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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327화 (327/398)

◈ [327화] 지하 (10)

록카라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네빌라가 록카라에게 다가가 부상 부위를 확인했다.

‘……상처가 좋지 않아.’

네빌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록카라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힘겨운 웃음을 지었다.

“허억…… 허억…… 이제야…… 저를 봐 주시는군요. 커헉!”

록카라의 입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그의 목소리는 피가래가 낀 것처럼 혼탁했다.

“……말을 멈춰라.”

“…….”

록카라의 동공이 흔들렸다.

전사에게도 죽음이란 두려운 법이었다.

슬며시 끌어올린 록카라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드리우는 죽음이 느껴졌다.

전사들과 에단도 굳은 표정으로 록카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죽겠군.’

다크 엘프는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종족이었다. 긴 수명이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알 수 없다.

전사 중에 긴 수명을 모두 영위하는 이는 매우 드물었다. 전사들은 죽음의 공포를 억누르고 싸우는 자들이다.

훌쩍 다가온 죽음이 느껴졌다.

화살촉이 찔린 부위에서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좋지 않은 징후였다.

타오를 것처럼 달아오른 체온도 점점 떨어져 추위가 느껴졌다.

시야가 흐릿했다.

네빌라의 얼굴을 뚜렷하게 보고 싶었지만, 그녀의 얼굴조차 흐릿하게 보였다.

눈을 가늘게 떠 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결국…….’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이루고 싶은 것들도 많았다.

하지만 록카라는 그 감정을 억눌렀다. 점점 다가오는 죽음이 두려웠다.

여기서 가슴에 담아 둔 말들을 모두 토해 내고 죽는다면 후련해질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욕심이었다.

전사들은 언제나 죽음을 각오한다.

죽음은 평등하다. 순서의 차이였다. 복수조차 못했다면 억울했겠지만, 그의 동료들이 자신 대신 복수를 끝내 줬다.

록카라의 흐릿한 동공이 에단에게 향했다. 에단의 전신은 적들의 피로 물들어 있었다.

록카라는 눈빛으로 에단에게 감사를 표했다. 에단은 묵묵하게 죽어 가는 록카라를 바라봤다.

‘아쉽군.’

이루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록카라는 상념들을 정리했다.

미련을 두면 안 된다. 그것들은 이제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었다.

“……네빌라 님.”

“……그래.”

“감사했습니다.”

록카라가 네빌라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웃었다.

그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   *   *

시체는 태웠다.

이들만의 풍습이었다. 죽은 말들도 함께 태웠다. 총 두 필의 말이 죽었다.

그 반면 매복한 적들의 시체에 대해서는 잔혹했다.

그들의 시체는 말들의 먹이가 되었다. 뼈조차 남기지 못한 채 씹어 먹혔다.

네빌라는 차게 식은 눈으로 먹히는 시체들을 바라봤다.

적대 관계에 있던 마을이었다. 이들은 철저하게 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떻게?’

정찰조 등으로 알아낼 수도 있었다.

혹은 바실리스크의 부산물을 발견한 이후 역으로 기습을 노렸을 수도 있었다.

정상적인 이들이라고 한다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부산물을 회수하려고 들 터이니.

‘그럴 확률은 희박해.’

그럴 확률은 터무니없이 낮았다.

저들의 준비는 철저했다.

사전에 부산물을 발견했다고 하기에는 네빌라와 전사들이 떠나기 전 했던 조치들에서 달라진 것들이 조금도 없었다.

‘정보가 새어 나갔다.’

마을에 배신자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

네빌라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침착해라.’

그녀는 전사들의 수장이었다.

통제하지 못할 분노는 수하들을 혼란에 빠트린다.

최소한 그녀는 분노를 통제해야만 했다. 이럴 때일수록 머리를 차갑게 만들어야 한다.

네빌라가 눈을 질끈 감았다.

거친 호흡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의 눈에서 서늘한 빛이 흘러나왔다.

“돌아간다.”

부산물은 모두 챙겼다.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녀석들과 비할 바는 아니었다.

