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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277화 (277/398)

◈ [277화] 북부 (2)

부릅뜬 알렉스의 눈에서 핏발이 섰다. 크리스토의 검에서 형형하게 타오르는 불길이 뜻하는 건 단 하나였다.

오러.

검이라는 분야에서 자신의 세계를 개척한 이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기사들의 소망이자 목표.

평생을 매진한다 한들 이루리라 보장할 수 없는 경지를 저 오만한 황자가 올라섰다.

크리스토의 알 수 없는 미소가 마치 조소처럼 느껴졌다. 알렉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까드드득―!

칼자루가 비명을 토해 냈다. 독기가 가득한 눈으로 크리스토를 쏘아본 알렉스가 입을 열었다.

“놀랍군. 건방을 떠는 태도가 납득이 될 지경이야.”

“오. 그것참 영광이군. 혹시 그런 말 알고 있나? 칭찬은 드래곤도 춤을 추게 한다고 하더군. 이것 참 부끄럽게도 춤 한번 춰 줘야겠어.”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군. 간신히 마스터에 올랐다고, 온 세상이 네 것 같더냐? 무언가 착각을 하고 있나 본데…….”

“아아. 이거 어쩌지? 내가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듣는 게 질색이라서 말이야. 뭐 대충 듣자 하니 하고 싶은 말은 알 것 같네. 마스터끼리도 수준 차이가 난다…… 그 말을 하고 싶은 것 아니야. 마치 그쪽과 빈센트의 실력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나는 것처럼.”

크리스토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전형적인 도발이었지만 효과가 있었는지 알렉스의 얼굴에 혈관이 불거졌다.

“……그래. 오늘 그 수준 차이를 실감시켜 주마.”

후웅!

알렉스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가 있던 장소에는 미약한 바람의 잔재만이 남아 있었다.

쾅!

강렬한 불똥이 튀었다. 크리스토는 측면에서 튀어나온 알렉스를 예상했다는 듯 공격을 응수했다.

“이것 참. 발끈하는 성격은 고쳐야 하지 않겠나?”

“닥쳐라!”

알렉스가 노호성을 터트렸다. 강인한 근육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며 입고 있던 옷의 실밥이 터져 나왔다.

전세가 기울고 있었다. 알렉스의 우악스러운 힘과 막강한 오러의 방출로 인해 크리스토의 몸이 점차 밀려났다.

“그 알량한 주둥이로 다시 한번 지껄여 보시지!”

알렉스가 사나운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그것을 마주 본 크리스토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 속단이 빠른 건 좋지 않은데 말이야.”

쾅!

크리스토가 무게중심을 비틀며 거리를 벌렸다. 알렉스의 눈이 번뜩였다. 그는 먹잇감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알렉스가 거리를 벌리는 크리스토를 향해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마치 거친 태풍을 보는 것 같았다.

“오.”

크리스토는 작은 탄성을 내뱉으며 검을 휘둘렀다. 수십이 넘는 궤적이 탄생하며 검극이 번뜩였다.

“흥!”

알렉스가 그것을 보고 같잖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그는 크리스토와 동일한 궤적으로 검을 밀어 넣었다.

쾅! 콰가가가가가강!

수십, 수백에 달하는 검격이 부딪쳤다. 오러를 두른 검끼리 부딪칠 때마다 건물이 진동하고, 천둥 같은 굉음이 터져 나왔다.

쾅! 콰과광!

검을 휘두르는 알렉스의 눈이 점점 커졌다. 칼의 숫자로 승부를 걸길래 가볍게 찍어 누를 생각이었다.

아무리 세련되고 유려한 궤적의 검이라고 한들 그 깊이가 미천하리라 여겼던 탓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알렉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쾅! 콰과가가강!

오러를 두른 검이 부딪친다. 굉음이 터져 나왔다. 알렉스가 이를 악물었다. 그는 지금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모든 역량과 기량을 끌어올린 전력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반전되지 않는다. 오러가 부딪치며 빛이 번뜩인다. 크리스토는 그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알렉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벌써 힘에 부치십니까?”

