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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332화 (332/398)

◈ [332화] 지하 (15)

에단과 네빌라는 축제를 즐겼다. 소박한 축제였지만 불만이 있지는 않았다.

투박하지만 술과 음식, 그리고 전사와 여인들의 노랫소리.

충분히 즐거웠다.

이번만큼은 에단도 초조함과 조급함을 버렸다.

네빌라도 엷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마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을 지켜 내기 위해서 그녀와 전사들은 목숨을 걸었다.

그렇게 축제는 끝났다.

전사들이 하나둘씩 곯아떨어지기 시작하자, 에단은 자신의 천막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짧고 얕은 잠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 * *

에단이 눈을 뜨고 채비를 점검한 후 천막 밖으로 나갔다. 전사들은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피로는 좀 풀었나?”

천막 밖으로 나오자, 네빌라가 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피식 웃은 에단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대충은?”

“그거 다행이군.”

네빌라와 에단이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그녀도 떠날 채비를 끝낸 상태였다. 네빌라가 천천히 마을을 훑어봤다.

묘한 감흥이 일었다.

그녀는 평생을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원정이나 사냥을 위해 며칠을 떠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마을을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슬슬 가지?”

에단의 말에 네빌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사전에 유론다에게 대강의 경로는 전해 들었다. 후계자도 미리 정해 뒀다.

마을과 전사들에게 있어 몹쓸 짓이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약속이었고, 에단이 없었다면 전사들은 전멸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직접 느낀 군주의 위압감은 그녀의 상상을 초월했었다.

에단과 네빌라는 말 두 필을 데리고 마을을 나섰다. 보초를 서던 이들이 두 사람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부디 무사히 다녀오시기를.”

“그래.”

여정에 들어섰다.

여느 때와 같이 황량한 대지가 둘을 반겼다. 말 위에 올라탄 에단과 네빌라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질겅질겅.

에단은 바싹 마른 육포를 씹으며 지평선을 바라봤다. 매일같이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지루해서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불평을 늘어놓을 에단이 아니었기에 묵묵히 걸어 나갔다.

말이 지치면 말 위에서 내려 적당히 휴식을 취했다.

보존식인 육포와 식수, 그리고 술은 충분히 준비했지만, 언제 동나도 이상하지 않았기에 사냥감이 보이면 사냥에 나섰다.

네빌라의 활 솜씨는 경이로웠다. 점처럼 보이는 사냥감을 단번에 사냥하고는 했다.

대부분의 사냥감은 마수들이었다.

마수들은 톡 쏘는 맛이 있기는 했지만 에단은 금세 맛에 적응했다.

신선한 고기를 좋아하는 것은 말들도 마찬가지였는지 기분 좋은 투레질과 함께 고기를 즐겼다.

말들이 좋아하는 것은 살코기보다는 마수의 내장이었다. 독성이 강하고 맛이 역해 에단과 네빌라는 먹지 않는 부위였다.

모닥불 앞에서 식사를 끝낸 네빌라가 약도를 꺼냈다.

유론다가 적어 둔 약도는 정말로 최소한의 정보들만 들어 있었다.

평생을 인근에서 나고 자란 네빌라가 아니라면 약도를 읽지도 못했을 것이다.

“지금이 어디쯤이지?”

“글쎄? 나도 마을에서 이렇게까지 멀어진 적은 이번이 처음이야. 아마 그렇게 많이 남지는 않았을 거야.”

“쯧, 날짜 개념이 없으니 원.”

에단이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차자, 네빌라가 눈을 끔뻑이며 에단을 응시했다.

“날짜?”

“그런 게 있어.”

에단은 날짜라는 개념을 간략하게 네빌라에게 설명했다. 지하는 시간의 개념은 있었지만, 날짜의 개념은 날씨처럼 흐릿했다.

낮과 밤의 경계가 없는 특성 탓이었다. 이곳은 언제나 밝지도,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은 환경이었다.

늘 같은 풍경을 바라보니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신기하군.”

낮과 밤의 개념을 전해 들은 네빌라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신기할 건 없어. 오히려 나는 지금 이 환경이 더 신기하니까.”

대강의 휴식이 끝나고 지루한 이동이 재개되었다.

‘녀석들은 잘 있으려나 모르겠군.’

문득 휴고와 가토, 그리고 다른 녀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영 못 미더운 녀석들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이제는 모두 제 한몫은 톡톡히 하는 이들이었다.

녀석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에단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 느끼는 감정이 낯설었지만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빨리 돌아가야겠지.’

지상은 지금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태일 것이다. 에단의 목적은 이곳에서 정보를 취득한 후 최대한 빠르게 지상으로 복귀하는 것이었다.

시간을 지체하면 지체할수록 상황이 좋지 않게 흐를 것이 분명했다.

‘그 녀석이 정확히 뭐를 꾸미는지는 모르겠지만.’

크리스토의 모습이 떠올랐다.

꿍꿍이가 있는 녀석이었다. 크리스토는 에단과 마찬가지로 룬어를 다뤘고, 지하에 관한 정보 또한 가지고 있었다.

‘지금 고민해 봤자.’

모든 건 추측에 불과하다. 앞을 향해 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행동을 해야만 했다.

* * *

얼마나 더 움직였을까. 네빌라가 고삐를 움켜쥐자 말이 발을 멈췄다. 그녀의 눈매가 좁혀졌다.

네빌라가 저 멀리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자, 에단도 따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오.”

에단이 작은 감탄사를 흘렸다.

늘 똑같던 지평선이 아니었다. 저 멀리 인위적인 구조물 같은 게 보이기 시작했다.

