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2화] 북부 (7)
다수의 기척이 다가온다. 그들은 마치 사냥감을 몰듯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 왔다.
순식간에 포위된 형국.
하지만 에단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었다.
에단의 돌발적인 행동에도 일행들은 묵묵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것은 에단을 향한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우리는 딱히 싸울 생각이 없다.”
에단이 대뜸 말을 내뱉었다. 일행을 크게 둘러싸고 있는 수인들의 살기가 더욱 거세졌다.
그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지금 에단이 내뱉은 말은 어처구니없는 도발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뭐…… 싸움을 걸어온다면 마다할 생각은 없지.”
에단은 기세를 표출하지 않았다. 피어를 방출해 압도적인 위압감으로 상대를 찍어 누른다면 일은 수월해질지 모른다.
하지만 에단은 간접적인 방식 대신 직접적인 무력으로 상대를 굴복시킬 생각이었다.
짐승에게는 짐승의 방식이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에단은 지금 짐승의 방식을 채택했다.
“휴고.”
에단이 휴고를 부르자 휴고가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휴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을 끔뻑였다. 그 모습을 보고 씨익 웃은 에단이 휴고의 턱을 간질였다.
간질간질.
흡사 개를 만지는 것 같았다. 휴고는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하는 것 같다가도 고개를 치켜들며 몸을 배배 꼬았다.
“…….”
저게 지금 무슨 짓이란 말인가.
잭슨과 렉사르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휴고를 바라봤다.
“이길 수 있지?”
에단의 물음에 휴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럴 것 같은데요?”
“지면 뒈지게 맞는다?”
“…….”
휴고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그러고는 이내 체념한 듯 터덜터덜 앞으로 나섰다.
휴고가 앞으로 나서는 순간 포위망이 좁혀지기 시작했다. 그때 에단이 입을 열었다.
“한 명씩 상대하면 재미없잖아.”
에단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싹 다 제압해. 당연히 죽이면 안 돼.”
“……네.”
크르르.
휴고의 동공이 황금빛을 품는다.
이빨이 날카로워지고 내뿜는 날숨에도 진득한 야성이 가득 찼다.
휴고의 고개가 돌아갔다. 몸을 숨기고 있는 자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휴고는 망설임 없이 달려들었다.
파바밧!
쏜살같이 뛰쳐나간 휴고, 적들이 당혹감이 느껴졌다.
에단은 팔장을 낀 채 여유롭게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휴고의 눈이 빠르게 굴러가며 적들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수인들이 포위망을 좁히며 달려들었다.
확실히 수인다운 기민한 발놀림이었다.
‘뭔가 이상해.’
휴고는 이상함을 느꼈다. 상대의 움직임은 빠르고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촤악!
날카로운 손톱을 휘두르며 달려든 수인 휴고는 아래로 피함과 동시에 발로 바닥을 쓸었다. 그러자 달려든 수인이 바닥에 엎어졌다.
콰직!
휴고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쓰러진 수인을 기절시켰다.
파밧!
휴고는 곧장 자리를 피했다. 휴고가 있던 자리가 흉악하게 뒤집어졌다.
크르르!
쓰려져 있는 동료를 본 수인들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반면 휴고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끔뻑였다.
“어…… 죄송합니다.”
휴고의 말이 도발로 들렸는지 수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들이 흉성을 터트리며 휴고를 향해 질주했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광경이었지만, 어째서인지 휴고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않았다.
정제되지 않은 야성과 원초적인 전투.
마치…… 과거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휴고는 묘한 감흥을 느끼며 대응했다.
싸움은 공명정대한 힘겨루기가 아니다. 기교를 다른 말로 하면 교활함이었다.
상대를 얼마나 속이고 현혹하느냐, 그리고 승리하느냐.
그것이 싸움의 본질이었다.
휴고는 에단과 렉사르와의 훈련을 통해 그것을 배웠다.
정제되지 않은 폭력은 휴고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적의 모든 공격이 눈에 훤히 들어왔다.
표정의 변화는 극명하다.
어깨의 들썩임, 들숨과 날숨을 의도적으로 표출하는 것만으로도 적이 흔들린다.
쉬웠다.
머릿수의 차이는 극명했지만, 싸움이 너무 쉬웠다. 마치 하늘 위에서 관망하는 기분이 들었다.
촤악!
매섭지만 읽기 수월한 공격이었다. 휴고는 상체를 젖혀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손목을 틀어쥐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몸을 틀었다.
콰앙!
완벽한 타이밍에 들어간 업어치기.
“오.”
에단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따로 알려 준 것도 아니었지만, 휴고는 완벽에 가까운 업어치기를 구현했다.
휴고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흐름이 바뀌었다. 더 이상 몰아치는 것은 수인이 아니었다.
수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밀리기 시작했고, 빈틈을 보이는 순간 휴고의 안광이 번뜩였다.
또 다른 수인 하나가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이럴 수가…….”
알리가 입을 벌리며 눈앞의 광경을 바라봤다.
마을의 전사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소년에게.
감히 범접치 못할 것 같던 마을의 전사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에단은 심드렁한 눈초리로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역시나.”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그럼에도 실망감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전투의 흐름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저들은 실전 경험이 턱없이 부족하다.
맹수에게 사냥 법은 필요치 않았다. 에단은 휴고에게 싸움하는 방법을 알려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과 경험은 별개의 문제였다. 뛰어난 사냥꾼이 곧 뛰어난 전사라는 법은 없었다.
