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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283화 (283/398)

◈ [283화] 북부 (8)

“…….”

마을의 장로 호르잔이 하얀 설산을 바라봤다.

사냥을 나간 마을의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아이들이 사냥을 나가는 일은 자주 있는 편이었고, 어느 정도 사냥에 숙달된 아이들이었기에 주제넘는 짓을 벌일 확률은 적었다.

그렇기에 아직 걱정하기는 일렀지만…….

어째서일까.

호르잔의 마음속에 불안함이 싹텄다.

영역의 변화를 가장 빨리 인지하는 것은 짐승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수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직접적인 이변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호르잔은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저 우두커니 서서 먼 산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스스스.

그 순간 산을 응시하던 호르잔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기운이 느껴졌다. 미약한 기운이었다. 기운이 약해서 미약한 것이 아닌, 먼 거리 탓에 미약하게 느끼는 것뿐이었다.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온다. 양팔에 닭살이 돋았다.

미세하게 느낀 기운임에도 몸이 반응했다.

호르잔이 고개를 돌려 마을에 있는 수인들을 바라봤다. 수인들은 이 기운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

호르잔이 침묵했다.

호르잔은 지금 느낀 이 기운이 단순한 착각이기를 바랐다.

* * *

착각이 아니었다. 불청객이 방문했다.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타인과의 접촉을 피해 온 수인들이었지만, 결국 외지인의 침입을 허락하고 말았다.

수인들의 눈에는 짙은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마을의 장로, 호르잔은 에단을 처음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아, 저 남자가 바로 그 기운의 주인이었구나.

냄새가 섞였다.

호르잔은 자신의 감각에 의문이 들었다. 분명히 느껴지는 인간의 냄새.

그러나 저 남자에게서는 그것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다.

몬스터, 드래곤, 언데드, 그리고 그 밖에 기운들이 뒤섞여 있었다.

느껴지는 마나의 형질조차 달랐다.

“……이쪽으로 오시죠.”

“장로님!”

다른 수인들이 호르잔에게 소리쳤다. 마을 수인들은 외지인이 마을에 침입하는 행위 자체를 용납할 수 없었다.

호르잔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는 소리친 수인을 응시했다.

“뭐지?”

“저놈들은 외지인입니다. 어찌…….”

“그래, 저들은 외지인이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

“당연히 쫓아내야…….”

“어떻게?”

호르잔이 차게 식은 눈으로 붙잡혀 있는 수인들을 응시했다.

“마을의 전사가 모두 생포되었어. 그 와중에 저들은 생채기조차 입지 않았지. 그런데 저들을 쫓아내자고? 내가 듣기에는 죽고 싶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군.”

“…….”

호르잔의 말은 정론이었다. 소리쳤던 수인이 입을 다물었다.

“죽는 건 자네 혼자가 아니야. 책임지지 못할 말은 하지 말도록.”

“……죄송합니다.”

호르잔은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했다. 방금 전의 대화로 호르잔이 마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나쁘지 않네.’

확실한 통솔자가 있다는 것은, 통솔자만 회유한다면 이용하기 수월하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갔다 올게.”

에단이 휘적휘적 걸어 나갔다. 고작 대화를 하는데 모든 인원을 끌고 가는 건 낭비였다.

에단은 호르잔이 안내한 집으로 들어갔다. 허름하고 초라한 집이었다.

“앉으시죠.”

호르잔의 말에 에단은 사양하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의자 상태도 성치 않아 에단이 앉자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호르잔은 에단의 맞은편에 앉아 물끄러미 에단을 응시했다. 주름진 눈가에서 기묘한 현기가 느껴졌다.

“……여쭤보고 싶은 게 많습니다.”

“뭐 상관은 없지만 나도 그렇게 한가하지 않아서 말이야.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도 될까?”

“…….”

호르잔은 침묵했고, 에단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다른 수인들은 어디 있지?”

“……수인들을 찾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호르잔의 목소리에서 경계심이 엿보였다.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수인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에단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니.

에단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고는 호르잔을 가늠하듯 응시한 다음 입을 열었다.

“이쪽이면 그 소식은 못 들었겠네.”

“소식……?”

“라오나드, 이름은 알고 있겠지? 신성 왕국의 성기사 단장.”

라오나드의 이름이 언급되자마자 호르잔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순간 호르잔의 날카로운 야성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에단은 흥미롭다는 눈으로 호르잔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걔 죽었어.”

“……라오나드가 죽었단 말입니까?”

“어. 내가 죽였지.”

에단이 히죽 웃었다.

* * *

대화는 길어지지 않았다. 장로의 집에서 에단과 호르잔이 나왔다.

호르잔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수인들은 그런 그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침묵하고 있던 호르잔이 입술을 뗐다.

“……손님으로 응대하거라.”

“장로님!”

곧바로 반발이 터져 나왔다. 터져 나온 반발을 보고 에단이 피식 웃었다.

“그래 뭐. 이럴 줄 알고 있었어. 너무 순순히 넘어가면 재미가 없지.”

에단이 앞으로 나서며 말을 이었다.

“수인들의 방식은 약육강식이 아닌가? 입으로만 떠들지 말자고.”

에단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도발했다. 수인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인지 몸을 움찔 떨었다.

“……인간 주제에 건방을 떠는구나.”

수인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건장한 남성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살기와 야성이 뒤섞인 눈으로 에단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 걱정 마. 안 죽이니까.”

에단이 호르잔의 우려 섞인 시선을 느끼고 대꾸했다.

콧대를 눌러 줄 심산이지,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럼 이제 말은 그만하고 시작해 볼까?”

에단이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더는 인내할 수 없었는지, 수인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맹렬한 돌진.

하지만 에단의 눈초리는 시큰둥했다. 에단은 수인들의 전투 능력을 고평가했다.

