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5화] 뱀파이어 로드 (3)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지?
네빌라는 에단이 짓는 미소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 어둠은 이질적이다.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심장을 옥죄는 것 같았다.
저건 단순한 어둠을 넘어선 그 이상의 무언가였다.
저 어둠 안에는 대체 어떠한 괴물이 도사리고 있단 말인가.
네빌라는 마주하고 싶지도 않았다.
전사는 두려움을 이겨 내는 자였고, 그건 전사장인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전투에 나서면 어떤 변수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녀는 출전할 때마다 늘 죽음을 각오했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훨씬 원초적인 공포였다. 죽음 이상의 무언가.
이전에 군주의 기운을 느꼈을 때도 몸이 얼어붙는 걸 느꼈지만, 이건 아예 차원이 달랐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감히 대적하겠다는 생각은커녕 당장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기다리고 있어.”
에단이 몸을 돌렸다.
그의 얼굴에서는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서 있는 게 고작인 자신과는 달리.
‘어째서?’
네빌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에단이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갔다. 에단의 형체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깨갱! 깨개갱!
꼬리를 만 웨어울프가 겁에 질린 채 격렬하게 저항했다. 녀석의 몸은 사시나무 떨리듯 쉬지 않고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웨어울프의 저항은 무의미했다. 정체 모를 힘에 의해 녀석의 몸이 천천히 끌려갔다.
녀석이 발버둥 쳤다.
단단히 묶어 둔 끈이 끊어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꽈아악!
웨어울프를 끌고 가는 힘이 더욱 강해졌다. 녀석은 결국 애처롭게 끌려들어 가고 말았다.
끼이익.
쿵.
문이 닫혔다.
그제야 네빌라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로이드가 네빌라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고생하셨습니다.”
“…….”
네빌라가 입을 꾹 다물었다.
* * *
에단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감각이 차단되었다.
발걸음 소리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묘한 감각이다.
‘불쾌하군.’
그런 생각이 들 때쯤.
에단의 내면에서 죽은 나무의 힘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어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 멈춰 줬으면 좋겠군.
어둠이 흔들리는 순간, 음성이 들려왔다.
일반적인 목소리가 아닌, 머릿속에 직접 욱여넣는 듯한 음성이었다.
화악!
한순간에 어둠이 걷혔다.
에단의 눈에 보이는 것은 긴 복도. 복도의 끝에는 화려한 옥좌가 있었고, 그 옥좌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창백한 피부와 붉은 눈동자.
누가 보더라도 아름답다고 생각할 것 같은 외모.
‘이 녀석인가.’
네 명의 대군주 중 하나인 뱀파이어 로드 아모드라.
아모드라는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에단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나른함과 권태로움이 느껴졌다.
초월에 가까운 힘을 가진 자만이 갖출 수 있는 여유였다.
그의 눈동자가 천천히 돌아갔다. 에단은 아모드라의 시선을 따라 곁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몸을 웅크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웨어울프가 있었다.
아모드라가 물끄러미 웨어울프를 바라보다가 팔걸이에 얹어 둔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아주 작은 까딱임.
웨어울프의 몸이 천천히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뼈와 살.
녀석의 모든 신체가 한 점으로 압축되기 시작한다.
에단은 가만히 그 광경을 바라봤다.
공만 하게 압축된 웨어울프의 몸이 펑하고 터졌다.
터지면서 흘러나온 한 줄기 선혈.
그 선혈이 아모드라를 향해 갔다.
아모드라의 주위를 배회하는 한 줄기 피.
그 순간 그의 고운 이마에 주름이 새겨졌다.
“역시 수작질을 해 뒀나.”
아모드라가 다시 한번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붉은 선혈이 연기가 되어 흩날렸다.
피가 흩날리는 도중 끔찍한 비명 소리가 동반되었다.
쯧.
아모드라가 불쾌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의 시선이 에단에게로 향했다.
보석처럼 아름다운 동공이 에단을 응시했다.
“신기한 자로군.”
“……뭐가 신기하지?”
에단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단순히 시선을 마주하고 있을 뿐인데도 압박감이 몸을 사정없이 짓눌렀다.
녀석은 딱히 살기나 기세를 방출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흥미로운 시선으로 에단을 바라보고 있을 뿐.
그 정도인데도 이러한 압박감이었다.
말아 올린 에단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모드라는 말없이 에단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흐음…… 너는 인간인가?”
아모드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신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후우.”
에단이 끈적한 숨을 토해 내며 기세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피어와 죽은 마나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에단은 아모드라를 가만히 응시했다.
설령 지금 에단이 부리는 게 객기에 불과하다고 한들 상관없었다.
자존심을 포기하고 고개를 숙일 바에 죽는 걸 택할 생각이다.
“다들 나한테 같은 질문을 하는데…… 그 답은 나도 잘 모르겠단 말이지.”
과연 지금의 자신을 인간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더 이상 에단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무슨 상관이야?’
나는 나일뿐이다.
인간이든 인간이 아니든, 에단에게는 사소한 것이었다.
에단은 힘을 갈구했고, 지는 것을 죽는 것보다 싫어했다.
힘을 손에 넣으면서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죽은 나무를 시작으로, 에단은 수많은 힘들을 마구잡이로 집어삼켰다. 스스로 돌이켜 봐도 과욕이자 만용이었다.
그러나 에단은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지금껏 살아남은 게 단순한 운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무엇 하나라도 포기했다면 여기까지 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흐음…… 역시 특이한 녀석이야.”
