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2화] 흑마법사 오르번 (2)
인간이 얻을 수 없는 힘.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에반은 의심의 눈초리로 오르번을 바라봤다.
저 말이 사실일까?
에단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오르번이 에단에게 거짓을 말할 이유는 없었다.
‘만일 이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모든 의문이 해소된다. 페온이 에단을 기다리고 있던 것도, 죽은 나무가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가지 않은 것도.
‘원작 주인공이 죽은 나무를 얻었을 때도.’
에단보다 훨씬 뒤늦게 그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녀석과 나 사이의 공통점은.’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것.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죽은 나무에 관한 정보는 극히 드물었다. 죽은 나무의 힘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죽은 것에 기원한 모든 것을 흡수하는 능력.
에단은 그 사기성을 몸소 체감했다.
가장 먼저 죽은 나무를 습득해 수많은 위기를 넘겨 왔다.
만일 죽은 나무를 늦게 얻었다면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 내가 늪지에서 잠적한 사이 다른 이변이 생겼을 수도 있겠지.”
오르번은 매우 피로하고 지친 눈으로 에반을 바라봤다.
“그래서, 이런 음습한 곳까지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지? 미리 말하지만 나는 현세에 관심이 없어.”
“원래 부탁을 하나 하러 왔는데…… 물어볼 게 생겼네.”
“물어볼 것이라…… 그만한 대가는 준비했나?”
흐릿하던 오르번의 동공이 기이한 빛을 품었다. 에단이 피식 웃었다. 이제야 좀 흑마법사다운 모습이었다.
에단이 한쪽 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 손에 회색의 마나가 불꽃처럼 타올랐다. 오르번의 눈이 불처럼 타오르는 마나에 고정되었다.
“이거에 대해서 좀 알려 주지.”
에단은 마법사라는 족속을 알고 있었다.
광기 어린 탐구. 탐구를 위해서라면 영혼도 바치는 게 바로 마법사라는 족속이었다.
그리고 에단의 생각에 그건 흑마법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회색의 마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오르번이 입을 열었다.
“……필요 없다.”
“뭐?”
“그것이 무엇이든…… 별로 필요 없다는 소리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알려 주도록 하지. 하지만 도움이 필요하다면…… 거절하겠다.”
오르번이 바싹 마른 미소를 지었다. 에단은 오르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너, 알고 있었구나.”
에단은 직감했다. 이 녀석은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지하 녀석들이 올라올 거란 사실. 알고 있었지?”
“…….”
오르번의 표정이 굳었다. 에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런 곳에 처박혀서 잠적하고 있던 건가? 놈들이 두려워서?”
“……네가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이는 거지?”
오르번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무거운 중압감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에단은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너보다는 잘 알 것 같은데?”
에단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리고는 묶어 뒀던 기세를 방출시켰다.
쿠구구구구구.
실내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요동쳤다. 오르번의 눈이 가늘어졌다.
“교만이 과하군. 설마 이곳에서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곳은 오르번의 본거지였고, 그의 둥지였다.
그런 말이 있었다.
마법사의 성에는 발을 들여서는 안 된다.
설사 본인의 실력에 자신이 있더라도, 마법사의 성에 발을 들인 이상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에단은 물러서지 않았다. 알 게 뭐란 말인가?
에단은 사납게 미소 지으며 죽은 마나의 힘을 끌어올렸다. 요사스러운 귀곡성이 머리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스스스―
주변이 일렁인다. 오르번과 에단 사이에 대치가 시작되었다. 둘은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매서운 눈빛으로 에단을 노려보던 오르번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대체 나에게 원하는 게 뭐길래 이렇게 힘들 게 하는 거지?”
“별건 아니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도와줄 테니. 빨리 말이나 하거라.”
“그래?”
에단의 서늘한 미소에 오르번은 섬뜩함을 느꼈다. 벌써부터 불길했다.
“용사를 만들 거야.”
“……뭐?”
이해가 안 되는 소리에 오르번은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못 들었어? 용사를 만들 거라고.”
“용사를…… 만든다고?”
“어.”
씨익 웃은 에단이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드래곤의 사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오르번의 눈이 커졌다.
“……드래곤을 잡았다고?”
“뭐, 알고 있던 것 아니었어?”
에단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오르번을 바라봤다.
드래곤이니 뭐니 해서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오르번은 기막힌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계속 말해 보게.”
에단이 다시 계획을 설명했다. 이제 여러 번 설명하는 게 지겨워서 최대한 담백하고 간결하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던 오르번의 눈이 점점 커졌다.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기는 했지만, 결국 에단의 계획이라는 것은 드래곤의 사체로 드래곤을 부활시킨 뒤, 대륙을 혼란에 몰아넣겠다는 소리였다.
“……자네는 악마인가?”
“악당이 되어야 할 때도 있는 법이지.”
에단이 히죽 웃었다.
악역은 익숙했다. 격투기 시절에도 수많은 트레쉬 토킹과 도발을 일삼던 에단이다.
흑인 선수와 싸울 때면 인종차별부터 시작해서, 각 국가의 모욕도 거리끼지 않았다.
류태신은 철저한 악역으로 군림했다. 사람들은 욕하고 비난하면서도 류태신의 시합에는 관심을 가졌다.
류태신과 시합하면 비록 패배하더라도 스타로 떠오르니, 모든 선수들은 류태신과의 시합을 갈망했다.
그렇기에 악역은 익숙했다. 그를 통해 이득을 취할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에단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닌, 진짜로 악역이 익숙했다.
에단의 진지하면서도 흔들림 없는 눈빛을 본 오르번이 침음을 흘렸다.
