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화] 흑마법사 오르번 (1)
“진짜 기분 더럽네.”
에단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손으로 건들기 싫어서 칼을 들었지만 주변에까지 튀는 체액들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확 그냥 엎어 버려?”
늪지에서 출몰하는 몬스터들은 하나같이 흉측한 외향을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비위가 상했다. 꾸물거리고 질척이는 체액에서는 악취가 느껴졌다.
에단이 발밑을 바라봤다.
마법 처리가 된 장화였지만, 늪지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발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촉감이 더없이 불쾌했다.
‘슬슬 도착은 한 것 같은데.’
까악―!
에단이 고까운 눈으로 까마귀를 바라봤다.
원래 까마귀 새끼가 저렇게 띠꺼웠나?
진심으로 아니꼬웠다.
까마귀는 어느 순간부터 안내를 끝냈다. 딱히 그 이후로는 부리로 털만 관리할 뿐,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쟤한테 문제가 있는 게 아닌 이상 목적지가 여기라는 소린데…….’
에단의 눈이 가늘어졌다.
울창한 밀림, 발목을 붙잡는 늪, 그리고 쌓여 있는 몬스터들의 사체.
산처럼 쌓여 있는 죽은 몬스터들은 지금 천천히 늪지에 삼켜지고 있었다.
“후우.”
대충 느낌이 왔다. 그래, 숨어서 안 나오겠다 이거지?
에단의 눈이 번뜩였다.
“그럼 나오도록 해야지.”
에단의 목소리가 한기를 머금었다.
척.
에단이 칼자루를 붙잡았다. 이제는 꽤나 익숙해진 중단세를 취했다.
우우웅!
에단이 움켜쥔 칼이 비명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에단이 입꼬리를 올렸다.
‘어디까지 되나 한번 보자고.’
문득 궁금했다. 에단이 내면을 관조할 때면 느끼는 것이 있었다.
마나의 순환.
처음에는 이질적이라고 여겼다. 마나와 죽은 마나. 둘의 기질은 상극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진짜 상극이었으면 나는 뒈졌겠지.’
에단의 체내의 잠재되어 있는 끝없는 마나의 바다는 천천히 순환하고 있었다.
끝이 가늠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에단은 극소량만을 사용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장갑을 앞세우고.’
과도한 마나의 방출로 인한 피해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게 두려웠더라면 애당초 시도조차 안했을 것이다.
꽈드득!
칼자루가 미약하게 으스러졌다. 에단이 검에 마나를 주입시켰다.
우우우우웅!
검이 미친 듯이 공명했다. 파문이 일었다.
때마침 바람이 불며 숲이 흔들렸다. 스산한 바람이었다.
“이래도 안 나온다 그거지?”
에단의 유리알 같은 눈이 광기에 젖었다. 그리고 쌓아 뒀던 마나를 방출하려던 순간.
“멈추어라.”
의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에단이 숨을 토해 내며 내뿜으려던 마나를 회수했다.
바람은 불지 않았지만 나무들이 흔들렸다. 이질적이고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물씬 풍겼다.
“나를 불러내기 위해 늪지를 지워 버릴 생각이었나?”
노기가 서려 있는 목소리였다. 에단은 빳빳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 안 나오면 진짜 지워 버리려고 했어.”
“……허.”
황당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에단은 칼자루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바뀌지 않는데? 빨리 나오지. 나 시간 없어.”
“……내가 늪을 지워도 나오지 않는다면 어쩔 속셈이지?”
되도 않는 도발에 에단이 코웃음을 쳤다.
“그러면 어디 한번 지워 볼까?”
에단의 미소는 오만했다.
들려오던 목소리가 멎으며 늪지가 고요에 빠졌다. 대답을 기다리던 에단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가 말했지. 시간 없다고. 대화할 생각 없으면 지금 말해.”
“……생각이 없다면 그냥 돌아갈 것인가?”
“미쳤냐?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게. 분풀이는 하고 가야지.”
“…….”
에단이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상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포악한 자로군.”
“나도 알아.”
에단은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이건 그의 천성이었다.
“후우.”
깊은 한숨 소리와 함께 늪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에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부글대던 늪은 곧 형체를 갖췄다.
사람만한 형체가 된 그것에게서 늪지가 걷히기 시작했다.
에단의 눈살이 점점 찌푸려졌다. 정말 비위가 상하는 광경이었다.
“……네가 불러 놓고 그런 무례한 표정을 짓는 게 맞는 것이냐?”
“그러면 그런 데서 나오지 말든가.”
늪지에서 나온 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길고 칙칙한 검은색 로브를 입고 있는 자였는데, 한쪽 손에는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낡은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에반이 그를 위아래로 훑어본 뒤 물었다.
“오르번, 맞나?”
오르번은 에단을 응시했다. 기이한 눈빛이었다.
한참을 응시하던 오르번의 동공이 가늘게 떨렸다. 그러더니 초연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같이 온 까마귀를 보아하니 그 꼬맹이인가 보군…….”
그가 천천히 머리를 눌러쓴 후드를 벗었다. 그러자 생각보다 의외의 모습이 나타났다.
회색빛이 감도는 머리를 지닌 평범한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분명 에단이 전해 듣기로는 굉장히 오랜 기간을 살아왔다고 들었건만, 겉으로 보이는 오르번의 외향은 굉장히 젊어 보였다.
“왜? 이런 모습이라 조금 놀랐나?”
오르번이 피식 웃으며 묻자 에단이 정색했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혼자 착각이야.”
