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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300화 (300/398)

◈ [300화] 전쟁 준비 (5)

수인들이 훈련을 할 때면 언제나 타미도 찾아왔다. 타미는 서글픈 눈초리로 훈련 중인 수인들을 바라봤다.

수인들은 타미를 의식하면서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들에는 당장 눈앞의 훈련을 소화하는 것도 벅찼다.

특히 곰족들은 타미를 아예 없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타미는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훈련하는 곰족들을 바라봤다.

렉사르가 묘한 눈초리로 타미를 바라봤다. 훈련을 할 때면 꼭 찾아와 저렇게 서 있으니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하아.”

한숨을 내쉰 렉사르가 서 있는 타미를 향해 다가갔다.

“계속 여기에 찾아오는 이유가 뭐지?”

“…….”

타미가 렉사르를 올려다봤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죄책감이 느껴지게 만드는 눈빛이었다. 렉사르의 볼이 꿈틀거렸다.

“……훈련에 방해만 된다. 훈련에 참가하고 싶은 거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너에게는 굳이 필요 없을 텐데?”

붉은 곰.

그 위명은 렉사르 또한 익히 알고 있었다. 짧은 기간에 용병계를 뒤흔든 이름이니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렉사르는 타미의 실력 수준도 대강 파악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영락없는 평범한 아이의 모습이었지만, 그 실체는 노련한 용병이자 전사였다.

이미 인간의 교활함을 몸으로 체득한 타미에게는 지금과 같은 훈련이 필요하지 않았다.

실력과 별개로 타미가 지닌 경험은 휴고보다도 앞섰으니까.

“……나, 방해 돼?”

타미가 물었다. 울적한 목소리였다. 렉사르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위가 쓰린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훈련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래. 방해된다. 알았으면 당장 꺼져.”

“……응.”

침울한 표정을 지은 타미가 몸을 돌려 멀어졌다. 터덜터덜 걷는 발걸음이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렉사르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가슴이 답답했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아래에서 부터 치밀어 올랐다.

“후.”

렉사르가 쓸데없는 감정을 털어 내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이런 감정들에 사로잡혀 있을 시간이 없었다.

수인들의 기량은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지만 아직 부족한 게 많았다.

언제든지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더 혹독히 몰아붙여야 한다.

‘준비가 덜 됐어.’

점점 인간의 방식을 체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의식해서 하면 늦었다.

머리로 움직이는 게 아닌 본능과 순간적인 판단들로 행동해야만 했다.

“버러지 같은 놈들! 더 빨리 움직여라! 굼벵이도 너희들보단 빠를 게다!”

렉사르가 노호성을 터트렸다. 찝찝한 감정들을 수인들에게서 해소할 생각이었다.

*   *   *

타미는 터덜터덜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마음이 울적했다. 고개를 드니 날이 저물고 있었다.

‘아빠…….’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나약한 마음이 치밀었다. 그날의 선택을 후회하는 건 아니었다.

잭슨을 지키겠다고 에단과 약속했고, 타미는 그 약속을 제대로 이행했다.

하지만 서글픈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

외로웠다. 타미는 어디에도 섞일 수 없었다. 그는 인간이 아닌 수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수인에게도 배척당하는 입장이었다.

타미가 쓸쓸한 발걸음을 옮겼다. 교정을 걷고 있다 보니 익숙한 목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일정한 간격으로 들리는 구호 소리.

줄리엔과 다른 이들의 목소리였다.

타미는 홀린 듯이 목소리의 발생지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자 줄리엔과 단원들, 그리고 카론이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타미는 눈을 끔뻑이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줄리엔과 단원들이 타미를 바라봤다.

“어, 형님 저기 타미 님이.”

“어?”

줄리엔이 타미를 바라보며 눈을 끔뻑였다. 훈련이 잠시 중단되었다.

줄리엔은 흐르는 땀을 닦으며 타미에게 다가갔다. 줄리엔의 얼굴에는 반가움이 가득했다.

“타미 님! 여기는 갑자기 무슨 일로……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타미의 풀 죽은 얼굴에 줄리엔의 말투가 바뀌었다. 줄리엔과 단원들은 타미의 변화를 빠르게 인지했다.

“……나, 방해 돼?”

타미가 조심스레 물었다.

살짝만 찔러도 울음이 터져 나올 것처럼 젖어 있는 목소리였다.

줄리엔과 단원들이 눈을 끔뻑거리며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바, 방해? 누가 너한테 방해된다고 했어?”

“……응.”

타미가 고개를 끄덕이자 줄리엔을 포함한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어떤 새끼가 감히 너한테 그따위 망발을 지껄였어?!”

“이런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새끼가!”

“타미야, 어떤 새끼가 그런 말을 했는지 솔직히 말해. 말만 하면 그냥 늑대 밥으로…….”

“렉사르가 그랬어.”

“…….”

순간적으로 정적이 오갔다. 싸늘한 적막이었다.

달아오른 분위기가 순식간에 냉각되었다. 줄리엔과 단원들은 순간적으로 한기를 느꼈다.

“……참고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카론이 빠르게 손절했다.

줄리엔과 단원들은 배신감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지만, 카론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정말 화내 줄 거야?”

“…….”

줄리엔의 입술이 오그라들었다.

렉사르는 가장 대하기 어려운 인물 중 하나였다.

그 강렬한 인상으로 바라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렸다. 목소리는 또 어찌나 살벌한지 들을 때마다 오줌을 지릴 것 같았다.

“타, 타미야.”

“응.”

“사, 사탕 먹을래?”

줄리엔이 급하게 호주머니를 뒤졌다.

