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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337화 (337/398)

◈ [337화] 도박 (1)

내장이 으깨지고 몸이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에단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힘겨운 미소였지만 에단은 확실히 웃고 있었다.

아모드라는 기가 찰 지경이었다.

에단이 부리는 것이 한낱 객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 객기를 부리는 대상이 대군주인 자신이라는 것이었고, 자신은 지금 존재감을 조금도 숨기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미소 짓기는커녕 이대로 심장이 멎어 죽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

그러한 상황 속에서 에단은 미소를 짓지 않고, 아모드라의 기세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아모드라는 이상하게도 분노를 느끼지 않았다.

분노보다는 뭐라고 할까.

흥미와 호기심, 갸륵함 따위의 감정이 느껴졌다.

아모드라가 웃음기 서린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보자, 에단이 입을 열었다.

“내 말이 틀렸나?”

“계속 지껄여 보지.”

“네가 강한 건 알겠어. 고작 기세를 조금 풀었다고 아주 죽을 맛이군. 몸이 이리저리 찢기는 기분이야.”

“그런 것치고는 꽤나 여유가 있어 보이는데?”

“내가 자존심이 좀 세서 말이야. 죽을 때는 죽더라도 머리를 굽히는 건 좀 싫거든.”

“흐음…… 확실히 그래 보이긴 하는군. 그런데 그 사실을 알고 있나? 이 세상에는 죽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최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해 보든가.”

히죽.

에단이 웃었고, 아모드라가 마주 웃었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아모드라가 기세를 거뒀다.

장내에 가득하던 그의 존재감이 불현듯 사라졌다.

에단이 강하게 움켜쥔 주먹에 힘을 풀었다.

등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 있었다.

마음 같아선 체면 따위 집어치운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싶었다.

하지만 에단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기운을 갈무리했다.

톡. 톡.

아모드라가 에단을 지그시 바라보며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나른해 보이기도 하면서 권태로운 표정이었다.

“그럼 이야기를 다시 나눠 볼까?”

“오, 주제 파악 못 하는 망나니 새끼랑도 대화를 해 주는 건가?”

에단이 이죽거리듯 말하자 아모드라가 피식 웃었다.

“시험은 통과했으니 그럴 가치는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그거참 영광이군.”

아모드라의 반응이 생각보다 호의적이었다.

그는 권위적이고, 오만한 군주였지만, 한편으로는 관대와 여유를 갖추고 있기도 했다.

씨익 웃은 에단이 입을 열었다.

“대군주를 실제로 대면해 보니까 얼마나 괴물 같은지 조금 실감 나네.”

“면전에서 괴물 같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한데.”

“칭찬이니까 불쾌하게 받지는 마. 방금 한 말을 들어보니까…… 각 군주간의 무력은 대동소이한 편인가?”

“흠…….”

아모드라가 잠시 고민하듯 턱을 매만졌다.

“자존심이 조금 상하기는 하나, 그렇다고 볼 수 있지. 한쪽으로 치우치는 순간 잡아먹히기 마련이니.”

“그럼 역시나 내 말이 사실이네.”

에단이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별로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아모드라는 긍정하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에단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말라고. 뒤통수를 연속으로 얻어맞은 건 나도 마찬가지니. 나는 내 뒤통수를 친 새끼를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어. 당한 게 있다면 그 배로 돌려줘야만 직성이 풀리거든.”

“성격이 고약하군.”

“칭찬으로 받지. 그러니까 하는 소리야. 웨어울프가 마을에서 활개를 치는 걸로 보아 다른 대군주인 카무잔하고도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은데. 내 예상이 맞나?”

“무식한 자와는 상종하기가 힘든 법이더라고.”

아모드라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 표정을 바라보며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눈엣가시인 군주 둘이 협력하는 와중에 페온은 요상한 괴물까지 손에 넣었지. 아무리 그쪽이 가진 힘에 자신이 있어도 상당히 위기감이 느껴질 만하네.”

“안타깝게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군. 예상보다 통찰력이 상당한데. 그래서 면전에 대놓고 불편한 속을 긁는 이유는 뭐지?”

“나도 이유 없이 속을 긁어 대는 취미는 없어. 제안을 하나 하지.”

“제안?”

아모드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래. 나와 협력하자고. 나는 무슨 수를 써서든 지상으로 돌아갈 거야. 단순히 돌아가는 것만으로는 안 돼. 지금보다 더 힘을 얻고, 페온을 견제해야 하는 입장이니까.”

“협력…… 협력이라…….”

아모드라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은 채 에단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다지 끌리는 제안은 아니군. 실력은 쓸 만해 보이지만…… 눈에 찰 정도는 아니야.”

“판단이 섣부른데. 너는 아직 내 전부를 보지 못했어.”

“자신감은 보기 좋아. 하지만…… 내가 보기엔 객기로밖에 보이지 않는군. 운 좋게 군주 한 명을 이겼다고 콧대가 높아진 건가?”

“아니. 난 근거 없는 객기를 부리는 게 아니야.”

에단이 품에서 목걸이를 꺼냈다. 유론다가 건네준 빛바랜 목걸이었다.

“이거. 죽은 나무와 연관이 있지?”

“…….”

순간 아모드라의 표정이 굳었다.

에단은 자신이 짐작하던 것에 대해 확신을 얻게 됐다.

“묘하단 말이지. 유론다의 말이나, 지상에서의 일이나. 생명의 나무와 죽은 나무. 증표가 되는 목걸이…….”

뭔가가 묘하게 맞물리고 있었다. 에단은 그것들이 영 거슬렸다.

“내 몸에 있는 죽은 나무가 고작 나뭇가지 하나란 소리를 들으니 그제야 확신이 들더라고. 이 목걸이랑 죽은 나무가 연관이 있다는 확신이.”

