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5화] 북부 (10)
‘쯧.’
에단이 내심 혀를 차며 뒤를 돌아봤다.
눈이 풀리고 침을 질질 흘리는 수인들을 보아하니 상태가 영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생각보다 체력은 더 저질이군.’
에단의 예상보다도 체력 수준이 심하게 낮았다.
그래도 사냥을 업으로 사는 수인들인 만큼 어느 정도의 기본 체력은 갖춰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조차도 과대평가였던 모양이다.
‘뭐, 체력이야 만들면 그만이지.’
체력을 끌어올리는 일은 에단에게 있어 신물이 날 정도로 익숙한 일이었다.
딱히 귀찮지도 않았다.
귀찮기는커녕 훈련을 받으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묘한 활기가 생겼다.
에단은 곁에서 자신과 나란히 뛰는 휴고와 타미를 향해 입 모양으로 말했다.
‘속도 올려.’
휴고와 타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뒤를 힐긋 돌아보며 동정 어린 시선을 던졌다.
파밧!
에단이 속도를 올리자 휴고와 타미가 곧바로 따라붙었다.
하지만 이미 체력이 한계에 가까운 수인들은 절망 어린 표정을 지은 채 멀어지는 세 사람을 바라봤다.
‘아, 안 돼…….’
에단과 휴고, 타미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숨을 내쉬는 목이 얼어붙을 것 같았다.
“뭣들 하는 거지? 빨리 뛰어라!”
콰앙!
뒤편에서는 렉사르가 으르렁거리며 연신 사슬을 휘둘러댔다. 쇠가 부딪치면서 나는 섬뜩한 소리에 수인들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끄아아아아!”
수인들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체력의 한계를 넘은 것이다.
들려오는 고함에 에단이 고개를 돌려 수인들을 바라봤다.
‘그래. 할 수 있잖아.’
에단이 씨익 웃었다. 이미 에단은 휴고를 통해 수인들의 잠재력을 알고 있었다.
한계를 통한 성장. 수인들은 그 역치가 인간보다 훨씬 컸다.
스스로 훈련해서는 한계까지 도달하는 게 어렵다.
강제로 몰아붙여 줄 사람이 있거나, 휴고와 가토처럼 라이벌이 있는 게 아니라면 타협하기 십상이었다.
‘이번에는 전자가 되어야겠어.’
에단은 수인들을 위해서 악마로 돌변할 생각이었다. 에단이 이를 드러내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흠칫.
순간적으로 소름이 끼친 휴고가 몸을 떨며 에단을 바라봤다.
‘도, 도련님…….’
에단의 미소를 보자 벌써부터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수인들은 에단이 지도하는 지옥훈련에 빠르게 적응했다.
남들을 수련시키는 데에 이골이 나 있는 에단은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수인들을 굴릴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수인들은 곡소리를 내면서도 탁월한 신체 능력 덕분에 빠르게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이미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휴고는 안쓰러운 눈초리로 수인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그들의 처지가 개선되는 것은 아니었다.
수인들은 지옥 같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부족한 식량은 휴고와 렉사르가 나서서 짐승들을 사냥해 왔기에, 마을의 수인들은 오롯이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체력은 이 정도면 됐고.’
에단이 무정한 눈빛으로 수인들을 훑어봤다. 수인들은 이제 에단의 시선만 느껴져도 흠칫 몸을 떨었다.
“어쭈, 자세 봐라.”
에단의 눈이 가늘어졌다.
먹잇감을 포착한 눈이었다. 한순간에 먹잇감이 된 수인들은 사색이 된 얼굴로 소리쳤다.
“아, 아닙니다!”
“여기는 안이 아니라 밖이야. 아직 정신 못 차리네?”
얼굴이 파랗게 질린 수인을 향해 에단이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마치 악마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수인의 얼굴이 공포에 젖기 시작했다.
“이제 훈련이 할 만한가 봐?”
“아, 아닙니다!”
“뭐야, 그럼 내 훈련 따위는 못 해먹겠다는 거야?”
“아, 아아…….”
에단에게 지목당한 수인은 이제 거의 패닉에 빠져들었다.
간절히 도움을 원하는 듯한 표정으로 주변을 바라봤지만 모두 시선을 외면할 뿐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에단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 빼고 전부 엎드려.”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수인들이 멍하니 있자 에단이 재차 소리쳤다.
“전부 엎드려!”
에단의 고함에 화들짝 놀란 수인들이 모두 엎드렸다. 수인들이 엎드린 것을 확인한 에단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너희들은 이제 하나다. 알겠어?”
“알겠습니다!”
수인들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렉사르와 휴고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뭐라 설명하기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렉사르.”
에단이 렉사르를 호출하자 렉사르가 빠르게 에단 앞으로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슬슬 이 정도면 체력은 된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
렉사르가 샛노란 동공을 빛내며 수인들을 바라봤다. 엎드려 있는 수인들과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는 수인이 보였다.
“……제 생각도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슬슬 실전 경험 좀 시켜 주고 싶은데.”
“실전 말입니까?”
“그쪽은 나보다 네가 더 적합할 거 아니야.”
“…….”
“어때, 애들 가르칠 자신은 있나?”
“잘…… 모르겠습니다.”
렉사르는 늘 홀로 지내 왔다. 강하고 거친 블란테 사이에서도 늘 고독했다. 렉사르는 타인을 대하는 것이 어색했다.
에단은 렉사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예상 간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미 경험 있잖아?”
“……경험 말입니까?”
