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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339화 (339/398)

◈ [339화] 목적 (1)

크리스토가 황성으로 복귀했다. 너덜해진 옷을 바라보던 그가 피식 실소를 흘렸다.

“상상 이상의 괴물이군.”

크리스토에겐 가진 패가 많았다.

빈센트가 괴물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가진 것들을 전부 활용하면 충분히 해봄 직하다고 여겼다.

‘웃기는군.’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빈센트는 크리스토의 예상보다도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역시 혼자서 상대하긴 힘에 부치는군.’

그동안은 군주들을 이용해 빈센트를 처리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상황이 바뀐 이유가 무엇일까.’

크리스토가 팔을 들자, 하녀들이 조심스런 손길로 너덜해진 의복을 갈아입혔다.

옷을 갈아입은 크리스토가 옥좌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느릿하게 옥좌에 앉은 크리스토는 다리를 꼬며 턱을 괴었다. 모든 행동과 표정에서 오만함과 여유로움이 묻어나왔다.

크리스토의 입꼬리는 슬며시 말려 있었다. 부드러운 미소는 아니었다.

삭막한 눈과 대비되는 흉흉한 미소였다.

‘녀석은 어떻게 됐을까?’

지하로 떨어진 에단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능하다면 그때 죽이려고 들었다. 크리스토는 에단 같은 이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녀석은 짐승이야.’

그것도 길들이지 못할 짐승이었다.

언제든지 자신의 목을 노릴 수 있는, 사납고도 흉포한 짐승.

‘시기를 놓쳤지.’

그렇기에 뒤늦게라도 에단을 죽이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설마 그런 수까지 숨겨 두고 있었을 줄이야.’

타이탄의 장갑과 룬어까지.

“하하.”

크리스토가 소리 내어 웃었다. 넓은 황궁에 크리스토의 음성이 메아리쳤다.

툭. 툭. 툭.

크리스토가 팔걸이를 두드렸다. 계획이 틀어지고 있었다.

‘과연 죽었을까.’

크리스토의 입꼬리가 다시 한번 비틀렸다.

본래라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물속에서 살 수 없다.

본디 모든 생명체는 살아갈 장소가 정해져 있었고, 지하는 인간이 살 수가 없는 곳이었다.

환경적으로도 그랬지만, 그 외적으로도 생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녀석이라면.’

크리스토는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에단을 떠올리기만 해도 웃음이 흘러나왔다. 재밌었다.

그를 잠식하던 지루함과 권태로움이 그때만큼은 어느 정도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그 또한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되겠지.’

지금으로서는 앞에 닥친 일들을 처리해야만 했다.

민심이 좋지 않았다. 신하들도 황제를 향한 경계심이 극에 달했다.

종교는 통치자에게 있어서 다루기 편한 도구였다. 그렇기에 제국은 신성 왕국과 오랜 기간 협력해 왔다.

하지만 신성 왕국은 블란테에 의해 멸망했다.

전투가 가능한 성기사들과 사제는 한 명도 빠짐없이 몰살당했다.

대륙은 큰 충격에 빠졌다.

신성 왕국을 이용해 황권을 공고히 하려던 크리스토의 입장에서는 좋지 않은 상황이다.

‘아니지.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애당초 크리스토는 신성 왕국 놈들의 궁극적인 목적을 알고 있었고, 끝까지 함께할 생각도 없었다.

녀석들은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다.

비틀리고도 편협만 욕망과 사상은 구역질이 치밀 지경이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걸 빼앗길 줄이야.’

큭큭.

크리스토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건 계획이 조금 틀어진 수준이 아니었다. 본래의 목적 자체가 불분명해진다.

‘되찾을 수 있다면 되찾겠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지하의 문을 여는 것은 엄청난 리스크를 동반한다. 단 한 번의 시도로 얼마나 많은 손해를 입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연속으로 여는 건 불가능하고.’

설령 통로를 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가 문제였다. 과연 지하로 내려가 그것을 빼앗아 올 수 있을까?

피식.

크리스토가 코웃음을 흘렸다.

