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1화] 해보자고 (1)
파직! 파지직!
각각 고유의 성질을 가진 마나와 신성력들이 부딪치며 미친 듯이 스파크를 튀겼다.
맹렬한 불협화음. 드레이는 자신의 뒤편에서 느껴지는 막강한 기운을 느꼈다.
‘이게 무슨…….’
모두가 괴물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전력을 끌어올린 이들은 드레이의 예상을 아득히 상회하는 파괴력을 지녔다.
“긴장해.”
에단이 경고했다. 지금부터가 진짜였다.
스스스스―
마룡의 입에 소름 끼치는 기운이 밀집되기 시작했다. 작전을 시작하기에 앞서 에단은 오르번에게 당부했다.
― 마룡이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일격으로 준비해.
― ……괜찮겠나? 그것의 위력은 그리 쉽게 볼 만한 게 아니다.
― 뭐야, 지금 날 걱정하는 거야? 난 저딴 모조품이 아닌 진짜를 잡았다고. 아무리 연출을 잘했다고 해도 허점이 없을 수는 없어. 내가 원하는 건 하나야. 압도적인 충격으로 모든 걸 잊어버리게 만드는 것. 나는 그날 역대 최강의 용사를 탄생시킬 거야.
히죽.
당시의 기억을 상기한 에단이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눈앞에 드레이의 등이 보였다.
미약한 떨림이 느껴진다.
‘긴장할 수밖에 없겠지.’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꽈악.
에단이 드레이의 어깨를 붙잡았다. 떨림이 멎을 때까지.
“이걸 성공해야. 여동생이 살아.”
“…….”
까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드레이의 기질이 바뀌었다. 긴장과 혼란이 아닌, 결의와 투기가 흘러넘쳤다. 뭉툭한 신성력이 날카로워진다.
첸과 네이드가 신성력을 갈무리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에단은 그들과 반대로, 흉악한 폭력을 쌓아 나가기 시작했다.
한 겹, 한 겹.
천천히 쌓아 올린 기세.
― 지금이다.
오르번의 신호에 에단이 말했다.
“드레이!”
쩌엉―!
잔뜩 밀집된 신성력이 방출된다. 불안정한 신성력이었다. 만일 드레이 혼자였다면 힘들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들 뒤에는 네이드와 첸이 있었다.
둘의 오러가 이리저리 튀는 신성력의 형체를 만들어줬다.
그리고 나아가는 신성력을 뒤에서 밀어주는 에단의 마나.
‘나도 어디 한번 해볼까?’
에단이 마나를 농축시켰다. 네이드와 첸이 쓰는 오러는 결국 마나를 농축시킨 것에 불과하다.
‘까짓것.’
못 할 게 뭐가 있겠는가.
에단은 왼손을 내밀었다. 농축된 마나를 이기지 못하고 터져 버려도 그만이다. 에단은 왼손에 깃든 타이탄의 힘을 믿었다.
‘해보자고.’
묘한 흥분감이 들었다.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에단의 몸속에서 순환하고 있는 끝없는 마나의 흐름. 그것을 모으고 모아.
그대로 방출했다.
쩌어어어어엉!
때마침 드래곤의 입에서 검은 기운이 쏘아져 나온다. 진짜 드래곤과 비교해 봐도 손색이 없는 기세였다.
‘진짜 작정했군.’
에단은 웃었다. 오히려 좋았다. 이 정도는 되어야 뒷감당 걱정 없이 마음껏 쏘아 낼 것 아닌가.
카가가강―!
왼손에서 기괴한 소음이 들려왔다. 쇠를 가는 것 같은 불쾌한 소음이었다.
에단은 들리는 소리를 깡그리 무시한 채 출력을 더했다.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은 강렬한 섬광이 일어났다. 그리고 마룡이 내뿜은 브레스를 완전히 지워 버렸다.
브레스를 가볍게 지워 버린 기운은 그대로 드래곤을 집어삼켰다.
쿠우우우우우.
목부터 시작한 드래곤의 상반신이 통째로 소멸했다. 드래곤이 추락한다.
