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4화] 마룡 등장 (2)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에단은 작업에 참견하지 않았다. 이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는 어디까지나 오르번이었다.
에단은 전권을 일임했고, 오르번은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꼬리 부분을 절단해서 검은 마귀잎 뿌리를 주입해. 용량도 확실히. 만일 실수했다가는 일으키자마자 녹아 버리거나 거부반응을 보일 거다.”
드래곤은 지상 최대의 생물이라는 아명에 걸맞게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했다.
시체는 썩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기에, 비늘과 살을 가르는 행위 자체도 매우 힘들었다.
화르륵!
창고 곁에 만든 간이 용광로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르니엘이 소환한 불의 정령과 에르미온의 마법이 더해지자, 용광로 내부는 엄청난 열기로 타올랐다.
“살면서 이렇게 호사로운 용광로는 처음 써 보는군.”
대장장이가 헛웃음을 지었다.
지금 피어오르는 용광로는 어떤 금속이라도 녹일 수 있는 것처럼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대장장이의 눈빛이 깊어졌다. 일평생 금속을 제련하며 살아왔다. 이런 호사를 누리면서 결과물을 망칠 수는 없었다.
오르번은 그런 대장장이를 비롯한 주변 상황을 훑어봤다.
“흐음…….”
인력들의 수준은 하나같이 높았다. 하이엘프의 정령력은 상당했고, 세계수의 수호자도 제몫을 톡톡히 했다.
두 마법사도 아직 부족한 점은 보였지만, 마법의 관해서는 자신의 길을 개척한 이들이었다.
“이제 드래곤의 피를 빼야 하는데…….”
드래곤의 피는 매우 귀중한 재료로 분류되었다.
피를 뽑아내는 행위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는 고명한 흑마법사였다. 피를 다룬다는 행위는 흑마법사에게 있어 매우 친숙하고 익숙한 행위였다.
‘문제는 완전히 뽑아낸 후 여러 작업을 거쳐야 하는 건데…….’
가능은 했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드래곤의 피는 오르번이 다루기에도 까다롭기 그지없는 재료였다.
“쯧.”
오르번이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러자 에단이 곁에서 물었다.
“왜?”
“……기척 좀 내면 안 되나?”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무슨.”
“쯧, 건방진 놈 같으니라고.”
고개를 가로저은 오르번이 웅장한 드래곤의 시체를 보며 말했다.
“피를 뽑고 정제해야 되는데 마땅치가 않아. 시간만 충분했다면 좋을 텐데 너무 촉박해.”
“흠…… 그렇다고? 피를 다 못 뽑으면 어떻게 되는데.”
“큰 문제는 없다. 마법이 흔들릴 여지가 있을 뿐. 드래곤의 신체는 항마(抗魔)의 힘을 띄고 있으니까 말이야. 비늘 쪽 부분은 대부분의 작업을 끝냈지만…… 문제는 피야. 살에 깃들어 있는 피까지 전부 뽑아내고, 그 피를 다시 마법적 정제를 통해 주입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거야.”
“흐음…….”
에단이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뭔가 떠오를 법했다. 에단이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 물었다.
“혹시 뱀파이어가 있으면 좀 도움이 되나?”
“……뱀파이어?”
오르번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미 멸족한 종족을 무슨 수로 데려온다는 거지?”
“멸족은 무슨. 아는 애 한 놈 있는데, 걔라도 불러 줘? 뭐 쓸모 있으면 지금 데려오려고.”
“……허.”
오르번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시선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허탈한 숨을 내뱉은 그가 말했다.
“데려와. 뱀파이어가 있으면 이런 작업쯤은 아무것도 아니니.”
“잘됐네.”
에단이 피식 웃었다.
* * *
“진짜 더럽게 바쁘네.”
에단이 한숨을 내쉬며 허공을 바라봤다. 에단의 감정과는 별개로 푸른 하늘은 맑고 쾌청했다.
“후우.”
지저분한 감정이 담긴 한숨을 토해 낸 에단이 지면을 박찼다. 에단은 블란테의 영지로 복귀했다.
