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 격투천재-256화 (256/398)

◈ [256화] 성자 등장 (4)

수정구를 품에 넣고, 몸을 일으켰다. 그 와중에도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숨소리부터 옷이 부딪치며 들리는 사락거림까지.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네이드는 에밀라에게 암살자의 것들을 알려 줬다. 네이드가 에밀라를 응시하자 그녀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천천히 발을 옮긴 두 사람은 미끄러지듯 그림자 속에 몸을 파묻었다.

오늘 죽일 이들은 총 여섯 명.

그들의 이름은 대륙에서 사라질 예정이었다. 어둠 속에서 두 전설적인 어쌔신의 눈이 번뜩였다.

* * *

“크흐! 죽이는군!”

로메도리 백작이 입가에 묻은 술을 닦아 내며 소리쳤다.

‘완전 남는 장사잖아?’

그는 최근 1황자에게 무언가를 전달받았다. 시기에 맞춰 아카데미를 깎아내리라는 것.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호응을 얻을 법한 일이었다. 아카데미를 적대하는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고, 신성 왕국과 제국도 매한가지였으니.

농노들에게 있어 신앙이란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성녀가 말을 내뱉으면 대충 거기에 맞춰 첨언한다.

그리고 평소 아니꼽게 봤던 블란테를 깎아내리면 보상으로 부와 여자와 술을 이렇게나 얻는다.

백작이라는 작위만 있었고, 남은 것은 보잘것없던 로메도리의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의뢰들이었다.

“크흐흐.”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좋군, 좋아!”

로메도리가 그렇게 소리쳤다. 그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훑고 지나갔다.

“좋아 보이는군.”

“……어?”

로메도리가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그의 목에 실선이 그어졌다.

피가 분수처럼 쏟아진다. 하지만 로메도리의 피는 네이드의 옷을 적시지 못했다. 그의 육중한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누구야!”

소란을 감지한 기사들이 난입했다.

기사들이 문을 열어젖히는 순간 에밀라가 움직였다.

스으윽―

이질적인 발걸음.

기사들의 열등한 실력으로는 감히 에밀라의 움직임을 좇을 수조차 없었다.

살아남은 기사가 비명을 질렀다.

에밀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가 마무릴 위해 움직이려 할 때.

푹―

네이드가 던진 단검이 기사의 미간에 꽂혔다. 기사의 몸이 그대로 쓰러졌다.

둘에게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 * *

에단은 적기를 기다렸다.

무턱대고 성자를 공표해 봤자, 신성 왕국의 대대적인 홍보에 비할 바는 없었다.

대륙 어디를 찾아보더라도 교회가 없는 곳은 없었으니.

그래서 에단은 생각했다. 모든 대륙민의 눈에 각인될 만한 적기를.

마침 메이를 통해서 전해 들은 소식이 있었다.

성녀를 공표한 신성 왕국이 최근 어떠한 행사를 준비한다는 이야기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성녀의 순례는 관례라고 할 수 있었으니.

신성 왕국 입장에서도 나쁠 일이 없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성녀의 존재를 널리 퍼트리는 게 좋았으니.

‘그다음 날.’

신성 왕국이 성녀를 공표하기 전날을 노릴 생각이었다. 당일에는 안 된다.

성기사들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드레이를 향해 검을 휘두를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 당연히 에단을 포함한 블란테도 움직일 것이고, 전면전이 될 것이다.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신성력을 흩뿌리는 성기사들이 막강한 존재라고 한들 상대는 블란테였다.

대인전에 있어서 블란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거기에 에단을 필두로 정예 인원들이 날뛰기 시작한다면 결과는 확실히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됐다.

민간인들의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게 분명했고, 드레이에게 쏠려야 할 조명이 옅어질 게 분명했다.

‘그래서는 안 되지.’

드레이는 성녀의 존재감을 찍어 누르고, 부패한 신성 왕국을 향해 칼을 뽑아 들 인물로 성장시켜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아카데미와 블란테는 철저한 뒷배경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나를 도발했으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에단이 몸을 일으켰다. 아직 날짜는 남아 있었다. 그 전에 몸을 풀 생각이었다.

