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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 격투천재-258화 (258/398)

◈ [258화] 성자 등장 (6)

에단에게서 상상을 초월하는 계획을 들은 에르미온이 입을 떡 하고 벌렸다.

“어때, 재밌을 것 같지 않아?”

씨익 웃으면서 말하는 에단을 보자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에르미온이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그 재수탱이는 어떻게 끌고 오게.”

“그건 네가 해야지.”

“……뭐?”

에르미온이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하지만 에단은 뻔뻔하게 나왔다.

“내가 나서는 것보다는 네가 더 쉬울 거 아니야. 보니까 둘이 사이도 좋던데.”

“……내가 그 개구리 새끼랑 사이가 좋다고? 너 혹시 눈이 좀 잘못된 거 아니야?”

“왜 티격태격하는 게 보기 좋더만. 그래도 둘이 서로 실력은 인정하는 거 아니야?”

“그 새끼보다는……!”

역정을 내던 도중 잠시 고민하던 에르미온이 찝찝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낫지…….”

“그러셔.”

조소를 머금은 에단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지 에르미온의 이마에 선이 그어졌다.

“됐고. 난 그 새끼한테 부탁하고 싶지 않으니까, 할 거면 네가 해.”

에르미온이 툴툴거리면서 말하자,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내가 하지 뭐.”

에단이 수정구를 들었다. 에르미온이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걸 여기서 한다고?”

“뭐 잘못된 거 있어? 네가 하라며.”

에단이 수정구에 마나를 주입했다.

수정구에 마나가 깃들면서 일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응답이 왔다.

푸른 머리를 단정하게 넘긴 신사, 데아티르였다.

― 안녕하십니까, 에단 씨.

“오랜만입니다.”

데아티르를 향해서는 경어를 쓰는 게 영 아니꼬운지 에르미온이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그런데…… 어떤 용무로 연락을 주신 거죠?

수정구 너머에 있는 데아티르가 묘한 시선으로 에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무리의 수장인 만큼 지금 블란테와 아카데미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제안 드릴 게 있습니다.”

― 호오…… 제안이라…….

데아티르가 에단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에단과 함께하면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 단편적으로나마 알게 되었다.

적어도 데아티르가 알고 있는 에단이라면 제안의 내용이 꽤나 큼지막할 것 같았다.

― 제안의 내용이 무엇인지 듣고 나서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아무리 에단의 제안이 구미가 당길 만한들 그 내용과 조건조차 듣지 않고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죄송한 일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말씀드리기 어렵겠네요.”

― ……예?

“당황스럽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뭐, 저라도 기가 찰 것 같은 소리네요.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이번 일은 기밀 유지가 필수라서요.”

― ……제 신용도가 그것밖에 안 될까요?

“그렇습니다. 이번 일은 대륙의 판도를 바꿀 겁니다. 당연히 아큐르도 선택을 강요받을 겁니다. 강물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을 테니까요.”

― …….

데아티르의 표정이 굳었다.

무례하면서도 광오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 발언은 에단이기에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지금 폭풍의 중심에는 블란테와 함께 에단도 있었으니까.

― ……그 말인즉, 진정으로 전쟁을 벌일 생각이시란 겁니까?

“상대가 원한다면 마다할 생각은 없습니다. 시작은 그쪽이 먼저 했으니까요.”

― 그렇다면…… 제가 제국 측에 붙는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찔러보듯 질문하는 데아티르를 향해 에단이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에는 적으로서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 …….

데아티르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졌다.

에단은 아직 어린 나이였다. 블란테의 후계자로 책정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노련한 카리스마를 보이고 있었다. 에단은 이미 장성한 사자였다.

데아티르는 에단이 어떤 방식으로 드래곤을 처치했는지를 잊지 않았다.

― 후우…….

데아티르가 복잡한 심경이 담긴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을 쓸어내듯 마른세수를 한 데아티르가 에단을 응시했다.

데아티르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 ……에르미온. 그녀는 어떤 결정을 내렸습니까?

그 물음에 에단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에르미온을 바라봤다.

에르미온이 조금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에단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아주 좋다고 같이 하자고 했습니다.”

“야! 이씨! 내가 언제……! 아…….”

순간 저도 모르게 역정을 내던 에르미온이 탄식을 흘렸다.

이미 수정구 너머에까지 그녀의 목소리가 전해졌는지 데아티르가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 ……큭큭,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계획에 저도 동참하죠.

“후회는 없겠습니까?”

― 지금 제의를 걷어차면 나중에 더 후회할 것 같아서요. 지금 연구 중인 드래곤의 사체도 탈이 날 것 같습니다.

“그거 잘됐군요. 이번에는 드래곤의 사체를 원 없이 만질 수 있을 겁니다.”

― ……그렇습니까?

“네, 아주 좋아하시겠네요.”

어딘가 스산한 에단의 웃음에 데아티르는 얼굴이 굳어지고 있었다.

“드래곤을 되살릴 거니까요.”

― ……뭐라고요?

에단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말에 데아티르는 차마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에단은 태연자약하게 계획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던 데아티르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 ……제가 지금 무슨 얘기를 들은 거죠?

“들은 그대로입니다.”

― 흑마법사랑도 연계하겠다고요?

“싫습니까?”

― 사실 소문처럼 마법사들은 흑마법사들을 그렇게 경멸하지는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마법사들은 대개 탐구심이 강한 녀석들일 뿐이라…….

“그런 것 같더군요.”

말을 하는 에단의 눈은 에르미온을 향하고 있었다. 에르민온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 ……문제는 따로 있죠. 대륙의 눈총과 신성 왕국의 존재 자체가…….