휴고와 렉사르, 타미를 통해 겪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부에 와서 에단이 느낀 감상은 실망감이었다.

수인들은 민첩하고 기민하다.

뛰어난 시력과 반응속도로 전투의 자질은 탁월하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에단이 흉포하게 달려든 수인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냄과 동시에 발을 걸었다.

에단을 향한 적의로 이성을 잃은 수인은 허무하게 바닥을 굴렀다.

재빠르게 일어나려고 했지만, 이미 그의 목에는 에단의 발이 올라가 있었다.

“움직이면 죽는다.”

에단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감정 따위는 느껴지지 않은 말투에 움직이려던 수인의 몸이 멎었다.

“눈치는 빠르네.”

피식 웃은 에단이 목에 올려 둔 다리를 내렸다.

“…….”

수인이 몸을 일으켰다.

수치심과 자괴감 등, 여러 감정이 뒤섞인 얼굴로 에단을 노려보고 있었다.

“인정 못 하겠다는 얼굴이네?”

“……그래.”

“그럼 한 번 더 덤벼.”

에단이 코웃음을 치며 말하자 수인이 다가왔다.

이번에는 전처럼 무작정 달려드는 게 아닌, 나름대로 신중함을 보였다.

‘따로 배운 기술은 없나 보군.’

수인들에게 있어 체계화된 싸움법은 필요치 않았다. 번뜩이는 본능만 해도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기본도 안 잡혀 있으니.’

쯧.

에단이 혀를 찼다. 기술이 필요 없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기본이나 센스가 전제되어 있을 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에단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수인은 너무나도 허술했다.

에단이 입을 쩌억 벌리며 늘어져라 하품했다.

기다리는 것도 귀찮아진 에단이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갔다. 갑자기 에단이 다가오자 수인은 당혹을 감추지 못했다.

“피해.”

에단이 주먹을 내지르는 시늉을 했다. 수인의 동공이 돌아가며 반응했다. 역시 수인다운 뛰어난 동체 시력과 반응속도였다.

하지만 에단이 내지른 주먹은 속임수였다. 실체는 에단의 발이었다.

우드득.

에단이 내지른 오블리 킥이 수인의 무릎을 정확히 타격했다. 한 번의 일격으로 무릎이 완전히 뒤틀렸다.

수인의 눈이 터질 것처럼 부릅떠졌다. 끔찍한 고통이 천천히 엄습해 왔다.

수인이 입을 벌리며 비명을 토해 내려 하자, 에단이 눈살을 찌푸리며 수인의 입을 틀어막았다.

“시끄럽게 하지 말고.”

후웅!

수인의 모가지를 틀어쥔 에단이 그대로 집어 던졌다. 바닥에 사정없이 곤두박질쳐진 수인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에단이 손을 털어 냈다. 덩치는 봐 줄 만하길래 쓸 만한 줄 알았더니 이 녀석도 형편없었다.

“더 나와.”

에단이 수인들을 바라보며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뒤에 몇 명의 수인들이 에단의 상대를 자처했다. 하지만 나선 수인들 모두 에단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작은 생체기조차 내지 못한 수인들이 계속해서 나가떨어졌다.

결국 나선 수인들을 모두 정리한 에단이 이맛살을 구기며 말했다.

“너희들 뭐 장난하는 거야?”

“…….”

자존심을 사정없이 후벼 파는 발언이었지만, 수인들은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 상대조차 되지 못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쯧, 이래서야 원…….”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찬 에단이 몸을 돌려 일행에게 향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몸 푸는 것도 안 됐는데.”

에단이 퉁명스러운 말투로 잭슨에게 말했다.

“얘들 전부 풀어.”

“괜찮으시겠습니까?”

“얘들 수준 보고도 걱정이 되나?”

에단이 묶여 있는 수인들을 힐긋 바라보며 코웃음 쳤다.

면전에 대고 모욕을 들은 수인들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빠득 이를 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

수인들이 분하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렉사르가 묶어 둔 사슬을 풀었다.

그러자 자유를 되찾은 수인들이 에단을 매섭게 노려봤다.

“……나랑도 한번 했으면 하는데.”

“어려울 건 없지. 산속에 처박혀서 풀뿌리만 뽑아 먹는 녀석들을 상대하는 게 뭐가 힘들다고.”

“……방금 그 발언 후회하게 될 거다.”

에단의 비아냥을 들은 수인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에단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는데.”

싸움이 시작되었다.

다른 녀석들보다는 조금 더 날카로운 공격들이 퍼부어졌다.

에단은 휘둘러지는 공격들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며 모두 피해 냈다.

전력을 다해 휘몰아침에도 에단이 아무렇지 않게 피해 내자 수인이 이를 갈았다.

“크아아아아!”

수인이 야성을 토해 내며 에단을 덮치려 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렉사르와 휴고가 탄식했다.

“아…….”

“멍청한 짓을.”

자신을 덮치려 드는 수인의 모습에 에단이 피식 웃었다.

“뭐, 용기는 가상하네.”

뻐억!

강렬한 타격음과 함께 수인의 명치가 움푹 파였다. 에단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프론트 킥을 올려 찬 것이다.

“꺼헉!”

끔찍한 고통과 함께 숨이 쉬어지지 않자, 수인의 눈이 부릅떠졌다. 하지만 에단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에단이 수인의 팔을 휘감음과 동시에 그대로 바닥에 메다꽂았다.

콰앙!

굉음이 터져 나오며 눈과 먼지 따위가 휘날렸다.

수인의 눈이 완전히 까뒤집혔다.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지만, 에단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정도는 각오했겠지?”

무심하게 수인을 바라본 에단이 그대로 손목을 비틀었다.

우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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