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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266화 (266/398)

◈ [266화] 마룡 등장 (4)

뱀파이어의 진가라.

에단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별다른 이유 없이 살려 뒀던 벨몬트가 이렇게 활용될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잘해 봐.”

에단이 벨몬트의 등을 두드렸다.

벨몬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작업 중지.”

오르번의 지시로 인해 작업들이 일시 중단되었다.

오르번이 뭐라고 설명하며 드래곤의 사체를 이리저리 가리켰다. 묵묵히 설명을 듣고 있던 벨몬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자고로 뱀파이어라면 그래야지.”

오르번이 묘한 흥분에 젖은 눈길로 벨몬트를 바라봤다. 오르번의 입꼬리는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벨몬트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 시선들이 썩 부담이 되었는지 벨몬트가 멋쩍은 표정을 짓고 드래곤 앞에 섰다.

드래곤의 사체는 웅장했다. 보기만 해도 압도되는 기운이 느껴졌다.

만일 이것이 사체가 아닌 살아 있는 드래곤이었다면 감히 앞에 서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체를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벨몬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드래곤은 죽었어.’

이건 드래곤이 죽으면서 남긴 사체에 불과하다.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벨몬트의 분위기가 돌변했다. 동공이 가늘어지고 송곳니가 돋아났다. 흉흉한 기세가 주위를 잠식했다.

순간 에단도 흠칫할 정도였다.

마치 살같이 베일 것 같은 날카로운 기세였다. 벨몬트가 손을 들었다.

우웅.

이변이 생긴다. 드래곤의 사체에서 시작된 진동이 주변으로 번진다.

스스스.

드래곤에게서 피가 뽑혀 나오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빨아들인다. 방대한 양의 피가 허공에서 뱅뱅 돌며 순환했다.

저 피는 드래곤의 거대한 육체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드래곤 하트에서부터 시작된 강력한 생명력과 압도적인 마나의 결정체였다.

벨몬트의 기세가 더욱 강해졌다. 에르미온과 데아티르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의 마법을 전개할 준비를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위협을 감지한 것이다.

“후우…….”

벨몬트가 끈적한 숨을 토해 냈다. 팔을 높이 치켜들자 허공에 돌던 붉은 피가 벨몬트의 주위에서 순환한다.

“오오.”

오르번이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곧장 나무 지팡이로 바닥을 찧었다.

웅.

짧은 진동과 함께 마법진이 전개됐다.

음험하고 질척한 기운이 느껴지는 마법진이다. 기괴한 문양들이 바닥에 그려진다.

순간 에단의 눈이 가늘어졌다. 오르번의 눈에 서린 탐욕에 보였기 때문이다.

“큭.”

갑자기 에단이 신음을 흘리며 심장을 부여잡았다.

찌릿한 통증이 심장 부위에서 느껴졌다. 수천 개의 송곳들이 심장을 찔러 대는 것 같았다.

몸이 이끌린다. 거부할 수 없는 본능과도 같았다.

허기를 느끼는 이가 음식을 찾고, 갈증을 느끼는 이가 물을 갈구하듯이.

이건 자연스러운 행위이자, 본능이었다.

에단의 본능이 외쳤다.

저 힘은 너의 것이다.

탐해라.

우웅.

저벅.

에단이 한 발자국 옮겼다. 오르번이 고개를 돌렸다. 에단을 바라보는 오르번의 눈은 터질듯이 부릅떠 있었다.

“너, 지금 대체 뭘…….”

에단이 손을 뻗었다. 오르번이 저지할 새도 없었다.

오르번이 시전한 사특한 술식들은 에단의 손짓 한 번에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오르번의 입이 벌어졌다.

강한 힘을 내포한 드래곤의 피가 에단에게로 향했다. 에단이 그 힘을 붙잡았다.

스스스.