아모드라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가 웃음기를 머금은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내 권속은 자네가 죽였나 보군. 기운이 느껴져. 흡혈을 한 건가?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아, 그놈이 네 부하였나? 그건 안타깝게 됐어.”
“음? 그런 사소한 일은 아무런 상관없어. 내 질문에만 대답해 줬으면 좋겠는데.”
“아, 그러셔?”
에단이 피식 웃었다. 에단은 죽은 나무의 힘을 천천히 끌어올렸다.
키에에엑!
죽은 나무가 반응하기 시작하자, 아모드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설마 했는데…… 이것 참 놀랍군.”
“이걸 알고 있나 보지?”
아모드라가 에단을 가만히 바라보다 웃었다.
“모를 리가. 얼마 전에 꽤나 시끄러웠던 사건이니.”
“사건?”
에단이 미간을 찌푸렸다. 에단으로서는 낯선 이야기들 투성이었다.
아모드라는 권태롭게 턱을 괸 채 에단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야.”
“적지는 않지.”
“그럴 수 있지. 나도 흥미로운 건 마찬가지니.”
아모드라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커다란 주머니가 생겨났다.
주머니가 둥실거리며 에단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에단이 주머니를 받아들며 물었다.
“이건?”
“먼저 계산부터 끝내야 편히 대화를 하지 않겠나?”
계산은 확실하다 그건가.
헛웃음을 지은 에단이 주머니를 열어 봤다. 형형색색의 보석과 금화가 가득했다.
지하에서 보석과 금화가 어떠한 가치를 지녔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적은 돈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감사히 받지.”
“별말씀을. 먼저 자리부터 옮기지.”
옅은 미소를 지은 아모드라가 다시 한번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풍경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바뀐 장소는 알현실이 아닌 응접실. 아모드라가 천천히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았다.
“편히 앉게.”
“이거 참 신기한 경험인데.”
“익숙해지면 편하니 빨리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아모드라가 미소 지었다. 실소를 흘린 에단이 아모드라 앞에 앉았다.
그렇게 자리에 앉자, 응접실의 문이 열리며 에단을 안내해 줬던 로이드가 응접실 안으로 들어섰다.
상체를 숙이며 예를 표한 로이드가 아모드라 앞으로 다가가 테이블 위에 찻잔을 올리고 차를 따랐다.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서도 여유와 기품이 가득했다.
차를 모두 따른 로이드가 이번엔 에단 앞으로 다가왔다.
찻잔을 테이블 위에 올리고 차를 따르기 시작했다.
쪼르륵.
붉은 빛이 도는 차를 모두 따른 로이드가 상체를 숙이며 인사했다.
로이드의 얼굴에는 항시 부드러운 미소가 맺혀 있었다.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로이드가 발걸음 소리를 죽인 채 응접실을 나섰다.
“편히 들게.”
아모드라가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
에단은 말없이 찻잔 안에 들어 있는 차를 바라봤다. 붉은 기가 감도는 액체.
“뭘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평범한 홍차이니 신경 쓰지 말도록.”
에단은 그제야 찻잔을 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모드라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피라도 들어 있다고 생각한 건가?”
“크흠.”
에단이 멋쩍은 헛기침을 내뱉으면서 찻잔을 내려놨다.
차에 대해서 별다른 조예는 없었지만 향은 꽤나 훌륭했다.
“대단히 무례한 생각인 건 알고 있나?”
“사과하지. 원래 선입견이 무서운 법이지.”
“설마 내 앞에서 선입견을 거론할 줄이야.”
아모드라가 기막힌 미소를 지었다.
보면 볼수록 독특하고 재밌는 녀석이었다.
어지간한 군주도 자신 앞에서 빳빳하게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인간인지 마족인지도 구분 안 되는 녀석은 고개를 빳빳이 치켜드는 걸로도 모자라, 건방지고 무례한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재밌군.’
불쾌하기보다는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모드라는 에단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눈빛이 꽤나 부담스러운데.”
“이번에는 내가 실례했군. 그럼 슬슬 본론으로 넘어갈까?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뭐지? 돈 몇 푼 때문에 온 건 아닐 테고.”
“유론다가 이쪽으로 가라고 해서 말이야.”
에단이 목에 걸어 둔 목걸이를 하나 꺼냈다. 녹슬고 빛이 바래 있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목걸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골동품이군.”
아모드라가 목걸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목걸이를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다시 에단을 향해 옮겨졌다.
“다크엘프인 걸 감안해도 명줄이 상당히 길군. 어지간한 군주보다 오래 살았겠어.”
아모드라가 피식 웃었다.
“……일면식이 있는 건가?”
“오랜 과거에 한 번 본 게 전부니 일면식이라고 할 정도의 거창한 일은 아니야. 이제 내가 질문해도 되겠나?”
“그래.”
에단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찾아와서 일방적으로 질문만 해댈 정도로 염치가 없지는 않았다.
“그 힘, 죽은 나무가 맞나?”
“맞아.”
“호오…… 그렇단 말이지. 이거 참 기묘하고도 신기한 일이군. 죽은 나무의 가지가 돌고 돌아 인간에게 가다니.”
“……가지? 그게 무슨 소리지?”
“아, 모르고 있던 건가? 하기야 인간이 정확한 내막을 알고 있기는 힘들겠지.”
재밌다는 듯이 웃던 아모드라가 에단을 향해 말했다.
“말 그대로야. 네가 가진 그 힘은 죽은 나무가 맞지만, 아주 작은 일부이기도 하지. 대충 가냘픈 나뭇가지 하나 정도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