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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298화 (298/398)

◈ [298화] 전쟁 준비 (3)

리사는 가토가 짓는 웃음이 더럽게 재수 없다고 생각했다.

‘고작 운 좋게 한 번 이겼다고 여유를 부리겠다 그거지?’

리사의 고운 이마에 굵은 핏줄이 툭하고 불거졌다. 요동치는 감정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후우.”

리사가 뜨거운 숨을 토해 내며 가토를 노려봤다.

가토는 아직도 느긋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리사가 가토를 향해 씹어뱉듯 말했다.

“언제까지 웃을 수 있나 한번 보자고.”

타닷!

섬뜩한 경고를 날린 리사가 쏜살처럼 뛰쳐나갔다. 맹렬한 기세로 가토를 향해 달려 나가는 리사.

가토는 우두커니 서서 고요한 눈으로 리사를 바라봤다. 추욱 늘어트린 자세 또한 그대로였다.

파앗―!

리사가 사선으로 검을 휘둘렀다. 살벌한 파공음을 일으키며 목검이 가토를 노린다.

가토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리사는 예상했다는 듯 따라붙으며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동작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가토가 짤막한 감탄사를 흘렸다.

그 감탄사가 리사의 심기를 더욱 자극했는지 리사가 이를 갈았다.

빠득.

이를 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리사가 포악한 기세로 검을 휘둘렀다. 가감 없는 전력이었다.

폭풍 같은 검극이 휘몰아쳤다.

가토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검을 피해 냈다.

‘보인다.’

가토의 눈에는 리사의 검이 보였다. 리사의 검은 불꽃과도 같았다. 화려하고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꽃.

검은 감정을 투영한다.

리사는 지금 흥분에 도취되어 있었다. 흥분에 매몰되게 되면 시야가 좁아진다.

이런 식으로.

리사가 앞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가토가 리사의 발을 툭 걸었다.

실로 사소한 동작이었지만 그 동작으로 인해 리사의 흐름은 끊기고 말았다.

탁.

가토가 추욱 내리고 있던 목검을 휘둘렀다. 목검은 리사의 검을 가격했고, 리사는 쥐고 있던 목검을 놓치고 말았다.

“…….”

리사의 동작이 멈췄다. 그녀의 검은 연무장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어서 하시겠습니까?”

가토가 멋쩍은 말투로 물었다. 리사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 가토를 노려봤다. 그녀의 동공은 거칠게 요동치고 있었다.

“너…….”

“…….”

리사는 가토를 쏘아보다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깊은숨을 토해 내더니 떨어져 있는 목검을 주웠다.

“……계속해.”

“네.”

가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리사의 요구로 인해 대련은 재개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초반에는 언제나 리사가 거칠게 몰아붙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토가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것처럼 보였다.

가토는 그녀의 기세 속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했다. 고요한 동공이 검의 궤도를 읽는다.

스윽.

절묘한 한 수가 흐름을 끊는다.

어느새 가토의 목검이 리사의 목젖에 드리워져 있었다. 리사가 황망한 눈으로 가토를 바라봤다.

‘……뭐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흐름은 자신이 쥐고 있었다.

리사는 선공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가토를 몰아치고 있었다.

한 번 탄 기세는 더욱 거세졌고, 가토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단 일합.

한 번의 검격으로 상황이 역전된다. 리사는 그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 정도나 차이가 난다고?’

믿기지가 않았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전까지 가토와 그녀의 격차는 그리 멀지 않았다. 기껏해야 종이 한 장 차이였다.

리사가 블란테에 있을 때는 또래 중 압도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엄청난 기대를 받았다.

모든 게 시시했다. 수습 기사 시절 가토 또한 다르지 않았다.

가토는 수습 기사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가토는 감히 리사의 재능을 뒤쫓아 오지 못했다. 그렇기에 당시에 리사는 가토에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뭔가 잘못됐어.’

리사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동안 정체되어 있던 것은 자신뿐이다.

오빠도, 카론도, 가토도, 드레이도 앞으로 나아갔지만 자신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자만했나?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아카데미에서도 검을 놓은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확신할 수 있나?

스스로에게 자문했을 때 리사는 확신할 수 없었다.

교만했다.

그래. 그제야 리사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하찮아 보였다.

대륙에서 날고 긴다고 알려진 영재들의 재능도 보잘것없었다. 그녀가 본심을 드러내면 모두 나가떨어질 이들이었다.

마스터의 경지도 우스워 보였다.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이룩할 수 있는 경지라 생각했다.

털썩.

갑자기 자리에 주저앉은 리사가 공허한 눈으로 가토를 응시했다.

“아, 아가씨!”

가토는 당황한 표정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너 대체 뭐야?”

“……네?”

리사의 원초적인 물음에 가토가 눈을 끔뻑였다. 리사는 물끄러미 가토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원래 이렇게 강하지 않았잖아. 오빠도, 너도, 카론도 그냥 별 볼 일 없는 수준 아니었나?”

“…….”

신랄한 비난에 가토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멍하니 리사를 바라보던 가토가 허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그렇긴 하죠?”

“근데 어떻게 이렇게 바뀌었지? 내가 없는 동안 가문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리사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질문하는 리사의 눈에는 아직 열의가 타오르고 있었다.

가토는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뺨을 긁적였다.

“많은 일이 있기는 했지만…… 역시 도련님의 변화가 제일 크죠?”

“……뭐?”

“아가씨의 말씀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제가 가진 재능은 수습 기사들 중에서는 조금 괜찮은 수준이었지만, 아가씨와 비할 바는 아니었죠.”

