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8화] 반격 (1)
에단은 이번에는 벨몬트를 찾아갔다.
벨몬트는 아직까지는 자신이 지내던 동굴이 더 편하다며 저택에 들어오지 않았고, 에단은 딱히 강요하지 않았다.
에단이 훌쩍 뛰자, 순식간에 벨몬트의 동굴이 나타났다.
뭔가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은 기분에 에단은 피식 웃으며 안에 들어섰다.
쿠룩?
동굴 안에 들어서자 근육질 고블린 몇 마리가 에단을 바라봤다. 에단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지 경계하지 않고 순순히 길을 텄다.
에단은 이전보다 상당히 쾌적해져 있는 동굴을 거침없이 나아갔다.
“……에단 님?”
인기척을 느낀 벨몬트가 어둠을 헤치고 에단 앞에 나타났다.
에단이 웃으며 손을 들었다. 벨몬트의 창백한 얼굴은 기름이 떠서 반들거렸다.
“컨디션 좋나 보다?”
“……하하.”
벨몬트가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가 붉은 입술을 핥았다. 아직도 에단의 피 맛이 머릿속에서 잊히지가 않았다.
‘이거 자칫하면…….’
욕망에 눈이 뒤집힐 수도 있는 위험한 감각이었다.
벨몬트의 눈이 에단의 눈과 마주쳤다. 순간 벨몬트의 눈이 움찔거렸다.
“왜 눈을 떨어?”
“아, 아닙니다.”
“그래? 흠…….”
에단이 턱을 매만졌다.
뭔가 미심쩍었지만 벨몬트는 황급하게 화제를 옮겼다.
“하, 하하…… 여기까지 오신 이유가 있으십니까?”
“듣고 싶은 게 있어서.”
“……듣고 싶은 거 말씀이십니까?”
“어, 일단 안으로 좀 들어가자.”
동굴에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꽤나 널찍한 공간이 나왔다.
묘한 감흥이 들었다.
이곳에서 에단은 죽은 나무의 힘을 얻고, 페온을 조우하게 되었다.
죽은 나무를 알고 찾아온 것이었지만, 페온의 존재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들을 기반으로 에단은 엄청난 성취를 이뤘다.
에단이 묘한 감상에 젖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자, 벨몬트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앉으시겠습니까?”
에단의 끄덕임에 벨몬트가 의자와 테이블을 준비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지만, 꽤나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것들이었다.
“이런 건 또 어디서 구해 왔어.”
“하하…….”
벨몬트가 멋쩍은 미소를 흘렸다. 피식 웃은 에단이 의자에 앉았다. 벨몬트의 이미지는 많이 달라졌다.
처음 봤던 그 맹렬하고 권위적이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고생했다.”
의자에 앉은 에단이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벨몬트는 묘한 시선으로 에단을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사실 그렇게 큰 기대는 안 했어. 알다시피 첫 조우가 좋지는 않았잖아?”
“그건 그렇죠.”
벨몬트는 피식 웃으며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녀석은 잘 있습니까?”
“뭐, 휴고 말하는 거야?”
“네. 그 반쪽짜리 늑대족 말입니다.”
“지도 반쪽짜리면서 허세는.”
“하하.”
“어제도 느꼈는데 몸이 꽤 좋아졌네?”
에단이 벨몬트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옷 사이로 근육의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에단의 시선을 느낀 벨몬트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칭찬은 맞는데 뭔가 재수 없네.”
“하하…….”
“그럼 슬슬 본론으로 넘어갈게.”
에단이 상체를 숙였다.
“너희 일족, 어디까지 알고 있어?”
“…….”
갑작스레 훅 들어오는 에단의 질문에 벨몬트의 표정이 굳었다.
“……질문하시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이제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어.”
에단의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말없이 에단을 응시하던 벨몬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저는 반쪽짜리 뱀파이어입니다.”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벨몬트가 손을 들었다. 손바닥에서 검은 불길이 솟아오르나 싶더니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보시다시피 쓸 수 있는 능력도 제한적이죠. 사실 순혈은 절 뱀파이어 취급도 하지 않을 겁니다.”
에단은 묵묵히 벨몬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저와 싸웠던 그 녀석…… 군주입니까?”
벨몬트의 질문에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벨몬트는 예상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것 같았습니다. 군주가 아니라면…… 그 정도의 힘은 불가능하다고 봐야죠.”
고개를 푹 숙인 벨몬트가 입술을 짓씹으며 말을 이었다.
“저희는 배척당했습니다. 자세한 이유는 알지 못합니다. 보시다시피 반쪽짜리인 저로서는 내정에 간섭할만한 위치가 아니었으니.”
벨몬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벨몬트의 안광이 서늘하게 빛났다.
“습격이 있었습니다. 습격의 주동자는 인간이었습니다. 딱히 특별한 일은 아니었죠. 인간들과 우리는 적대 관계니까요.”
잠시 말을 곱씹던 벨몬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갑작스러운 습격이었지만, 대피할 여력은 있었습니다. 녀석들이 신성력과 기적을 흩뿌리며 칼을 휘둘렀지만 그곳은 우리의 구역이었고, 날이 저물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죠. 하지만 여느 때처럼…… 어둠은 저희 편이 아니었습니다. 인간들 사이에서 익숙한 힘이 느껴졌습니다.”
“지하인가?”
“……맞습니다. 어둠은 더 이상 저희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어둠에 숨어 봤자 순식간에 발각되었죠. 어둠이 저희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이상 숨는 건 의미가 없었으니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반쪽짜리라 발각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정처 없이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어느 목소리에 이끌려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죠.”
“죽은 나무 때문인가?”
“……네. 그것만 있다면 반쪽짜리에 불과한 저도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페온은?”