“……재밌는 추측이군. 그래서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거지?”

“내가 잡은 군주 녀석이 네 권속이라면 아귀가 맞아. 다른 대군주들의 낌새가 심상치 않고, 죽은 나무를 노리는 게 사실상 확실시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쪽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어째서 아무것도 없는 황야 따위를 얻으려고 대군주가 손을 뻗었을까.”

에단이 빛바랜 목걸이를 짤랑거렸다.

“이걸 원한 거 아닌가?”

“…….”

아모드라가 말없이 에단을 바라봤다. 피처럼 새빨간 아모드라의 동공이 에단을 직시하고 있었다.

“……내가 원한 게 그 골동품이 맞다면 어째서 너를 아직까지 살려 두고 있지?”

“나도 그게 의문이었단 말이야. 예상이 맞다면 이걸 보여 준 직후 반응이 있었을 텐데, 생각보다 별다른 반응이 없더라고. 그래서 생각해 봤지.”

“너도 확신이 없었거나, 이 목걸이가 있어도 사용할 수 없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고.”

“…….”

“지하에 죽은 나무가 있듯, 지상에도 비슷한 게 있다는 걸 알고 있나?”

“그래.”

“나는 그 나무의 힘을 거의 대부분 흡수했다.”

“허언이 심하군.”

“허언처럼 보이나? 지하로 내려온 이후부터는 사용할 수가 없지만, 너 정도 되면 확인은 가능할 거 아니야.”

가만히 에단을 바라보던 아모드라의 몸이 안개처럼 사라졌다.

사라진 아모드라가 어느새 에단의 앞에 나타났다. 그가 에단의 손목을 붙잡았다.

“……하.”

실소를 터트린 아모드라가 다시 안개처럼 사라진 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확신이 좀 드나?”

“……모르겠군.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왔지만 너 같은 녀석은 처음이야.”

아모드라는 에단의 몸속에 깃든, 끝을 모르는 마나의 근원을 바라봤다.

지금은 깊은 곳에 잠들어 있었지만, 계기만 있다면 언제든지 깨어날 수 있었다.

고작 죽은 나무의 일부가 어떻게 이렇게 힘을 키웠는지 의문이었지만, 그 의문도 풀렸다.

죽은 나무는 저 기운과 동화되었다.

서로 상충되는 두 기운은 완전히 동화되어 매우 이질적인 힘을 띠고 있었다.

불가사의한 녀석이다.

가진 기운의 양으로 따지면 대군주인 자신보다 훨씬 막대했다.

아모드라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자였다.

‘이 녀석이라면…….’

아모드라의 눈매가 좁혀졌다.

머릿속에서 조금씩 계획이 세워지고 있었다.

“협력을 하고 싶다고 했나?”

“그래.”

“대신, 조건이 있다. 네가 그 조건을 달성한다면 너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도록 하지. 돈이든, 세력이든, 정보든, 네가 말했던 지상으로 돌아가는 통로든.”

“……들어보고 정하지.”

에단의 대답에 아모드라가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 * *

네빌라는 거의 패닉에 빠진 채 객실에 앉아 있었다.

객실은 아늑하고 고급스러웠다.

그녀가 평생을 살아온 마을의 천막과 비교하니 그 체감이 더욱 심했다.

침대는 포근했고, 구조물은 화려했다.

방 안에는 좋은 냄새까지 느껴졌다.

‘우리는…… 무얼 위해서 싸워온 거지?’

마을을 지키겠다는 사명감, 전사로써 지니는 명예와 긍지.

그 모든 것들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녀가 알고 있던 세상은 무너져 내렸다.

세상은 황량한 대지가 전부가 아니었고, 식량과 식수를 얻기 위해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게 삶의 전부가 아니었다.

네빌라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직도 문이 열렸을 때 느꼈던 공포가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스산한 한기가 뼛속까지 치미는 것 같았다.

‘……전사 실격이군.’

겁에 질린 전사는 전사로서의 가치를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진정으로 동료를 걱정하고 있다면 그 안에 같이 들어가야만 했다.

그러나 그녀는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래서는 전사가 아닌, 힘없는 아녀자나 다를 바 없었다.

그녀가 자괴감에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객실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쾅!

네빌라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열린 문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히죽 미소 짓고 있는 에단이 있었다.

“뭐 하고 있었냐?”

“너…….”

네빌라가 멍한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그곳에서…… 정말 살아 나왔다고?

에단의 모습을 보고도 아직도 쉽사리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신 차리고 가자. 시간이 없어.”

에단이 네빌라를 채근했다. 그녀는 떨떠름한 상태로 몸을 일으켰다.

에단과 네빌라가 객실 밖으로 나가자 복도에는 로이드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출구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로이드가 앞장서기 시작하자 갑자기 주변 환경이 뒤바뀌었다.

내성의 복도를 걷던 에단과 네빌라는 어느새 성 밖으로 뚝하고 떨어져 있었다.

네빌라가 입을 벌린 채 눈을 끔뻑였다. 제정신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기괴한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그럼 무운을 빌겠습니다.”

성문 앞가지 마중을 나온 로이드가 기품이 흐르는 인사를 한 후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은 에단이 넋을 잃은 채 우두커니 서 있는 네빌라의 손목을 붙잡았다.

“가자.”

“……어?”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아…….”

에단은 네빌라와 함께 말을 맡겨 둔 여관으로 향했다. 여관 안에 들어서자 주인이 호쾌하게 웃으며 에단을 반겼다.

“오,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구먼. 그래, 보상은 받았나?”

에단이 여관 주인에게 자랑하듯 묵직한 돈주머니를 짤랑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공짜 술을 얻어먹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시간이 없어. 우리가 맡겨 둔 말은 어디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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