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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263화 (263/398)

◈ [263화] 마룡 등장 (1)

“귀가 참 밝군.”

에르미온의 매서운 눈초리에 데아티르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럼 그렇게 큰 소리로 내 욕을 하는데 못 들을 줄 안 거야?”

“내가 언제 욕을 했다고 그러는 거지? 넘겨 집는 게 과하군.”

“허이구, 엊그제까지만 해도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애새끼가 언제 이렇게 건방져졌을까?”

“흐음…… 늙었다고 자랑하는 자는 또 처음인데. 왜, 장로 취급이라도 원하는 건가?”

한마디도 지지 않는 데아티르의 모습에 에르미온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나랑 해보자 그건가?”

살기 어린 목소리에 데아티르가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며 손을 들었다.

“나이를 먹었으면 그만한 인내심을 보여야 할 것 아닌가?”

“……하.”

에르미온이 숨을 토해 냈다. 데아티르는 느꼈다. 여기서 더 건드리면 진짜 돌이킬 수 없을 펼쳐질 거라는 걸.

“농담은 여기까지 하고, 이만 본론으로 돌아가지.”

“농담? 내가 지금 농담을 하는 것 같아?”

에르미온의 주위에 붉은 기운이 서린 마나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데아티르가 섬뜩한 표정을 지었다.

“그만. 내가 잘못했으니, 거기까지 하지.”

“……흥.”

에르미온이 콧방귀를 뀌며 흘리던 마나를 회수했다. 에르미온이 데아티르를 노려봤다.

“설마 그 짓거리에 동참하려고 온 거야?”

“줄을 타는 거지. 너도 그때 봤을 것 아닌가? 드래곤과 싸우던 그자의 모습을.”

데아티르가 지칭하는 자는 에단이었다. 에르미온이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르미온도 자리에 함께했던 자인 만큼 기억하고 있었다.

“그 나이에 그 정도 경지에 올라선 자를 본 적이 있는가?”

“있긴 하지. 조금 결은 다르지만.”

데아티르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고, 에르미온은 덤덤하게 대꾸했다.

“아아…… 그렇긴 하군. 비슷한 자가 한 명 있지.”

“그래.”

데아티르는 에르미온이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크리스토.

현 제국의 1황자.

그는 진정으로 괴물이라는 칭호가 부족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대면하는 순간 압도되는 느낌.

그건 일신의 무력만으로 도달할 수 없는 경지였다.

그자는 황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분명 대륙을 집어삼키려 들 것이다.

“하지만 나는 황자가 아닌, 그 남자에게 배팅하기로 결정했어.”

데아티르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뜨뜻미지근한 눈길로 데아티르를 바라보던 에르미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뭐 마음대로 해라.”

“그렇게 말하는 너도, 결국 이곳에 있지 않나? 조금…… 아니, 꽤나 의외인데. 설마 마탑의 에르미온이 아카데미에서 교수 노릇이나 하고 있다니. 꽤나 적성에 맞나 봐?”

“……그 입 닥쳐. 나도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니까.”

“큭큭, 그래.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그래서 그 말도 안 되는 계획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시간이 없어.”

자그마치 드래곤의 부활이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소요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마법사로서는 즐거울 수 있는 일이었지만, 에단은 결과를 촉구할 것이다.

“순례는 내일 시작돼.”

아직 추정 사항이지만 기한은 보름이 남지 않았다. 에단은 대륙에서 가장 큰 도시에서 일을 벌일 예정이었으니까.

그 얘기를 설명하자 데아티르의 입이 벌어졌다.

“……지금 그게 가당키나 한 얘긴가?”

“……그러니까 내가 시간이 없다고 했잖아.”

“잠깐, 설마 진행도는 지금…….”

“제로.”

“무슨…….”

데아티르가 기막힌 표정을 지었다. 당장 작업에 착수해도 부족할 판에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할 수 있을지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

그런데 기간은 다가오고, 작업은 전혀 진행이 안 되고 있었다.

“솔직히 우리 둘만으로는 힘들어.”

“……가문에서 인력과 재료를 준비해 올 거야.”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거 너도 알잖아.”

에르미온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우린 지식이 없어. 뭐, 너도 그렇고 다 쉬쉬하지만 흑마법에 어느 정도 조예는 있겠지. 하지만 고작 그걸로? 그 수준의 지식으로 계획이 가능할 것 같아?”

에르미온의 지적에 데아티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면 도대체 어쩌자는 거지? 처음부터 불가능한 계획이었다는 소리를 하는 건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는 하지. 내가 말했잖아. 인력이 부족하다고. 지금 그 녀석이 인력을 데리고 온다고 하고 있어.”

“……인력? 그거라면 어지간한 수준으로는 별 의미가…….”

데아티르와 에르미온의 표정이 동시에 굳었다.

마나의 파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이트 마법진이 가동되면서 흘러나오는 마나는 익숙한 기운이었다.

단순히 마법진의 발동으로 이 둘의 표정이 굳은 것은 아니었다.

에단과 함께한 자의 기운이 말도 안 될 정도로 섬뜩했기 때문이다.

“……대체 뭘 데리고 온 거지?”

데아티르가 침음을 삼켰다.

느껴진 기운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교수실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어, 왔습니까? 사람 데려왔으니까 빨리 시작하시죠.”

에단의 재촉에 뒤편에 서 있던 오르번이 피로의 찌든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 * *

시간이 없는 탓에 작업은 바로 시작되었다. 성녀의 순례는 내일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벌써 대륙이 떠들썩했다. 수백 년 만에 나타난 성녀의 순례였다.

민심은 종교에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 그런 그들에게 성녀의 존재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매우 신성하고, 고결했다.

에단은 대륙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선사해 줄 생각이었다.