확률이 희박한 정도가 아니었다. 그건 불가능하다.

상황이 이렇게나 최악이라면 포기할 법도 했지만, 어째서인지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상황이 바뀌었다면 그것에 따라 판단도 유동적이게 하면 그만이었다.

“괴물에게 손을 한번 내밀어 볼까.”

그 말을 하는 크리스토의 입가에는 여전히 서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에단과 네빌라는 말을 탄 뒤 곧장 여정에 올랐다. 네빌라는 떨떠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정말로 별일 없었나?”

그녀가 기괴한 눈초리로 에단을 훑어봤다. 어딘가 묘한 시선에 에단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의미야?”

“……말 그대로의 의미다. 무슨 대화를 나눴지? 어떻게 그곳에서 아무 일 없이 나올 수가…….”

“걔가 뭐 신이라도 되냐?”

에단이 콧방귀를 뀌며 말하자, 네빌라가 흠칫 놀라며 주위를 훑어봤다.

혹여나 에단이 내뱉은 소리를 누가 주워들었을까 경계한 것이다.

“아무리 도시를 나왔다고는 하지만 너무 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 것 아닌가?”

“맞는 소리잖아. 걔도 평범……하지는 않겠지만, 결국 마족이긴 하잖아? 좀 세고 오래 사는 놈.”

“……미치겠군.”

네빌라가 밀려오는 두통을 참지 못하고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다른 군주도 아니고, 대군주를 향해 이런 말을 내뱉은 건 에단밖에 없을 것이다.

“설마…… 군주 앞에서도 그런 말투였나?”

“그런데?”

“맙소사…… 정말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아니, 내가 아는 에단이 맞나?”

그녀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에단을 바라봤다.

“오히려 그러니까 살아 있는 거지. 일반적인 놈들처럼 비굴하게 굴었으면 벌써 목덜미에 이빨이 꽂혔을걸.”

네빌라가 킥킥대는 에단을 질린 표정으로 바라봤다. 저걸 지금 농담으로 하는 소린지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하아…… 그래서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빌라엠.”

“빌라엠?”

네빌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익숙하지 않은 지명이었다.

“카무잔의 도시라고 하던데? 나도 이름만 알고 잘은 몰라.”

“……잠깐. 카무잔이라고?”

“그 이름은 아나 보네?”

에단이 피식 웃자 네빌라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 이름을 모를 리가.

‘무적의 전사 카무잔.’

전사들에게 있어 카무잔이라는 이름의 대군주는, 신이나 다름없었다.

“왜? 막상 간다니까 겁이라도 나?”

“그, 그럴 리가. 이거 꽤나 기대가 되는군.”

네빌라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하자 에단이 웃음을 삼켰다.

“그래서 지형은 알고 이렇게 가고 있는 건가?”

“약도를 받기는 했는데…… 잘은 모르겠군.”

에단이 손에 쥐고 있던 종이 쪼가리를 흔들며 말하자 네빌라가 인상을 썼다.

“쯧, 그럴 줄 알았다. 이리 줘 봐.”

호기롭게 약도를 낚아챈 네빌라였지만, 그녀도 인상을 쓴 채 한참 동안 약도를 바라보기만 했다.

“…….”

“뭐야, 너도 모르는 거야?”

“나도 이쪽부터는 지리에 익숙하지 않아.”

“그럼 처음부터 그렇다고 말할 것이지. 자존심만 세서는.”

네빌라가 뾰로통한 눈으로 에단을 쏘아봤지만, 에단은 태연하게 넘겼다.

그러던 와중 에단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드디어 찾았네.”

“찾아? 뭘 찾았다는 거지?”

네빌라가 에단이 바라보는 장소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곳엔 점처럼 보이는 사람 무리가 보였다.

네빌라가 가만히 무리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저건 왜?”

“모르면 가만히 따라 나와.”

에단이 고삐를 쥐고 달렸다. 네빌라가 한숨을 내쉬며 에단을 뒤따랐다.

무리가 가까워졌다.

몇몇의 호위 인력과 큼직한 짐마차 몇 개를 보아하니 에단의 예상대로 상인인 것 같았다.