“……그 말투 좀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건가? 조금 불쾌하군.”
생각보다 정론으로 나오네.
에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깔끔하게 수긍했다.
“실수. 원래 천성이 그래서 좀 양해 좀 해 줘. 그러게 왜 자리를 잡아도 이딴 데로 잡았어.”
“…….”
오르번은 기막힌 표정으로 에단을 응시했다. 에단은 뻔뻔하게 오르번을 마주봤다.
“후우, 일단 자리를 옮기도록 하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부글부글.
늪지가 다시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에단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건가?”
“뭘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르번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 맞을 것 같군.”
쩌억!
늪지가 갈라졌다. 마치 짐승이 아가리를 벌린 것 같은 광경이다. 끝이 안 보이는 무저갱 같은 바닥이 드러났다.
에단은 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염병, 진짜.”
쑤우욱.
끝도 없이 바닥을 향해 빨려 들어간다고 생각한 순간.
에단은 어딘가에 착지하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에단이 눈살을 찌푸렸다.
주변은 완전히 새까맸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짙고 검은 암흑에 잠식당한 것 같았다.
죽은 나무의 힘을 흡수한 이후로 에단에게 어둠은 장막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곳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질적이면서도 불쾌한 감각이 들었다. 마치 누가 고의적으로 감각을 흩트려 놓은 것 같았다.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스스스―
에단이 천천히 죽은 나무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주위에 깔린 어둠이 일렁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멈춰 줬으면 좋겠군.”
그때 에단의 귀에 오르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단은 그의 요청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화르륵.
순간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전신을 휘감고 있던 이질적이면서도 불쾌한 감각은 사라졌다.
그렇게 드러난 공간은 어떠한 방 같았다.
화려하거나 고급스럽게 꾸며진 방은 아니었지만, 테이블과 의자, 책과 테이블, 그리고 작은 침대가 놓여져 있는 방이었다.
주변이 밝아지자 에단이 시큰둥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자칫하면 이 공간 자체가 사라질 뻔했네.”
오르번에 목소리에는 불쾌함이 서려 있었다. 에단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 부분은 사과하지. 나도 처음 겪는 상황이라 조금 당황했어서 말이지.”
“…….”
오르번은 여전히 못마땅하다는 시선으로 에단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던 오르번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던 오르번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깐, 자네 설마…… 인간인가……?”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에단이 눈을 끔뻑였다. 하지만 오르번의 심각한 표정을 보아하니 농담처럼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인간인데 무슨 문제라도 되나?”
“……허.”
오르번이 탄식했다. 그러고는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비틀거렸다.
낡고 허름한 지팡이로 몸을 지탱한 오르번은 에단을 향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시선을 던졌다.
“확실한가? 아니, 네가…… 인간이라고……?”
“뭔가 점점 불쾌해지는데.”
에단이 눈살을 찌푸렸다.
침대에 털썩 걸터앉은 오르번이 실성한 것처럼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오르번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그러고는 에단을 향해 다시 한번 물었다.
“미한하지만 다시 한번 묻지. 자네는 정말 인간이 맞는가?”
“……그래, 맞아.”
“……나는 짧은 시간을 살아오지 않았네. 수많은 인간들을 만나 오고, 수많은 종족들도 만나 왔지. 하지만…… 자네 같은 자는 처음이군. 몸속에 존재하는 두 기운, 그리고 드래곤의 피어. 왼손의 그것은 타이탄의 유물인가?”
에단은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는 오르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오르번의 얼굴은 여러 감정들로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지치고 피로한 눈으로 에단을 응시했다.
“……나는 자네의 힘을 보고 놀란 게 아니야. 나는 어떤 일이든지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오르번이 말끝을 흐렸다. 그러고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힘겹게 말했다.
“속에 있는 그 힘은…… 죽은 나무인가?”
“그래.”
“……확실히 말해 두지. 죽은 나무의 힘은…… 인간이 지닐 수가 없는 것이네.”
오르번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에단의 눈썹이 씰룩였다.
“그게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야. 만일 내가 잘못 알았을 수도…… 아니, 그래도 불가능해. 그 힘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니.”
오르번이 손가락을 들어 에단의 왼손을 가리켰다.
“그 왼손도 마찬가지네. 타이탄의 유물, 그것은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건 역량의 문제가 아니네. 그들이 왜 사라졌는지 아나? 아니, 모르겠지. 타이탄과 죽은 마나, 그리고 세계수와 드래곤까지…… 허허.”
오르번은 마치 실성한 것처럼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로 오르번을 지켜보던 에반이 입을 열었다.
“그래. 뭐, 원래 이것들은 인간이 지닐 수 없는 것이라고 치자고. 그런데 말이야. 그러면 너는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했던 거지?”
“…….”
오르번이 고개를 들어 에단을 바라봤다. 기묘한 눈이었다. 초점 없이 흐릿하여 생기 없는 눈처럼도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깊이도 느껴졌다.
“드래곤,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
“뭐, 예를 들면 지하에 처박혀 있는 군주 새끼들이라도 떠올렸나?”
“……그래.”
오르번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곳에서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 나는…… 자네를 보고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네. 군주가 마침내 목적을 이뤘다고 생각했지. 그 꼬맹이를 이용해 나를 찾아낸 건 신경 쓰지 않아. 목적을 이룬 군주의 변덕은 그리 놀라울 게 아니니까.”
오르번의 눈빛과 표정은 달관한 자의 것이었다.
“그런데도…… 자네가 인간이라는 소리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