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334화 (334/398)

◈ [334화] 뱀파이어 로드 (2)

네빌라는 에단을 바라보며 몸을 떨었다.

섬뜩했다. 에단의 무력이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정면에서 군주를 격퇴한 게 에단이었다.

고작 마수 따위에게 패배하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너무나도 일방적인 폭행이었다.

마나가 어린 에단의 주먹질에 마수의 몸이 들썩거렸다. 얼굴이 사정없이 뭉개지고 박살 난다.

그 압도적인 폭력에 네빌라는 섬뜩함을 느꼈다.

“후우.”

에단이 숨을 토해 냈다.

주먹을 쏟아 낼 때마다 들썩이던 움직임도 이제는 없었다.

녀석은 짐승 그 자체였다.

지상에서 봐 온 수인보다 훨씬 더 원초적인 움직임을 구사했고, 의사소통 또한 되지 않았다.

짐승에 가까울수록 원초적인 폭력이 효과적이었다.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포하는 도중 도주를 시도하면 난처해지는 것은 에단 본인이었다.

‘재밌네.’

에단이 네빌라를 바라봤다.

피부색만 조금 다를 뿐, 영락없는 엘프 같은 생김세의 네빌라.

그리고 거대한 웨어울프.

지하는 지상과 전혀 다르다고 여겼다. 녀석들이 넘봐서도, 우리가 지하를 들여다봐도 안 되는 곳.

하지만 지하와 지상은 매우 닮아 있었다. 그 사실이 무언가 거슬렸다.

‘쯧.’

혀를 찬 에단이 네빌라를 향해 물었다.

“묶을 만한 거 있나?”

“…….”

그녀가 가방을 주섬주섬 거리더니 검붉은색의 끈을 꺼냈다.

“……마수의 힘줄을 엮어서 만든 거다. 어지간해서는 끊어지지 않을 거야.”

“그거 다행이군. 끊어질 것 같았으면 팔다리를 부러트리고 끌고 갈 생각이었는데.”

에단은 소름끼치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네빌라가 묘한 눈초리로 에단을 가만히 바라보자 에단이 물었다.

“뭐, 할 말 있냐?”

“……아니.”

“싱겁기는.”

피식 웃은 에단이 네빌라가 건넨 끈으로 몸을 구속했다. 팔과 주둥이를 단단히 묶는 와중에도 녀석은 아무런 저항이 없었다.

‘회복이 빠르군.’

에단이 과도한 폭력을 사용한 이유도 녀석의 회복력을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처가 회복되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함몰된 뼈가 서서히 맞춰지고 있었다.

에단이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녀석이 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떴다.

“…….”

녀석은 눈을 뜨자마자 눈앞에 있는 에단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발버둥을 치려고 드는 녀석의 목을 조르며 에단이 눈을 부라렸다.

“가만히 있어.”

에단이 흉흉한 기세로 경고하자 녀석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네빌라는 입을 벌렸다.

‘미친.’

순수한 폭력과 기세만으로 마수를 굴복시켰다.

그게 가능한 행위인가?

네빌라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사들이 말을 처음 길들이기 시작할 때 비슷한 방법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허사로 돌아간다.

마수 중에서 ‘비교적’ 온순한 편인 말들도 기본적으로는 사나운 성향을 띠고 있었다.

폭력으로 길들이려 하면 할수록 더욱 강하게 저항하고 적대감을 띤다.

그래서는 교감은커녕 죽을 때까지 저항한다.

하물며 지금 저 늑대 모습의 마수는…….

보기만 해도 길들이거나 교감할 수 있는 종류의 마수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상처 입으면 더욱 격렬하게 달려들며 목숨을 불사르는 게 네빌라가 알고 있는 마수의 모습이었다.

“가자.”

에단이 녀석을 일으켜 세웠다.

가까이서 보니 거대한 덩치가 실감이 났다. 압도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흉흉한 안광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눈빛만 보더라도 녀석의 얼마나 사나운 성향의 마수인지가 느껴졌다.

에단이 가만히 녀석의 눈을 바라봤다. 금빛 동공이 길을 잃은 것처럼 흔들렸다.

녀석은 아무런 저항 없이 고분고분 에단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

네빌라는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

에단과 네빌라가 하수도를 빠져나갔다. 여관 주인은 에단이 끌고 온 마수를 보자마자 경악을 삼켰다.

“……웨어울프? 지금 이놈을 산 채로 잡아온 건가?”

“그래. 죽이면 들고 오기가 난감할 것 같아서.”

“허.”

여관 주인은 기막히다는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솔직히 반신반의하는 심정이었다.

허리춤에 칼을 매달아 뒀다고 모두가 실력 있는 자들인 것은 아니었다.

이미 여러 명의 실종자를 만들어 낸 마수였다.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자들이 실패하고 돌아오면 정식으로 용병이나 사냥꾼을 고용할 작정이었지만, 이 둘은 반나절도 되지 않아 마수를 붙잡아 왔다.

그것도 생포한 채.

크르르.

웨어울프의 사나운 안광을 보자 오금이 저려 왔다.

여관 주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쨌든 고생 많았네. 소소하지만 수고비도 챙겨 주도록 하지. 그리고 축하하네.”

“축하?”

“그래. 이 도시의 군주님이 얼마 전부터 포상금을 내걸었거든. 웨어울프를 사살하거나 생포하면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군주님이 그리 인색한 것도 아니니…… 이 정도 사이즈라면 포상금이 적지는 않을 것 같군.”

“오, 그래?”

에단이 반색했다.

생포한 웨어울프를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일이 수월하게 풀렸다.

‘하루만에 기회가 생길 줄은 몰랐는데.’

