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3화] 습격 (3)
에단이 내성에 진입했다. 감각을 넓게 퍼트렸다. 에단에게 이정표는 필요하지 않았다.
이정표 대신 죽은 나무의 힘이 에단을 이끌어 주었다.
‘역시나.’
방향은 확고하다. 아래쪽. 내성의 지하에서 죽은 마나의 기운이 느껴진다.
죽은 나무가 예민하게 반응했다. 에단은 죽은 나무의 인도를 따라 달렸다.
내성에서 마주치는 사용인들과 성직자들은 모두 죽였다. 사사로운 연정에 사로 잡힐 상황이 아니었다.
‘이대로는 늦어.’
에단이 판단을 끝냈다.
오르번과 드레이가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쾅!
주먹에 오러를 두른 에단이 바닥을 내려쳤다.
쾅! 쾅! 쾅! 쾅!
굉음과 함께 건물이 흔들렸지만 에단은 개의치 않았다.
쾅!
결국 바닥이 뻥 뚫리며 지하가 드러났다. 에단은 망설이지 않고 몸을 던졌다.
칠흑 같은 어둠.
하지만 어둠을 관통하는 시야를 지닌 에단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에단은 죽은 마나가 느껴지는 방향을 향해 이동했다. 코를 찌르는 악취가 느껴졌다.
‘이건…….’
에단이 사납게 인상을 구겼다. 고풍스럽고 고결하게 치장해 둔 성과 달리, 성의 지하는 마치 실험실과도 같았다.
시체, 오물, 백골, 핏자국.
모든 게 뒤엉켜 있었다. 에단의 인상이 사나워졌다.
에단이 발을 옮겼다. 점점 깊은 곳으로 향했다.
죽은 마나의 기운이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몸속에 잠재되어 있는 죽은 나무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심장이 뛰었다. 근원과 가까워질수록 더욱 세차게 뛰었다.
에단은 달렸다.
점점 지하의 깊은 곳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악취가 심해졌다. 시체의 숫자도 많아졌다.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은 시체의 모양이 점점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우웅.
기괴한 소음이 들렸다. 검은 문이 에단을 가로막고 있었다. 에단은 문을 부수기 위해 칼자루를 쥐었다가 놓았다.
에단은 본능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문 앞에 선 에단이 손을 뻗어 얹었다. 기괴한 문양이 빼곡히 그려진 문은 에단의 손과 닿자마자 기묘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쿠우웅.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어떠한 작용으로 문이 열리는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본능과 직관으로 움직였을 뿐이다.
문이 열리자 강당 같은 곳이 모습을 드러냈다.
에단의 눈앞에 산처럼 쌓인 시체들이 보였다. 시체의 대부분은 아이와 수인들의 시체였다.
시체들의 아래에는 기하학적이고도 기괴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을 둘러싼 사람들이 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다.
누군가는 백색의 사제복을, 누군가는 검은 로브를 두른 채.
기괴한 광경이다.
에단은 기도문에 대해 조예가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나 지금 저들이 읊조리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사특하기 그지없다.
오르번의 주문이나 술식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혐오감이 꿈틀거렸다.
‘이 버러지 같은 새끼들이.’
분노가 치밀었다.
저들이 지금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에단이 지금 느끼고 있는 격렬한 분노였다.
에단이 기운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포악한 기운이 강당을 휩쓸었다. 사나운 피어와 무지막지한 마나가 강당을 집어삼켰다.
기도문을 외우던 사제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중 가장 호화스러운 의복을 입은 이의 정체를 파악했다.
“네, 네가 어떻게……?”
“왜? 내가 못 올 데라도 왔나?”
에단이 이죽거리며 다가갔다. 사제들의 벌벌 떨리는 손이 에단에게로 향했다. 그 순간 교황이 소리쳤다.
“멈춰라! 이제 의식의 막바지다! 의식을 속행해!”
교황의 호통에 사제들이 동작을 멈추고 다시금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에단의 이마에 힘줄이 불거졌다.
“나를 아주 개무시한다 그거지?”