에단은 벨몬트를 찾아가기에 앞서, 빈센트의 집무실로 향했다.
저택으로 복귀하자 가슴이 쓰렸다. 지난날과 비교했을 때 더없이 한산했기 때문이다.
블란테는 새로운 수습 기사를 받지 않았다. 빈센트의 생각이었다. 지금은 전운이 흐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제국과의 대치. 폭풍 전야.
에단이 저택에 발을 들이자, 연무장 방향에서 훈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개중에는 단원들도 포함된 것 같았다.
‘노략질이나 하던 녀석들이 출세했군.’
기묘한 인연이었다. 도적 떼와의 조우가 이렇게 바뀔 줄은 몰랐다.
에단이 다시 발을 옮기려고 할 때, 익숙한 얼굴이 에단 앞에 나타났다.
“안녕.”
타미가 앙증맞은 손을 흔들었다. 에단은 주머니를 뒤졌다. 타미를 생각해서 준비해 온 큼직한 알사탕이었다.
작은 포장을 까고 드러난 알사탕의 영롱한 자태를 본 타미가 눈을 반짝였다.
“먹어라.”
피식 웃은 에단이 타미의 입에 알사탕을 넣어 줬다. 타미의 표정이 행복으로 물들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타미는 강자였다. 설령 마스터라고 할지라도 타미를 손쉽게 꺾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타미는 고작 큼직한 사탕 하나에 만족하고 행복해했다. 에단은 묘한 눈으로 타미를 바라보다가 손을 흔들었다.
“잘 지내고 있어라.”
“응.”
타미는 손을 흔들며 에단을 배웅했다.
에단이 복도를 지나 빈센트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평소라면 첸이 기다리고 있었겠지만, 첸은 아카데미에 있었다. 집무실 앞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에단은 본능적으로 문고리를 잡는 행위에 대해 거부감을 느꼈다.
무거운 기세가 느껴졌다. 이 문 너머에는 괴물이 도사리고 있었다.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에단은 그런 기분이 썩 달가웠다.
에단은 노크 없이 문을 열었다.
문 너머에는 빈센트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책상을 바라보던 빈센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빈센트의 동공은 깊고 서늘했다.
한기가 흐르는 눈빛 앞에 마주 선 에단이 입을 열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아버지.”
“…….”
일상적이면서도 기묘한 인사. 빈센트는 물끄러미 에단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잘 지내지도, 못 지내지도 않았다. 그래. 여기 찾아온 용무가 무엇이냐.”
“계획을 진행 중입니다.”
“계획이라…….”
빈센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에단은 묵묵하게 시선을 받아넘기고 있었다.
“조금 흥미가 생기는군.”
“안 그래도 그걸 설명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히죽 웃은 에단이 그간 해 온 일들과 지금 준비 중인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듣는 빈센트는 때대로 눈썹을 씰룩이기도, 탄성을 흘리기도, 놀라기도 했다.
표정 변화가 극적이지 않은 빈센트에게는 상당히 다양한 변화였다.
“……내 아들이지만 정말 제정신이 아닌 것 같군.”
빈센트는 기막힌 눈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에단은 태연하게 화답했다.
“망나니 출신이 어디 가겠습니까.”
“건방진 놈.”
빈센트의 핀잔에 에단이 웃음을 터트렸다. 빈센트도 잔잔하게 웃었다.
“그래. 계획은 순조롭게 준비되는 것 같고. 나에게 원하는 게 있더냐?”
“네, 원하는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빈센트는 에단을 응시했고, 에단은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전부터 생각해 오던 것들입니다.”
“…….”
“영지의 위치를 옮기시죠.”
“……불가능하다.”
“이유는 대강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리타분한 이야기로는 부족합니다.”
빈센트의 눈에 노기가 서렸다.
“영지를 옮기는 게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는 것이냐?”
한 글자씩 내뱉는 말에도 빈센트의 분노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에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를 리가요. 하지만 충분히 가능합니다.”
에단에게는 돈과 인력, 그리고 재원도 충분했다. 아카데미의 부지는 넓었다. 블란테를 옮겨 와도 충분히 수용이 가능할 만큼.
