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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342화 (342/398)

◈ [342화] 대군주 카무잔 (2)

“흐음…… 협력 관계라.”

카무잔이 에단의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마치 음식을 음미하듯이.

“나한테는 크게 다르게 들리지는 않는군.”

카무잔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에단은 그 미소에서 진한 야성을 느꼈다.

‘휴고나 렉사르랑은 비교가 안 되는군.’

카무잔에게 풍기는 완숙하면서도 사나운 야성과 비교하면 휴고나 렉사르가 내뿜던 기세는 강아지가 짖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릿저릿.

피부가 아려왔다. 예리한 칼날이 살을 저미는 기분이다. 마주하는 것만으로 느껴지는 강대한 기세.

존재감이 증명했다.

카무잔의 여유는 자신의 힘에서 비롯된 여유였다.

오만 따위가 아니다. 무너진 성의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겉만 번지르르 한 성 따위는 카무잔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중요한 건 힘.

그것이 곧 본질이었다.

카무잔이 마음만 먹는다면 적들의 빼곡한 군세나, 높고 견고한 성 따위는 한줌의 가루가 될 것이다.

성을 복구할 필요가 없기에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카무잔의 생각이 보이는 것 같았다.

배가 고프면 배를 채우듯, 카무잔에게 있어 성이나 도시 따위는 허울에 불과했다.

파르르.

에단이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손바닥이 축축했다.

기분이 묘했다.

‘나쁘진 않은데.’

에단이 카무잔을 바라보며 웃었다.

“호오.”

에단이 웃는 것을 바라보면 카무잔이 작은 감탄사를 흘렸다.

카무잔은 나름대로 진심으로 살기를 흘리고 있었다.

어지간한 군주들도 자신의 살기를 정면에서 받아넘기지 못한다.

‘버러지 같은 놈들 투성이지.’

그깟 놈들이 군주라고 으스대는 꼴을 보고 있자면 구역질이 치밀 정도로 역겨웠다.

그 자리에서 찢어 죽이고 싶을 정도로.

카무잔의 안광이 형형하게 빛났다.

황금빛 안광은 에단을 호의적으로 바라봤다. 그의 기세가 점점 강해졌다.

쿠구구구.

대군주의 기세에 주변 환경이 먼저 반응했다. 살기가 유형화된다.

폐허가 된 잔해들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후우우.”

에단이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카무잔의 살기가 강해지고 있었다.

‘이건 안 되겠네.’

공포는 매우 원초적이고 직관적인 감정이었다.

에단의 마음속에서는 공포라는 감정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힘의 격차는 확연하다.

카무잔이 거대한 사자라고 칭한다면 에단은 작은 쥐새끼조차 되지 않는다.

‘그래도 사내새끼라면.’

여기서 꼬리를 말수는 없었다.

적어도 에단이 마주하고 있는 카무잔이라면, 그리고 에단의 예상이 맞다면.

‘살기 조금 내비췄다고 꼬리를 마는 새끼랑은 협상을 안 하지.’

그렇다면 보여 주면 된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아무것도 없이 지하에 떨어졌다.

그간의 도박은 모두 성공했다. 도박은 익숙했지만 이건 도박이라고 보기조차 힘들었다.

도박보다 객기에 가까운 행위.

‘끽해야 죽기밖에 더하겠어?’

에단은 가진 모든 것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키에에에에엑―!

죽은 나무가 끔찍한 귀곡성을 터트리고, 지금껏 양분으로 삼았던 수많은 힘들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블랙 오우거, 데스 나이트, 리치 베오드라도, 드래곤, 바실리스크, 이름 모를 군주.

수많은 힘들이 뒤섞인다.

순수하지 않은 혼탁한 기운들이다.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말인가?

결국 그것들은 에단의 힘이 되었다.

파직! 파지직!

불똥이 튀었다. 유형화된 살기가 세력을 다투기 시작한다.

카무잔의 눈이 동그래졌다. 설마 이 정도의 저력을 숨겨놨을 줄이야.

