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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302화 (302/398)

◈ [302화] 습격 (2)

마법진이 가동되고 일행이 눈을 뜬 곳에는 익숙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휘이잉―!

북부에 도착하자 살을 에는 한기가 파고들었다. 북부에서 평생을 살아온 수인들도 몸을 움츠렸다.

“……여기가 이렇게 추웠나?”

사람이 적응의 동물인 것처럼, 수인들도 따뜻한 곳에서 지내다가 마주한 추위가 낯설게 느껴진 모양이다.

에단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발을 내딛자, 뽀드득 소리와 함께 발이 푹 들어갔다. 에단이 렉사르를 불렀다.

“수인들의 전권은 너한테 맡긴다. 알아서 잘할 수 있겠지?”

“……알겠습니다.”

렉사르는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검은 사자들은 별다른 명령 없이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훈련이 돼 있는 데다가, 큰일이 없는 한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존재들이다.

그 탓에 렉사르는 통솔하는 것이 익숙지 않았다.

하지만 별다른 반론을 하진 않았다. 지금 수인들을 이끌 적임자는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휴고랑 가토도 같이 따라가. 우리랑 붙어 있는 것보다는 그쪽이 더 도움될 거야.”

“알겠습니다.”

휴고와 가토가 순순히 대답했다.

“그럼 우리는 크게 한번 터트려 볼까?”

오르번이 곧장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주문을 외는 것만으로도 요사스러운 그림들이 허공과 바닥에 빼곡히 형성되고 있었다.

계속 중얼거리던 오르번이 눈을 떴다. 오르번의 표정은 매우 피로해 보였다.

“……준비는 끝났다.”

“생각보다 빠르네. 그럼 가 볼까.”

에단이 오르번과 드레이와 함께 이동을 시작했다. 수인들과 렉사르는 인원을 나눠 산개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에단은 신성 왕국의 성벽 앞에 섰다. 웅장한 성벽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어디 한번 신고식이나 거하게 치러 볼까?”

히죽 웃으며 검을 뽑아 든 에단이 내면에 잠재된 마나를 끌어 올렸다.

우우웅―!

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나가 휘몰아친다.

가늠할 수 없는 막대한 마나의 양이 넘실거렸다. 드레이는 경악한 눈으로 에단을 바라보다 이를 악물었다.

에단과 마찬가지로 검을 빼든 드레이가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그동안 드레이도 놀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드레이는 매일같이 뼈를 깎고 피를 토하는 수련을 해 왔다.

이제 그는 신성력을 통제하는 능력이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다.

신성력을 증폭하는 성검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떨리는 것은 에단의 검도 마찬가지였다. 에단은 눈을 감고 집중했다. 아직 제대로 구현하기에는 미흡했다.

하지만 에단에게는 여러 편법이 존재했다. 먼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막대한 마나량.

그리고 어떤 반작용도 무시할 수 있는 타이탄의 장갑.

이 두 개가 합을 이루자 아직 사용할 수 없는 기술까지 넘볼 수 있게끔 만들어 줬다.

씨익.

에단이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파멸적인 기운이 검에 모였다. 그리고 그 기운을 모으고 모아 하나의 점에 압축시켰다.

모든 방진들을 깨부술.

포악한 일격.

에단이 덜덜 떨리는 검을 출수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드레이도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막대한 기운이 토해졌다.

성벽을 두르고 있던 신성하면서도 경건한 방어막이 순식간에 찢어발겨졌다.

에단과 드레이의 기운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성벽을 깨부쉈고, 그곳을 지키고 있던 성기사들은 즉사했다.

“하아.”

에단이 숨을 토해 냈다.

검을 휘두른 왼손이 벌벌 떨렸다. 이 정도 집중력을 끌어올린 것이 처음인지라 머리가 핑하고 돌았다.

‘정신 차려라.’

에단은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고작 여기서 주저앉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에단이 오르번을 바라봤다.

“재촉하지 말거라.”

오르번이 퉁명스레 대답했다.

오르번이 지팡이를 치켜들자 하늘과 바닥에 무수한 마법진이 그려졌다. 사특하고 사악하기 그지없는 마법진들이었다.

전개된 술식에서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모두가 하나같이 끔찍한 몰골들이었다.

마치 저승에서 기어 올라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저게 대체…….”

드레이는 충격을 먹은 표정으로 괴물들을 바라봤다.

괴물들의 숫자는 수백을 가뿐히 넘는, 수천의 숫자였다. 그것들이 한순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보는 것만으로도 거부감이 들고 구역질이 치밀었다.

드레이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장소에는 에단이 있었다. 에단의 표정은 평온하고 침착했다. 에단은 들고 있던 검을 검집에 밀어 넣었다.

“저것들이 뭐냐고?”

“…….”

“우리의 아군이자, 심판자.”

에단이 씨익 웃었다.

“추위를 느끼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보급이 필요하지 않은 전사들.”

드레이는 차마 입을 열지 못했지만, 에단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어때? 아이러니하지 않아?”

에단이 씨익 웃으며 달려들었다.

드레이의 동공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다짐한 듯 성검을 꽈악 움켜쥐었다.

‘이제 와서 이딴 걸 신경 쓰는 거냐?’

승리와 복수를 위해서라면 그 누가 조력자로 오든 상관없었다.

드레이가 지닌 이 힘은 축복이 아닌 저주였다. 그의 여동생은 아직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가슴 속에서 분노가 들끓었다. 그 분노는 곧 움직일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

드레이가 산기슭을 뛰어 내려갔다.

*   *   *

신성 왕국의 성벽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왕국 내부는 혼란에 잠식되었다.

성기사들과 성직자들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밖으로 뛰쳐나왔다.

눈보라 탓에 시야를 확보하는 게 어려웠지만 그들의 본능은 경종을 쳐대고 있었다.