“닥쳐라!”

알렉스가 분노를 터트렸다. 가뜩이나 육안으로 쫓기 어렵던 검격이 더욱 빨라졌다.

이제는 정말 바람이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 수많은 선과 궤적이 빼곡하게 그려졌다.

“하하, 이거 난감하군요.”

알렉스가 속도를 올리자 크리스토도 동일하게 기어를 올렸다. 불똥이 끝도 없이 튀었다.

결국 알렉스는 입술을 깨물며 거리를 벌렸다.

“하아, 하아.”

알렉스의 호흡이 미약하게 떨렸다. 달아오른 몸에서는 하얀 김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반면 크리스토는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이다.

얼굴에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호흡조차 거칠어지지 않았다.

“…….”

알렉스가 입을 다문 채 크리스토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크리스토의 시선이 한없이 불쾌했다.

마치 자신을 향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고작 이게 전부야?’라고.

“후우.”

알렉스가 숨을 가다듬었다.

극의에 이른 마스터의 육체답게 순식간에 호흡이 진정되었다. 들썩이던 흉곽이 잔잔해졌다.

알렉스의 눈빛이 바뀌었다. 불을 토해 내는 것처럼 이글거리던 눈이 아닌, 한기가 흐르는 차가운 눈이었다.

알렉스가 천천히 자세를 취했다. 양손으로 칼자루를 붙잡은 뒤 취한 중단세.

분위기가 바뀌었다.

“오.”

크리스토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알렉스가 얼음장 같은 시선으로 크리스토를 응시했다.

“사과하지. 내가 너무 얕잡아 봤군. 확실히 근거 없는 건방은 아니었어. 갓 마스터의 오른 애송이는 아니었군.”

“칭찬 감사하군.”

“……그러니 이제 끝내야겠어.”

“흠, 그럴까? 나도 그렇게 한가하진 않으니.”

“끝까지 여유를 부리는군. 영광으로 알아라. 너 따위한테 보여 줄 생각은 없었으니.”

“아, 반칙을 쓰려고 하는군.”

크리스토가 히죽 웃었다.

불길하면서도 꺼림칙한 웃음이었다. 알렉스가 흠칫 몸을 떨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결단은 빨랐다. 알렉스가 몸을 움직이려던 순간.

【부정】

크리스토가 입술을 달싹였다. 만연하던 웃음기가 사라졌다.

크리스토는 마치 감정이 없는 인간처럼 무미건조하고 삭막한 시선으로 알렉스를 바라봤다.

순간 소름이 끼쳤다. 죽여야 한다. 당장 이 자리에서 저 녀석을 없애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마나를 컨트롤하고 구축한 심상을 구현하려는 순간.

쿵.

심장이 격동했다. 고막을 터트릴 것 같은 소음이 심장에서 느껴졌다.

울컥.

눈과 코, 입과 귀에서 붉은 선혈이 울컥거리며 흘러나왔다.

끄르륵.

알렉스가 무언가 말을 하기 위해서 입을 뻐끔거렸지만, 피가 끓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알렉스가 비틀거렸다. 피가 줄줄 흐르는 눈은 크리스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알렉스는 죽어 가면서도 납득할 수 없다는 눈으로 크리스토를 노려보고 있었다.

“재밌었는데 아쉽네.”

크리스토가 알렉스를 향해 나아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발걸음이었다. 그는 조급하지 않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툭.

알렉스가 검을 떨어트렸다. 양팔이 힘없이 추욱 늘어졌지만 그는 아직 두 발로 서 있었다.

“대단하군.”

크리스토는 순수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경탄스러운 알렉스의 의지력에 진정으로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푹.

크리스토의 검이 알렉스의 심장을 관통했다. 알렉스의 눈이 생기를 잃어 갔다.

짝짝.

칼자루를 놓은 크리스토가 두 손으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털썩.