“하하하.”

카무잔이 환하게 웃으며 옥좌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이 흥분으로 물들었다. 멀쩡하던 팔걸이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이거 상상 이상이야!”

카무잔이 에단에게 다가가기 시작하자 그의 기세가 점점 강해졌다.

주르륵.

미소 짓고 있는 에단의 입가에서 검붉은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미 에단의 속은 엉망인 상태였다. 하지만 에단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직 패가 남았어.’

카무잔이 조금 더 다가오는 순간. 에단은 룬어를 내뱉을 생각이었다.

‘헛된 발악이겠지만.’

별 의미는 없을 것이다.

힘의 격차가 너무 압도적이다. 룬어라는 편법을 이용해도 그 근본적인 거리는 좁힐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발버둥을 친다는 게 중요하지.’

에단의 눈빛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카무잔이 에단의 눈을 응시했다. 에단의 눈빛은 아직 죽지 않았다.

포기한 자의 눈과 기회를 누리는 자의 눈빛은 다른 법이다.

씨익.

카무잔이 피식 웃었다.

그 순간 일대를 잠식한 압도적인 기세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에단을 집어삼키려던 기세가 순식간에 사라지자, 에단이 휘청거렸다.

에단은 무릎을 짚으며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허억, 허억.”

에단이 숨을 헐떡거렸다.

하지만 아직 죽지 않은 시선으로 카무잔을 바라봤다.

“마음에 드네.”

일단은 합격이었다.

*   *   *

에단은 카무잔의 시험을 통과했다.

카무잔은 에단이 예상하던 자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는 확실한 대군주였다.

“자리가 볼품없지만 대충 앉지.”

카무잔이 폐허를 이리저리 뒤적이며 의자를 끄집어냈다.

기막힌 광경에 실소를 터트린 에단이 자리에 앉았다.

“빙빙 돌리는 건 싫어하겠지?”

“정확하군.”

“내가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아모드라의 부탁 때문이다.”

“‘명령’이 아니라, 부탁이라. 재밌군.”

카무잔은 웃음기를 머금으며 에단을 바라봤다. 적어도 지금 에단을 바라보는 시선은 호의적이었다.

“말했잖아. 협력 관계일 뿐이라고. 그래서 묻지. 대화를 거절하고 아모드라를 적대하는 이유는?”

“그 새끼가 좆같이 나왔으니까.”

카무잔은 고민 없이 즉답했다.

카무잔이 미간을 찌푸리며 에단을 바라봤다.

“……좆같이 나왔다고?”

“그래. 혼자 고상한 척을 다 하며 이득을 취하는 박쥐 새끼랑 어째서 대화를 해야 하지?”

에단은 말없이 카무잔의 표정을 바라봤다.

진심이었다.

“……대체 아모드라가 뭘 했지?”

먼저 아모드라를 향한 적대감의 이유를 알아야 했다.

“듣고 싶나?”

에단을 바라보는 카무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때부터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시작되었다.

카무잔과 아모드라의 관계는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매우 사소한 것들부터 시작된 사연들은 상당히 지루했다.

이야기를 듣던 중간에 지루함을 참지 못한 에단은 하마터면 하품을 할 뻔했다.

‘이거 위험할 뻔했군.’

카무잔 앞에서 지루한 내색을 하는 순간 협상이고 나발이고 빼도 박도 못할 게 빤했다.

에단이 고개를 끄덕이며 카무잔의 말들을 맞장구쳐 주기 시작했다.

― 흠…… 그랬단 말이지…….

― 그건 정말 너무하군.

― 악랄하기 짝이 없어.

― 그런 짓까지 했단 말인가?

에단은 대충 눈치껏 장단을 맞춰졌고, 카무잔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토해 냈다.

‘뭐야 생각보다 별거 없잖아?’

대군주쯤 되는 자들이 가진 감정의 골치고는 너무 유치한 것들 투성이었다.

“……여기까지다.”

