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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280화 (280/398)

◈ [280화] 북부 (5)

동료들의 목숨으로 협박하자 알리는 곧장 정보를 토해 냈다.

재갈을 물고 있는 동료들이 발버둥을 치며 만류하는 기색을 내비치기는 하였으나, 에단이 피어를 끌어올리자 순식간에 상황이 일단락되었다.

‘참 요긴하게 쓰는군.’

드래곤의 피어는 강자가 뿜어내는 기세와는 사뭇 다른 기운이었다.

머릿속에 직접 각인시키는 공포.

그것이 바로 드래곤의 피어였다.

수많은 생명체 중 정점에 오른 드래곤은 감히 누군가가 자신에게 범접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덜덜덜.

수인들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어 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타미가 수인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뭔가 이질적인 그림이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에단이 피식 웃었다. 에단이 주위를 둘러봤다. 하늘의 중심에는 달이 떠 있었다.

북부의 밤은 아름다웠다. 검은 배경에 수놓아진 수많은 별들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대기가 오염된 지구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장관이었다.

‘본거지는 확인했고.’

생각보다 빠르게 수인을 찾아냈다. 하지만 시기가 문제였다. 에단이 확인한바 사냥에 나선 수인들은 모두 나이가 어렸다.

완전히 저문 시간, 그리고 인질로 잡은 어린 수인들.

이 상태로 수인들의 마을에 들어선다면 그것은 곧바로 전투로 이어질 것이다.

전투가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있었다. 온건한 협상은 에단의 방식이 아니었으니.

하지만 에단의 궁극적인 목적은 수인의 협력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신성 왕국에 관한 비밀을 파헤치는 것이기도 했다.

‘첫 단추부터 어그러지기는 했지만.’

적어도 여기서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질 상황은 피하는 것이 맞았다.

“일단 여기서 밤을 보낸다.”

에단이 명령했다. 그러자 잭슨과 렉사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에단의 결정을 신뢰한 것이다.

야영에 익숙한 잭슨과 렉사르가 순식간에 야영지를 구축했다.

주변에 널린 것이 마른 나무인 터라 장작거리를 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렉사르가 마른 나뭇가지를 수북하게 모아 왔고, 잭슨이 부싯깃을 부딪치며 불을 지폈다.

화르륵.

부싯깃에 마법적 처리가 되어 있는지 몇 번 시도하자 꽤나 큰 불길이 치솟았다.

불이 지펴지자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어…… 저는 뭐 따로 할 게 없을까요?”

가만히 서서 멀뚱멀뚱 지켜보는 것이 조금 그랬는지 휴고가 렉사르에게 다가갔다. 힐긋 시선을 던진 렉사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방해되니까 꺼져라.”

“……네.”

시무룩해진 휴고가 모닥불 앞에 쪼그려 앉았다.

렉사르는 무덤덤하게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먼저 수인들이 붙잡은 멧돼지를 끌고 와 가죽을 벗겼다.

슥, 스윽.

언뜻 봐도 능숙한 솜씨였다. 품에서 꺼낸 작은 도축용 칼로 몇 번 긋자 순식간에 가죽과 내장이 분리되었다.

추위를 나기 위해서인지 멧돼지의 크기는 꽤나 거대했지만, 렉사르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고기를 분리했다.

툭. 툭.

두툼한 살점이 몇 개 나오자 잭슨이 그것을 받아들고 모닥불 앞에 앉았다.

“……이런 데서 호사를 누리게 생겼네요.”

잭슨이 품에서 향신료 꺼내며 말했다.

향신료는 꽤나 비싼 물건들이었다. 정보 길드가 거상 한니발과 교류를 시작하며 이런 값비싼 향신료도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잭슨이 에단의 눈치를 보다가 아낌없이 향신료를 뿌렸다. 향신료 특유의 고급스러운 향이 느껴졌다.

잭슨이 조심스럽게 고기를 불 위에 올렸다. 큼직한 고기를 속까지 익히려면 상당한 집중력과 노력이 필요했다.

