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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310화 (310/398)

◈ [310화] 침략 (5)

제국 귀족들의 공포가 가중되었다. 블란테의 군대가 제국을 맹렬하게 휘젓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황제의 직할령뿐이었다.

겁에 질린 귀족들이 여러 대처를 강구하고 있었다. 크리스토가 보기에는 의미 없는 헛소리들에 불과했다.

가장 먼저 기동적인 측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상대는 이미 마탑과 마법명가라 불리는 아큐르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었다.

‘궁지에 몰릴 대로 몰렸군.’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 하지만 크리스토는 엷은 미소를 지은 채 귀족들의 토의를 관조하고 있었다.

“……폐하께서는 별다른 의견이 없으십니까?”

한 고위 귀족이 크리스토에게 질문했다. 크리스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질문한 귀족을 바라봤다.

“오, 드디어 짐에게도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건가? 이것 참 기쁘군. 하하하.”

“아, 아닙니다…… 진작 고견을 묻지 못해 죄송…….”

툭.

말을 하던 고위귀족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

다른 귀족들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크리스토의 손에는 어느새 검이 뽑혀 있었다.

크리스토가 매끄러운 검날을 이리저리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뭔가 재수 없어서 베었네. 불만이라도 있는가?”

“…….”

귀족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사색이 된 얼굴에서는 여기서 탈출하고 싶다는 의지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크리스토가 고개를 들어 귀족들을 찬찬히 훑어봤다. 무미건조한 눈빛에 닿은 귀족들이 하나 같이 몸을 떨었다.

“이런, 내 말에 대답하는 이가 한 명도 없으니 이것 참 통탄스럽군.”

크리스토가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들 두려운 것은 이해하네. 상대가 맹수처럼 제국을 헤집고 다니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말게나.”

크리스토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내게 계획이 있으니.”

*   *   *

가주가 죽은 카이제르는 많은 혼란에 휩싸였다. 애당초 카이제르는 급격하게 몸집을 키운 가문이었다.

급하게 몸을 키운 가문들의 가장 큰 부작용이라고 한다면 결속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가문을 향한 충성심보다 개인의 욕망이 중요한 이들이 많았다.

공석이 된 가주의 자리를 놓고 많은 의견들이 오갔다.

가장 타당한 명분을 지니고 있는 이는 가주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반대하는 의견들이 속출했다. 아들의 나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장남은 경지도 그리 높지 않은 고만고만한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남들을 휘어잡거나 하는 카리스마나 리더십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과 같이 혼란스러운 정세에 그런 애매한 자가 가주의 직위에 올라서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팽배하게 돌았다.

“그러면 어찌하자는 소리요? 언제까지 가주의 자리를 공석으로 둘 수는 없지 않소! 지금 이탈하는 기사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당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텐데?”

검술 명가라고 모든 이가 기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 가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가신들이 존재했다.

“……당신도 알지 않소? 지금 블란테는 막강한 대군을 이끌고 대륙을 휘젓고 있소. 참담한 말이지만 가주는 죽었소. 이제 더 이상 우리는 블란테에 견줄 수 없다는 소리요.”

“…….”

자리에 있는 가신들과 기사들이 피가 흐를 정도로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블란테를 넘어서겠다는 일념 하나로 달려온 이들이다. 그 노력은 결코 적지 않았다.

“……가주의 죽음은 의문투성이요. 시신조차 제대로 인계받지 못했소. 이게 말이나 되는 상황이오? 아무리! 황제라고 한들 이건 있을 수 없는 폭거요!”

“오, 그래?”

그 순간 홀에 제3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였다.

자리에 있던 자들이 모두 시선을 돌렸다.

“……!”

그곳에는 현 제국의 황제인 크리스토가 있었다.

빈자리에 앉아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있는 크리스토는, 웃음기 서린 표정으로 가신들과 기사들을 훑어봤다.

‘……말도 안 돼.’

‘언제부터 자리에 있던 거지?’

카이제르 기사들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크리스토의 경지가 낮지 않다는 사실은 그들 또한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이곳에 있는 기사들은 모두 최상급의 경지에 이른, 마스터를 목전에 둔 강자들이었다.

그러한 이들이 크리스토가 이 자리에 있음에도 아무런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가신들과 기사들의 표정에 경악과 경계가 동시에 어렸다.

“……이게 지금 무슨 행패요?”

카이제르의 기사단장 중 하나가 칼자루를 쥔 채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오, 이거 내가 실수한 것 같군.”

“실수? 지금 가문의 내사에 예고도 없이 멋대로 끼어들어 놓고 실수라는 말로 무마할 수 있을 것 같소?”

“너무 열 내지 말라고. 지금 상황은 그쪽도 알고 있을 것 아니야? 안타깝게 됐어. 하필 지금 가주가 죽다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니까.”

“가주를 함부로 언급하지 마시오!”

기사가 언성을 높였다. 그의 눈이 살기로 번뜩였다.

“우리는 시신조차 제대로 인계받지 못해 약식의 장례를 치렀소. 이유가 무엇이오? 대체 어째서! 설마…… 가주를 당신이 죽였소?”

스윽.

그 순간 크리스토가 기사를 응시했다. 기사는 순간 저도 모르게 검을 빼 들었다.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등이 축축하게 젖어 들고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기사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반면 크리스토의 눈은 깊고 고요했다.

