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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316화 (316/398)

◈ [316화] 실종 (5)

오르번은 침착한 듯 보이면서도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주위를 관찰했다.

‘오래된 흑마법사’라는 이명이 붙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활동하던 그였기에 흑마법이라는 체계가 잡히기 이전, 고대의 사술에 대해서도 조예가 있었다.

오르번이 천천히 주변을 훑었다. 흑마법의 기조(基調)는 죽음에서 시작한다.

남들이 기피하고 꺼려하는 것들을 탐구하는 것이 바로 흑마법사라는 족속들이었고, 개중에서도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많은 정보를 쌓아 올린 흑마법사였다.

오르번은 뼈의 생김새만 보고도 뼈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허.’

기막힌 표정이 지어졌다.

자애와 희생, 숭고함을 표방하던 이들이 그 누구보다 추악하고 악랄한 짓을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드레이에게 전해들은 말은 사실이었다. 인(人)자가 붙은 모든 생명체가 이곳에 있었다.

아이, 어른, 노인, 남자, 여자, 수인.

모든 생명체의 사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뭘 만들려고 시도했는지 감이 잡히는군.’

녀석들은 타이탄의 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오르번보다도 많은 지식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기억해라.”

에르미온과 데아티르는 진지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오르번의 말에 시선을 돌렸다.

마법사는 자고로 탐고하는 자들이었다. 그것은 대마법사의 자리까지 올라간 둘에게도 해당이 되는 이야기였다.

오르번은 천천히 난해한 말들을 늘여놓기 시작했다. 난해한 것은 당연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모두 고대의 비술이자 신비였으니.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지식들이었다. 에르미온과 데아티르는 눈을 빛내며 오르번의 말을 경청했다.

사전 지식 없이 이것들을 조사하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소요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둘에게는 정보가 필요했다. 오르번 혼자서도 한계가 있었다.

오르번은 지식을 감추지 않았다. 그가 쌓아 올린 마법적 지혜가 비교적 어린 마법사들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황제의 마법은 이것과는 다를 거야. 하지만…… 연관은 있겠지.”

신성 왕국은 타이탄에 대한 연구와 무언가의 문을 여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어떤 이유 때문에 그 문을 열려고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군.’

오르번은 혐오감을 숨기지 않았다.

“모든 술식을 머릿속에 기억해라. 복잡하고 난해한 것들은 따로 메모를 해 놔. 이곳에서 연구를 할 수는 없으니.”

시간이 촉박했다. 최대한 빠르게 연구를 진행해야 에단의 생환 확률을 높일 수 있었다.

‘쉽게 죽을 놈은 아니니.’

살아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   *   *

가토와 휴고는 연무장에서 대련을 하고 있었다. 실력의 향상을 위한 대련이라기에는 점점 대련의 양상이 과격해지고 있었다.

쾅!

야수화한 휴고의 발과 가토의 검이 부딪쳤다.

가토는 목검 대신 진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휴고의 노란 동공이 가토를 응시했다. 가토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팟!

둘이 거리를 벌렸다. 둘은 하루도 빠짐없이 대련을 했다.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알고 있었다.

휴고와 가토 모두 쉽게 기세를 내주지 않았다. 둘은 서로를 더욱더 몰아붙였다.

까득.

가토가 이를 갈았다. 허점을 노리는 비장의 공격이었다. 가토는 이제 엄연히 노련한 전사였다.

휴고의 노란 동공이 가토의 검 끝을 쫓았다. 그의 동체 시력은 가짜와 진짜를 구분할 수 있었다.

생각이 아닌, 본능으로 판단했다.

공격을 피한 휴고가 사납게 달려들었다. 다시금 불똥이 튀었다. 파열음과 파공음 따위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다른 기사들은 대련을 참관하면서 둘이 풍기는 기세에 혀를 내둘렀다.

“……언제 저렇게 성장했지?”

휴고와 가토의 실력은 이제 기사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대련으로 당해 낼 자는 렉사르와 첸밖에 없다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저렇게 어린 나이로 위명 높은 기사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정상의 자리에까지 올라간 것이다.

기사들은 호승심을 느꼈다. 순순히 인정하면 그것은 블란테의 기사라고 할 수 없었다.

휴고와 가토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몰아붙였다. 마치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기사들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날의 현장에는 다른 기사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에단의 실종.

참담했다. 주군을 지키기는커녕 사지에 밀어 넣었다. 에단의 죽음은 거의 확실시 되는 분위기였다.

그들은 무저갱 같은 어둠과 거기서 흘러나오는 끔찍한 기운을 기억하고 있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등이 축축하게 젖는 것 같았다.

대련을 지켜보던 카론이 굳은 표정으로 목검을 들었다.

“저와 대련하실 분 없습니까?”

자괴감과 혐오감을 느끼는 것은 카론도 마찬가지였다.

에단과 카론은 우애 좋은 형제는 아니었지만, 같은 블란테의 피를 이은 피붙이였다.

카론의 목숨이 위험할 때 에단은 도움을 주었지만, 에단이 위험할 때 카론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약해.’

카론은 재능을 개화하고 있는 중이었다.

철이 든 카론은 휴고와 가토만큼이나 몸을 사리지 않고 훈련에 임했다.

다른 기사들도 완전히 바뀐 카론의 모습을 놀라워했다.

‘나는…….’

카론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 재수 없는 형이 죽었을 거란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는다.