가토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는 리사가 얼마나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가토는 과거 리사와의 대련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가토를 포함해 리사와 대련했던 모든 수습 기사들은 좌절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그때는 그리 생각했었다.

아,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결코 따라잡을 수 없겠구나.

저가 바로 재능이고, 저게 바로 블란테의 혈통이구나.

가토는 절망했고, 한편으로는 현실과 타협했다.

하지만 휴고에게 패배 후 가토의 생각은 바뀌었다. 휴고는 그에게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다.

그리고 건방진 수습 기사에 불과했던 자신을 이끌어 주고 꿈에 그리던 기사 서임을 내려 준 에단.

“처음에는…….”

가토는 자신이 어떻게 에단과 함께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첫 대련. 목검을 집어 던지고 무릎에 턱이 들려 기절한 사연.

바뀐 에단과 그런 에단이 일으킨 무수한 변화.

지옥 같은 훈련과 성장, 그리고 기사 서임.

수많은 실전, 그리고 휴고와의 대련, 초조함, 깨달음.

가토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얘기했다. 리사는 그런 가토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너…… 이상한 놈이구나?”

“아, 제가 너무 혼자서만 신나게 말했죠? 죄송합니다. 이상하다라…… 그럴 수도 있겠네요.”

가토는 일리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제 주변에 워낙 이상한 애들이 많아서 동화된 것 같네요.”

가토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리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날도 저물었는데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요?”

“…….”

묘한 눈빛으로 가토를 바라보던 리사가 가토의 손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다음에는 두고 봐.”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가토가 엷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렇게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을 때,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가토?”

“……휴고?”

가토가 눈을 끔뻑이며 휴고를 바라봤다.

“어…… 리사 아가씨?”

휴고가 눈을 끔뻑이며 가토와 휴고를 번갈아 바라봤다.

“……둘이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아…….”

가토는 볼을 긁적이며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휴고가 게슴츠레한 눈길로 가토를 바라봤다.

“너 설마…….”

“잠깐 대련 한번 했어.”

휴고의 물음에 답한 건 리사였다. 리사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고는 연무장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연무장을 나서기 직전 가토를 힐긋 바라봤다.

“……두고 봐.”

리사의 날카로운 눈초리에 가토가 몸을 흠칫 떨었다. 그녀는 홀연히 사라졌고, 연무장 안에는 가토와 휴고만이 남아 있었다.

“……정말 대련만 하고 있었어?”

“뭔 생각을 하는 거야?”

휴고가 의미심장은 눈길로 가토를 바라보자, 가토가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니…… 됐다.”

“그러는 너는 여기는 무슨 일이야?”

“나는 뭐…… 좀 쉬려고 왔어.”

“쉰다고?”

“응. 아무래도 분위기가 좀 적응하기 힘들어서.”

“……그렇군.”

휴고의 표정을 보니 휴고에게도 나름의 고충이 있는 것 같았다.

‘이 녀석도 성장했구나.’

성장한 건 가토뿐이 아니었다. 가토가 두 손을 깍지 끼며 쭈욱 기지개를 켰다.

“끄응…… 우리도 대련 한번 할까?”

“……방금까지 아가씨랑 한 거 아니었어?”

“너랑 하는 건 또 다르지. 왜, 쫄리냐?”

“음…… 승률은 내가 더 높을걸?”

“……너 목검 들어, 아니, 자세 잡아.”

“너 대련 못하잖아. 난 못하는 애랑 할 생각 없는데?”

“아…….”

가토가 뒷목을 부여잡았다. 휴고는 웃음기 가득한 표정으로 가토를 바라봤다.

“그럼 한번 해볼까?”

“오늘 그 승률 뒤바뀔 줄 알아.”

“무서운데.”

씨익.

휴고와 가토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가토가 목검을 쥐었다. 휴고도 상체를 낮추며 자세를 취했다.

금빛 안광이 형형하게 빛났다. 서로가 응시한다. 긴장의 끈이 팽팽했다.

팽팽한 끈을 먼저 자른 것은 휴고였다.

팟!

휴고가 뛰쳐나갔다.

가토의 눈이 휴고를 좇았다. 시작은 리사와 흡사했다. 하지만 가토는 리사보다 훨씬 유연했고, 자유로웠다.

‘공간이 넓어.’

성장한 것은 가토뿐이 아니었다. 휴고는 더욱 능숙하고 교활하게 움직였다.

살벌한 공격들은 가짜와 진짜가 교묘하게 섞여 있었다. 가토는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 자만하면 안 되겠는데.’

세상에는 괴물들이 넘쳐 났다. 가토의 눈이 빛났다. 순간적인 빈틈을 포착한 것이다.

후웅―!

가토가 순간적으로 목검을 휘둘렀다. 절묘한 타이밍에 들어간 공격이었고, 흐름을 끊기에는 충분했다.

씨익.

그 순간 휴고가 미소 지었다. 휴고의 몸이 더욱 가속했다. 휴고는 상체를 크게 젖히며 가토의 공격을 회피했고.

그대로 몸을 돌리며 역으로 가토의 목검을 걷어찼다.

“크윽!”

손아귀에 가해지는 충격에 가토가 신음을 흘렸다. 휴고가 몇 차례 공중제비를 돌며 거리를 벌렸다.

“……뭐냐 그건?”

“글쎄?”

휴고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가토는 기막힌 표정으로 휴고를 바라봤다. 오늘 1승을 챙기나 했더니 역시 쉬운 일은 없었다.

“……이제 진짜 진심으로 한다.”

“좋지.”

가토가 휴고를 향해 달려들었다.

둘의 대련은 밤이 깊어질 때까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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