에단이 마나를 폭발시켰다.
이제 더 이상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였다. 에단이 질주했다. 이미 에단의 손에는 검이 쥐어져 있었다.
기도문을 외우던 사제가 하나둘씩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있었다.
“멈추지 마라!”
교황이 소리쳤다. 에단은 번뜩이는 시선으로 교황을 노려봤다.
‘저 새끼부터.’
순서가 잘못됐다. 제대로 된 정리를 위해서는 우두머리부터 처리하는 게 맞았다.
타닷!
에단이 달려 나갔다. 기도문을 외우던 교황이 에단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는 곧장 장막을 퍼트렸다.
“버러지 놈이!”
“지는 살고 싶다 그거지?”
남들은 뒈지든 말든 의식을 속행하라던 교황이었다. 한데 정작 자기 목에 칼이 들어오니까 손바닥 뒤집듯 상황을 반전시켰다.
기가 찰 노릇이다. 에단이 전개된 장막을 그대로 후려쳤다.
쩌엉―!
강렬한 파공성과 함께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 충격의 여파가 적지 않았다. 기도문을 외우던 사제들이 얼굴을 가렸다.
에단은 멈추지 않고 한 차례 더 장막을 후려쳤다. 장막에 금이 그어진다.
쾅! 쾅! 쾅! 쾅!
에단이 미친놈처럼 검을 휘둘러 댔다. 장막의 균열이 더욱더 거세진다.
흉악한 기세에 지켜보던 사제들이 몸을 떨었다.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고.”
에단이 사나운 눈빛으로 교황을 응시하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소, 속행해!”
교황이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소리쳤다. 안절부절못하던 사제들이 다시 기도문을 외웠다.
우웅.
그때였다. 산처럼 쌓인 시체에서 변화가 시작됐다.
으적. 으적.
무언가를 씹어 먹는 소리. 에단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야 이건.’
섬뜩함이 느껴진다. 군주를 소환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무언가 다르다.
그보다 훨씬 이질적이고…… 음산했다.
불쾌함이 치밀었다.
에단은 장막을 두드리던 행위를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시체의 숫자가 빠르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교황의 눈빛에 희망이 맴돌았다.
“드, 드디어…….”
“드디어는 뭐가 드디…….”
에단이 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그것’이 먼저 움직였다. 두 눈으로 좇기도 어려운 속도로.
콰직!
교황의 머리가 사라졌다. 교황은 그대로 바닥에 추욱 늘어졌다.
새하얀 의복이 피로 붉게 물들었다. 머리를 잃은 교황의 몸은 아직 죽음을 인식하지 못한 것인지 꿈틀거리고 있었다.
에단의 표정이 굳었다. 에단은 쥐고있던 검을 놓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방해만 될 뿐이었다.
으적으적.
무언가를 씹어 먹는 섬뜩한 소리가 강당 안에 울려 퍼졌다. 고요함 속에서 ‘그것’이 무언가를 으깨고 부수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니들 뭔 짓거리를 한 거냐?”
에단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사제들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 이건 아니야…….”
“개소리 그만하고 뭔 짓을 벌인 거냐고.”
“토, 통제해야 해. 아, 안 그러면 다 죽을 거야.”
갸우뚱.
그것이 에단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단은 형용할 수 없는 불쾌함을 느꼈다.
“어딜 꼬라보고 지랄이야…….”
파밧!
검은 형체가 질주한다. 에단의 눈이 커졌다. 에단은 그것의 움직임을 똑똑히 지켜봤다.
빠르다. 에단의 반응할 수 있는 속도보다도 빨랐다.
에단이 이를 악물었다.
한 템포 느려도 괜찮았다. 달려오는 타이밍에 맞춰, 에단이 발을 치켜들었다.
파앗―!
녀석은 기괴한 움직임으로 에단의 다리를 피해 냈다. 그리고 에단의 뒤에 있던 사제의 목을 가져갔다.
“……허.”
에단이 헛웃음을 지었다. 녀석은 마치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의 머리를 뜯어 먹으면서.
“맛있냐?”