* * *

“후우, 오늘도야?”

“그래.”

가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휴고는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토는 최근 휴고에게 대련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째서인지 이유는 알 것 같았다.

다른 이들과 달리 그는 평소처럼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그렇게 조급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가토의 기분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다들 분주하게 움직일 때 자신만 정체되는 기분이 들었을 테니.

하지만 휴고가 보기에는 가토도 충분한 성장을 하고 있었다. 점차 자신의 길을 찾아가며 검술과 전체적인 능력도 향상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눈치가 빨라진 휴고는 그런 생각을 했음에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가토가 목검을 꺼내 들었다.

굳어 있는 얼굴을 보니 뭔가 마음이 불편했다.

휴고가 한숨을 내쉬고 자세를 취하려고 할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뭣들 하고 있냐?”

둘이 있던 연무장에 에단이 씨익 웃으며 들어왔다. 그리고 에단과 함께 렉사르도 들어오고 있었다.

“도련님.”

휴고와 가토가 눈을 끔뻑이며 에단을 바라봤다. 에단은 둘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또 대련이냐?”

“네. 이렇게라도 단련을 해야 될 것 같아서요.”

딱딱한 가토의 어조.

말투에서부터 가토가 가지고 있는 불만이 표면 중에 드러났다.

‘새끼, 귀엽기는.’

에단이 피식 웃자, 가토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훈련이 필요하면 내가 좀 도와줄까?”

“도련님이요?”

“그래. 뭐 몸을 안 섞은 지도 오래됐고, 간만에 나도 몸 좀 풀지. 한 명이서 붙으면 너무 시시하니까, 두 명은 어때.”

에단의 말이 자존심을 건드렸던 것일까, 휴고와 가토의 볼이 꿈틀거렸다.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봤다. 그러고는 히죽 웃었다.

어딘가 음흉해 보이는 미소였다.

‘어쭈, 이것들 봐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미소를 머금은 휴고가 에단을 향해 말했다.

“후회해도 늦었습니다.”

“얼씨구, 후회시킬 자신은 있고?”

목검을 든 가토가 중단 자세를 취했다. 표정에 열의가 가득해 보였다.

기막힌 웃음을 흘린 에단이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고는 적당한 목검을 하나 들어 어깨를 풀었다. 그 모습을 본 가토가 묘한 시선을 보냈다.

“검을 쓰시려는 겁니까?”

“왜? 나는 쓰면 안 되나?”

“검을 쓰시는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어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써 보려고. 실력도 안 되는데 쓸 수는 없잖아. 그래도 블란테의 2남인데 가오가 있지.”

에단은 그동안 나름대로 검을 수련해 왔다. 렉사르가 에단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에단이 검을 쓰는 모습은 낯설었다.

후우―

숨을 토해 낸 에단이 목검을 치켜들고 자세를 갖췄다.

휴고와 가토가 긴장을 머금었다. 섣부르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빈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꿀꺽.

순식간에 분위기가 냉각됐다.

에단의 기세가 바뀌었다. 피어를 끌어 올린 것은 아니었지만,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피가 식는 기분이다.

‘침착해라.’

가토는 스스로 되뇌었다.

에단의 힘과 재능이 궤를 달리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토도 수련을 게을리 한 것은 아니었다.

눈치를 살피던 가토가 지면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휴고도 달려들었다. 앞과 뒤, 양방향을 동시에 노렸다.

에단은 눈을 굴리더니 경쾌한 발걸음으로 거리를 벌렸다. 가토가 예상했다는 듯 다시 한번 가속했다.

휘익―!

가토가 목검을 휘둘렀다.

빠르고 정확한 공격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가토의 목검은 에단의 목을 노렸다.

‘이걸 쳐 내면.’

휴고가 남아 있었다. 휴고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에단은 한 명이었고, 적은 둘이었다. 그렇다고 막대한 마나로 찍어 눌러서는 훈련이 되지 않는다.