숨어 있던 오르번과 에르미온 데아티르가 손을 들었다. 헨리도 나섰다.
거체가 추락하고 있었다. 상반신이 사라졌다고 해도 드래곤의 크기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지면에 곤두박질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파장이 일어날 것이다.
“우린 뜬다.”
에단의 말에 네이드와 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쿠구구구구.
머리부터 상반신이 사라진 드래곤이 떨어진다. 피해가 없을 수는 없었다. 사상자도 발생할 것이다.
이 작정을 구상할 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다. 피해는 동반될 수밖에 없다.
무고한 이들이 피를 흘릴 것이다. 누군가가 피를 흘려야만 사람들은 기억한다.
죄책감은 느끼지 않았다. 에단은 본인이 선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저 큰 피해와 충격을 입은 시민들이 용사라는 존재를 인지한 채 신성 왕국과 카이제르를 적대하는 것.
그것이 에단이 원하는 것이었다.
쿵.
마룡의 사채가 바닥에 떨어졌다. 마룡의 시체 앞에서 드레이는 초연하게 서 있었다.
마룡의 토벌은 성공했다.
용사의 등장이었다.
* * *
작전이 끝나고, 참여한 모든 이들은 자연스럽게 인파에 녹아들어 자취를 감췄다.
쓰러진 척 연기했던 카이제르의 잔당들이 모습을 감췄다. 시민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가둬 뒀던 바리케이드가 열렸다.
정보 길드원부터, 몸을 숨기고 있던 마법사들까지 모두 현장에서 멀어졌다.
― 네이드.
― 알겠습니다.
네이드에게는 아직 남은 임무가 있었다. 그가 그림자 속에 숨어들었다.
드래곤이 추락하며 단상은 무너졌다. 미리 헨리에게 말을 해 뒀기에 성녀 레미안은 다치지 않았다.
네이드와 헨리가 레미안과 함께 몸을 숨겼다. 사람들은 레미안이 언제 사라졌는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용사 님!”
르니엘이 감격에 젖은 얼굴로 드레이를 껴안았다. 그녀에게는 아직 맡은 임무가 있었다.
누가 봐도 경탄할 만큼의 미모를 지닌 르니엘. 그는 일부로 과장된 어조로 소리쳤다.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용사 님!”
모든 이들이 들을 수 있게끔.
시민들이 술렁였다. 많은 피해가 있었다. 사상자도 적지 않았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제 한 몸을 불사르며 악에 맞서 시민들을 구원한 용사가 각인되었다.
벽이 완전히 허물어지며 도시의 병사들이 몰려왔다. 기사들도 동시에 몰려왔다.
“비켜라!”
기사들의 호통 소리에 사람들이 물러섰다. 평범한 시민에게 기사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제기랄,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기사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너무 많은 사건이 동시에 터져서 정리가 되지 않았다.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드래곤의 사체. 그리고 시민들의 환호성과 기도.
기사와 병사들은 인파를 헤치며 드레이에게 접근했다.
‘먼저 저 녀석을 잡아가야 한다.’
만일 여기서 저 요주의 인물을 놓친다면 어떤 처벌을 받게 될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뭣들 하고 있어! 빨리 체포하지 않고!”
기사가 노호성을 터트렸다. 당황한 병사들이 드레이에게 다가갔다.
드래곤의 사체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던 드레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체포를 위해 다가가던 병사들이 멈칫했다. 드레이의 눈에는 범접하기 어려운 기운이 느껴졌다.
르니엘이 적당히 눈치를 살피다가 카랑카랑한 비명을 내질렀다.
“꺄아아아악―!”
고막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 소리에 병사들이 화들짝 놀랐다.
시민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지?”
“병사들이 용사를 체포한다고?”
“우리 살려달라고 애원할 때는 오지도 않더니…….”
“저 녀석들도 한패 아니야?”
“이제는 우리가 나서야지.”