꿀꺽.

익어 가는 고기를 지켜보던 휴고가 침을 꿀꺽 삼켰다.

향신료와 기름이 섞이면서 풍기는 냄새는 치명적이었다. 입안에 침이 고이는 것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피식 웃은 에단이 주머니에서 육포 한 덩어리를 꺼내 입안에 밀어 넣었다.

에단은 육포를 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어린애들이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실망인데.’

너무 미숙했다. 휴고와 렉사르 타미에게서 느꼈던 야성과 본능이 이들에게서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에단은 수인들과 함께 지내오면서 수인들의 진면목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정제되지 않은 야성과 본능,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된 압도적인 전투력.

에단은 거기에 기대를 걸었다.

만일을 대비해야 한다. 이제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부담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에단은 이 감정이 썩 싫지 않았다. 고기가 익어 간다. 자리에 있는 모든 시선들이 그쪽에 집중되어 있었다.

에단은 포박되어 있는 수인들을 응시하다가 렉사르를 향해 말했다.

“얘들 풀어 줘.”

“……괜찮겠습니까?”

“자신 없어?”

씨익 웃으며 묻는 에단의 모습에 렉사르가 실소를 터트렸다.

“알겠습니다.”

렉사르가 묶어 뒀던 포박을 풀었다. 혹시 도망칠 우려가 있었기에 두 손은 밧줄로 단단하게 묶어 놨다.

수인들은 경계 어린 시선으로 에단과 일행을 바라봤다. 그 시선을 느끼며 고기를 향해 턱짓했다.

“너희가 잡았다면서. 그럼 너희도 좀 먹어.”

수인들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조금 코를 찡그렸지만, 이내 먹음직한 냄새를 풍기는 고기를 보며 침을 삼켰다.

그들이 조심스럽게 모닥불에 다가갔다.

그렇게 천천히 익어 가는 고기를 바라보자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늦은 새벽이 되었지만, 졸음은 느껴지지 않았다.

에단은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고 수많은 힘들을 포식하면서 수면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

에단을 제외한 다른 일행들도 며칠 잠을 자지 못한다고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그렇게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던 에단이 몸을 일으켰다.

렉사르가 갑자기 몸을 일으킨 에단을 바라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아챘다.

“……몬스터입니까?”

“아마도.”

렉사르는 상당히 놀란 눈초리로 에단을 바라봤다. 렉사르는 자신의 예민한 감각을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었다.

그 예민한 오감으로 ‘추적하는 사자’라는 이명을 얻었으니까.

하지만 에단은 렉사르보다도 먼저 적의 존재를 인지했다. 멀리서 풍겨 오는 진득한 누린내.

모습과 채취를 감추고 있었지만, 렉사르는 저편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

‘상당한 수준의 녀석이군.’

렉사르가 고개를 돌려 익어 가는 고기를 바라봤다. 하얀 눈에 흩뿌려진 피, 그리고 향신료를 듬뿍 뿌린 익어 가는 고기.

‘승냥이가 올 만한 상황이군.’

렉사르가 피식 웃었다. 몬스터의 처리를 위해 몸을 일으킨 순간 에단이 말했다.

“여기 있어.”

“……하지만.”

“하지만 뭐.”

에단이 고개를 돌리며 피식 웃었다. 형형하게 빛나는 에단의 동공을 보자 렉사르는 말을 삼켰다.

“……알겠습니다.”

렉사르가 그대로 자리에 앉자, 에단이 검을 뽑아 들었다.

“고기 부족하면 말해.”

보충해 올 테니까.

* * *

에단의 모습이 사라졌다. 에단이 있던 자리에는 바람의 잔재만이 남아 있었다.

일행은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고기를 굽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이질적인 광경에 수인들이 묘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에단과 잭슨을 제외한 모두에게 동족의 채취가 풍겨왔다. 인간의 것들이 많이 섞여 있기는 하였으나 분명히 동족의 냄새였다.

‘어째서 인간과 함께 다니는 거지?’