“영지민은 어찌할 생각이냐.”
아무리 아카데미의 부지가 넓다고 한들 영지민들까지 모두 수용할 수는 없었다.
블란테의 영지에는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았다. 영지 자체가 매우 척박했기 때문이다.
“터전을 옮겨 줄 생각입니다. 아카데미의 인근으로요. 그리고 다른 직업도 구해 줄 수 있습니다.”
블란테의 주 수입원은 세금 징수가 아니었다.
세금의 비율도 높지 않았을 뿐더러, 척박한 토지와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농산물의 전체적인 양과 품질도 변변치 않았다.
“저희는 전쟁을 준비해야 합니다. 또다시 이 같은 일을 되풀이 할 생각입니까?”
“…….”
빈센트는 입을 다문 채 에단을 응시했다. 고요한 동공에는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건방지구나. 그리고 또 같잖아. 알량한 힘을 얻었다고 네가 가주라도 되었다고 생각하는 게냐?”
빈센트가 기세를 끌어올렸다.
막대한 기운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난폭하고 광포한 기운이었다.
에단은 눈을 감았다. 그저 망부석처럼 서서 그 기운을 견뎌 내고 있을 뿐이었다.
전신이 덜덜덜 떨렸다. 이는 불가항력이었다.
누가 심장을 움켜쥐는 것처럼 강한 통증이 일며 등줄기에 소름이 질주했다.
빈센트의 기세를 이렇게 제대로 직면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에단이 감았던 눈을 떴다. 에단의 눈에서 섬뜩한 귀화가 피어올랐다.
에단은 피어를 끌어올렸다. 모든 생명체의 위에 군림하는 드래곤의 피어였다. 거기에 블랙 오우거의 피어도 더해졌다.
키에에에에―
내면에서 요사스러운 귀곡성이 들려온다. 죽은 나무가 내지르는 소리였다. 에단은 발버둥 치는 기운을 묶어 두지 않았다.
이질적이면서 광포한 기운이 서서히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압도적인 기세로 공간을 장악한 빈센트의 기운을 밀어냈다.
빈센트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는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에단이 강하다는 사실은 빈센트 또한 알고 있던 사실이다.
하지만 에단은 정석적인 루트가 아닌, 편법과 기연을 통해 성취를 얻었다.
인간의 한계라고 알려진 마스터라는 경지를 넘어선 빈센트는 알고 있었다. 편법을 통해 얻은 경지는 결국 얕을 수밖에 없다는 걸.
하지만 에단이 표출하는 기운은 빈센트의 고정관념을 산산이 부숴 버렸다.
에단에게서 뿜어진 기운은 빈센트의 영역을 밀어냈다.
파지직.
불똥이 튀었다. 유형화된 기운이 서로 맞부딪치며 으르렁대고 있었다.
치열한 대치가 지속되었다.
그 속에서 에단은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 정도면 건방을 떨 수준은 되지 않습니까?”
“…….”
빈센트는 침묵했다. 그는 에단의 나이를 알고 있었다.
고작 20세.
스물의 나이었다. 그 나이에 마스터의 벽을 뚫은 것도 믿기지 않는데, 감히 자신과 대적하고 있었다.
손이 근질거렸다.
당장 옆에 비스듬히 세워 둔 검을 뽑고 싶었다.
가주로서가 아닌, 아버지로서가 아닌, 무인의 호승심이 일었다.
씰룩.
빈센트의 입꼬리가 씰룩이는 모습을 에단은 놓치지 않았다.
“아버지, 표정 관리 좀 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허.”
정곡을 찔린 빈센트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허탈함과 후련함이 뒤섞인 표정을 드러냈다.
빈센트가 기세를 거뒀다. 에단도 마찬가지로 기운을 거둬 냈다.
“……네가 하는 말. 진심이더냐?”
빈센트의 물음에 에단은 웃음기를 지웠다. 이는 가볍게 대답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네, 저는 당하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빈센트를 바라보는 에단의 눈이 기이한 빛을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