카무잔이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에단은 황당함을 삼키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확실히…… 그쪽이 아모드라를 믿지 못하는 건 타당한 것 같군.”

“그래. 녀석은 상종해서는 안 되는 녀석이다.”

‘단순하군.’

힘만 강할 뿐. 카무잔은 렉사르나 휴고보다 단순하고 직관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아. 흘러가는 상황에 대해서 알고 있나?”

“무슨 상황을 말하는 거지?”

“블란테. 들어본 적 있을 텐데.”

에단이 블란테를 거론하자 카무잔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기억이 나는군.”

“만난 적이 있나?”

“그래. 생각해 보면…… 녀석도 너처럼 특이한 놈이었어.”

“……자세히 듣고 싶은데.”

“특별한 일은 없었어. 나와 손을 잡자고 했고, 나는 거절했다.”

“거절?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말했을 텐데. 뒤가 구린 녀석이랑은 손을 잡지 않는다고. 그리고…… 나는 유식한 척하는 놈들을 딱히 좋아하지 않아.”

카무잔의 표정은 진지했다.

얘기를 들은 에단은 헛웃음을 흘렸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 녀석은…… 상당히 질이 좋지 않지.”

대화가 다시 원점이 되었다.

카무잔의 표정에서 슬슬 귀찮음과 지루함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최대한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말하지. 두 대군주가 손을 잡았고, 서서히 세력을 넓히고 있지.”

아모드라는 이미 페온과 아리오나에 대한 파악을 끝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자신이 잡아먹히고 말리라는 것을.

“그렇군.”

카무잔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표정만 보더라도 관심이 전혀 없다는 게 느껴졌다.

“곧 여기도 집어삼키려고 들겠지.”

“오, 정말인가?”

카무잔의 눈이 반짝인다.

그는 지금 진심으로 자신을 습격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뭐 이런…….

“……두 대군주를 상대로 자신이 있나?”

“글쎄. 그건 해봐야겠지.”

카무잔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마치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표정이었다.

싸움과 투쟁.

그것이 카무잔이 살아가는 이유이자 원동력이었다.

강하면 잡아먹고, 약하면 잡아먹힌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였다.

그 순리에 충실하다 보니 지금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카무잔은 딱히 원하지 않는 자리였다. 하지만 한 무리의 수장이 된 이상 어쩔 수 없는 책임과 의무가 따랐다.

“……싸우고 싶나?”

에단이 카무잔을 향해 물었다.

카무잔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어.”

고민의 여지조차 없는 깔끔한 대답.

‘머리는 아픈데…… 싫지는 않네.’

에단은 이런 자를 미워할 수 없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세력이 유지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에단이 허름한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성이 페허가 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성. 네가 부쉈나?”

“어.”

“이유는?”

“그냥 부수고 싶어서?”

카무잔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뭐 문제될 거 있냐는 표정이었다.

“건물을 수리하지 않은 이유도 딱히 할 필요가 없어서겠지?”

카무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녀석에 대한 파악이 끝났다.

에단은 천천히 기지개를 피며 몸을 풀었다.

카무잔은 눈을 끔뻑이며 그런 에단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도 이런 방식이 좋아.’

에단이 카무잔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복잡하게 머리를 굴려대는 건 역시 성미에 맞지 않았다.

“정 싸우고 싶으면…… 나랑 한번 붙지 그래?”

“오.”

카무잔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너무 금방 끝날 거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설마 진심으로 할 생각은 아니겠지? 적당히 하라고 적당히. 손속에 사정을 두면서.”

카무잔이 진심을 다하는 순간, 이 싸움은 성립되지 않는다.

잠시 골똘하게 고민하던 카무잔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노력해 보지.”

“좋아. 그럼 얘기 끝났네.”

에단이 호쾌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시원하게 한번 붙고, 그 뒤에 얘기하자고. 그게 그쪽 방식이지?”

“하하하.”

카무잔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마음에 들어.”

에단과 카무잔이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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