“누구냐!”

호위병이 에단을 바라보며 경계했다. 에단은 말 위에서 내려 두 손을 들며 전투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떠돌이 여행객인데 신세 좀 질 수 있을까 해서요. 혹시 빌라엠으로 가는 것 맞습니까?”

에단이 자연스럽게 말하자 호위병끼리 시선을 교환했다.

“……빌라엠으로 가는 건 맞다. 하지만 신세를 지겠다고? 그건 우리끼리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역시 에단의 예상대로 이 상단이 향하는 장소는 빌라엠이 맞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나마 아모드라의 도시에서 교류할 수 있는 거리의 도시가 빌라엠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에단을 뒤따라온 네빌라가 말 위에서 내려 호위병들을 바라봤다.

“……그쪽은 일행인가?”

호위병들이 네빌라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묻자, 네빌라가 설명이 필요하다는 눈빛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흘러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충 눈치껏 행동해.’

에단이 눈초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네빌라는 황당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네빌라가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잠시만 기다려라.”

호위병들이 서로 조용히 대화를 나누다가 커다란 마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차 안에서 누군가가 힘겹게 나왔다. 비대한 덩치를 지니고 있는 남자였는데, 가는 눈매 사이로 드러나는 뱀 같은 안광이 썩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빌라엠까지 함께 가고 싶다고?”

“그렇습니다.”

에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빌라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단이 누군가에게 말을 높이는 경우를 지금 처음 봤기 때문이다.

에단을 가만히 응시하던 남자, 로메로가 입을 열었다.

“흐음…… 쉽게 결정을 내릴 수는 없군. 우리가 이렇게 보여도 대업을 위해서 움직이는 자들이라서 말이야.”

“오…… 대업 말입니까?”

“그래.”

로메로의 입이 길게 찢어졌다. 웃는 모습까지도 교활하기 그지없었다.

‘찾았다.’

에단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내심 큰 기대는 안 했었는데 한 번의 시도 만에 찾고 말았다.

“그래. 뭐, 들으면 깜짝 놀라겠지만…….”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 로베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모드라 님의 명을 받아 움직이고 있지.”

“……아. 저, 정말입니까?”

에단이 뒤늦게 반응했다. 너무 기가 막혔기 때문이다.

‘뭐지 이 새끼는?’

설마 여기서 갑자기 아모드라의 이름을 팔 줄은 예상치 못했다.

‘내가 잘못 판단했나?’

정말 아모드라가 따로 보낸 세력인가 싶은 의구심이 들 때쯤.

얇은 눈매 사이로 드러난 로베로의 눈이 힐긋힐긋 돌아갔다.

시선이 향하는 장소는 에단이 있는 곳이 아닌, 에단의 곁이었다.

‘이 새끼.’

녀석은 에단의 상상보다 더 제정신이 아닌 놈이었다.

에단은 로베로의 눈에서 추악한 탐욕과 욕망을 엿볼 수 있었다.

저런 욕망을 가진 이가 풍기는 지저분한 냄새는 숨기려고 한다고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반면 에단과 달리 네빌라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눈빛을 보니 진짜냐고 되묻는 것 같았다.

‘진짜겠냐고.’

아모드라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군주 중에서 자비롭다고 한들 과연 저런 돼지 새끼까지 부하로 삼을까?

“원래라면 단번에 거절해야 하겠지만…….”

로베로가 되도 않는 연기를 하며 말끝을 흐리자 에단은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그냥 엎어?’

여기서 엎어도 큰 지장은 없었다.

밝히는 순간 죄다 도망치려 들겠지만, 에단은 쥐새끼 한 마리조차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협박을 한다고 제대로 협력을 하냐는 건데.’

에단이 어떻게 할까를 놓고 마음속으로 천천히 저울질을 하던 그때.

녀석이 입을 열었다.

“적당한 성의 표시만 해 준다면……”

“야 이 돼지 새끼야.”

새끼가 적당히 해야지.

에단이 황당한 표정으로 로베로를 노려봤다.

“어디까지 참아 줘야 직성이 풀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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