수십이 넘는 전사가 이번 전투로 사망했다.

‘이제 놈들은 회생이 불가능해.’

지금을 기회로 삼아야 했다. 녀석들이 대응할 시간을 남겨 둬서는 안 된다.

“최대한 빠르게 복귀한다.”

전사들의 이동하기 시작했다.

올 때와 비교해서 분위기가 훨씬 무거워졌다. 시시콜콜한 대화 또한 없었다. 침묵이 내리깔렸다.

*   *   *

네빌라와 에단, 그리고 전사들이 마을에 도착했다.

전사들은 돌아오는 이들을 보자마자 환호하며 맞이했다.

“네빌라와 전사들이 돌아왔다!”

보초의 외침에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은 네빌라와 전사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록카라는?”

전사들 사이에서 록카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네빌라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마을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록카라는 죽었다.”

충격적인 발언에 마을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

“죽었다고?”

“록카라가?”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웅성거리는 목소리.

네빌라는 상황을 정리하지 않은 채 그대로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에단과 전사들도 마을로 들어섰다.

일단 피에 물든 몸을 좀 닦아 낼 생각이었다.

‘씻고 싶군.’

식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환경에서 물로 하는 샤워는 사치 중에 사치였다.

헝겊 등으로 대충 핏자국을 닦아 내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었다.

이곳에서의 샤워는 물에 젖은 천으로 대충 전신을 닦는 게 전부였다.

“제가 시중을 들겠습니다.”

천막에 찾아온 여자들을 보며 에단이 인상을 찌푸렸다.

“됐어. 내가 닦을 테니까 천이나 주고 가.”

에단이 손짓하며 축객령을 내리자, 그녀들이 고개를 숙이며 천막 밖으로 나섰다.

에단은 물에 젖은 천으로 몸을 닦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마을에 들어서기 전 네빌라가 에단에게 남긴 당부가 있었다.

― 부탁이 있다.

― 무슨 부탁.

― 도주하는 전사들이 있다면, 네가 잡아 줄 수 있겠나?

― 무슨 짓을 하려고?

― 딱히 과격한 짓을 할 생각은 없어.

― 지랄, 얼굴에 딱 써 있구만.

― 그런가?

― 해 줄 수야 있는데. 설마 맨입으로?

― 나를 무뢰배로 생각하지 마라. 응당한 보답은 해 줄 생각이니.

― 그렇다면야…… 내가 뭘 어떻게 해 주면 되지?

― 그건…….

에단은 대화를 상기했다.

네빌라는 훌륭한 수장이었다.

중요한 순간에 판단을 머뭇거리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강단과 배포가 있었다.

에단이 옷을 갈아입고, 천막 밖으로 나섰다.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미묘했다.

전사의 죽음은 슬픈 일이었지만, 바실리스크의 사체는 축제를 벌여도 이상하지 않을 수확이었다.

에단은 기척을 죽인 채 슬그머니 마을을 빠져나갔다. 도주할 경로는 많았다.

울타리 수준의 조악한 목책이 있다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 실력 있는 전사라면 한 번의 도약으로 넘어설 수 있는 높이였다.

에단은 가만히 기척을 죽인 채 기다리고 있었다.

황량한 허허벌판이라 몸을 숨길 만한 곳은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이 정도 거리면 별 상관은 없을 것이다.

배신자가 있는 게 사실이라면 다급하게 도망칠 게 분명했으니까.

‘이거 더럽게 지루한데.’

에단이 늘어져라 하품을 하고서는 배신자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지루한 기다림이었다.

그렇게 기다리기 시작한 지 꽤 시간이 흐르자, 목책을 뛰어넘는 두 명의 전사가 보였다.

에단이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킨 에단이 슬며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흉흉한 웃음이었다.

‘이것도 필요 없지.’

에단이 칼자루를 힐긋 바라봤다. 저런 녀석을 상대할 때는 맨주먹이 좋았다.

“스읍.”

에단이 숨을 들이마셨다. 감각이 곤두서며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전신의 근육이 잠에서 깨어났다.