네빌라가 약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주위 풍경과 약도를 몇 차례 대조했다.

“맞는 것 같군.”

“드디어 도착인가?”

에단의 질문에 네빌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무사히 들어가야지 성공이겠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난 이제 야영은 진저리가 나거든.”

에단이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며 말했다. 밖에서 쭈그리고 잠을 청하면 잠을 자도 잔 것 같지가 않았다.

밤이 없는 만큼 추위가 엄습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늘 뭔가가 찝찝했다.

에단과 네빌라가 거대한 성벽을 향해 천천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성벽에 가까워질수록 시시각각 환경이 변화하고 있었다. 바싹 말라 쩍쩍 갈라져 있던 대지가 생기를 머금기 시작했다.

풀과 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황폐함 대신 풍요로운 생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

네빌라가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땅에 경계선이 있는 것 같았다.

황폐하여 버려진 땅과 생명력이 충만한 곳으로.

‘신기하군.’

에단은 가만히 풀과 나무를 바라봤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자 여느 때처럼 흐릿한 날씨가 보였다.

따사로운 햇볕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딱히 비도 오지 않았고.’

햇볕도 없고, 비도 없을진대 어떻게 나무와 풀이 자랄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느껴지는 느낌이 뭔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나무와 풀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어딘가 모르게 이질적이었다.

에단과 네빌라는 계속해서 이동했다. 그렇게 숲을 통과하기 직전에.

우우웅.

유론다에게 건네받은 빛바랜 펜던트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눈앞의 풍경들이 일그러지며 하나의 통로가 생겼다.

에단과 네빌라는 멍하니 통로를 바라보다가 에단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통과해도 괜찮겠지?”

“그걸 네가 묻냐?”

에단이 기막힌 표정으로 되묻자, 그녀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형성된 통로는 네빌라가 먼저 통과했고, 에단이 바로 뒤를 따랐다.

말들은 거부감을 보이는 것 같았지만, 네빌라와 에단의 말을 순순히 따랐다.

통로를 통과하자 숲이 사라지고, 곧바로 거대한 성문이 에단과 네빌라를 가로막았다.

성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검문을 맡은 경비병조차도.

네빌라가 말 위에서 내리자, 에단도 따라서 내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성문을 향해 다가서자 어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무를 밝혀라.]

“……도시를 방문하고 싶어서 왔다.”

[대가는?]

네빌라가 안장에 걸려 있는 가죽 주머니의 매듭을 풀었다. 입구가 열리자 짙은 피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바실리스크의 피인가?]

“그래. 이 정도면 대가로는 충분할 터.”

[들어가라.]

쿠구궁.

묵직한 소음과 함께 거대한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내부는 보이지 않았다.

흐릿한 무언가가 가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쥐고 있던 가죽 주머니가 둥실 떠오르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네빌라가 입구를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자 에단이 피식 웃으며 다가왔다.

“쫄았냐?”

“……시끄러.”

에단이 말고삐를 쥔 채 성큼성큼 입구를 향해 걸어 나갔다. 에단이 흐릿한 장막을 뚫고 지나가자 작은 한숨을 내쉰 네빌라가 에단을 뒤따랐다.

쿠구궁.

둘 모두 들어서자 다시금 성문이 닫혔다.

안에 들어선 에단은 고개를 들고 도시를 둘러봤다.

‘엄청나군.’

성벽의 내부는 매우 화려했다.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하나같이 높았다. 이 정도 높이라면 과장을 조금 보태서 현대의 건축물과 비교해도 크게 꿀리지 않는 것 같았다.

유동 인구도 많았다.

모든 이들이 마족이었다. 에단은 묘한 신선함을 느꼈다.

마족들이 에단과 네빌라를 흘겨보며 지나쳤다.

그들의 눈빛에는 묘한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 마치 갓 시골에서 상경한 촌놈을 바라보는 듯한 웃음이었다.

‘새끼들이.’

에단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딱히 기분이 더럽지는 않았다. 여기서 자신의 위치는 촌놈이 맞았으니.

“…….”

네빌라는 에단보다 정도가 심했다.

그녀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넋을 잃은 표정으로 멍하니 건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으로 문명을 마주한 저 표정.

‘이건 좀 귀하군.’

에단이 웃음기를 삼켰다. 흔하게 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놀랐냐?”

“……아니.”

에단이 히죽히죽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자 네빌라의 표정이 구겨졌다. 묘하게 자존심이 상했다.

그녀가 고개를 휘저으며 잡다한 감정을 털어 냈다. 하지만 동공의 미미한 떨림까지 지우지는 못했다.

경악스러웠다.

‘이건 뭐지?’

그녀가 알고 있던 세계가 무너진 기분이 들었다.

‘우물 안에 있었을 뿐인가.’

네빌라가 헛웃음을 지었다.

황야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죽어 가는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던 삶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굶어서 죽고, 싸우다가 죽은 이들은 이러한 세상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알고 있던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하나같이…… 괴물들이군.’

마족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느껴지는 기운들이 범상치 않았다.

사나운 마수들에게 포위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 놀랐으면 슬슬 가지?”

에단은 이곳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웃음기를 머금은 표정이 묘하게 재수가 없었다.

미간을 찌푸린 네빌라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에단을 따라나섰다.

에단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화려하고 기품 넘치는 건물들. 마족들의 행색도 꽤나 고급스러웠다.

하지만 생활양식은 지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웃고 떠드는 마족들과 노점을 펼친 상인들.

아이와 함께 도시를 거니는 자들도 있었고, 곳곳에서는 싸움판이 벌어지는 곳도 있었다.

생기가 느껴졌다.

이곳 또한 생명이 살아가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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