입맛 한번 참 고약하네.
에단이 천천히 몸을 풀었다.
강당에 있던 사제들은 모두 저것에 의해 죽었다. 녀석들이 의식을 통해 무언가를 소환하려고 한 것은 알겠다.
지금 이 꼬라지를 보고도 그걸 알아채지 못한다면 머저리나 다름없다.
에단이 남은 사제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야, 지금이라도 살고 싶으면 말해. 저거 뭐야?”
사제의 떨리는 동공이 에단에게로 향했다. 그는 그 누구보다 삶을 갈망하고 있었다.
“타, 타이탄…….”
콰직!
말을 잇던 녀석의 머리가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살아 있던 사제 두 명의 머리도 동시에 사라졌다.
이제 이곳에 남아 있는 생존자는 녀석과 에단뿐이었다.
녀석은 지금의 사냥을 즐기고 있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 이 건방진 새끼가…….”
에단이 씨익 웃었다.
겉으로는 웃었지만 에단은 지금 긴장하고 있었다.
움직임을 좇는 것조차 어려웠다. 에단은 죽기 직전 사제가 내뱉은 말을 떠올렸다.
‘타이탄이라고? 저게?’
에단의 눈이 가늘어졌다. 녀석의 외향이 보였다.
녀석의 몸은 지금도 변화하고 있었다. 일정한 형체를 갖추지 못했다.
피부에는 비늘이 빼곡했고, 눈동자는 샛노랬다.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은 이리저리 뻗쳐 있었다.
팔과 다리는 기괴하리만큼 길었고, 꼬리 또한 두 개나 달려 있었다. 톱니같이 날카로운 이빨은 아직도 머리를 뜯어 먹고 있었다.
으적. 으적.
‘음, 생각했던 거랑 많이 다른데.’
애당초 저게 타이탄인지도 모르겠다. 만일 저게 진정 타이탄이라면 꽤나 실망스럽다.
에단이 생각하던 타이탄의 모습은 저것과는 꽤나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에단은 자신의 왼손을 바라봤다.
타이탄의 장갑.
장갑은 딱히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포획해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에단이 이리저리 목을 꺾었다. 사실 별로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사용할 생각이었다.
“야. 너 사람 말은 할 줄 모르지?”
“키키킥?”
“그럴 줄 알았다. 사실 기대도 안 했어.”
생긴 것만 봐도 대화는 힘들 거라 생각했다.
대화가 가능했다면 사람 머리를 사과나 토마토 따 먹듯이 먹지는 않았을 테니까.
‘으.’
에단이 눈살을 찌푸렸다. 다시 떠올리니 비위가 상했다.
어지간한 것에는 눈 하나 깜짝 안 할 수준으로 비위가 좋아졌다고 생각했지만, 눈앞에서 사람 머리통을 씹어 먹는 꼴은 역시 견디기가 힘들었다.
“후우.”
한숨을 내쉰 에단이 자세를 잡았다. 이번에는 여유롭게 상대할 만한 녀석이 아니었다.
‘그래도 한번 최선을 다해 볼까.’
히죽히죽 웃고 있는 낯짝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에단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녀석을 바라봤다.
“외모가 그러니 그냥 괴물이라고 부를게? 괜찮지?”
“키에엑―!”
녀석이 에단의 말에 반응한 듯 돌진했다. 에단이 몸을 비틀어 괴물의 공격을 피해 냈다.
“위험하게.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하든가.”
빠악!
에단의 미들킥이 괴물에게 적중했다. 하지만 타격을 주지는 못했는지 괴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재수 없는 새끼.”
에단이 왼손을 날렸다. 주먹을 날린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을 게 빤했다.
푸욱!
에단의 두 손가락이 샛노란 동공을 찔렀다.
“키에에에에에엑―!”
괴물이 끔찍한 비명을 토해 냈다. 그 순간 에단이 괴물의 배를 걷어찼다.
괴물이 뒤로 나뒹굴었다.
에단은 손에 묻은 점액질을 털어 내며 괴물에게 다가갔다.
“아프냐?”
에단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