드래곤의 피가 천천히 에단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사람들과 오르번은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을 빨아들이자 욱신거리던 심장의 통증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꽤 많은 양을 빨아들였음에도 드래곤의 피는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후우.”

흐릿한 동공의 초점이 돌아왔다. 이성을 차린 에단이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그러자 멍하니 상황을 관망하던 오르번도 다시 움직였다.

쿵!

오르번이 지팡이로 바닥을 내려쳤다. 검은 물감이 칠해지듯 그림이 그려졌다. 그 모습을 본 에르미온과 데아티르가 탄성을 내뱉었다.

“무슨…….”

순식간에 마법진이 완성되며 술식이 전개되었다. 폭주의 성향을 띠던 피의 흐름이 순식간에 안정화되었다.

오르번은 에단이 빨아들이고 남은 피의 통제를 넘겨받았다.

털썩.

벨몬트가 무릎을 꿇었다. 혼이 빠진 것 같이 멍한 얼굴이었다. 몸이 가늘게 떨렸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압도적인 전능감이 사라졌다. 허무함과 함께 짙은 탈력감이 몸을 잠식해 나갔다.

드래곤의 피는 허공에 그려진 몇 가지 마법진을 통과하더니 곧장 마룡의 몸에 흡수되었다.

“쯧.”

오르번이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 짜증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쿵!

그 자리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 자리에 있는 전부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한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소리의 근원지는 드래곤의 사체.

화르르륵!

드래곤의 눈에서 검은 불길이 치솟았다. 모든 생명체들 위에 군림하던 드래곤이 가진 압도적 위압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전과는 뭔가가 달라졌다. 고고하고 위엄 있는 기운이 아닌, 훨씬 어둡고 사특한 기운이 풍겨졌다.

드래곤의 눈이 번쩍 떠졌다. 강렬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전신에 빼곡히 박힌 마석들이 하나같이 빛을 뿜어냈다.

크르르르.

재앙의 징조를 말하는 것 같은 꺼림칙한 울음이었다.

드래곤은 움직이지 않았다. 단지 거대한 보석 같은 눈을 굴릴 뿐이었다.

마법의 끝에 다가섰다고 알려진 에르미온과 데아티르도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은 르니엘과 헨리도 마찬가지였다.

쿵!

주변에 설치된 수많은 마법진들이 일제히 가동되었다.

그러자 파멸적인 기운을 뿜어내던 드래곤이 눈을 감았다. 그러자 주변을 가득 채운 기운들도 사그라들었다.

“허억!”

참았던 숨을 토해 내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대부분은 드워프들과 대장장이들이 내는 소리였다.

에르미온과 데아티르도 조금 어지러움을 느꼈는지 비틀거렸다.

“……그걸 홀라당 다 처먹다니.”

오르번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에단을 노려봤다.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상태인 에단이 물었다.

“……뭘 먹었다는 거지?”

“하, 자기가 대체 무슨 힘을 얻었는지도 모른단 말인가?”

오르번이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슬슬 에단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묻는 말에 대답이나 좀 해 주지?”

“……원래라면 수고비 차원에서 내가 좀 가지려고 했던 기운이다. 대다수 착각하는 게 있지. 드래곤 하트가 드래곤이 가진 힘의 원천이라고 말이야.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알량한 지식으로 떠드는 꼴 하고는…….”

오르번의 신랄한 비난에 에르미온과 데아티르가 움찔했다. 그들도 드래곤 하트가 드래곤의 정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결국 이 거대한 거체를 움직이는 것은 드래곤의 혈액이고. 미친 듯한 항마력도 결국 드래곤의 피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내가 원한 건 바로 그 항마력인데…… 그걸 둘이서 죄다 날름해?”

오르번의 눈빛이 노기를 머금었다. 에단은 눈을 끔뻑였다.

“항마력?”

“그래. 하, 하필 처먹어도 가치도 제대로 모르는 놈이 먹다니…… 한번 맞아 봐라.”