대군주의 지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만일 황제와 근접한 수준이라면 대면하기 쉽지 않을 터.

방법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꽤나 번거로워질 거라 여겼었다.

“아무튼 축하하네. 한 푼도 없던 신세에서는 탈출하게 됐군.”

“원래 능력이 있으면 어떻게든 먹고살게 되더라고.”

에단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여관 주인이 호탕하게 웃었다.

“이거 꽤나 재밌는 친구를 알게 됐군. 포상금을 받으면 오게. 감사 표시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자네와 곁에 있는 친구에게는 술값을 받지 않을 테니까.”

“그거 고맙군.”

에단과 여관 주인이 씨익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네빌라는 눈을 끔뻑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화 내용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에단과 네빌라는 곧장 성으로 향했다.

이럴 때는 낮과 밤의 경계가 없는 것이 편했다.

만일 날이 저문 이후였다면 영락없이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거대한 마수를 이끌고 도시를 활보하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에단은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도시를 걸었고, 네빌라는 묘하게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군주의 성을 찾는 것은 쉬웠다.

한눈에 봐도 제일 높고 화려한 건물이 떡하니 있었으니까.

에단이 고풍스러운 성문을 향해 다가가자, 박쥐 한 마리가 에단 앞으로 다가왔다.

― 용무를…….

다가온 박쥐는 묶여 있는 웨어울프를 보자마자 침묵했다. 네빌라는 박쥐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 ……잠시 기다려라.

거대한 박쥐는 그대로 성벽을 넘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에단과 네빌라는 자리에서 순순히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박쥐 한 마리가 성벽을 넘어 에단 앞으로 다가왔다.

― 들어가라.

쿠구궁.

이번에도 거대한 성벽이 자동으로 열렸다. 네빌라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어딘가 기가 죽은 것 같았다.

“쫄지 마.”

에단이 네빌라를 힐긋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아무렇지 않다.”

“그럼 됐고.”

피식 웃은 에단이 성안으로 들어섰다. 성 내부는 겉모습처럼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러웠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음산하고 을씨년스럽기도 했다.

‘묘하네.’

성 자체에서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피부를 쿡쿡 찌르는 것 같았다.

‘이게 군주의 기운인가?’

성안에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기운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은은하게 기운은 느껴졌다.

‘엄청나군.’

에단이 혀를 내둘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미하게 느껴지는 것만으로도 이 기운의 주인이 얼마나 막강한지가 느껴졌다.

네빌라도 군주의 기운을 느낀 것인지 표정이 얼음장처럼 굳어 있었다.

에단과 네빌라가 긴 복도를 묵묵히 걷고 있자, 단정한 집사복을 입은 이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다.

“……!”

화들짝 놀란 네빌라의 손이 칼자루 쪽으로 향하자, 에단이 손을 들어 만류했다.

네빌라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눈앞에 남자를 바라봤다.

검은 정복.

창백한 피부와 어려 보이는 외모.

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상체를 슬며시 숙였다.

가벼운 동작이었는데도 격식과 기품이 느껴졌다.

“반갑습니다. 안내를 맡은 로이드라고 합니다.”

자신을 로이드라고 칭한 남자가 슬며시 눈을 떴다. 피처럼 붉은 동공이 에단을 응시했다.

에단을 바라보던 로이드의 눈매가 순간 가늘어졌다.

“……이거 예상보다도 대단한 손님이 찾아오셨군요. 알현실로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에단은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이드가 등장하자 웨어울프가 예민하게 반응했다.

크르르.

짐승의 울음소리.

에단은 어째서인지 저 울음소리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두려움.

녀석의 울음소리에서 공포가 느껴졌다. 저 으르렁거림은 공포를 감추기 위한 방어기제일 뿐이었다.

에단과 네빌라가 로이드의 안내를 따라 알현실 앞에 당도했다.

이번에도 고풍스러운 문이 에단과 네빌라를 반겼다.

“아모드라 님, 손님을 데리고 왔습니다.”

로이드가 상체를 숙이며 벽을 향해 말했다.

쿠웅.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인 내부가 보였다. 어둠 속을 응시하는 에단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에단의 눈은 어둠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

죽은 나무의 힘을 얻은 뒤 에단은 어둠이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어둠 속에서 감각이 되살아나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무언가 달랐다.

심연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이었다.

방금 전까지 느껴지는 기운도 흐릿해졌으며, 모든 감각이 혼란스러웠다.

강렬한 거부감이 들었다.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본능이 소리치고 있었다.

‘이런 기분이었나?’

에단이 [절망]이라는 룬어를 전개할 때 상대가 어떠한 기분을 느꼈는지 단편적으로나마 알 것 같았다.

덜덜덜.

에단이 뒤로 고개를 돌리자 네빌라와 웨어울프가 몸을 떨고 있는 게 보였다.

경계를 할지언정 꼬리를 내지리 않던 웨어울프가 꼬리를 말고 귀를 접은 채 바들바들 떨었다.

네빌라의 상태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그녀는 넋이 나간 것처럼 멍하니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상을 찌푸린 에단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허억!”

화들짝 놀란 네빌라가 에단을 응시했다. 그녀의 뺨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네빌라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에단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도, 돌아가야 한다. 저긴…… 들어가면 안 돼.”

“됐어. 나 혼자 들어가면 돼.”

“저, 저길 들어간다고? 생각을 달리해라. 저, 저기는…….”

네빌라가 횡성수설하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에단이 가만히 네빌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신 차려.”

“…….”

그녀가 입을 꾹 다물고 에단의 눈을 응시했다.

흔들림 없는 에단의 눈동자를 보자 감정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너, 너는……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지?”

“글쎄?”

에단이 씨익 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