곧장 한니발에게 연락을 취했다. 재료의 수급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에단은 오르번의 말을 떠올렸다.

― ……진짜 드래곤이군. 심지어 안면이 있는 녀석이야.

― ……드래곤과 안면이 있었다고요?

에르미온이 경악한 표정으로 오르번을 바라봤다. 오르번은 한눈에 보더라도 심상치 않은 사람이었다.

오르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쓸쓸하고 착잡한 눈빛으로 드래곤의 비늘을 쓰다듬었다.

한참을 묵묵히 드래곤을 바라보던 오르번이 에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이 녀석의 최후는 어땠지?

에단은 솔직하게 대답해 줬다.

― 원해서 보내 줬다.

딱히 처연하거나 그러지는 않은 최후였다. 담담한 끝.

그것에 대해 설명하자 오르번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대로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 ……그래, 그거면 된 거겠지.

오르번은 드래곤의 시체를 부활시킨다는 행위에 거부감을 느낄 법도 했지만, 태연하게 움직였다.

― 재료가 필요하다. 적은 재료는 아니야.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석을 봐야겠어. 어느 정도 크기의 마석이지?

에단은 오르번을 이끌고 마석을 저장해 둔 창고의 문을 열었다. 오르번의 탄성을 내뱉었다.

―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그럼 다른 재료들을 말해 주겠다. 개중에는 같이 작업할 녀석들이 가지고 있는 것도 있을 테니 알아서 준비해 주도록.

에단은 오르번이 읊은 것들을 모두 옮겨 적어, 그대로 한니발에게 전달했다.

필요한 재료를 확인한 한니발은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전부 긁어모아. 최대한 빨리. 시간은 얼마나 소요되지?”

[모레…… 늦어도 그 기간 내에 마치겠습니다.]

에단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늦어. 내일. 내일 내에 전부 가져와. 돈은 아끼지 말고.”

[……알겠습니다.]

“못하면 네가 뒈지는 거야.”

에단은 일방적으로 통신을 끊었다. 그러고는 헨리와 르니엘에게 찾아갔다.

둘의 이야기를 전달하니 오르번이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 세계수의 수호자라…… 꽤나 도움이 될 것 같은데. 혹시 부를 수 있겠나?

― 당장 데려오지.

에단은 쿨쿨 자고 있는 헨리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아주 정신없이 자고 있는 헨리의 모습을 보자 묘하게 기분이 안 좋았다.

고까운 눈초리로 헨리를 노려보던 에단이 헨리의 뒷덜미를 그대로 붙잡아 들어 올렸다. 헨리가 에단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에?”

잠에 취한 헨리가 덜 뜬 눈을 비비적거렸다.

“술 냄새가 진동하는군. 내가 개고생을 할 동안 아주 살판났네. 좋냐?”

에단이 사납게 웃자, 헨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하, 긴장돼서 저도 모르게…….”

“그럼 닥치고 따라와.”

에단이 르니엘과 헨리까지 작업실에 몰아넣었다. 다음 날 한니발이 직접 재료들을 가지고 도착했다.

에단은 재료를 들고 한창 작업 중인 창고의 문을 열었다. 창고 안에는 해괴망측한 마법진이 가득 그려져 있었다.

그 웅장하고도 위압되는 광경에 어지간한 건 보고 놀라지도 않는 한니발의 입이 쩍하고 벌어졌다.

“……이, 이건…….”

“아직 놀라긴 일러. 더 흉악하고 압도적인 모습으로 도시의 상공을 유영할 테니까.”

에단이 사납게 미소 지었다. 한니발은 벙 찐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니발이 가져온 재료는 마차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이곳에 떨어진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하는 에단이 보기에도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재료 가져왔어.”

“거기 두도록.”

오르번은 에단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오르번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에르미온과 데아티르는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에단이 온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르니엘은 정령을 소환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헨리는 구석에 짱 박혀서 낑낑거리고 있었다.

이쪽 분야에 있어서 문외한이라고 할 수 있는 에단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흐음…… 기틀은 대충 잡은 것 같고, 이제 용도에 맞게 재단해야 하는데…….”

“바로 준비하지.”

에단이 가문의 야장들과 드워프들의 대장간에 찾아갔다.

아카데미의 대장간은 여태껏 유례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도련님?”

“부탁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또 부탁을 드리려 왔습니다.”

에단이 멋쩍은 표정을 짓자, 늙은 대장장이는 은은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평생을 망치질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신경 쓰지 말고 말씀하시죠.”

“네.”

에단이 고개를 끄덕이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드래곤의 사체에 대해서는 가문의 대장장이들도 접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이거…… 오히려 감사를 드려야 할 건 저희인 것 같습니다.”

타버린 재 같던 늙은 대장장이의 동공이 열의로 불타올랐다.

“드래곤이라…… 제가 직접 손을 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영광인지 모르겠군요.”

“뭐라고? 드래곤?”

다른 장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드워프들도 관심을 가지며 고개를 내밀었다. 드워프들은 에단을 보자 흠칫 몸을 떨었다.

드워프들의 반응을 지켜본 에단은 씨익 웃으며 드워프들을 향해 손짓했다.

“부탁할 게 있어.”

에단은 순수하게 부탁이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드워프들이 해맑게 웃으며 에단을 향해 다가갔다. 그들 또한 장인이었다.

장인은 괴팍하지만 욕심도 많은 자들이었다. 드래곤이라는 엄청난 재료를 만질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에단은 본인이 아는 최고의 장인들을 창고에 밀어 넣었다.

창고의 문을 열자, 드워프들과 장인들의 입이 쩍하고 벌어졌다. 그들은 흥분에 젖은 얼굴로 창고 안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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