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4화] 실종 (3)
“지금 회군이라고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곳곳에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블란테의 군대는 확실한 승기를 잡았고, 이제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눈앞에 포진한 적들만 넘어서면 전쟁은 블란테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에단이 사라지기 전까지 아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고, 입은 피해조차 극히 미미했다.
그야말로 최상의 상태.
하지만 총지휘관인 에단은 간악한 계략에 휘말렸다.
죽음은 확인하지 못하지만, 대부분의 병사와 기사들은 에단이 죽었으리라 생각했다.
블란테의 공식적인 후계자가 사망한 사건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회군이란 선택은 그들의 자존심과 명예에 먹칠을 하는 행동이었다.
“불만이 있으면.”
스릉.
첸이 검을 뽑아 들자 한기가 휘몰아쳤다.
살을 에는 것 같은 기세.
첸은 힘을 숨기지 않았다.
압도적인 위압감에 기사들이 입을 다물었다. 블란테는 철저한 상명하복의 체제를 따르고 있었다. 힘이 곧 질서이자 법칙인 것이다.
명실상부한 블란테의 2인자로서 군림하는 첸의 말에 감히 반론을 제기할 이는 없었다.
기사들이 주먹을 움켜쥐며 고개를 숙였다. 회군은 결정되었다.
스윽.
네이드가 어느새 첸의 곁에 서 있었다.
네이드 특유의 부드러운 눈웃음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오히려 가늘게 뜬 눈에서 잘 벼려진 살기가 흘러나왔다.
“제가 저놈을 죽이고 오죠.”
“불허합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첸을 향해 네이드가 무언의 시선을 보냈다.
그걸 느낀 건지 첸이 입을 열었다.
“네이드 님께서도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녀석은 그렇게 쉽게 죽일 수 있는 놈이 아닙니다.”
“…….”
“그리고…… 네이드 님께서는 도련님이 죽었다고 확신하는 겁니까?”
첸의 질문에 네이드의 동공이 미세하게 떨렸다. 첸이 계속 정면을 주시한 채로 말을 이었다.
“저는 도련님이 죽었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황제가 죽으면 도련님을 찾을 방법은 미궁에 빠지게 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군요.”
“아닙니다. 저도 지금…….”
첸이 눈을 감고 숨을 내뱉으며 들끓는 감정을 삼켰다.
“평정을 유지하기가 벅차군요.”
군대는 걸어서 회군했다.
불만을 표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분위기는 암울했다. 하늘을 찌르던 사기와 기세가 바닥에 곤두박질쳐졌다.
오르번은 걸으면서 생각했다.
‘그 술식.’
황제가 준비해 둔 함정.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을 제물로 술식이 발현되었다. 하지만 순전히 그것 뿐만은 아니었다.
‘미리 준비해 뒀군.’
그런 거대한 규모의 술식은 촘촘하고 정밀한 사전 준비가 없으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성 왕국의 실험도.’
제국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제국과 신성 왕국의 유착 관계.
새로운 생명체.
여러 실험.
엄청난 규모의 술식.
오르번은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너무 오랫동안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다. 인간의 욕심은 오르번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그렇게까지 진전이 있었을 줄이야.’
그가 정체되어 있는 동안 세상은 변화하고 있었다.
에단이 사라졌다. 어디로 갔는지 짐작은 할 수 있었다.
‘본래라면 생존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었겠지만.’
에단은 살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르번이 살아온 세월과 비교하면 짧은 인연이었지만, 그럼에도 에단을 믿었다.
‘나도 늙었군.’
오르번은 오랜만에 분노라는 감정을 느꼈다.
* * *
블란테의 군대가 돌아왔다.
제국은 결국 함락시키지 못했다. 기사들과 병사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들은 패배하지도 않았지만, 승리하지도 않았다.
아카데미에 복귀한 첸은 곧장 빈센트의 집무실로 향했다.
“……이상입니다.”
첸은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있는 사실들을 바탕으로 내용을 보고했다.
승기는 확실했다. 에단은 군대의 안위를 위해 몸을 내던졌다.
“…….”
빈센트는 침묵을 고수했다. 무거운 침묵이 내리깔렸다.
첸은 아무런 말없이 빈센트를 응시하고 있었다.
“에단을 찾을 방법은?”
“……현재로서는 불확실하지만 저희 측과 함께하던 흑마법사와 마법사들이 방법을 모색한다고 합니다.”
“그래…….”
빈센트가 의자에 몸을 기댔다.
노후 된 의자가 빈센트의 체중을 이기지 못하고 삐걱거렸다.
빈센트는 말없이 의자 옆에 있는 검을 들었다.
“……가주님?”
“이번에는 내가 책임을 져야 되겠지.”
첸은 빈센트와 오랜 시간을 함께해 왔다. 그렇기에 빈센트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
첸이 입을 다물곤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빈센트 혼자 신성 왕국을 뒤집어 놓은 당시를.
빈센트는 이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만류하는 게 불가능하다.
‘내가 누굴 말린다는 거냐.’
빈센트를 걱정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
“잠깐 외출 좀 다녀오지.”
“여기는 저희가 지키겠습니다.”
“그래.”
빈센트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첸은 가만히 빈센트를 응시하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조심하십시오.”