코를 찌르는 악취.

피부에 느껴지는 한기.

이것은 추위 때문에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다.

“아, 신이시여…….”

그들이 신을 되뇌었다. 죽음을 거스른 이들이 신성 왕국을 습격했다.

성기사들이 재빠르게 준비를 갖추고 뛰어나갔다. 그들은 막대한 병력의 언데드를 보며 경악했다.

하지만 고결한 신앙심으로 똘똘 뭉친 성기사들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감히 언데드 따위가 여기가 어디라고 오느냐!”

새로이 성기사단장에 오른 성기사장이 노호성을 터트렸다. 그들은 살벌한 기세로 언데드들에게 달려들었다.

언데드들은 성기사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상성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사용하는 신성력은 언데드들에게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죽은 마나와 신성력.

둘의 서열은 확고했다.

성기사들이 신성력을 발산하며 검을 휘둘렀다.

“이게 무슨…….”

성기사들의 동공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본래라면 신성력 앞에 가루가 되어 사라져야 할 언데드들이 진격을 멈추지 않았다.

키케케케케케―!

언데드들이 마치 성기사들을 조롱하듯 웃어 대기 시작했다.

본디 언데드들을 구성하는 요소는 모든 게 죽은 마나였다. 하지만 죽은 마나는 신성력과는 반대되는 상극의 기운이었다.

신성력 앞에서 죽은 마나는 바람 앞의 촛불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 지엄한 규칙이 방금 깨지고 말았다.

에단의 조치였다.

에단은 오르번과 협조하며 죽은 마나 대신 자신이 지닌 마나로 구성하게끔 만들었다.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혼돈의 마나.

회색의 기운.

오르번은 에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마나의 총량만큼은 타의 추정을 불허하는 게 바로 에단이었다.

에단은 오르번이 필요로 하는 모든 마나를 충당했다. 오르번은 그런 에단을 보며 사람을 보는 것 같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결국 작업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지금처럼 신성력에도 굳건한 언데드들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고 해서 언데드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언데드는 어디까지나 언데드였으니까.

지속적인 신성력에 피해를 입으면 결국 수복할 수 없는 상태에 다다른다.

하지만 오르번의 목적은 신성 왕국과 전면전을 펼치는 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시간벌이.

그것이 오르번의 목적이었다. 아직까지 언데드의 숫자는 여유가 있었다.

‘진격해라.’

키에에에에엑―!

언데드가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성기사들은 이를 악물고 언데드들을 막아섰다.

번쩍이는 광채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성기사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드레이가 언데드들을 제치고 선두에 나섰다. 드레이의 황금빛 안광이 형형하게 빛났다.

가슴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맹렬한 적의가 불타올랐다.

‘이딴 힘이 너희들이 원하는 거라면.’

원하는 만큼 먹여 줄 생각이었다.

성검이 공명한다.

이미 한차례 힘을 토해 낸 터라 몸은 한계에 가까워졌지만, 드레이는 무시했다.

성검의 힘이 있다면 드레이는 아직 신성력을 발출할 수 있었다.

콰아아아아아―!

성기사들의 것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신성력이 터져 나왔다.

성기사들이 눈을 부릅뜨며 드레이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들은 단박에 드레이를 알아봤다.

“저 이교도 놈이!”

“하! 이제 하다 하다 지껄이는 소리가 이교도냐?”

드레이의 눈에 살심이 감돌았다. 그럴수록 성겜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력은 더욱 거세졌다.

드레이가 검을 휘둘렀다.

드레이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해 가토와도 호각을 이룰 수준으로 올라갔다.

더군다나 신성력의 수준은 성기사들과 차원이 달랐다.

성기사들이 속수무책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기사들의 저력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성기사들의 진짜 무기는 지치지 않는 체력과 사제들의 수많은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드레이가 힘겨워지려는 그때.

곁에서 갑자기 에단이 뛰쳐나왔다.

에단은 입을 열고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를 내뱉었다.

“좌절.”

에단이 룬어를 읊조렸다. 그러자 검은 뱀 같은 기운들이 사제들을 옥죄였다.

사제들의 입과 눈이 봉해졌다. 이건 그들에게 있어 저주였다.

사제들이 무릎을 꿇은 채 주위를 더듬거렸다. 신을 부르짖는 사제들은 신조차 찾지 못한 채 공포에 떨었다.

“이 부정한 놈이―!”

성기사들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지만, 에단은 코웃음을 치며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파멸적인 검격이 성기사들을 밀어냈다.

에단은 순식간에 성기사에 접근해 복부를 걷어찼다. 갑옷이 찌그러지며 성기사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에단은 쓰러진 성기사의 목에 칼을 박아 넣었다.

잠시 꿈틀거리던 성기사는 그대로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에단은 피 묻은 검을 털어 냈다.

“난 들어간다. 할 수 있겠어?”

“……맡겨 주세요.”

드레이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에단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성기사들의 틈을 피해 안으로 진입했다.

신성 왕국은 왕국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왕국이라고 부를 수 없는 규모를 지니고 있었다.

국민의 숫자도 매우 적었다.

그들은 사실상 왕성의 관리를 맡은 직원이나 다름없었다.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소란을 듣고 뛰쳐나오고 있었다. 그 숫자는 적지 않았다.

에단은 가로막는 이들은 막강한 마나로 밀어내면서 그 사이를 질주했다.

그들은 에단을 막아서려 들었지만 에단을 쫓을 수는 없었다. 벌써 언데드들의 진격이 상당히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사특한 언데드들이 성역에 발을 들이는 것만큼은 결단코 막아 내야 했다.

그렇게 성기사들이 언데들을 막아서기 위해 나선 사이, 에단은 왕성의 은밀한 곳을 향해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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