‘강해질 거야.’

더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   *   *

한니발의 상회.

한니발은 화려한 집무실에 앉아, 전달받은 정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흐음…….”

한니발이 턱을 매만졌다. 그간 블란테의 행보는 파격 그 자체였다.

대륙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던 신성 왕국을 무너트리고, 곧장 제국을 향한 선전포고를 터트렸다.

그 상황을 돌이켜 보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에단의 판단은 지극히 합리적이었다.

제국은 신성 왕국과 공식적인 화친을 맺고, 적극적으로 교류를 하고 있었다.

신성 왕국이 무너진 것은 제국의 병사들의 사기와도 직결된다.

신의 가호와 사후에 대한 걱정은 모든 인간들이 가슴에 품고 있었다.

더군다나 누구보다 죽음과 가까운 병사들이라면 더더욱.

통치자는 종교와 믿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했지만, 병사들은 아니었다.

에단은 혼란이 걷히기 전에 곧장 제국을 향해 진격했다.

봉신들의 성이 제대로 된 저항조차 못 한 채 무너지기 시작했다.

거추장스러운 공성 병기를 준비할 필요도 없었다. 블란테의 군대에는 공성 병기를 뛰어넘는 괴물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제국의 봉신들은 제대로 된 저항도 못 한 채 에단의 군대에 무너졌다.

‘압도적이었군.’

보고서만으로도 전쟁의 양상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블란테의 압도적인 위세에 적들은 겁에 질린 채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성에 숨어드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견고하고 높은 성벽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으니.

‘하지만.’

황제의 함정.

명예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비열하고도 간악한 행위.

자신의 신하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그들을 제물 삼아 펼친 함정.

한니발은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는 조예가 없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불명예스럽고 사특한 행위인지는 알 수 있었다.

본래라면 황제의 지위와 권위가 흔들릴 정도로 추악한 행위였지만.

‘황제를 견제할 수 있는 이는 없지.’

그것이 문제였다. 현 황제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영지를 가진 대귀족의 권력도 황제 앞에선 바람 앞의 촛불이나 마찬가지였다.

황제는 자신의 입맛에 따라 봉신들을 갈아치울 수 있었다. 반발과 저항은 무의미하다.

황제는 그 자리에서 반역자의 목을 칠 수 있는 힘과 권한을 쥐고 있었다.

이미 수많은 전례가 있었다.

블란테의 아성을 바짝 쫓아가던 검술 명가인 카이제르의 가주조차 황제에게 목숨을 빼앗겼다.

‘일신의 무력이 마스터에 준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수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카이제르의 가주가 사망했다는 것이다.

황제는 카이제르가 급사했다고 떠벌리고 다녔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서 회군한 판단은 합리적이야.’

만일 그 이상의 피해를 입었다면 블란테가 크게 흔들렸을 것이다. 존속의 위기를 느낄 만큼.

이번 전쟁에 블란테는 거의 모든 병력을 투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 번의 패배가 치명적이었다.

블란테의 군대는 징집병이나 농노병 따위의 대체 가능한 병력이 아닌, 모두 최상의 정예병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툭. 툭.

한니발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의 피는 차가웠다.

언제나 유연하게 판단하고 대처해야 하는 것이 바로 상인이라는 족속이다.

냉혈한이라고 비난받을지언정 한니발은 그렇게 지금 이 자리에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정보의 선점은 중요하다.

블란테와 동맹을 맺으면서 한니발은 수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에단이 생환할 수 있는가?’

그 사실은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다. 구심점을 잃은 블란테와 아카데미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느냐가 중요했다.

‘구심점이라.’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고작 20대 초반의 나이. 자력으로 블란테의 후계자 자리까지 올라가고, 수많은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블란테라는 지위가 없었으면 힘들었겠지만.’

그것을 이용하는 것도 개인의 능력이었다. 에단의 가치는 무력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 강단과 배짱, 그리고 흐름을 읽는 안목이 더욱 대단했다.

천하의 한니발조차 에단에게 완전히 휘둘렸다. 에단의 능력과 재능은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한니발의 상회는 움직임을 멈췄다.

지금은 섣부르게 행동하는 것보다 정황을 보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만일 블란테가 악수를 두게 된다면 한니발은 고민 없이 돌아설 것이다.

‘그래도…… 돌아올 것이라 믿습니다.’

한니발은 에단의 생환을 진심으로 바랐다.

*   *   *

화려하게 꾸며진 알현실, 현 제국의 황제 크리스토는 팔걸이에 턱을 괸 채 무심한 표정들로 신하들을 바라봤다.

신하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평소에도 황제의 눈치를 살피는 이들이었지만, 오늘은 그보다 더했다.

모두 창백해진 얼굴로 황제의 시선을 슬며시 피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왜 이렇지? 짐이 적군들을 패퇴시키지 않았나. 더욱 기뻐하도록.”

“그, 그렇습니다, 폐하.”

“폐하 덕에 제국의 안위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야만적이고 욕심 많은 군세들을 무찔러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어색하기 그지없는 아부들.

크리스토의 입술이 씰룩였다.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크리스토는 저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고 있었다. 공포라는 감정 뒤에 경멸과 혐오의 눈빛이 숨어 있었다.

‘음, 본보기로 한 명 죽여 볼까?’

그런 고민을 하던 크리스토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손님이 찾아왔군.”

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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