파밧!

에단이 질주했다.

풍경이 빠르게 바뀌었다.

놈들은 에단이 자신을 쫓아온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에단이 두 배신자의 목덜미를 붙잡고서는 그대로 바닥에 찍었다.

쾅!

먼지구름이 피어났다.

에단은 적당히 힘을 조절했다. 허무하게 죽어 버리면 곤란했다.

“어라? 익숙한 얼굴이네?”

에단이 사납게 웃었다.

두 명 중 하나는 유론다의 수호전사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새끼.”

에단의 눈이 가늘어졌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첫 원정 때 봤던 전사였다.

“하.”

원정을 함께한 전사 중에 배신자가 출몰했다.

에단은 기막힌 표정으로 둘을 바라봤다.

“짐승보다 못한 새끼들.”

손아귀에 가한 힘이 강해졌다. 두 짐승들이 눈을 부릅뜨며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발악해 봤자 에단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혹시 모르니까.”

이대로 붙잡아 두기만 해서는 분이 풀리지 않았다. 에단이 두 놈의 팔과 다리를 모두 부러트렸다.

“끄아아아악―!”

뼈가 부서지는 고통에 놈들이 비명을 토해 냈다.

에단은 표정의 변화 없이 무덤덤하게 배신자들의 뼈를 부쉈다.

“머, 멈춰! 이 미친 새끼야!”

“뭘 멈춰. 그냥 겸허히 받아들여.”

“오, 오해다. 오해가…… 끄아아악!”

팔과 다리를 모두 부러뜨려 놓자 두 놈들이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썩 만족스러운 모습에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꿈틀거리는 벌레들을 감상하며 기다리고 있자, 네빌라와 전사들이 마을에서 뛰쳐나왔다.

멀리서부터 흉흉한 기세가 전해져 왔다.

네빌라가 두 명의 배신자와 에단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녀가 에단을 향해 작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녀가 말 위에서 뛰어내림과 동시에 칼자루를 뽑았다.

키이잉.

칼날이 뽑히면서 꺼림칙한 울음소리를 토해 냈다. 네빌라는 서리가 낀 눈동자로 두 배신자를 바라봤다.

“네, 네빌라! 오해다! 모두 설명이 가능하니…….”

푹―

네빌라는 지껄이는 말을 무시한 채 다리에 칼을 박아 넣었다.

“끄, 끄아아악!”

“시끄럽다.”

푹―

네빌라가 다시 한번 칼을 꽂았다.

녀석이 바둥거렸다. 하지만 부러진 팔과 다리 때문에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네빌라의 눈에 격렬한 분노가 깃들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부 하게끔 해 주지. 시간은 충분해.”

네빌라의 눈이 유리구슬처럼 번들거렸다.

*   *   *

네빌라와 전사들은 잔혹한 손속으로 둘을 고문했다. 마을 광장에 기둥을 세워 둘을 매달았다.

처음에는 공포에 떨던 배신자들도 추후에는 체념하기 시작했다.

네빌라는 배신자들의 살가죽을 천천히 벗겨 내기 시작했다.

뛰어난 솜씨였다. 놈들이 기절하려고 하는 순간 마을 사람들과 전사들이 소금을 뿌렸다.

소금을 뿌리는 순간 배신자들이 비명을 토해 내며 몸을 꿈틀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마을 사람들과 전사들이 조소를 흘렸다.

“어,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마을의 운명은 결정되었다고! 아무리 발버둥 쳐 봤자, 군주가 결정한 이상 너희들은 모두 죽은…….”

촤악!

네빌라가 무심한 표정으로 칼을 휘둘렀다.

악에 받친 소리를 토해 내던 배신자들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건 본보기였다.

배신의 경위를 포함한 전후 사정은 이미 사전에 모두 들은 상황이었다.

설령 어떤 사정이 있다고 한들 동료를 배신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었다.

네빌라가 굴러떨어진 머리를 그대로 발로 밟아 터트렸다. 그 압도적인 위압감에 마을 사람들과 전사들 모두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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