“맞아!”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처럼 시민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정보 길드원이 나서지 않았다. 길드원들은 길이 열리자 곧바로 자리를 떴다. 지금 보이는 반응들은 온전히 시민들의 것이었다.
기사들과 병사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저항이 예상보다 거셌다. 원성과 함께 욕설이 오가자 기사의 얼굴이 새빨갛게 상기됐다.
“이런 버러지 같은 평민 새끼들이!”
“뭐? 평민?!”
“세금을 내는 게 누군데!”
“살려 달라고 애원할 때는 오지도 않던 녀석들이 감히 용사님을 데려가려고 들어?”
“너, 내가 누군 줄 알아?!”
“너희들도 그 새끼들이랑 결탁했지?!”
시민 중에서는 평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양한 귀족들과 부자들도 대거 섞여 있었다. 기사의 모욕은 귀족들도 자극했다.
엄청난 원성이 터져 나왔다. 기사와 병사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다시금 인파를 비집고 나타나는 자들이 있었다.
흑사자의 문양.
블란테의 기사들이었다. 그들이 질서 있는 발걸음으로 길을 텄다. 갑작스러운 블란테의 등장에 원성을 내지르던 시민들이 입을 다물었다.
뚜벅뚜벅.
블란테의 가장 선두에는 정복을 입은 에단과 첸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들의 앞을 병사와 기사가 가로막자, 에단과 첸은 싸늘한 눈초리로 노려봤다.
“비켜라.”
첸이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강렬한 위압감에 기사는 감히 자존심을 세울 수 없었다. 잔뜩 위축된 기사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인지…….”
“내가 두 번 말해야 하나?”
첸의 손이 칼자루에 얹어졌다. 실낱같은 기세가 흘러나왔다. 잘 벼려진 칼 같은 예리한 기세에 기사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비, 비키거라!”
기사가 다급하게 병사들을 이끌고 길을 텄다. 에단과 첸이 다시 발걸음 옮겼다. 그러고는 드레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넋이 나가 있는 드레이를 본 에단이 입모양을 통해 말했다.
‘정. 신. 안. 차.려?’
에단의 사나운 눈초리에 드레이는 정신을 차렸다. 한 차례 눈을 끔뻑거린 드레이는 에단이 뻗은 손을 맞잡았다.
“돌아가시죠, 용사 님.”
“……네.”
에단의 말에 드레이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에단의 말은 빠르지 않았고, 뚜렷했다. 적어도 거기에 있는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블란테의 기사들이 드레이와 르니엘을 이끌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에단이 소리쳤다.
“마룡의 사체를 수습해라!”
기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반토막 난 마룡의 사체이지만 그래도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수습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인력이 필요했다.
에단이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했다. 적어도 이 정도면 충분히 각인이 된 것 같았다.
블란테와 용사가 협력 관계라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아직 드레이를 정식적으로 공표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요란스러운 홍보보다는 사람의 입을 통해 전달하는 말이 더욱 빨랐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신성 왕국은 복구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더군다나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 수많은 민중들이 신성 왕국을 외면할 것이다. 신도들의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 신성 왕국의 입지도 동시에 흔들린다.
부패한 성녀와 성기사.
아무리 해명하려고 발버둥을 쳐봤자 사람들의 눈과 머리에 각인된 마룡과 드레이는 잊히지 않을 것이다.
‘이제 시작이야.’
이것은 초석에 불과하다. 그 이후 정식적으로 용사를 공표해 아카데미의 입지를 키울 생각이었다.
‘그렇게 명분을 얻었다면.’
그 뒤에 남은 것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전쟁.
그때부터 블란테는 전쟁을 준비할 것이다.
‘원래 이렇게까지 판을 키울 생각은 없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에단은 방심할 생각이 없었다.
공식적인 후계자의 자리를 얻으면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전쟁을 대비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끔.
‘동질감?’
웃기지도 않았다. 에단은 수많은 천재들과 괴물들을 짓밟고 지금 자리에 올라섰다. 그것은 설령 상대가 크리스토라 해도 다르지 않았다.
‘어디 한번 해보자고.’
에단이 스산한 미소를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