“그건 걱정할 필요가 사라졌네요?”

― 그렇게 됐군요.

데아티르가 헛웃음을 지었다.

에단의 목적 자체가 신성 왕국을 향해 엿을 먹이는 행위였다.

― 조금 분한 말이지만 사체를 조합해 되살리는 행위 자체는 저희들의 전문 분야가 아닙니다. 에르미온 또한 성격에 하자가 있을 뿐이지 실력은 인정하는 바이니까요.

“뭐, 인마?”

에르미온이 사나운 목소리로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에단과 데아티르는 에르미온의 목소리를 무시했다.

― 가능은 할 겁니다.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릴 뿐……. 계획대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촉박합니다. 지금 상황으로는 아무리 밤을 지새워도 준비 기간 내에 끝마칠 수가 없습니다.

“그렇군요.”

에단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이 또한 예상하던 바였다.

― ……잊힌 흑마법사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정보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마시죠.”

― 알겠습니다.

에단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데아티르가 미소를 머금었다.

“진행은 아카데미에서 할 생각입니다. 아, 다른 인원들을 데리고 와도 괜찮습니다.”

― 되는대로 준비해서 가도록 하죠.

“그리고 뭐…… 심심할 때마다 수업도 해 주면 더할 나위가 없겠군요.”

― ……하핫, 고려해 보겠습니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데아티르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통신이 끊어졌다. 고개를 돌리자 에르미온이 불퉁한 표정으로 에단을 노려보고 있었다.

“왜 저 새끼한테는 존칭을 쓰고, 나한테는 멋대로 지껄이는 거냐?”

“꼬우면 너도 나한테 존대를 하든가.”

“엿 같은 새끼.”

에르미온이 투덜거렸다. 피식 웃은 에단이 몸을 일으켰다.

“그럼 얘기도 끝났으니 슬슬 가 볼게.”

“……진짜 흑마법사를 구하려고?”

“어. 구한다고 했으니까.”

“경고하는데 그 새끼들 성격 쉽지 않다.”

“너만 할까.”

“이게 말끝마다! 후…… 농담하는 거 아니야. 쉽게 생각했다가는 물먹을 수도 있어.”

에르미온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따로 생각해 둔 게 있으니까 걱정 마.”

“……누가 네 걱정을 한다는 거야?”

“오냐.”

에단이 문밖으로 나섰다. 이제 준비를 할 시간이었다.

에단은 문밖으로 나온 뒤 곧장 메이와 한니발에게 연락을 취했다.

둘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에단의 연락을 받았다.

“얘기는 대충 들었지?”

― 네, 들었습니다. 다만 도는 소문이 별로 좋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걸 처리하는 게 네가 할 일이지.”

―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쪽은 어때? 직원들 긴장은 조금 풀렸나?”

에단의 물음에 한니발이 입을 열었다.

― ……애매합니다. 오히려 더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의문이 들었다. 기껏 신경 써서 든든한 호위까지 붙여 놨더니 왜 긴장이 풀리지 않는단 말인가.

― 그것이…….

잠시 주저하던 한니발이 입을 열었다.

― 호위가 너무 강해서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너무 압도적이고 잔혹한 모습을 보여서…… 멀리 떨어져서 걷는데도 무서워한다고 하네요.

“……그건 알아서 해.”

―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지. 메이, 부탁할 게 있어.”

― 편히 하명하시죠.

기품이 느껴지는 고상한 대답에 에단이 미간을 찌푸렸다.

“너 그 컨셉 아직도 안 버렸나?”

― …….

“됐고. 네 뒤에 달고 다니는 까마귀. 이제 슬슬 오픈하자.”

― 무슨 말씀이신지…….

“시치미 뗄 여유 없어. 지금 계획을 실행하려면 흑마법사가 필요하거든? 나는 연이 없으니 너희들이 물어 와야 해.”

에단의 말을 들은 메이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에단은 그녀가 놀라지 않도록 배려해 줄 생각이 없었다.

“시간이 촉박해. 그만큼 실력이 있는 흑마법사가 필요하고. 최소한 데아티르와 에르미온에 버금가는 실력이 있어야 해.”

― ……그 정도면 마스터급은 되어야…….

“계속 모르는 척 잡아 뗄 거야?”

에단이 이맛살을 구기며 말을 이었다.

“내가 말했잖아. 시간이 없다고.”

― ……죄송합니다.

“쯧, 짧게 설명해 줄 테니 잘 들어.”

에단이 구체적인 계획을 최대한 단순하게 설명했다. 역시 예상대로 한니발과 메이도 입을 벌렸다.

그만큼 에단의 계획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한니발과 메이는 생각했다.

이건 미친 짓이다.

전 대륙을 상대로 벌이는 사기극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하지만 더 무서운 점은 에단의 계획에서 실현 가능성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만일 무사히 성공하게 되면 대륙은 유례없는 혼돈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를 선점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메이와 한니발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걸로 얼마만큼의 이득을 챙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대충 알겠지? 뭐 지금도 행색만 할 거면 할 수 있어. 어차피 드래곤의 사체는 우리가 들고 있고, 드워프들이랑 대장장이들이 고생하면 그럴듯하게는 나오겠지. 하지만 그래서는 안 돼.”

에단이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이 떡하고 놀랄 정도의 진짜 ‘괴물’이 나와서 대륙을 쑥대밭으로 만들 때, 제대로 된 용사가 나오는 거라고. 알겠어?”

말을 하는 에단의 눈이 광기에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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