“……그러도록 하지.”
빈센트가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사라진 빈센트의 자리에는 바람의 잔재만이 남아 있었다.
* * *
아카데미에는 벌써 에단의 실종에 관한 소식이 나돌기 시작했다.
네이드는 직접 에밀라를 찾아가 그 사실을 전했다.
소식을 들은 에밀라의 눈이 커졌다.
네이드는 굳은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타인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을 업으로 사는 어쌔신들에게 죽음이란 익숙한 것이었다. 하지만 네이드는 에단의 죽음을 믿지 않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도련님은 곧 돌아올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에밀라 곁에 있던 리사도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실종이라고? 자기밖에 모르던 오빠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예쁜 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재수 없는 오빠였지만, 그래도 그 능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리사는 에단의 실종이란 소식을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당장에라도 따져 묻고 싶었지만, 네이드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네이드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에밀라와 리사는 아무 말 없이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드레이는 복귀한 직후 레미아를 찾아갔다. 오르번이 드레이에게 말했다.
― 네 동생은 무언가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아.
― 제 동생이 말입니까? 하지만 동생은 상태가…….
― 시간이 없어. 그곳은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못 돼. 시간을 지체하면 지체할수록 그놈이 생환할 확률은 희박해지겠지.
― …….
드레이는 입을 다물었다. 아직도 그 현장이 기억난다.
그곳에서 드레이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들은 드레이를 칭송했다. 혹자는 드레이 대신 에단이 사라진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이도 있었다.
― 선택해. 동생을 아끼는 마음은 갸륵하지만 너는 선택을 해야 해.
― ……알겠습니다.
오르번은 드레이에게 선택지를 줬지만, 애초에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동생의 원망을 듣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동생에게 정보를 얻어야만 했다.
드레이가 눈을 질끈 감았다.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드레이는 동생의 방을 찾아가면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속에 있는 걸 게워 낼 것 같았다. 드레이가 허전한 자신의 허리춤을 바라봤다.
드레이는 더 이상 성검의 주인이 아니었다.
‘나는 뭘 할 수가 있지?’
성검이 없는 드레이는 반쪽짜리 성자에 불과했다.
결국 전쟁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에단은 달랐다. 에단의 나이는 드레이와 엇비슷했다.
에단은 강하다.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나약한 자신과는 전혀 달랐다.
시기도 들지 않았다. 한심하게 숨어 지내던 자신을 끌고 올라온 게 바로 에단이었다.
에단은 늘 가장 먼저 앞장서던 남자였다. 에단 덕에 여동생을 구했고, 신성 왕국에 복수할 수 있었다.
‘이제는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할 때였다. 다짐한 드레이의 눈에 이채가 맴돌았다.
똑똑.
“들어갈게.”
대답이 들리지 않았지만, 드레이는 문을 열었다. 그러자 침대 위에 앉아 있는 레미아의 모습이 보였다.
탁하고 흐릿한 눈동자. 레미아의 눈에서는 생기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감정이 요동쳤다.
생기와 총기를 잃은 여동생의 눈을 보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천진하고 맑은 얼굴이 그리웠다.
드레이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맺히는 걸 느끼며 드레이는 천천히 레미아에게 다가갔다.
드레이가 다가서자 레미아의 가녀린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스윽.
드레이가 한쪽 무릎을 꿇어 침대 위에 있는 레미아와 시선을 마주쳤다.
레미아는 제대로 된 상태가 아니었다. 대화가 가능한지도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레미아 외에는 희망이 없었다.
“레미아.”
드레이가 레미아의 이름을 부르고 입을 다물었다. 감정이 북받쳤다. 드레이는 차오르는 감정을 꾹 억누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많이 힘들었지?”
“…….”
레미아의 탁한 동공이 흔들렸다.
드레이는 입을 꾹 다물며 차오르는 눈물을 억눌렀다. 드레이가 고개를 숙였다.
여기서 고개를 들면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오빠가…… 미안해.”
드레이가 한 글자, 한 글자 힘겹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주륵.
탁한 레미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젖은 레미아의 눈에 천천히 생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오빠…….”
가냘프게 흘러나오는 목소리. 드레이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드레이와 레미아의 눈이 마주쳤다.
“……미안해, 레미아.”
드레이가 레미아의 손을 붙잡았다. 감정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목 놓아 오열하고 싶었다.
‘안 돼.’
드레이가 여기에 온 이유는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드레이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레미아를 바라봤다.
레미아의 상태는 아직도 매우 위태로웠다.
정상적인 상태라고 볼 수 없었다.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많은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하지만.’
여기서 더 지체하면 에단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진다. 드레이가 고개를 들어 레미아를 바라봤다.
“레미아…… 정말 면목 없지만…… 너의 힘이 필요해.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
“너에게는 악몽 같은 일들이었겠지만……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나한테 말해 줄 수 있겠니? 떠올리는 것 자체가 힘들 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 네가 말해 주지 않으면 우리의 은인은 죽고 말 거야.”
진심이 담긴 드레이의 말에 레미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가 눈을 질끈 감았다.
드레이의 말대로 그날의 기억은 끔찍한 악몽과도 같았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쓰라린 흉터였다.
‘하지만.’
레미아는 흉터를 직시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