“흠, 그래. 확실히 흥미로운 말이긴 하군. 드래곤의 시체를 언데드화 한다라……. 자네가 원하는 건 단순한 본 드래곤 수준이 아니겠지?”
“당연한 거 아니야?”
에단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고작 그딴 걸 목표로 삼았으면 여기까지 찾아오지도 않았다.
“최대한 그럴듯하게. 공포와 두려움이 전염되고, 감히 대적할 생각이 들지 않게끔.”
에단이 사특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런 놈이 등장해야 하거든.”
오르번은 상상했다. 그는 오래된 흑마법사였다.
모두가 두려워할 만한 힘을 가지고, 진심으로 대륙을 혼란에 빠트리려 든다면 능히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에단은 그것을 뛰어넘었다.
에단은 단순히 혼란에 빠트리려는 것이 아닌, 구도자를 만들려고 들었다. 그것도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이 어찌 오만한 생각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 계획이 현실에서 이루어진다면 모두가 전율할 것이다.
오르번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에단은 오르번의 표정 변화를 읽었다.
“역시 마법사는 다 똑같다니까.”
“으스대지 말거라. 그 말은 실현되기 어려우니까. 그걸 하기 위해서는 우선 말도 안 되는 마나가…….”
에단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적당한 돌멩이를 주웠다. 그러고는 그 안에 마나를 주입했다.
스스스―
에단의 손에서 순식간에 마석이 탄생했다.
“그걸로는 부족…….”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 죽은 마나로만 이루어진 마석이 필요한 거면 그것도 있어.”
“어중간한 크기로는 엄두도 낼 수 없을 거다.”
“누가 어중간하대? 대충 집채만 해.”
오르번의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대체 이놈은 뭐란 말인가?
“……나는 오래된 흑마법사지만, 나 혼자서는 온전히 드래곤의 사체를 다룰 수 없어. 단순히 본 드래곤 정도라면 가능하겠지만…….”
“인력도 충분해. 드워프도 붙을 거고, 아큐르의 가주와 마탑의 탑주도 서포트할 거야. 그쪽은 그냥 할일에만 집중하면 돼.”
“…….”
오르번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더는 지적할 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밖에 궁금한 게 많긴 하지만…….”
오르번은 지식이 많았다. 에단이 찾아다니던 것들에 대한 지식이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성녀의 순례는 곧 시작될 것이다. 드래곤의 사체를 원하는 대로 만드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소요될지 몰랐다.
“바로 출발하자고.”
“……지금 말인가?”
“어, 말했잖아. 시간이 없다고.”
“대체 얼마나 촉박하길래…… 나도 준비가…….”
“대충 물건들은 다 있을 거야.”
에단의 재촉을 못이긴 오르번이 몸을 일으켰다. 휘적거리는 발걸음이 매우 피로해 보였다.
“……정말 막무가내로군.”
“칭찬으로 들을게.”
오르번은 타박하듯 말했다. 한쪽 손에 든 낡고 오래된 지팡이를 쿵, 하고 내려찍자 주변에 파문이 일었다.
우웅 거리는 공명 소리와 함께 바닥이 찰흙처럼 일렁거렸다.
별로 좋은 감각은 아니었다. 마치 게이트 마법을 이용할 때 느껴지는 느낌이라고 할까나.
에단과 오르번이 그대로 천장을 향해 솟구쳤다. 에단은 고개를 치켜들고 위를 바라봤다.
강한 강제력이 느껴졌다. 몸이 천장을 향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쑤욱.
바닥에서 뽑히듯 나온 에단과 오르번이 주위를 둘러봤다. 에단이 나타나자 까마귀가 반기듯 주위를 선회하며 날았다.
까악―! 까악―!
에단은 질척이는 바닥에 착지했고, 오르번은 두둥실 부양하고 있었다.
“방향은 어느 쪽이지?”
에단이 몸을 돌렸다. 쑥대밭이 된 정글이 에단이 지나온 길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곳을 본 오르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떻게 자네도 이렇게 이동할 터인가?”
허공에 떠 있는 오르번이 물었다. 에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건 별로 유쾌한 감각은 아니었다.
“그냥 두 발로 뛸게.”
아직 에단의 다리는 건강했다. 피식 웃은 오르번이 말했다.
“그럼 자네가 먼저 출발하게.”
“안 그래도 그럴 참이야.”
에단이 씨익 웃었다. 드디어 이 빌어먹을 늪지대에서 탈출할 시간이었다.
* * *
에단이 떠나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법진이 가동되었다.
이제는 마법진의 가동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마법진 위에 등장한 인물을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법진 위에 등장한 인물은 데아티르였다.
마법 명가 아큐르의 주인이 등장한 것이다. 아큐르는 자연스럽게 발을 옮겨 한 학생에게 물었다.
“하나 물을 게 있네.”
학생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학생이 당황하며 자신을 가리켰다.
“어…… 저요?”
“혹시, 에르미온이라고 알고 있나?”
“아, 교수님은 지금 수업 중이 아니시니……. 교수실이라도 알려 드릴까요?”
교수님이라는 말도, 교수실이라는 얘기도 썩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피식 웃은 데아티르가 말했다.
“그래 주면 고맙겠네.”
“아……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가시면…….”
학생의 설명을 따라 데아티르가 이동했다. 무사히 교수실 쪽으로 따라가자 익숙한 마나의 잔향이 느껴졌다.
주변 곳곳에 펼쳐져 있는 마법진의 흔적에 데아티르가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성격하고는.”
은은한 웃음기를 머금은 데아티르가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데아티르를 노려보고 있는 붉은 머리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너 방금 뭐라 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