인간의 옷을 입고, 인간의 무기를 다루고 있었다. 그들은 말없이 고기가 익어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이가 홀로 사라졌음에도 동요는커녕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니.

알리의 상식으로는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슬슬 익지 않았을까요?”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휴고가 간절한 눈초리로 잭슨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부담스러운 시선을 느낀 잭슨이 피식 웃으며 휴고에게 커다란 고기 한 덩어리를 건넸다.

휴고는 고기를 크게 베어 물으려다가 곁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타미가 휴고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머, 먹을래……?”

굉장히 복잡한 표정을 짓던 휴고가 고기를 내밀자, 타미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앙.

타미가 고기를 크게 베어 물었다.

거대한 넓적다리 살의 절반이 유실되는 광경에 휴고가 입을 벌었다. 그러고는 반쪽이 된 고기를 참담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결국 그 이질적인 모습을 견디지 못한 알리가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저희를 찾기 위해서 이곳에 온 건가요?”

알리의 물음에 렉사르와 잭슨이 고개를 돌렸다. 잠시 물끄러미 알리를 응시하던 렉사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서 궁색하게 변명을 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알리의 눈에 다시금 경계의 빛이 떠올랐다.

“……대체 이유가 뭐죠? 숨어 지내는 저희를 찾아내서 이번에는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건가요. 그리고 없어진 사람은 동료가 아닌가요?”

“동료라…….”

말을 곱씹던 렉사르가 입을 열었다.

“틀린 말은 아니군.”

“……그런데 걱정되지도 않는 건가요?”

“걱정?”

알리가 걱정이라는 말을 내뱉은 순간 모두의 시선이 알리에게로 향했다.

렉사르와 잭슨, 그리고 고기를 우걱 거리고 있던 휴고와 타미도 물끄러미 알리를 바라봤다.

“……제가 무슨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요?”

“……아니.”

혼자 곰곰이 생각하다 실소를 터트린 렉사르가 알리를 향해 고기를 한 덩이 던졌다.

“나눠 먹어라.”

수인들에게 고기를 나눠 준 렉사르도 자신이 먹을 고기를 들었다.

렉사르는 입맛이 까다로운 편은 아니었지만, 질리도록 먹어 댄 육포와 딱딱한 비스킷은 좋아하지 않았다.

날카로운 이빨로 고기를 뜯은 렉사르가 고기를 씹으면서 말했다.

“……이상한 소리는 아니지.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기도 하고. 하지만 글쎄, 걱정이라…… 오랜만에 그 단어를 들으니 어색하기 그지없군. 닭살이 돋을 지경이야.”

“……그게 무슨 소리죠?”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단 소리야. 그분에게 걱정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아.”

우지끈.

거대한 나무가 바닥에 쓰러졌다. 갑자기 들려온 굉음에도 렉사르와 일행은 태평하게 앉아서 고기를 씹고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윤곽.

알리의 눈이 커졌다.

에단은 한눈에 봐도 엄청난 크기의 몬스터를 한 손으로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길목에 방해되는 나무 따위를 가볍게 베어 내면서.

“잘들 먹고 있냐?”

직접 보고 있음에도 믿기지 않는 광경에 알리와 다른 수인들이 입을 쩍 벌렸다.

“서, 설산 트롤…….”

수인 중 한 명이 몬스터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경악을 삼켰다.

설산에서 마주치는 순간 목숨을 포기하는 게 좋을 정도로 난폭하고 위험한 몬스터였다.

마을의 장로들도 기피할 정도의 괴물.

그런데 그런 괴물의 시체를 에단은 아무렇지 않게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에단이 지나친 눈길 위로 붉은 피가 번지고 있었다.

쾅!

에단이 일행 옆에 설산 트롤을 던져 놨다. 그러고는 가볍게 손을 털어 냈다.

“뭐, 고기 더 필요해?”

대수롭지 않은 에단의 물음에 다른 일행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엄청난 크기와 흉악한 외형의 설산 트롤.

먹음직함과는 거리가 먼 비주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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