그들의 빈약한 재정 상황에서 알사탕은 꽤나 큰 사치품이었지만, 줄리엔과 단원들은 타미를 위해서 알사탕은 항상 준비해 두고 있었다.

타미가 알사탕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줄리엔과 단원들이 초조하고 불안한 표정으로 가만히 타미를 응시하고 있었다.

“응.”

타미가 배시시 웃으며 알사탕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줄리엔과 단원들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렉사르는 언제 혼내 줄 거야?”

“…….”

다시금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   *   *

사미라는 매우 공격적인 세력 확장을 펼치고 있었다.

영향력을 넓히는 방식 자체가 매우 저돌적이었기에 주변의 견제가 시작되었다.

견제는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되었다. 의뢰의 가짓수가 줄기 시작했지만 그 방식은 지속되지 않았다.

엄청난 거물이 검은 칼날에게 직접 의뢰를 맡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단락되긴 했지만 검은 칼날은 견제를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아주 교활하게 우리를 골탕 먹이더군. 우리는 이제 용병 길드를 통해서 의뢰를 받지 않을 거다.”

사미라의 대응에 다른 용병들이 코웃음을 쳤다. 그들이라고 멍청해서 용병 길드에 수수료를 내며 의뢰를 받는 게 아니었다.

용병 길드는 일종의 보증 제도와도 같았다.

어떤 멍청한 이가 용병 길드라는 보증된 단체를 놔두고 개인 브로커나 일반 용병에게 의뢰를 맡기겠는가.

당연히 용병 길드는 검은 칼날의 대처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자진해서 고개를 숙이게 될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서였다.

하지만 상황이 이상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검은 칼날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

검은 칼날은 계속해서 굵직한 임무를 수행하며 대륙에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큰손이 계속해서 의뢰를 맡겼기 때문이다.

그러자 당황하기 시작한 것은 용병 길드였다. 저런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됐다.

그렇게 되면 용병 길드의 존재 가치가 사라지고 유명무실한 집단으로 전락하게 되어 버릴 것이다.

용병 길드가 노골적인 배척을 시작했다.

자금줄을 없애기 위해 보급로를 건드렸고, 인력을 대거 투입해 비난 여론을 형성하려 들었다.

하지만 여론은 쉽게 형성되지 않았다.

오히려 검은 칼날의 아성만 나날이 높아졌다.

검은 칼날도 가만히 좌시하고 있지는 않았다. 면전에 대고 비난이나 조롱하는 이들은 그 자리에서 처절한 보복으로 되갚아 줬다.

검은 칼날의 살벌한 행보에 거칠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용병들도 입을 사렸다.

괜히 돈 몇 푼 때문에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 팔이 날아가는 꼴은 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용병 길드는 암살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암살 시도는 계속해서 허사로 돌아갔다.

오히려 암살을 시도한 단체가 모두 괴멸했다.

검은 칼날은 대륙을 휘어잡고 있었다.

이제 용병 길드는 검은 칼날을 휘두를 수 없었다.

검은 칼날이 그 정도의 입지를 지니게 되자 탐을 내는 자들이 생겨났다.

고위 귀족들은 검은 칼날을 직속 용병이나 개인 사병으로 들이고 싶어 했다.

“공작가? 그게 뭐 어떻다고?”

제안서를 받은 사미라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볼 가치도 없는 내용이었다.

천하의 공작가라고 해서 한번 들어 봤더니, 이건 후려치는 수준을 넘어섰다.

사미라와 단원들이 코웃음을 쳤다. 면전에서 모욕을 들은 공작가의 기사가 얼굴을 붉혔다.

“하찮은 용병 따위가 분에 넘치는 명성을 얻더니 주제를 모르고 그따위 망발을 내뱉…….”

기사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사미라가 휘두른 도끼에 오른팔이 날아갔기 때문이다.

사미라는 도끼를 겨누며 서슬 퍼런 기세로 말했다.

“하찮은 용병한테 팔이 잘린 기분은? 가서 그 알량한 공작한테 하소연이라도 하지 그래.”

이 사건을 계기로 검은 칼날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그리고 모두가 검은 칼날의 몰락을 예측했다.

아무리 소국의 공작이라고 한들 공작은 공작이었다. 대영지의 주인이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공작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사미라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게 권력의 힘인가.’

사미라가 헛웃음을 지었다. 공작이 대응하지 않은 게 아니다. 대응을 못 하는 것일 뿐이지.

소식을 전해들은 공작은 격분했다.

일개 용병 나부랭이한테 기사의 팔이 날아가고 온갖 멸시와 조롱을 당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공작이 병력을 소집하는 순간, 블란테의 압력이 들어왔다.

[정세가 혼란스럽다. 혼란을 가중하지 마라.]

이건 명령에 가까웠다.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힌 공작은 허무한 얼굴을 한 채 비틀거렸다.

하지만 감히 블란테의 말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대륙은 지금 혼란에 빠져 있었다.

지금 같은 시기에 블란테의 말을 거역한다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했다.

공작은 병력을 해산하고는 침묵을 지켰다.

사실 관계를 밝히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귀족계에서 얼굴을 들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검은 칼날은 블란테의 손이 되었다.

대외적으로 블란테가 처리하기 난감한 일들은 검은 칼날이 나섰다. 그 누구도 검은 칼날을 건드리지 못했다.

검은 칼날은 압도적인 무력으로 대륙을 휘저었다.

사람들의 생각이 점점 달라졌다.

검은 칼날은 더 이상 용병 길드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위기감이 극에 달한 용병 길드는 최악의 악수를 두고 말았다.

검은 칼날을 용병계에서 제명시키고 공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용병 길드는 사미라에게 거액의 현상금이 걸었고, 그렇게 그들은 명분을 내어 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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