끝까지 두 발로 서 있던 알렉스가 바닥에 쓰러졌다. 바닥에 쓰러진 알렉스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다.

* * *

“……너무 추운데요?”

휴고가 양팔로 몸을 감싸면서 말했다. 북부의 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휴고는 단 한 번도 북부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블란테의 영지에도 겨울은 있었지만, 북부의 혹한과 비교하면 귀여운 수준이었다.

“……엄살 피우지 마라.”

렉사르는 늘 입고 다니는 로브를 푹 눌러쓴 채 말했다.

“…….”

휴고가 불만스러운 눈으로 렉사르를 바라봤다. 잘 알지는 못했지만 굉장히 따뜻해 보였다. 렉사르는 휴고의 시선을 외면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방향이 이쪽인가.”

“음…… 아마 맞는 것 같은데요?”

“어째 대답이 시원치 않다?”

에단이 못 미덥다는 눈으로 잭슨을 바라보자, 잭슨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변명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이건 지도가 아니라 거의 약도 수준인 데다가 이쪽 부분부터는 정말 길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온통 하얀 눈이 깔려 있는데 여기서 어떻게 제대로 길을 찾습…….”

“너 지금 나한테 짜증 내냐?”

에단이 눈을 부라리자 잭슨이 순식간에 찌그러졌다. 에단이 풍기는 분위기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서워졌다.

“제가 머저리라서 그렇습니다…….”

“잘 알고 있네. 알고 있으면 잘하란 말이야. 꼭 욕을 들어 처먹어야 돼?”

“……분발하겠습니다.”

잭슨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이 추운 곳까지 와서도 이런 푸대접을 받으니 서러움이 북받쳤다.

하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불만이나 서러움을 토로한다면 에단은 그것을 빌미 삼아 더 악랄하게 굴릴 게 분명했다.

‘……다니긴 편하네.’

허리까지 빠지는 눈더미를 헤쳐 나갈 때면 막막할 따름이었다. 높게 쌓인 눈밭에서는 한 발짝 내딛는 것도 곤욕이었다.

하지만 에단이 오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눈더미가 길을 가로막고 있으면 에단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가벼운 동작이었지만 그 여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회색의 마나가 설산을 집어삼키며 길을 뚫었다. 앞을 가로막던 눈이 증발하며 길이 트였다.

에단은 눈더미든 바위든 상관없이 자신을 가로막는 것들을 지워 버렸다.

“…….”

처음 그 장면을 지켜본 잭슨은 두 눈을 의심했다. 에단의 실력이 괴물 같다는 것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정도가 심하지 않은가.

‘……절대 실수하면 안 돼.’

뻥 뚫린 길을 보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에단의 눈치를 살살 살피게 되었다. 에단이 힐긋 쳐다볼 때면 거의 경기를 일으켰다.

‘……가기는 편한데 더 헷갈리네.’

앞을 가로막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 갈아 버리는 여정.

적응하려고 해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게 과연 맞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잭슨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조잡한 약도를 짚어 가며 길을 안내했다.

다행히 잭슨의 노고가 통하고 있었는지 일행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점점 산 중턱으로 들어가자 방해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이 등장한 것이다.

북부의 몬스터는 교활하고 포악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척박한 북부에서 살아남은 몬스터는 그 자체만으로도 공포였다.

경험 많고 노련한 용병들도 북부의 몬스터는 피했다. 너무 까다롭고 위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단에게는 상관없었다.

여기서는 남 눈치를 볼 것도 없었다.

그저 대충 마나를 방출하며 검을 휘두르면 눈 더미와 함께 몬스터들은 흔적도 없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나중에서는 그것도 귀찮아져서 피어를 끌어올렸다. 감각이 예민한 휴고, 타미, 렉사르가 흠칫 몸을 떨었지만 에단은 신경 쓰지 않았다.

“왜 이렇게 발걸음이 느려 터져?”

에단이 인상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자, 일행은 겁에 질린 눈으로 애처롭게 에단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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