에단이 히죽 웃었다.

파박!

에단이 가토의 검을 쳐 냄과 동시에 가토의 손목을 노렸다.

가토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빼냈다. 이대로 손목을 가격당하면 그대로 전투 불능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단의 노림수는 따로 있었다.

휘익!

손목을 노리는 척하며 에단이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뒤편에서 다가오는 휴고를 향해 뒤차기를 날렸다.

뻐억―!

통렬한 타격음과 함께 휴고가 입을 벌리며 멀어졌다. 그 모습에 거리를 벌렸던 가토가 이를 악물었다.

파밧!

가토가 다시 쏜살처럼 붙어 왔다. 가토의 목검이 휘몰아쳤다.

역시나 하나하나가 위협적이었다.

가토의 실력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했다.

에단의 눈이 빠르게 굴러갔다. 실초와 허초. 그걸 구분하는 게 진짜 실력이었다.

가토의 실력은 많이 늘었지만, 아직 상대를 완전히 속이는 것에는 미숙했다.

가토가 일부로 빈틈을 드러냈다.

‘앙큼한 녀석.’

에단은 가토의 작전에 속아 넘어가 줄 생각이었다. 일부로 그쪽을 노리고 달려가자 가토가 곧바로 반응했다.

후웅―!

가토가 사선으로 검을 휘둘렀다.

살벌한 파공성.

이미 예상하고 있던 에단은 상체를 젖혀 피해 냄과 동시에 가토의 손목을 노렸다.

‘제기랄!’

가토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건 피할 수 없었다.

맞으면 목검을 놓칠 테고, 그건 곧 전투불능을 의미했다. 가토가 낭패한 표정을 짓는 그때.

크르릉.

짐승의 소리가 들려왔다. 에단이 꽤나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피했다.

에단이 있던 자리에는 어느새 휴고가 있었다. 휴고는 샛노란 안광을 빛내며 에단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에단은 휘파람을 불었다.

“이거 꽤 놀라운데?”

진심 어린 감탄이었다. 대련을 자주해서인지, 아니면 사이가 돈독해서인지 둘은 꽤나 손발이 잘 맞는 편이었다.

씨익 웃은 에단이 다시 자세를 갖췄다.

“이제 진심으로 할 테니까 빨리 와 봐.”

휴고와 가토가 서로를 응시했다.

그러고는 전력을 끌어올렸다. 전신에 마나가 퍼지며 신체 능력이 대폭 상승했다.

이번에는 휴고가 먼저 에단에게 달려들었다. 에단의 깊고 차가운 눈이 달려드는 휴고를 똑바로 응시했다.

쉼 없이 몰아치는 휴고.

에단은 피할 건 피해 내고, 쳐 낼 건 쳐 내면서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때 에단의 눈이 휙 돌아갔다.

어느새 다가온 가토가 목검을 찔러왔다. 상체를 젖히며 피해 낸 에단이 몸을 빙그르 돌리며 목검을 휘둘렀다.

가토와 휴고가 몸을 낮게 숙여 에단의 공격을 피해 냈다.

“그럼 하나 걸려야지.”

한 바퀴 돈 에단이 몸을 숙인 휴고를 향해 무릎을 차올렸다. 휴고의 고개가 크게 젖혀졌다.

그 모습을 지켜본 가토가 이를 악물며 검을 휘둘러 왔다.

가토는 자신의 기량을 유감없이 뽐냈다. 하지만 에단의 눈은 가토가 휘두르는 검의 궤도를 모조리 파악하고 있었다.

적당히 상태를 봐주며 검을 쳐 내던 에단이 순간 빈틈을 포착하고 섬광 같은 찌르기를 시도했다.

순간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가토의 움직임이 멎었다. 식은땀으로 등이 축축해진 가토가 침을 꿀꺽 삼켰다.

어느새 에단의 목검은 가토의 목젖에 맞닿아 있었다.

“어떻게, 더 할래?”

에단이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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