 끊으려고 해 봤자 소용이 없었다.

에단은 카무잔의 공격을 가만히 지켜봤다.

‘기다려라.’

카무잔의 공격은 하나같이 엄청난 위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라는 게 이런 걸 말하는 건가.’

불합리한 힘의 차이.

하지만 그렇다고 에단은 불평을 내뱉을 생각이 없었다. 지금 에단이 해야 할 것은 활로를 찾아내는 것.

카무잔의 공격은 다양했다. 동작이 큰 공격도 특유의 센스와 속도로 단점을 메운다.

‘이 흐름을 끊으려면.’

가장 위협적인 순간에 손을 밀어 넣어야 한다.

그것이 짐승의 아가리라고 하더라도.

기회를 발견한 에단의 눈이 번뜩였다. 에단이 왼손을 뻗었다.

카무잔의 눈이 가늘어진다.

‘무슨 의도지?’

생각은 찰나였다.

자비를 바라는 것이라면 실망스러웠다.

쩌저정!

카무잔의 주먹이 에단의 왼손에 적중했다.

에단의 왼손에 깃들어 있는 타이탄의 힘은, 대군주 카무잔의 힘조차 견뎌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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