오르번의 머리 위에서 검은 화구(火球)가 형성되었다. 영창도 없는 즉각적인 발현이었다.

그리고 그 화구는 에단을 향해 쇄도했다. 에단은 본능적으로 피하거나 왼손으로 쳐 내려고 했지만, 오르번의 말이 떠올랐다.

‘사실 확인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나.’

묘하게 꺼림칙했지만, 에단은 우두커니 서 있기로 했다. 이윽고 화구가 적중하려던 순간, 에단의 몸이 반응했다.

반투명한 장막이 전개되었다. 다가오는 화구가 장막에 막혀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르번은 그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남 좋은 일만 시켜줬군.”

에단은 이제야 어렴풋이 몸속에서 느껴지는 항마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뜻밖의 수확이군.’

예상치 못한 수확을 얻었다. 마법에 대한 대비책은 많아도 부족함이 없었다. 오르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뜩이나 가진 것도 많은 놈이 또 뭘 처먹어 버렸군.”

오르번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시선이 이번에는 벨몬트에게로 향했다.

“너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네가 다뤘던 기운이 어떤 것인지.”

“……네?”

“혈술을 사용해 봐라.”

오르번의 말을 들은 벨몬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혈술.

뱀파이어들에게 있어서 비기와도 같은 힘. 하지만 벨몬트는 혈술을 다루지 못한다.

드래곤의 피를 이끌었던 것은 내재되어 있던 본능을 따랐을 뿐이다. 혈술은 벨몬트가 그토록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던 힘이다.

가슴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이 피어올랐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도 들었다.

‘할 수 있다.’

벨몬트의 동공이 좁혀졌다. 사용 방법을 알 필요가 없었다. 드래곤에게서 피를 추출했던 것처럼 숨 쉬듯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피가 달아올랐다.

드래곤의 피를 다루면서 얻은 깨달음과 소량의 섭취만으로도 벨몬트는 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성장했다.

섬뜩한 기운이 물씬 풍기며 벨몬트 주위에 붉은 피들이 피어났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피들은 순식간에 여러 형체로 바뀌었다.

날카로운 칼날도, 방패도, 창도, 화살도.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바뀌었다.

“…….”

붉은 피가 원하는 대로, 의도하는 대로 자유롭게 움직였다. 잃었던 전능감이 되살아났다.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벨몬트는 억눌렀지만 벅차오르는 감정을 모두 막아 낼 수는 없었다. 벨몬트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 갔다.

“됩니다…….”

벨몬트가 목 메인 목소리로 말했다. 에단이 피식 웃으며 벨몬트의 등짝을 강하게 후려쳤다.

짜아악―!

강렬한 타격 소리와 함께 벨몬트의 눈이 부릅떠졌다. 벨몬트는 이해가 안 되고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잘됐네.”

에단이 씨익 웃었다.

지금 상황에서 전력의 강화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벨몬트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쓰라린 등짝을 매만졌다.

에단이 고개를 돌려 눈을 감고 있는 드래곤의 사체를 바라봤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전신의 솜털이 하나하나 곤두서는 감각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생각 이상의 결과물이 나왔다. 전율이 느껴질 정도의 위용이었다.

신화 속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이 마룡이 창공을 선회하는 것만으로도 좌중은 압도될 것이다. 감히 대적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괴물.

에단이 원하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에단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드래곤을 바라봤다. 에단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 * *

쿵!

심장이 격동했다. 드래곤의 눈이 떠졌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은 포악하고 매서운 기운이 터져 나왔다.

드래곤의 눈이 흑염을 토해 냈다. 입에서 흘러나오는 꺼림칙한 울음은 심장을 오그라들게 만들었다.

드레이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마주서는 것도 이제는 한계였다.

머리가 새하얗게 질렸다. 드레이가 천천히 에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저 보고…… 이 괴물이랑 싸우라고요?”

질문하는 드레이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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