“……그자는 제가 있기 전부터 있었습니다. 제가 죽은 나무에 손을 대는 것을 두고 보지 않았죠. 솔직히 두려웠습니다. 그는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죠. 결국 저는 그것에 만족했습니다.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힘이 회복되었고, 적당한 몬스터들도 권속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죠. 그 무섭던 인간들도 이곳까지 추격하지는 않았고요.”
“이곳이 블란테의 영지기 때문이겠군.”
벨몬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게 제가 알고 있는 전부입니다. 도움이 되셨습니까?”
에단은 가만히 앉아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신성 왕국과 레벨린이 유착 관계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페온의 존재가 마음에 걸렸다.
“……원래 이곳에 있었다고?”
“네, 제가 오기 전부터 그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거슬려.’
에단은 원작의 내용을 떠올렸다.
본래 주인공이 죽은 나무를 얻을 시기보다 먼저 에단은 이곳을 찾아왔다.
그리고 주인공은 벨몬트를 쓰러트리고 죽은 나무를 얻었다. 그곳에 페온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귀가 맞지 않는다.
페온은 사라졌다. 페온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소멸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누구를 기다린다고?’
대체 누구를 기다린단 말인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에단이 고개를 들어 벨몬트를 바라봤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네?”
“여기서 계속 지낼 생각이야?”
“…….”
“이번 일로 꽤나 신세를 졌어. 네가 이곳이 편하다면 이곳에 있어도 되지만, 따로 지낼 장소가 필요하다면 마련해 줄 수도 있어.”
에단의 제안에 잠시 고민하던 벨몬트가 답했다.
“저는 역시 이곳이 편합니다.”
“……그래.”
에단이 피식 웃으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난 들어가 본다.”
“이거라도 드시고 가겠습니까?”
벨몬트가 투명한 병에 담긴 새하얀 액체를 내밀었다. 보충제라고 지칭하던 그것이었다. 에단은 보충제를 받아 들고 그대로 단번에 들이켰다.
“크으.”
탄성과 함께 입술을 닦은 에단이 빈 병을 벨몬트에게 건넸다.
“잘 마셨다.”
벨몬트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 * *
에단이 동굴에서 빠져나와 다시 저택에 복귀했다.
저택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가족과도 같은 수습 기사와 가신이 죽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기사들이 에단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았다. 이 일이 벌어진 원인은 에단에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에단은 시선을 받으며 걸었다. 그러던 도중 품 안에 있던 수정구에서 마력의 기운이 느껴졌다.
에단이 수정구를 꺼내고는 마력을 불어넣자 한니발의 얼굴이 보였다.
마지막으로 연락한 시점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지만, 한니발의 안색은 수척했다.
[……일이 곤란해졌습니다.]
“무슨 일이야?”
[제국의 견제가 벌써 시작되었습니다.]
에단이 미간을 찌푸렸다.
[……거래처가 모두 잘려 나갔습니다. 다행히 정보 길드가 연락망을 유지하고 있지만, 제 직원들 대부분이 상단을 떠났습니다. 용병들도 호위 의뢰를 받지 않더군요.]
“이유는?”
[저희 상단만 엄청난 세금을 부여받고 있습니다. 원인 모를 습격도 지속되더군요.]
“카이제르인가?”
[네. 정보 길드가 준 정보에 의하면 카이제르가 움직인 동향이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신성 왕국 측에서 직접적으로 움직이면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으니 조치를 취한 것 같습니다.]
에단이 인상을 찌푸렸다. 입안이 까칠했다. 가시가 돋친 것 같았다.
“그게 전부인가?”
[……아직 한 가지 남았습니다. 신성 왕국 측에서 공식적으로 성녀를 공표했습니다.]
“그래. 예상하고 있었어.”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부탁한 인력과 자원은 어떻게 됐지?”
[이대로 가다가는 전과 같은 습격이 예상되는 상황이라…… 섣부르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잘했어. 호위 병력은 걱정하지 마. 기사들을 붙여 둘 테니까.”
[……블란테의 기사들 말씀이십니까?]
“어, 상대를 잘못 건드렸다는 걸 이번 기회에 보여 줘야지.”
그동안 너무 조용히 있었다. 이제 반격할 시간이었다.
* * *
에단은 곧장 아카데미로 향했다.
마법진에서 빛이 흘러나오며 에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에단은 곧장 네이드와 첸에게 찾아갔다.
그러고는 벌어진 상황과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전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여론전을 원하면 여론전을 하고, 싸움을 원하면 싸움을 해야지.”
“지금껏 경험 못 한 규모의 싸움일 겁니다.”
네이드의 우려 섞인 말에 에단이 피식 웃었다.
“언제 우리가 싸움을 두려워한 적이 있었나?”
“진심이십니까?”
첸이 에단을 응시하며 말했다.
에단은 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에단의 검은 눈에서 희미한 분노가 엿보였다.
“걱정하지 마시죠. 조급하게 움직일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은 힘을 기를 때니까요. 그렇다고 마음 편하게 회복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건 알고 있으시죠?”
후우―
에단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네이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에 호위 병력. 블란테인 걸 숨기고 붙여 둘 생각이야. 아마 습격은 예정되어 있겠지.”
“준비하겠습니다.”
네이드가 고개를 숙였다.
위장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네이드였다.
“여론을 주도하는 인물이 몇 명 있을 거야. 우리도 여론전을 시작하긴 할 거지만…… 거슬리게 하는 녀석들을 살려 둘 필요는 없지. 곧 있으면 명단이 나올 거야.”
“그것 또한 준비하겠습니다.”
가늘어진 네이드의 안광이 서늘하게 빛났다. 에단은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됐다고 봐도 돼. 처절한 대가를 치르게 해 주자고. 그게 블란테의 방식이잖아?”
에단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