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6화] 북부 (11)
완패.
자신감 있게 도전한 수인들은 모두 휴고에게 무너졌다. 예외는 없었다. 수인들은 휴고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쓰러져 나간 수인들이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로 휴고를 바라봤다.
“음…… 전부 끝난 것 같은데요?”
도전을 모두 물리친 휴고가 어떻게 할지 묻는 시선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이미 예상했던 상황이기에 에단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형편없군.”
에단의 신랄한 지적에 자존심이 상한 수인들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나 이를 악물고 수련했음에도 고작 이따위 결과였다.
수인들은 그것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분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에단은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이게 정상이지.’
마을에 있는 수인들과 휴고의 격차는 며칠간의 훈련으로 메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도둑놈 심보였다.
‘그래도 수준은 꽤나 올라왔어.’
이제 이들에게 필요한 건 진짜 실전이었다. 에단이 렉사르를 향해 손짓하자 렉사르가 순식간에 에단 앞에 당도했다.
“이 정도면 슬슬 괜찮은 것 같은데.”
렉사르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렉사르의 생각도 에단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렉사르는 대답 대신 미묘한 시선을 에단에게 보냈다.
그가 이 먼 북부까지 온 이유는 고작 수인을 훈련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선의 의미를 읽은 에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 마. 금방 알게 될 테니까.”
“……믿겠습니다.”
“그래.”
렉사르는 에단의 말에 수긍했다. 잠시 고개를 돌려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수인들을 흘겨봤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건 네 판단에 맡기지. 네 전문분야일 거 아니야.”
낯설게 느껴지는 에단의 인정에 렉사르가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우두커니 서 있던 렉사르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 * *
훈련의 방식이 달라졌다. 지금까지 해 온 게 사냥과 실전을 위한 기반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완전한 실전이었다.
단순히 산짐승을 잡는 것이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흉포한 몬스터를 사냥하는 일이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 그 아찔한 줄타기 속에서 수인들은 성장할 것이다.
모두가 부상 없이 성장할 수는 없었다. 실전에 들어서자 부상자가 속출했다.
위급 시에는 렉사르와 휴고가 투입되어 아직까지 사상자는 나오지 않고 있었지만,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지는 상황이 언제까지고 유지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압박감과 공포는 엄청난 피로를 불러일으켰다.
수인들은 훈련의 내용은커녕 자신의 본능조차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었다.
“머저리 같은 새끼들.”
렉사르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인들은 분수에 맞지 않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무릇 사냥꾼이라고 하면 자신이 목숨을 잃게 될 것도 각오해야만 하는 법이었다.
피가 뜨거워지고 뒷목이 뻐근해지는 그 감각.
서늘한 날붙이와 뜨거운 피가 튈 때 렉사르는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그는 태생부터가 야수였다.
‘……난 대체 무엇이지?’
수인들을 지도할 때면 그런 의문이 들었다. 수인들을 보고 있으면 동질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질감도 같이 느껴졌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불쾌한 감정이 치밀었다. 렉사르가 인상을 구겼다.
* * *
에단과 일행이 마을에 머무른 지도 벌써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휴고는 묘한 감상을 느끼고 있었다.
비슷하다.
수인들을 처음 봤을 때 느낀 감각이었다. 평생을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이 수인들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근데 어째서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뭔가 자신과 달랐다. 휴고는 수인들 사이에서도 쉽사리 섞여 들지 못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느껴졌다. 씁쓸하면서도 울적한 기분이 표정에 드러났다.
“하아.”
휴고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북부의 추위는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주위에는 눈밖에 없었지만, 하늘에 쏟아질 것처럼 빛나는 별들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뽀득.
한참 동안 별을 응시하고 있던 휴고가 인기척을 느꼈다. 눈을 짓밟는 소리에 고개를 내리자, 그곳에는 에단이 서 있었다.
“청승맞게 여기서 뭐 하고 있냐?”
에단이 피식 웃으며 휴고에게 다가왔다. 휴고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혼자 있었습니다…… 하하.”
“싱겁기는.”
에단이 휴고 곁에 다가와 하늘을 올려다봤다.
밤하늘에 빼곡히 수놓아진 별과 은하수들.
아름다웠다. 대기가 오염된 현대에서는 영 보기 쉽지 않은 광경이었다.
입으로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흘러나왔다.
“저기 너랑 비슷한 녀석이 또 오네.”
“네?”
휴고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에단이 바라보는 장소를 응시했다. 그러자 렉사르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게 보였다.
“너도 할 짓 없어서 왔냐?”
“…….”
에단의 실없는 소리에 답하지 않은 렉사르가 에단과 휴고 앞에 다가왔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
“그러는 너는 뭐 하러 나왔는데.”
“…….”
렉사르는 에단의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그조차도 자신이 무슨 감정으로 밖에 나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가슴을 누르고 있는 답답함을 조금 해소하고 싶을 뿐이었다.
복잡한 렉사르의 표정.
에단은 물끄러미 렉사르를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쓸데없는 고민하고 있네.”
에단의 말을 들은 렉사르가 고개를 들어 에단을 바라봤다. 에단은 웃음기 하나 없는 눈으로 렉사르를 응시하고 있었다.
‘슬슬 말해 줘도 되겠지.’
에단이 가지고 있는 건 단편적인 것에 불과했다. 더 이상 가진 정보를 미끼 삼아 렉사르와 휴고를 휘두르고 싶지 않았다.