싸움과 전투는 다르다.
휴고는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수많은 실전을 통해 성장했다.
에단, 첸, 가토, 렉사르.
그 밖에 여러 실전들이 휴고를 성장시켰다. 더 이상 휴고는 본능에만 의존하는 애송이가 아니었다.
휴고는 노련하고 동시에 교활할 줄 아는 전사로 거듭났다.
“크윽!”
수인 하나가 신음을 터트리며 곤두박질 쳤다. 이제 전투가 가능한 수인은 고작해야 둘.
크르르.
휴고의 안광이 번뜩이자 수인들이 몸을 움찔거린다. 휴고가 천천히 앞으로 다가가자 수인들이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단이 눈을 좁혔다.
“어떤 것 같아?”
에단이 타미에게 물었다. 타미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약해. 너무.”
“동감이야.”
쯧.
혀를 찬 에단이 휴고를 향해 퉁명스럽게 말했다.
“빨리 끝내.”
휴고는 에단의 지시를 이행하듯 곧장 달려들었다. 수인들이 급하게 몸을 돌렸지만, 휴고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전투가 끝났다.
약 여덟 정도 되는 수인 전사들이 모조리 쓰러졌다. 사망자는 없었다.
렉사르는 배려 따위 없는 손짓으로 쓰려져 있는 수인들을 제압했다.
수인들의 강한 근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두꺼운 사슬로 몸을 칭칭 감자 수인들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러게 좋게좋게 가자니까.”
에단의 비꼬는 듯한 말투에 수인들이 표독스러운 눈초리로 에단을 노려봤다. 에단의 눈이 가늘어졌다.
“주제 파악 못 하나?”
에단이 살기를 끌어올리자 수인들의 기세가 꺾였다. 에단이 콧방귀를 뀌며 다시금 발을 옮겼다.
“해는 끼칠 생각 없으니까 너무 그러지 말라고.”
“…….”
수인들은 감히 에단의 말에 대꾸할 수 없었다.
* * *
수인들을 모두 제압한 일행이 마을로 진입했다.
설산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수인들의 마을은 초라했다. 기껏해야 화전민 수준의 촌락 같았다.
“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마을을 훑어본 에단이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이 정도로 쇠락했을 줄이야.
휴고와 렉사르, 그리고 타미가 느낀 바도 에단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지 복잡한 눈으로 마을을 바라봤다.
일행의 기척을 느꼈는지 마을에서 수인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쇠사슬에 칭칭 감겨 있는 수인들을 보자 경악과 동시에 겁에 질린 표정으로 일행을 바라봤다.
“…….”
전사들은 참담한 심경을 감출 수 없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마을에 있던 수인들이 입을 틀어막았다.
“이제 어쩌실 겁니까?”
렉사르가 물어왔다.
말을 들은 에단이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고는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지켜보고 있어.”
에단이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갔다.
눈이 밟히는 소리가 뚜렷하게 들렸다. 수인들이 두려움과 경계가 섞인 눈으로 에단을 노려보고 있었다.
강렬한 시선에 피부가 따가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에단이 피식 웃었다.
에단은 온화한 방법으로 이들을 설득할 생각이 없었다.
이들은 수인이었다. 인간임에도 짐승인 자들.
그리고 그런 자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에단은 알고 있었다.
스스스.
에단이 기운을 끌어올렸다.
몸속에 잠재되어 있던 죽은 마나의 힘과 드래곤의 피어가 뒤섞였다.
기세가 형태를 갖춘다.
난폭한 기운이 사방에 흩뿌려지자 마을의 수인들이 몸을 흠칫 떨었다.
“미리 말하지. 나는 싸울 생각이 없다.”
에단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원하면 마다하지는 않지.”
에단이 기세를 완전히 개방했다.
천지가 요동치며 공간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일행은 굳은 표정으로 에단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는 범접할 수 없는 곳까지 가 버렸군.’
에단의 성장세는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더 이상 렉사르는 에단에게 경쟁심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한 감정을 느끼기에는 에단이 너무 멀리 가 버렸다.
수인들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며 에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인들의 두 눈에는 짙은 공포가 자리해 있었다.
“……거기까지 하시지요.”
에단이 기세를 표출하고 있을 때 앞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단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향했다.
사박.
눈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가 새하얀 초로의 노인이 에단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평범한 노인은 아니었다. 허리는 꼿꼿하고 몸은 강건했다. 시선은 흔들리지 않고, 에단을 또렷하게 응시했다.
노란빛이 감도는 동공에서는 묘한 현기가 느껴졌다.
“이제 그만 기운을 거두시죠.”
노인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에단이 꽤나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노인을 바라봤다.
지금 에단이 뿜어내는 기세는 마스터조차 견디기 힘들 정도로 포악한 기운이었다.
하지만 노인은 태연하게 에단 앞에 마주 서고 있었다.
‘괜찮은데.’
드디어 마음에 드는 녀석을 만났다는 생각에 에단이 씨익 웃으며 기운을 거뒀다.
그러자 노인의 뒤편에 서 있던 다른 수인들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
에단을 응시하던 노인의 시선이 잠시 주변을 향했다.
렉사르와 휴고, 그리고 쇠사슬의 묶여 있는 수인을 바라본 그는 다시 시선을 에단에게로 돌렸다.
“이거 참…… 할 얘기가 많을 것 같군요.”
노인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