아름다운 푸른 눈이 기이한 무저갱처럼 느껴졌다.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만으로도 원초적인 공포심이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부들부들.

최상급의 경지에 오른 기사인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검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동요를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물끄러미 기사를 바라보던 크리스토가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하하하하!”

기이한 장면이었다.

카이제르의 회의실에서 제국의 어린 황제는 폭소를 터트렸고, 다른 이들은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그 누구도 감히 크리스토를 제지하지 못했다.

“아, 이거 미안하군. 꽤나 분위기가 진지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서 말이야. 자네 말을 들어보니까 내가 실수한 게 맞는 것 같군. 사안을 확실히 밝히지 않고, 시신을 인계하지 않은 건 내 잘못이 맞는 것 같아.”

크리스토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근데 혹시 그걸 알고 있나?”

카이제르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알렉스 경은 죽지 않았네.”

“……!”

가신과 기사 할 것 없이 모든 이들의 눈이 터질 것처럼 부릅떠졌다. 검을 뽑아 든 기사단장은 이가 으스러질 것처럼 강하게 갈았다.

꽈아악―!

“그게 지금…….”

뚜벅.

기사단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대뜸 발걸음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기사단장이 고개를 돌렸다. 다른 기사들과 가신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무언가가 그들을 이끄는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알렉스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백지처럼 창백한 얼굴의 알렉스가 회의실에 들어오고 있었다. 몇몇 가신들이 반색하며 일어났다.

“가주님!”

“이게 대체…….”

“내가 알렉스 경과 작당을 해 봤네. 요즘 카이제르의 분위가 워낙 흉흉하지 않나. 그래서 좀 분위기 전환이라도 시켜보기 위해 준비했지. 어때, 많이 놀랐나?”

크리스토는 히죽거리며 말했다.

가신들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크리스토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지금…… 그게 대체…….”

“가만히 있으시오.”

기사단장이 경고하듯 읊조렸다. 그의 시선은 이제 크리스토가 아닌 알렉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요동치던 심장이 가라앉았다.

마치 냉수에 몸을 담근 것 같았다. 전신의 솜털까지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가슴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다 못해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꽈아아악!

끼기기긱―!

강하게 움켜쥔 칼자루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기사단장의 눈에는 붉은 핏발이 서 있었다.

“저건 가주가 아닙니다.”

“그, 그게 무슨…….”

“그게 무슨 소리지?”

크리스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알렉스가 있는 장소를 향해 걸어갔다.

여유로우면서도 흥겨운 발걸음이었다.

알렉스 곁에 선 크리스토는 친근하게 알렉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것 봐. 너희들 가주 맞다니까.”

“……그 입 닥쳐라. 찢어 버리기 전에.”

“무섭기도 해라. 입을 어떻게 찢어 버린다는 거지?”

크리스토가 손가락을 입꼬리에 넣고 주욱 잡아당겼다. 크리스토의 입꼬리가 길게 늘어졌다.

“이렇게 말인가?”

도를 넘은 조롱에 기사단장이 달려들었다.

푹―

하지만 기사단장의 검은 크리스토에게 닿지 못했다. 그의 가슴에 알렉스의 검이 틀어박혔기 때문이다.

“어?”

울컥울컥.

기사단장은 심장에 꽂혀 있는 검을 보았다. 납득하기 어려운 이질적인 감각이었다.

달아오른 피가 빠르게 식어 간다. 그건 생명이 빠져나가는 것과 같았다.

기사단장이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시체처럼 무미건조한 얼굴의 알렉스가 칼자루를 쥐고 있었다.

“가, 가주님…….”

기사단장이 매우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는 알렉스의 염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기사단장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알렉스의 검신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경악스러운 광경에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이거, 나만 보긴 아까운 광경인데.”

크리스토를 제외하고.

*   *   *

“준비는 끝났습니다.”

“병사들의 사기는 어떻지?”

“……완벽합니다.”

사미라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사납게 웃었다. 가뜩이나 야만적이고 포악한 용명들은 피를 먹자 그야말로 야수로 돌변했다.

반면 적들의 사기는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성벽에서 와들거리고 있는 적들의 공포가 용병들을 강하게 만들었다.

사미라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인 에단이 오르번과 에르미온에게 물었다.

“성벽의 마법진은?”

“꽤나 갖춰져 있군. 해제하는 게 어려운 건 아니지만 시간이 걸려.”

“녀석도 바보가 아니라면 대놓고 마법진을 파훼하면 뭔가 조치를 취하려고 들겠지.”

“힘으로 부수는 방법은 어렵나?”

“글쎄…… 네 무식한 힘을 보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말이야…… 확신은 못 하겠네.”

에르미온의 답변을 들은 에단이 가늘게 뜬 눈으로 성벽을 바라봤다.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저 높고도 견고한 성벽이 저들의 마지막 요새였다. 저기만 무너트리면 전쟁은 끝났다.

‘이렇게 손쉽게?’

에단이 수많은 밑 작업을 통해 크리스토를 궁지에 몰아넣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나도 쉬웠다. 이질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재화가 소모된다. 당연히 병사들의 피로도도 가중된다.

“헨리.”

“부르셨습니까?”

“저 성벽 넘을 수 있겠어?”

헨리가 눈살을 찌푸리며 성벽을 가만히 바라봤다.

“음…… 가능할 것 같은데요? 얼마나 옮기실 생각인가요?”

헨리의 물음에 에단이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전 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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