“너희들이 일반적인 수인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
“…….”
갑작스러운 말에 둘이 놀란 눈으로 에단을 응시했다. 에단은 여전히 무덤덤한 얼굴을 한 채 말을 이어 나갔다.
“내 말을 듣는다고 모든 의문이 해소되지는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렉사르가 굳은 표정으로 대답하자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단은 소설에서 휴고가 어떤 식으로 언급되었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반인반수.
웨어울프 휴고.
뛰어난 신체 능력과 천재적인 전투 감각으로 주인공 일행의 동료가 된 휴고.
‘반인반수라…….’
평범한 수인이라면 반인반수라거나 반쪽짜리라고 불리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수인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평범한 혼혈이라고 여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에단은 거기서 의문을 느꼈다.
어째서 반쪽짜리 수인이 블란테의 영지에 있는가. 그것도 하인의 신분으로.
“너희 둘의 출생은 정확히 확인할 수 없어. 내가 알고 있는 건 너희 둘이 구출된 장소가 신성 왕국이라는 것뿐이야.”
“……신성 왕국 말인가요?”
휴고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
반면 렉사르는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렉사르는 차게 식은 눈동자로 에단을 응시하고 있었다.
“너도 그걸 봤으니까 알 거야.”
레벨린의 수첩, 그리고 거기에 적혀 있던 수많은 비밀과 밀서들. 그곳에는 신성 왕국이 저지른 만행도 무수히 적혀 있었다.
가장 큰 것이라고 하면 역시 무차별적인 수인들의 학살. 그로 인해 대다수의 수인들은 복구할 수 없는 수준의 피해를 입고 말았다.
신성 왕국이 어째서 그렇게 수인들을 극단적으로 적대하는 것인지, 정확히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구체적인 이유는 알지 못했다.
“녀석들은 수인을 통해서 모종의 연구를 진행 중이었고. 아버지가 그 연구 시설을 모조리 파괴했다.”
“……그곳에서 저와 이 녀석이 나왔다는 말입니까?”
에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둘 모두 전신에 흉터가 가득한 상태라고 하더군. 그곳에서……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너와 휴고를 데리고 영지로 복귀했다.”
어머니라는 단어가 입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렉사르와 휴고가 침묵하며 서로를 마주 봤다.
“둘의 기원이 정확히 어디서 왔는지는 몰라. 예상컨대…….”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래.”
렉사르는 그 이상 이야기를 듣는 것을 거부했다.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감정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끔뻑끔뻑.
휴고는 아직 실감이 가지 않는 듯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그 순박하면서도 어벙한 모습에 실소를 흘린 에단이 휴고의 머리를 헝클였다.
꽈악.
렉사르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블란테에서 사냥꾼으로 자라 온 렉사르는 인간이 얼마나 추악하고 더러운 존재인지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목적과 욕망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러면서 봐 왔던 인위적인 생명체들.
키메라라고 불리는 존재들.
그것들을 보고 연민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저 혐오감만 있을 뿐이었다.
에단의 말을 전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속에서 구역질이 치미는 것 같았다.
존재의 기원.
어디도 속할 수 없는, 인위적으로 태어난 자.
렉사르의 샛노란 동공이 광기와 분노로 젖는 것을 본 에단이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죽상이야?”
에단이 툭 내뱉은 말에 렉사르가 매서운 눈초리로 에단을 쏘아봤다.
“……도련님은 알지 못합니다.”
“그래?”
날 선 말투에 에단이 코웃음을 쳤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에단은 렉사르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한다. 둘이 처한 상황은 달랐으니까.
“그래. 난 모르는 게 맞아. 그런데 말이야…… 진실을 알아서 달라진 게 뭐가 있지?”
“…….”
에단은, 아니, 류태신은 부모가 없는 고아였다. 격투계를 평정하고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을 때도 류태신은 늘 고독했다.
그는 어디에서도 동화되지 못한다.
홀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돌은 정을 맞기 마련이다.
하지만 류태신은 반대였다.
더 높고, 견고하고, 날카롭게 튀어나온 돌은 오히려 자신에게 날아오는 정들을 깨부쉈다.
압도적인 재능.
그 어떤 천재와 비교해도 궤를 달리하던 류태신은 고독했지만 절망하지는 않았다.
“배부른 소리 그만해. 결국 살아 있는 건 너고 죽은 건 녀석들이니까.”
“…….”
순간 렉사르의 동공이 흔들렸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인위적인 태생? 존재의 이유? 그딴 걸 고민할 필요가 뭐가 있지? 이 세계는 결국 살아남는 녀석이 강한 거고, 살아남는 게 전부야. 그걸 아직도 모르겠나?”
류태신도 에단도, 수많은 사람들을 짓밟아 가며 이 자리에 올랐다.
대다수의 선수들과 기사들은 좌절과 실의에 빠지게 된다. 그게 일반적인 수순이었다.
그리고 에단은 그러한 자들을 모두 뛰어넘었다. 뒤를 돌아볼 여유 따위는 그에게 없었다.
“배부른 소리 그만해. 그 많은 녀석들을 죽여 놓고 별거 아닌 걸로 궁상맞게 있을래?”
렉사르를 바라보며 팔장을 낀 에단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나 기분이 엿 같으면 나랑 몸이나 한번 풀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