에단이 휴고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휴고는 특유의 순박하면서도 어벙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끔뻑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자 렉사르는 저도 모르게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웃었다.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어. 어차피 약하면 도태될 뿐이야.”
“……해 보겠습니다.”
렉사르의 확답을 들은 에단이 히죽 웃었다.
“전부 일어나!”
에단의 고함에 엎드려 있던 수인들이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흉흉한 안광으로 수인들을 노려보던 에단이 렉사르를 끌고 와 앞으로 내세웠다.
“지금부터 너희들의 교관이자 주인은 이 녀석이다. 이 녀석이 죽으라고 하면!”
에단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죽는 시늉이 아니라 죽어야 할 거야.”
에단이 사납게 웃었다.
* * *
훈련에 참가한 수인들은 성인과 아이들이 섞여 있었다. 아이들이라고는 하나 이미 신체 능력은 성인에 근접한 자들이었다.
아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자신감과 경험이었다.
그리고 렉사르는 그 부족한 것을 채워 주기에 최적화된 인물이었다.
“뭣들 하는 거냐!”
렉사르의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 섬뜩한 고함에 수인들이 흠칫 놀랐다.
“그딴 식으로 움직여서 몬스터를 쫓을 수 있겠나?”
렉사르가 곁에 서 있는 휴고를 앞으로 내세웠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휴고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렉사르는 아랑곳하지 않고 휴고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근처에 있는 몬스터. 너는 알 수 있겠지? 가서 잡아 와.”
렉사르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으르렁거리자 휴고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네.”
그 순간 휴고의 표정과 분위기가 완전히 돌변했다. 노란 안광에서 야성이 흘러나왔다. 갑작스레 뒤바뀐 기세에 수인들이 몸을 떨었다.
파밧!
휴고는 거동조차 힘든 눈밭을 빠르게 가로질렀다. 휴고가 지나간 자리에는 별다른 흔적이 남지 않았다.
휴고는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너희들의 감각을 믿어라. 너희들이 지닌 감각은 인간보다 월등하다.”
휴고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복귀했다. 거대한 멧돼지 하나를 등에 짊어지고.
휴고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이 녀석 맞나요?”
“그래, 훌륭하다.”
렉사르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 이후로도 훈련은 지속되었다.
수인들은 자신보다 어린 휴고의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았는지 더욱 열정적으로 훈련에 임하기 시작했다.
렉사르는 수인들의 잠재력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호르잔은 씁쓸한 표정으로 훈련에 임하는 수인들을 지켜봤다.
그들은 힘겨워하면서도 성장하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에선 활기가 느껴졌다.
수인들은 이제야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내가 이들을 붙잡아 둔 것인가?’
재앙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인들을 지켜나가기 위해 행한 것들이 수인들의 발목을 붙잡게 되다니.
호르잔이 눈을 감았다. 그때 곁에서 에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부터 시작이야.”
호르잔이 감았던 눈을 뜨며 곁에 있는 에단을 바라봤다.
“아직 복수하고 싶은 생각은 남아 있겠지?”
“……전 단 한 번도 그날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됐어.”
에단이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갈 시기였다.
며칠의 시간이 더 흘렀다. 수인들이 렉사르의 훈련에 어느 정도 적응했을 때, 에단이 수인들을 불러 모았다.
“어때, 그동안 잘 지냈나?”
“그렇습니다!”
“어쭈, 목소리가 작다.”
“죄송합니다!”
수인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답했다.
에단은 만족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인들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수인들은 이제 완전히 에단에게 복종하고 있었다.
“자, 고대하던 복수의 시간이 찾아왔다. 이들 중 상당수가 나한테 얻어 터진 녀석들이지?”
흠칫.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몇몇 수인이 몸을 떨었다.
“내가 전에 말했던 것 같은데. 나한테 도전하려면 이 녀석부터 넘으라고.”
에단이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휴고가 순식간에 에단 곁에 섰다.
“같이 훈련해서 좀 알겠지? 얘가 이렇게 어벙해 보여도 만만한 녀석이 아니야.”
에단이 휴고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말했다. 수인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에단의 말대로 수인들은 더 이상 휴고를 얕잡아 보지 않았다.
그간 함께 훈련하면서 휴고가 얼마나 괴물 같은지를 몸소 겪었기 때문이다.
“자, 그럼에도 도전하고 싶은 녀석은 앞으로 나와.”
에단의 말이 끝나자 잠시 적막이 내리깔렸다. 모두가 선뜻 나서지 않고 있던 그때, 아란이 앞으로 나섰다.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오, 너 기억난다. 어때, 손목은 다 나았고?”
에단이 이죽이며 말하자 아란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도 손목이 시큰거리는지 다친 손목을 움켜쥐었다.
“괜찮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그때 우리 멍멍이를 꽤나 무시한 걸로 기억하는데.”
“……멍멍이요?”
휴고가 눈을 끔뻑이며 에단을 바라봤다. 그러자 에단이 눈을 부라렸다.
“뭐.”
“……아닙니다.”
기가 죽은 휴고가 찌그러졌다. 에단이 남은 말을 마저 이었다.
“그래. 이제는 얘가 나서도 불만 없겠지?”
“없습니다.”
아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아란은 휴고를 얕잡아 보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좋아. 그럼 한번 시작하자고. 그간 쌓인 원망과 원한을 모두 이 녀석한테 풀어.”
“……네?”
휴고가 당황한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보다가 다시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휴고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터덜터덜 앞으로 걸어 나갔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잘 부탁합니다.”
휴고가 말하자 아란이 화답하며 자세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